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이 아니라 반자본주의다

0
757
[사진: 사회주의자]

[특집] 이제 사회주의노동운동을 하자

『사회주의자』는 129주년 노동절을 앞두고 사회주의노동운동으로의 전환을 주창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민주노조운동은 현재 노동자사상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채 조합주의, 경제주의의 협소한 틀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투쟁을 하고 있다. 노동자의 착취와 억압의 근원인 자본주의에 대해 맞선 싸움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욱 가속화되고 곳곳에서 노동자의 삶이 악화일로에 있는 이유가 자본주의에 있음이 분명해지는 지금, 노동자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자본주의와 정면 대결하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제 사회주의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가 자신의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고 해방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① 이제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이다!

② 반자본이 아니라 반자본주의다

③ 노동자의 계급의식 확립을 방해하는 학습을 버려야 한다

④ 다람쥐 쳇바퀴 투쟁에서 벗어나자

자본가들마저 시인하는 “문제는 자본주의다”

얼마 전 『한국경제』는 「“자본주의가 고장났다”는 경제학자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에 따르면, 최근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런 진단을 내놓은 무리로 IMF에서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교수나 폴 콜리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재닌 가네시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등이 거론됐다. 한국에서는 이런 류의 기사를 접하기가 어렵다보니 수구적 색채가 강한 경제지인 『한국경제』가 이런 기사를 냈다는 것 자체가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주류 학자, 언론뿐 아니라 자본가들이 직접 나서서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시인하고 그 결점을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억만장자 투자가 하워드 마크스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자본주의의 비용은, 일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성공하고 일부 사람들은 성공을 하지 못한 데 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헤지펀드로 막대한 돈을 번 레이 다리오는 한 연설에서 “기본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고장 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전세계 1위 부자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빌 게이츠조차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떠밀려 자본주의에 좋은 점도 있다고 수세적인 변명을 늘어놓는 한편 부자에 대한 세금을 대폭 인상하는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류 경제학자, 언론, 거대 자본가 등이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지도 못하고 소득 불평등과 같은 결점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를 고쳐야 한다고 나오게 된 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본주의의 실체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인식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반자본주의 요구가 거세졌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반자본주의’가 이제 진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노동자가 빈곤하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가 뜨거워지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는 것도, 여성이 성차별, 성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다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자본가계급과 그 옹호세력조차 자본주의를 좋은 체제로 미화하는 것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그들은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노동자 민중의 불만을 수용하는 가운데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길을 택한 것이다.

반자본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민주노조운동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목소리, 자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매우 힘든 실정이다. 주류 언론을 살펴보면, 주로 조선, 중앙, 매경, 한경과 같은 수구 언론들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런 내용을 간간히 다루기도 하지만, 대다수 자유주의 언론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목소리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 자체가 자본가 계급의 일부라는 점에서 이들의 태도는 자신의 계급적 입장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진보세력에서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진보세력 안에서도 반자본주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자유주의세력에 대해 동류의식을 느끼는 게 과연 진보인가?」에서 자세히 살핀바, 적지 않은 진보세력이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의식은 전혀 갖지 못하고 오히려 자유주의세력의 뒤꽁무니만 바라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진보세력 상당수가 오래 전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확신을 상실했고, 그 후 점차 진보성을 탈각한 채 자유주의화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진보세력 상당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심해져서 자본주의를 문제삼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길 한사코 꺼리는 집단이 된 것이다.

심지어 민주노조운동 안에서조차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규모 조합원 수를 자랑하는 노동조합은 차치하고 새롭게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 더 나아가 투쟁한지 수백 일을 우습게 넘기는 오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 입에서도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발언이나 글을 발견하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일에 비견될 정도다.

