최저임금 1만원 당장 시행하지 않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거짓말

0
1316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랜드마크는 뭐라 해도 ‘소득주도 성장’일 것이다.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률, 그리고 마찬가지로 역대 최악인 빈곤률 및 소득분배상태를 근거로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걸고 있다. 지금은 실업 및 양극화로 전 국민의 소득이 줄어든 상태이기에 정부와 기업을 비롯한 국가 전체의 성장이 침체되어 있고, 따라서 국민들의 소득을 늘려주어야만 시장이 활성화되며, 그렇게 되어야 국가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에 입각하여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를 만드는 한편으로, 공공부문 일자리 증대 및 사회적경제 육성을 포함한 ‘일자리 100일 플랜’이라는 13대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에서 가장 핵심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미 주류 경제학자들조차도 소득분배율의 악화를 지적하고 있고, 심지어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된 장하성조차 소득격차, 실업률이 “재난”수준이라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악화된 임금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만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 성장” 주장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임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이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은 이에 매우 미온적이다. 집권 초기 대중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미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대한 태도를 통해 그 계급적 본성, 즉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본성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왜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원이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심지어 수구세력인 홍준표조차도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할 정도였다. 촛불정국은 박근혜 퇴진요구를 내걸고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대규모로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다수 민중들이 겪고 있는 가혹한 삶이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 고통스러운 삶을 근본적으로 끝장낼 방도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최저임금 1만원’은 삶의 고통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그 고통을 해소할 처방까지 동시에 제시하는 구호로 힘을 얻어 급부상하였다. 대통령선거 기간의 후보자들 역시 그런 배경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언급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정치인’들이 내건 공약은 모두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선거 후보들 대부분은 3년 뒤인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처한 현실은 그만큼 한가하지 않다. 3년 후까지 갈 것도 없이 올해 당장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더라도 최저임금 적용대상 노동자들(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의 명목상 임금은 약 209만원으로, 현행 정규직 평균임금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등으로 공제되는 액수를 감안하면 실제 수령액수는 이보다도 낮다. 거기에 물가수준이나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각종 보험료까지 고려한다면, 최저임금 1만원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임금조차도 한 달을 ‘겨우 버텨낼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2015년에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2인 노동자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가 약 274만원, 3인 노동자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는 약 336만원이라 밝히고 있다. 즉, 그 정도의 비용은 있어야 한국에서 식비, 주거비, 교통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대며 실질적인 생활을 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가상승을 감안할 경우 2017년인 현재에는 생계를 위해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거라는 점은 자명하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내건 2020년이라는 시한조차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문재인 정권이 최저임금 1만원에 미온적인 이유

그런데 5월 9일, 즉 대통령선거 투표 당일에 공개된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 일자리위원회 보고서에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목표로 한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론에 대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부담을 고려하여 ‘임기중(2022년까지) 실현’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문재인이 청와대 집무실 의자에 앉기도 전의 일이었다. 앞서 한국 노동계급이 처한 상황을 볼 때 2020년조차 너무 늦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그리고 문재인 정권)은 투표용지에 잉크조차 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부터 자본가계급의 부담이 가중될 것을 걱정하며 시행시기를 5년 뒤로 늦추자고 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2016년 기준 전년대비 최저임금 상승률은 8.1%였고, 이 추세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 가정하면 시간당 최저임금은 2020년에 약 8,172원, 2022년에는 저절로 약 9,548원까지 오르게 된다. 최저임금을 2022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최저임금 1만원 실현시기를 5년 뒤인 2022년까지로 미루려는 이 계획은 당연하게도 사회 각계각층, 특히 노동계급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고, 결국 청와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식입장을 재차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여전히 3년 뒤인 2020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이미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일자리위원회 역시 가동 초기부터 자본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드러내고 있다. 6월 1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소상공인연합회 및 유통상인연합회와의 간담회를 개최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 및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애로사항을 듣고 지원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면서 그 첫 ‘소통’의 상대로 택한 쪽이 중소자본가였던 것이다.

이런 미온적 태도는 문재인 정권이 앞선 정권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자본가정권이라는 점에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아무리 듣기 좋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해도, 노동자계급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구에 대해서는 집권 초부터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소득주도 성장론은 기존 자본가정권들의 경제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기존의 정권들이 금융정책을 통해 화폐를 시장에 대량으로 푸는 방식으로 내수 활성화를 시도했다면, 소득주도 성장론은 정부의 지원금이라는 형식으로 일자리를 증가시키려고 하는 구체적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아무리 전 정권과의 정책적 차이를 강조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고용률 70%에 집착한 박근혜 정권의 정책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의 인상과 같은 조치가 없다면, 아무리 일자리가 증가해도 그것은 저질의 저임금 일자리 양산밖에는 되지 못한다. 이는 노동자민중의 삶을 개선시키는 방법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소득격차나 소득분배율, 노동분배율의 악화를 밥먹듯이 거론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태도로 볼 때 이것은 기만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적 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본가계급의 몫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노동자계급 내의 소득격차만 집중 거론하고 있다. 자본가의 부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에는 미온적이며, 소득격차 축소와 관련해 정규직 고임금을 거론하는 것을 종합해 볼 때, 거꾸로 문재인 정권의 정책은 노동자계급의 전반적 임금 정체 및 하락,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소득분배율의 악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낮은 임금을 받을수록 더 큰 이윤을 가져가는 자본가계급에게 이로운 방향이다.

정권에 읍소하는 들러리가 아닌, 당당한 주체로 서자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유예기간 없이 지금 당장 실현하라는 요구는 그만큼 한국의 노동자 민중이 처해있는 상황이 열악함을,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착취를 당해왔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앞에서 상술했듯이 최저임금 1만원은 노동자 민중의 절박하고도 시급한 요구이며,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다. 이것조차 곧바로 해주지 않은 채 외치는 ‘소득주도 성장’이나 ‘노동존중’이란, 자신들을 착한 지도자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한 기만술에 불과하다.

박근혜 탄핵으로 고양된 정세는 민중들로 하여금 지배세력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며, 거꾸로 무엇이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박근혜 탄핵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 뒤로도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내세우는 운동을 이어나갔고, 최저임금 1만원 운동 역시 그런 맥락에서 조직되어 지속적으로 요구들을 모아내고 발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 그 결과 이제는 아르바이트 채용 사이트에서조차 대통령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공모하는 이벤트가 개최될 정도가 되었다. 또한 최저임금 1만원 · 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 추진위원회(약칭 ‘만원행동’)가 출범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 시급제 알바 노동자들의 요구를 담은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정세와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정권에 읍소하는 운동이 아닌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는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가들이나 자본가정권의 기만술에 속지 않고 그들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