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운동: 여성의 삶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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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www.chicagotribune.com/]

유색 인종 여성과 청소년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리고자 타라나 버크에 의해 처음 시작된 미투(#Me too) 캠페인은 지난 해 10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고발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투’의 물결은 현재 한국에서도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한국에서의 미투 운동이 미국 사회 내 지각변동의 여파로만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6년 하반기부터 SNS 상에 ‘○○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흐름이 존재했으며,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 문인들의 ‘참고문헌 없음’ 프로젝트가 진행된 바 있다.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의 용기가 오늘 날의 미투 운동을 가능케 한 것이다.

미투 운동, 어떻게 일어났나

한국에서의 미투 운동은 2018년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사실 폭로로 인해 촉발되었다. 서지현 검사는 8년 전 동료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으나 문제제기를 한 자신만 인사 불이익을 받았으며, 검찰 내 성차별적 언행이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잘못이 없다,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는 그의 발언은 많은 여성들에게 위로를 안겨준 동시에 ‘검사조차 이런 일을 겪는구나’라는 놀라움도 불러일으켰다. 그의 폭로는 검찰과 같은 지배계급 집단에 속하는 여성도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주목받고 연극계·방송계 유력 인사들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폭로되면서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가해자 남성들이 대부분 각 분야의 ‘큰 손’이기 때문에, 이들을 고발할 때 피해 여성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이 매우 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낸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많은 여성들은 ‘나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다’, ‘돌이켜보니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며 피해자들의 폭로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피해사실을 자극적으로 그림으로써 개개인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것에만 집중하거나, 피해자를 무력하게 그리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일어났다. 성폭력, 성차별이 ‘약한 여성’들이 ‘악마적인 남성’들과 우연히 맞닥뜨려 생긴 ‘안타까운 사건’이 아니라, 여성 억압적 구조의 산물로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 미투 운동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촛불 투쟁의 경험 또한 미투 운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16년 말부터 수백만의 인파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과 권력 수뇌부들을 줄줄이 구속시킨 역사적 경험은 민중들에게 ‘내가 나서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라는 희망을 준 동시에, ‘그럼 내 삶은 바뀌었나’라는 허탈감도 안겨주었다. 한겨레신문에서 2017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촛불집회 1년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졌다’라고 평가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 중 54.9%를 차지하는 한편, 자기 자신의 삶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대로다’라고 평가한 사람이 64.6%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투 운동은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삶을 바꿔야 한다’는, 촛불 투쟁 이후 민중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즉, 여성억압적 구조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의지가 미투 운동의 주 원동력인 동시에, 촛불투쟁 이후 대통령을 갈아치우는 경험을 했지만 정작 자기 삶은 바뀌지 않은 민중들의 불만과 분노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삶을 바꾸는 투쟁,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투쟁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성역할과 보조적 위치로 인해 여성들은 성폭력에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전 성심병원의 장기자랑 사진이 공개되면서, 간호사들이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출 것을 강요받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일이 있었다. 미투 운동은 사회의 이러한 성차별적 구조를 한층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미투’를 외친 아시아나 항공의 승무원들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회장 박삼구 회장이 한 달에 한 번씩 공항 로비에서 미소로 자신을 맞으며 포옹을 할 것을 강요했고 승무원들을 사적인 자리에도 불러내는 등 여성인 승무원들에게 기쁨조의 역할을 요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또한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피해 여성들이 가해자보다도 더 가혹한 법적·도덕적 잣대를 적용 받아왔다는 걸 보여주었다. 많은 피해자들이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이라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그러한 사회적 시선이 무고죄, 명예훼손죄의 법적 근거로서 악용될까봐 피해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냈다고 토로했다.