여러 노동자들의 투쟁 집회 등에 연대해서 그 발언을 들어보면, 자본(혹은 재벌)에 대한 규탄, 정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매우 날 선 발언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 자본, 혹은 일부 자본 집단에 대한 규탄 수준에 머무르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고초를 겪는다는 주장은 거의 접할 수 없다. 정권에 대한 규탄의 경우에도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라면 국민 모두의 편에 서야 되는데 자본의 편만 든다, 이게 나라냐 정도의 발언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 결국 정권에 대해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읍소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바로 ‘반자본’이다. 여러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글이나 집회발언에서 나오는 정치적 표현의 최대치를 보면 ‘반자본’을 넘지 못한다. 이는 정치단체라고 다를 바 없다. ‘노동’을 당명으로 내건 노동당은 <노동정치, 만나러 갑니다>란 캠페인을 알리는 문구에서 문재인 정권의 노동개악을 규탄하면서도 그것이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개악”이라고 칭했다. 이는 노동당이 자본과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규탄하지만 현 체제의 틀 안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변혁노동자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변혁당은 창당 이래 ‘반자본’이라는 표현을 즐겨 써왔다. 이런 모습은 최근에 들어서도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 『변혁정치』에 게재된 올해 총회 결의문이나 사업방향을 보면 ‘자본주의’, ‘반자본주의’라는 말은 한 번도 쓰이지 않았고, 단지 ‘반자본’ 사회화라는 말만 몇 차례 쓰였을 뿐이다.

독자 중에는 ‘반자본’과 ‘반자본주의’란 말은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정면에서 문제 삼는 인식이 담긴 반면 ‘반자본’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가 정확히 표현되지 않는 말이다. ‘반자본’은 민주노조운동이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개별자본, 혹은 몇몇 자본 집단에 대한 노동조합 투쟁 수준에 머무는 것을 상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노동자들이 개별자본을 넘어 전체 자본가계급에 맞서 투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틀은 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경사노위에 반대하는 투쟁이 그런 경우이다. 경사노위 반대는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자본가계급 전체와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경사노위 반대 투쟁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경사노위 반대 투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사노위 반대를 말하는 만큼 노동자의 삶을 옥죄는 진짜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민주노조운동이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래 노동자 투쟁에서 높은 정치적 인식과 요구를 보여준 곳은 파인텍지회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자신의 현안 요구 외에도 노동악법 철폐, 악의 축 헬조선 해체 등 정치적 요구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파인텍 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 역시 ‘헬조선’과 같이 애매하고 은유적이며, 수구세력뿐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 역시 같은 자본가계급으로서 투쟁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기는 어려움이 있는 용어에 머무르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치투쟁을 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노동자들이 개별 자본에 맞서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싸우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리고 경사노위 반대와 같이 개별 자본을 넘어선 자본가계급 전체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본가 정권에 맞서 자기 요구를 내걸고 싸우는 투쟁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투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왜 자신이 착취받고 억압받는지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이 착취·억압을 철폐하고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임금노동제에 기반을 둔 체제다.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핵심은 바로 임금노동자의 존재이다.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가 체제의 목적이고 그 이윤은 임금노동자를 착취해야만 벌어들일 수 있다. 더 큰 이윤은 노동자에 대한 더 큰 착취에서 나온다. 따라서 노동자는 체제의 성격상 자본주의와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고, 노동자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개별자본과 싸워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 투쟁 속에서 경우에 따라 그 자본에 대해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임금노동제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결국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자본에 계속 예속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자.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투쟁은 크게 세 가지 형태를 띤다. 경제투쟁, 정치투쟁, 이데올로기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투쟁은 노동자의 생활조건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주로 노동조합의 요구투쟁, 시위, 파업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이 상대적, 절대적으로 빈곤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경제투쟁은 주로 개별 자본가나 자본가계급 전체에 양보를 강요하고 부분적으로 생활조건, 노동조건을 개선하여 이런 경향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 투쟁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의 삶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임금노동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한계 역시 분명하다.

