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잔혹한 불평등의 역사: ‘자본의 자유’로 ‘만인의 자유’를 억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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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1

자유(自由)란 억압이나 구속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한자 뜻 그대로, 타인이나 타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무엇이든 자기로부터 말미암아 일어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인류는 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왔다. 군부독재가 이어지던 지난 세기 80년대에 김남주 같은 저항 시인들은 절절하고 비장한 어조로 ‘자유’를 노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그런 고상한 말도 즐겨 쓰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의미가 분화되거나 아예 말뜻이 전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유라는 말의 처지 또한 그렇다.

예를 들면, 과거에 온갖 선거 부정을 일삼으며 이승만 종신독재를 꾀하다가 4.19혁명으로 무너진 정당 이름이 ‘자유당’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부터 반공 이데올로기 전파의 첨병 노릇으로 악명을 떨쳐온 관변단체 이름은 ‘한국자유총연맹’이다. 또 1990년 벽두에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등이 밀실에서 야합하여 만든 당명이 ‘민주자유당’, 그리고 1995년에 김종필이 유신 잔당 일부를 긁어모아 급조한 정당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었다. 나라 밖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 극우정당 이름은 ‘미국자유당’이고, 19세기 말에 군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침략 전쟁을 주도한 정당도 ‘자유당’이었다. 이밖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는 자유를 표방하는 정당 이름이 흔하다. 대체로 반공주의나 인종차별주의를 내거는 우파 정치 성향의 단체들이다.

한국의 자본가게급도 자유를 무척 좋아한다. 우선 한국 대자본가들의 연합단체인 전경련 공식사이트 이름이 ‘자유광장’이다. 1996년에 전경련이 설립하여 친자본, 반노동 이념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활동을 벌이게 한 단체는 ‘자유기업센터’이고, 그 후속 단체는 ‘자유경제원’이다. 지난해에 한국사 국정교과서 채택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다가 대중적 지탄을 받은 바 있는 자유경제원은 지금도 출판, 강좌, 토론회 등을 통해 자본의 자유를 예찬하는 활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이처럼 수구 정치세력이나 자본가계급이 유난히도 자유를 숭상하는 이유는 공통적으로 ‘자유주의’라는 이념적 바탕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내버려 두라!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사전이나 교과서 정의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로운 인격 표현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또한 ‘사회와 집단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사상적 흐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명 덕분에, 오늘날 학교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자유주의를 모든 인간의 보편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개인주의가 다른 개인들을 배척하고 국가주의가 다른 국가들을 배척하며 가족주의가 다른 가족들을 배척하듯, 자유주의 또한 특정 계급 외에 다른 계급의 자유를 배척하는 이념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가 보편타당한 이념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것은, 보편적 자유를 물질적 지배계급의 이념 도구로 담금질해 온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노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 역사는 적어도 2백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18세기 영국의 중상주의적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성립되었다. 자본주의 태동기에 중상주의자들은 본원적 화폐인 금과 은을 부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귀금속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혈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무역수지 흑자에 목을 맸다. 그들에게 수출은 선이고 수입은 악이었다. 그 결과는 숱한 식민지 점령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중상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금과 은을 쓸어오는 특정한 상업자본가에게 무역의 독점권을 주었다. 덕분에 여타 무역업자들의 각종 제한과 규제에 발목이 잡혀, 돈이 있어도 상품무역에 뛰어들기 어려웠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 프러시아 등 유럽 각국에서는 자유무역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상공업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웠던 프랑스에서는 중농주의자들이 ‘자유방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유무역과 토지소유의 자유를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아담 스미스가 독점권에 기반을 둔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국제적 분업에 근거한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특혜를 주는 것이든 금지하는 것이든 모든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면, 알기 쉽고 단순하며 자연스런 자유의 제도가 저절로 확립된다”며 경제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다. 한마디로 “자본가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의 책은 규제 철폐를 원하던 자유주의 자본가들의 교과서가 성경이 되었다. 그로써 영국에는 자유주의의 물결이 몰아쳤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하여 봉건적 신분제에서 벗어나려던 농민들의 요구도 솟구쳤다. 이들과 손잡은 신흥 부르주아지도 혁명에 가담했다. 이들은 교회와 귀족에게서 빼앗은 토지로 투기를 하거나 군수품을 납품하여 모은 막대한 재산을 완전하게 소유하기 위해 ‘자유’를 외쳤다. 또한 제3신분에서 벗어나 지배계급으로 성장하기 위해 ‘평등’을 외쳤다. 그리고 부르주아지 내부의 의리와 결속을 위해 ‘우애’를 내세웠다. 한편 봉건제를 철폐하고 자유, 평등, 우애를 자신들의 것으로 확보하여 부자가 된 그들은 혁명 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운 농민, 노동자 등을 폭도 군중이라 매도하며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로써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자유를 실현했다.

