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투쟁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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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특집] 이제 사회주의노동운동을 하자

『사회주의자』는 129주년 노동절을 앞두고 사회주의노동운동으로의 전환을 주창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민주노조운동은 현재 노동자사상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채 조합주의, 경제주의의 협소한 틀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투쟁을 하고 있다. 노동자의 착취와 억압의 근원인 자본주의에 대해 맞선 싸움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욱 가속화되고 곳곳에서 노동자의 삶이 악화일로에 있는 이유가 자본주의에 있음이 분명해지는 지금, 노동자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자본주의와 정면 대결하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제 사회주의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가 자신의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고 해방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① 이제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이다!

② 반자본이 아니라 반자본주의다

③ 노동자의 계급의식 확립을 방해하는 학습을 버려야 한다

④ 다람쥐 쳇바퀴 투쟁에서 벗어나자

요즘 퇴직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필자는 지나온 투쟁을 되돌아본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는 작게는 직장민주화 투쟁으로 퇴역군인 및 민정당 지역간부, 바르게살기운동 위원 등 독재정권에서 꽂아 내린 간부들과 투쟁하고, 여성들의 차심부름 거부, 반말 못하게 하기, 복장 자유화 투쟁을 치열하게 하며 밤 새워가며 술 마시며 토론도 했다. 그리고 정부와의 투쟁과 조합원의 단결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공무원·교직원, 직장, 지역으로 3분된 의료보험을 통합하여 국민건강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도 했다. 정말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 투쟁이 즐거웠고 젊음을 바칠 가치가 있었고 가슴이 뿌듯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사측에 대한 굴종을 넘어 노노 간, 세대 간, 부서 간, 부서 내 개인 간에 엄청난 경쟁과 분열이 넘쳐나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회공헌활동, 청렴도평가, 동아리활동, 학습활동, 호프데이, 노사화합활동으로 사측에 포박되었다. 게다가 근무성적 평정(근평)과 승진 및 성과급 등으로 단결보다는 각자도생의 경쟁이 대세가 된 것이 현주소이다. 30년 노조에 몸 바쳤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많은 신규 노조와 조합원들이 투쟁을 위해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있다. 이미 조합원 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새롭게 투쟁하는 조직과 조합원들이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그렇게 활력이 넘치던 민주노조운동이 오늘날 이렇게 무기력해졌고 조합원들은 개별화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나아갈 방향을 잘못 잡을 경우 힘들게 투쟁하면 할수록 조합원들은 지치고 노조는 굴종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투쟁은 조합주의가 원인이다

필자는 위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30년 민주노조운동을 했지만 흡사 다람쥐 쳇바퀴 안에 있어서 열심히 뛰어도 그대로 제자리인 상황처럼 됐다. 이런 투쟁을 일러 다람쥐 쳇바퀴 투쟁이라 부르고자 한다. 다람쥐 쳇바퀴 투쟁은 이렇듯 매번 비슷한 사안을 가지고 비슷한 투쟁을 반복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제 자리에 머무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번 사측에 맞서, 정부에 맞서 열심히 투쟁하지만, 대개 기존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는 것에 머물고, 상당한 성과를 쟁취하더라도 어느새 자본에 의해 야금야금 빼앗겨 다시 원상태가 되곤 한다. 다람쥐 쳇바퀴 투쟁은 노동조합 활동을 조금이라도 해온 사람이라면 금방 수긍할 내용이다. 이제는 규격화, 제도화된 노조에서 반복되는 상근자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수백 일, 수천 일 투쟁하지만 끝은 없고 다시 자본에 대한 방어투쟁에 힘겹게 나서야 하는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투쟁이 쳇바퀴 같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필자도 30년 이상 건강보험공단에서 노조활동을 해왔지만 결국 또 다시 후퇴했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투쟁이 반복되는 것은 자본의 공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노동운동이 조합주의라는 협소한 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조합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조합주의란 무엇일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수많은 공장들이 생기고 그곳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일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때문에 생활형편과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항의할 경우, 대다수가 거절되거나 오히려 문제제기한 개인이 해고되어 생계의 곤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본가들과 집단적으로 투쟁하고 교섭하여 자신들의 고용, 임금, 노동조건 및 복리후생 등을 유지개선하려 한다. 이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활동들이 회사 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회사의 흥망에 따라서 노동자들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노동자들의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현실들은 그렇게 보인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함에 있어 자기를 고용한 자본과의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조합주의’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조합주의는 자본주의의 착취관계를 철폐하는 것은 방기하고 노동조합이란 틀 안에서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을 쟁취하는 데에만 머무르는 경향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했지만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1989년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미약하게나마 형성되던 노동자 사상마저 급격히 해체되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조합주의였다. 자본과 정권 역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기업별 노조를 안착시켰다. 그 결과 사업주와 임금·복리후생을 두고 투쟁하고 협상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노후임금이라 볼 수 있는 연금이나 퇴직금도 회사의 운영과 협상의 결과에 좌지우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은 성과급이나 자녀학자금 등이 임금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조합주의가 쉽게 안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서로가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가 오면 자본가들과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몇 십 년 열심히 투쟁해서 얻었던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할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전체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경제적 쇠사슬로 전체 자본가들에게 포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만들어 놓은 예속의 쇠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개별 자본과의 관계에서 고용, 임금, 노동조건 및 복리후생 등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자본에 대한 예속적 관계 때문에 음악에서의 도돌이표처럼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게 된다. 자본의 이윤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나오고 따라서 자본의 속성상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합주의적 우물 안 개구리 식 관점에 젖어 있으면, 이러한 사실을 알기 어렵게 된다.