한편 미투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문화예술계에서 지목된 가해자들이 모두 각 분야의 ‘대부급’ 인물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은은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꼽힌 원로 시인이고, 이윤택과 오태석은 연극계 대부이며, 조민기는 “청주대 예술대 캠퍼스의 왕”이고, 배병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이들은 모두 말 한 마디면 평범한 배우나 단원, 제자들의 밥줄을 끊고 문화예술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할 수 있는 유력 인사였다. ‘미투’를 선언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 때문에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었고, 표현하더라도 집단 내에서 구조적으로 묵살되었다고 밝혀 ‘권력이 있는 곳에 성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왜 이제 와서 말하냐고 묻지 마시고,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세요”라는 한 피해자의 호소(3월 5일 이윤택 성폭력 피해자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계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피해사실을 고발하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 피해자가 되려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해지는 모든 ‘비민주적인’ 조직이 고발의 대상에 포함 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특정 분야로 한정되어 있지만, 미투 운동은 비민주적 구조로 인해 ‘공공연한 비밀’로 유령처럼 떠돌던 조직 내 성차별·성폭력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투 운동은 여성들의 삶을 바꾸는 투쟁이자,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투운동에서 드러난 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적 태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26일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동원해 젠더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데 이어, 3월 4일 열린 3.8 여성의 날 기념 행사에도 축사를 보내며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청와대 인사들도 공식석상에서 미투 운동에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with you’ 팔찌를 자랑스럽게 과시했다.

물론 이 모든 게 미투 운동이 가열차게 일어나자 마지못해 진행되는 ‘이벤트성 정치’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남자 마음 설명서』라는 저서를 통해 여성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낸 바 있는 탁현민을 계속 감싸고돌고 있다. 또한 미투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탁현민의 사안이 ‘경미한 사안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혀 그에 대한 ‘의리’가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탁현민은 3월 1일, 페이스북에 태극기 사진과 함께 “나의 명예, 나의 진실, 나의 주장은 여기서 나갈 때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자신이 충분히 모든 비난을 반박할 수 있으나 나라를 위해 일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3월 5일에는 유력 차기 대선후보 안희정이 8개월 간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져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피해자는 그의 비서로서, 내부에 피해사실을 알려도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미투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소속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불과 며칠 전, 정부와 함께 성폭력 근절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당정협의체를 꾸리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안희정의 가해 사실이 폭로되자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그를 제명하여 성폭력 문제에 대해 단호하다는 인상을 남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도마뱀 꼬리자르기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미투 운동의 의의에 눈곱만큼이라도 동의한다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전국적인 컨트롤 타워를 자임하기 전에 당내 성폭력 실태조사부터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문재인 정권의 비공식 대변인 격인 김어준이 미투운동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공작에 활용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해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다. 김어준의 발언은 이벤트 정치 이면에 숨겨진 자유주의 세력의 속마음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은 선거와 지지율을 위해 다수 대중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이벤트를 급조하고 몇몇 ‘인물’을 내세워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지지자들이 가해자로 지목되었으니, 자유주의 세력은 김어준처럼 주판알을 굴리며 미투 운동으로 잃게 될 정치적 지분이나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적 태도로부터, 이들에게서 미투 운동의 전망과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미투 운동,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이 본인의 실명을 내걸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견디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었고, 또 다른 피해자에게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이러한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낸 피해자가 늘어나자 철옹성과 같았던 가해자의 권력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미투운동은 여성억압적 사회 구조에 맞서는 투쟁이자,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투쟁이다. 미투 운동에 나서서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한 여성들은 큰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다. 이제 이 운동은 사회 곳곳으로 더욱더 확산되어야 한다. 미투 운동이 아직은 권력기관, 정치권, 문화계, 일부 대학가 정도에 머물고 있는 데 비해 여성들은 사회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의 여성들은 평범한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일터에서 각종 성차별, 성폭력에 맞닥뜨리면서도 여러 가지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바로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 속에서 성차별, 성폭력에 맞선 투쟁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물론 미투 운동이 ‘어떻게’ 확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성차별적 구조 하에서 성폭력의 피해를 고발하는 피해자들은 가해자 측과의 소모적인 법정 공방이나 차별적인 사회적 시선, 2차 가해 등의 위험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마음 놓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더 많은 여성 노동자가 일터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근본적으로 근절하는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사회주의, 진보 세력 역시 함께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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