정치투쟁은 대개 노동운동 탄압분쇄 투쟁이나 제도개선 투쟁 등 자본가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투쟁을 일컫는다. 그러나 정치투쟁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본질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임금노동제를 철폐하고 노동자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게 정치투쟁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형태 중 최고 형태의 투쟁이 정치투쟁이다. 노동자들은 자본의 착취·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투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투쟁이 존재한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공세를 벌이고 자본주의 체제의 영원성과 정당성을 선전하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다.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자신의 착취적 속성을 은폐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물신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의식에 쉽게 이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꾸준한 학습과 실천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획득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본가계급에 맞서 투쟁을 전개함에 있어서, 이 세 가지 투쟁 형태를 올바르게 결합시켜 투쟁해야만 제대로 싸울 수 있고 임금노동제라는 자신의 족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투쟁 형태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로 대체되거나 환원되는 것이 아니고 각 투쟁은 모두 노동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투쟁이다. 그러나 경제투쟁은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노동조건을 개선시킨다는 의미가 있더라도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넘어서지 못하는 투쟁인 반면 정치투쟁은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 노동자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투쟁에 임함에 있어 정치투쟁을 중심으로 경제투쟁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 두 투쟁은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관념적인 장벽을 만들어서는 안 되지만, 경제투쟁을 열심히 하면 정치투쟁이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는 식의 생각 역시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획득하고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 공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만드는 이데올로기투쟁을 매우 중요하게 전개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반자본’에 머무른 채 ‘반자본주의’를 말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의 세 가지 투쟁 형태 중 경제투쟁이라는 오직 한 가지 것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는 이것을 ‘경제주의’라고 불러왔다. 이것은 노동자의 무기를, 그것도 더 강력한 무기를 두 개나 방치해두고 있는 것과 같다. 특히 자본주의 모순이 극렬해져서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를 문제 삼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반자본주의’라는 정치투쟁을 방기하는 것은 자본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치명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으로 나가자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들리는 이야기 중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는 ‘뭐라도 하자’라는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은 계속 되고, 민주노총 내 적지 않은 세력이 정치적으로 자유주의 세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퇴보하여 제대로 된 투쟁을 회피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개별 투쟁은 이기기 힘들고 자본의 공격에 맞서기도 어렵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라도 하자’는 식의 접근으로는 노동자들의 어려운 투쟁 상황을 바꾸어낼 수 없다. 애초 접근 방식 자체가 수세적이고 패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을 새롭게 다지고 자신의 방향과 목표를 정확히 세워 진취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 기본은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그 안에서 노동자는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세우고 그에 맞게 싸움을 만드는 것이다.

한편 민주노조운동이 이제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의 절박한 당면 요구를 가지고 싸우면서 그 투쟁을 확대하고 상승시켜 가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이른바 경제투쟁을 더 가열차게 전개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물신성과 같은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에 경제투쟁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노동자의 인식과 투쟁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진짜 주범인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발전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경제투쟁만으로는 정치투쟁으로까지 가지 못한다는 점이 계속 확인되어 왔다.

또한 자본주의를 ‘추상적’으로 문제 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자본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면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경제투쟁에 머무는 것을 ‘구체’라는 미명 하에 변명하는 격이다. 게다가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가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운 삶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고 투쟁의 대상을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운동이 상승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만 봐도 청년들에게 자본주의는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으로 가장 명쾌하게 상징화되었다. 그 결과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고 이것은 미국 지배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 글은 제목을 “반자본이 아니라 반자본주의다”로 삼았다. 노동자들의 세 가지 투쟁 형태에 대해 말한 것에 비추어보면, 정확한 표현은 아닐 수 있다. 노동자들이 ‘반자본’ 투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자본’으로 표현되는 경제투쟁에만 머무르는 경향은 너무 강한 반면 ‘반자본주의’로 표현되는 정치투쟁에 대해서는 외면, 방기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잘못된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그와 같은 제목을 잡았다.

노동자들이 경제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도, 수백, 수천 일 동안 거리에 나와 싸워야 하는 이유도 모두 자본주의에 있다. 노동자의 착취를 통해 자본가가 막대한 부를 쌓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처절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겪는 착취·억압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리고 이 투쟁 속에서 노동자는 정치적 자각의 수준을 높이고 자신의 해방을 통해 인간 전체를 해방하는 주체로서 나설 수 있다. 정치투쟁의 내용이 반자본주의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 노동자 국가 수립 등 더 전진해나가야 하지만 이 글에서 반자본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들이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철폐함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으로 나가자!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