필자가 처음 노조활동을 할 때는 노동조합 활동소개와 조합원들의 의식 고양을 위한 글들이 게재된 ‘노보’가 유행했다. 그 때 가장 쉽게 조합주의의 문제점을 알려주었던 글이 떠올라 이 자리에서 소개해본다. “마당 넓고 골목 좁은 동네”란 제목인데 아마 당시의 부동산 투기를 통해 조합주의의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지적한 것 같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떤 동네가 처음에는 도로도 넓고 깨끗하여 살기 좋은 동네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동네 집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돈을 더 벌려고 자기 마당을 조금 더 넓혔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마당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동네의 골목이 비좁아지고 거리는 더러워졌다. 뿐만 아니라 도둑들도 생겨났다. 결국 사람들이 그 동네를 떠나려 했다는 내용이다. 즉 소탐대실의 조합주의의 교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조합주의 활동은 당장은 단결과 투쟁 속에서 노동자의 처지를 바꿔내는 듯 보이지만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조건을 좋게 만들지 못한다. 전체 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주의에 맞설 때만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고 반복되는 쳇바퀴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노조활동을 새롭게 하는 노동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사진: 사회주의자]

전투적 조합주의는 실리적 조합주의로 통한다

노동운동이 조합주의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조합주의가 전투성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들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부르는데, 노동조합 내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데 있어서 투쟁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실 필자가 속한 건강보험노조의 경험을 살펴보면 누가 보아도 그 이상 치열한 투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활동을 했던 동지들이 많다. 이들은 자본과 정권이 노동자들을 공격할 때 가장 앞장서서 투쟁했다. 그로 인해 정권과 사측으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수차례의 구속과 해고로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해고 상태에서 보내고 심지어 복직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퇴직한 동지들도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이들의 이러한 헌신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하는 현장은 처음 노조를 만들고 투쟁할 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점이다.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한편 전투적 조합주의는 노조의 요구를 사측에 대해 타협적이고 협조적인 방식으로 추구하는 실리적 조합주의와 그리 거리가 멀지 않았다. 이들의 근본은 조합주의이다. 다만 외관상 투쟁방식이 비타협적 투쟁이냐 굴종적 타협이냐의 차이로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30여년의 경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처음에 전투적 조합주의로 출발한 민주노조 활동가들도 다년간 치열한 투쟁을 거친 후 대체로 노조의 집행권과 조합원들을 실리적 조합주의자들에게 빼앗겼고, 심지어 스스로 실리적 조합주의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사회 전체를 위해 계획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이루어진다. 이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 나온다. 더 문제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올 때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개별 기업과의 투쟁과 협상을 통해 이룩한 성과들이 도로 물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데 조합주의는 노동자가 자본으로부터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에 따른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단지 임금이나 복지 등 사후적 분배투쟁에만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반복되는 투쟁 속에서 조합원들은 전투적 투쟁방식에 피로감을 느끼고 비슷한 요구를 좀 더 편안한 방법으로 얻어내는 방식을 찾게 된다. 전투적 조합주의에 빠진 활동가들도 점차 타협적, 협조적 방식을 모색하면서 실리적 조합주의자로 변모한다. 한때 자칭 타칭 ‘남한 최대의 지하조직’이라 불리며 대규모 파업투쟁을 전개했던 서울지하철노조(현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민주파 활동가들이 점차 자유주의 정치권과의 타협, 제휴를 모색하면서 자유주의자 서울시장 아래에서 실리를 도모하는 모습으로 퇴보한 것이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노동운동으로 가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30여 년 동안 나름 열심히 투쟁했지만 남은 것은 온통 상처와 패배주의 밖에 없다. 해마다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및 복지를 위해 임금협상과 단체협상 투쟁을 열심히 해왔다. 그런데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남은 것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노동조합뿐이다.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얻었던 것들을 하나, 둘씩 내주고서 이제 남은 것은 정말 목숨 줄 하나밖에 없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동안의 활동 및 투쟁방향이 조합주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조합주의 투쟁은 당장 이득을 안겨주는 듯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노조의 존립 기반을 허물고 고용과 노동조건이 더욱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합주의는 사업장의 한계 내에서 협소한 이익을 위해 수세적 방어적 투쟁에 머무르게 한다. 그것도 노동과 자본의 불평등한 관계에 의거한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 아래에서 교섭을 할 뿐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는 파업은 업무에 대한 철수 내지 기권을 통한 방어적 무기로 사용될 뿐 자본주의 기본질서를 바꿀 수 있는 공격적인 무기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제 이러한 틀을 깨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을 전개해야 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로 무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람쥐 쳇바퀴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을 반복하지만 결국 다시 예전 상태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의 출발점인 임금, 노동조건의 개선·유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노동운동의 본령은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임금노동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철폐’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제는 편협한 조합주의를 버리고, 해방세상을 건설하는 사회주의노동운동으로 힘차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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