포르노크라테스(pornocrates)’로 표현된 19세기의 자유주의

중세적 봉건 질서와 절대왕정을 차례로 무너뜨린 터전에서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피땀을 흡수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한 착취제도는 유럽 곳곳에 ‘민족국가’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다. 혁명에서 자유를 쟁취한 것은 노동자, 농민의 피였지만, 자유를 누린 것은 혁명 대열의 배후에서 기회를 엿보던 자본가들이었다. 마침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군림한 그들은 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절정에 이른 19세기에 자본주의는 한층 발전된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국경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착취체제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종교적 억압과 신분제에 예속되어 있던 봉건제 말기의 농민들은 한때 속박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리라는 환상에 젖었다. 그리하여 낡은 체제와 싸움에 나서 기꺼이 피를 흘렸다. 하지만 자신들이 흘린 피가 부르주아지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농민들은 농노에서 임금노동자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노예적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의 절반을 영주의 토지에서 일하던 그들은 이제 하루의 4분의 3을 자본가 소유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들은 명목상 자유로운 노동자가 되었지만 실제로 얻은 것은 오직 굶어죽을 자유에 불과했다. 또한 교회의 속박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자본주의가 발명한 ‘물신(物神)’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반면 자본가계급은 타인의 잉여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자유, 타인이 생산한 결과물을 통째로 취득하고 축적할 수 있는 자유, 그렇게 소유한 물질적 수단으로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자유, 그러한 지배력을 대대손손 세습할 수 있는 자유를 법적으로 구축했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자유는 반드시 피지배계급의 속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계급은 임금노동에서 해방되어 인간적 자유를 되찾으려는 모든 시도를 일찍부터 자유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인민의 요구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는 한편으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한층 강화했다.

그 무렵 벨기에의 화가 펠리시앵 롭스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포르노크라테스(pornocrates, 1896)’라는 그림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포르노크라테스란 10세기 초반에 테오필락투스 가문 출신의 테오도라와 그녀의 딸 마로치아 등 귀부인들이 온갖 추악한 방법으로 교황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상황을 빗대던 말이었다. 그 제목에 걸맞게 작품 속에서는, 감추어야 할 신체 부위는 과감하게 노출한 반면 머리는 쓸 데 없이 거창하게 치장하고 팔과 다리에는 거추장스러운 긴 장갑과 스타킹을 착용한 여자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탐욕의 상징인 돼지를 따라 걷는다. 굽이 높은 신발도 위태로워 보인다. 허리에 묶여 있는 리본 모양의 끈은 포장된 상품을 연상케 한다. 또한 이들의 발아래 엎드려 침묵하는 예술가와 지식인들도 꼴사납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자유주의 정치의 폐해를 굳이 포르노크라테스에 빗댄 롭스의 그림은 다분히 여성혐오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서 다소 불편한 게 사실이다. 또한 자유주의 정치의 동인을 사회 토대의 법칙이 아니라 단순한 탐욕으로 설정한 점도 문제의 소지는 있다. 그런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롭스가 그림을 통해 19세기 자유주의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극명하다. 자유주의 정치가들이 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탐욕에만 끌려간다는 것, 그리고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그 자체가 거대한 상품 덩어리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거듭된 실패와 신자유주의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여러 번 실패했다. 그 가운데서 세 번은 ‘대공황’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실패했다. 첫 번째 큰 실패는 1840년대 초반의 대공황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빈곤상태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고, 자유주의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했다. 두 번째 실패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친 세계대공황을 통해 확인되었다. 특히 1929년 주가 폭락 사태에서 비롯된 미국의 경제 공황이 단기간에 전 세계로 확대되어 광범위한 경제위기를 몰고 오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본주의 초유의 사태에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종말을 고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 즈음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는 이른바 ‘뉴딜 정책’으로 금융자본을 규제하는 한편, 대규모 개발공사로 수요를 확대했다. 기존 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수정이었다. 이른바 ‘큰 정부’를 주장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일반이론』이 이에 기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도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공공부문 확대를 강조한 케인스의 ‘큰 정부’ 이론도 비판을 받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튼 프리드만 등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다시 자유화 할 것을 주문했다. 사실상 ‘자유방임주의’로 회귀하자는 이 조류는 ‘신자유주의(new freedom)’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이 주문을 적극 받아들여 국영기업을 자본가들에게 처분하고 세금과 복지예산을 줄이는 등 정부 규모를 줄이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신자유주의 정부는 ‘자본가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노동자와 인민 앞에서는 한없이 난폭한 정부’를 추구했다.

자본주의의 세 번째 실패는 지난 2008년 미국 발 경제공황으로 나타난 이래 유럽 각지를 휩쓸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공황은 자본가들의 입에서조차 “자본주의는 끝났다”는 말이 나올 만큼 깊고 길다. 무엇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공황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위기상황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 세계적인 노동자 민중의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영삼 정부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도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정책은 절정을 이루었다. 따라서 지난 십년 동안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문제”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자유주의의 역사에서 보면, 지금 문제로 삼는 신자유주의도 자본주의 체제가 발광한 스펙트럼의 한 단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 좌파는 가능한가?

지금은 자본주의에 대한 사망 진단과 함께 그 이념적 표현인 자유주의에 대한 허상도 당연히 깨져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주류 정치세력은 자유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진보적 자유주의’니 ‘자유주의 좌파’니 하는 말들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눈앞에서 몰락해가는 마당에 자유주의는 진보가 될 수 없다. 또한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 아무리 좌측에 선들 그곳에서 지금의 체제 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본질적으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즉 개인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만인의 자유’라는 환상을 내세워 자본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부르주아국가의 이데올로기이다.

쪼개진 개인들의 경쟁, 즉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경쟁이 벌어지는 야만적인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오직 만인의 자유를 억누르고서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몇몇 개인들의 자유를 위해 만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의 역사는 잔혹한 불평등의 역사였다. 자유주의에 ‘진보’나 ‘좌파’가 붙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보든 좌파든 자유주의자는 자본의 힘을 제한하고 규제하고 금지하는 각종 법률과 높은 세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정치의 목적으로 삼는다.

한국의 이전 정권들은 자유주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그 점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포함한 역대 정권은 모두 자유주의 정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자본의 활동에 대한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표현한 박근혜에 이르면 한국의 지배 권력자들에게 자유주의가 신앙처럼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이른바 ‘헬조선’으로 묘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지옥에서 노동자, 민중이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투쟁해야 한다. 그 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입에 자주 올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슬로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기념공원 내 참전 기념비에 새겨진 말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노동자, 민중의 자유든 자본가들의 자유든 자유에는 공짜가 없다. 다만 어느 쪽의 자유든 그 대가는 노동자, 민중이 치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개의 댓글

  1. “자유주의는 답이 없다.”
    그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답이 있었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워서 역사적으로 성공한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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