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 기각, 이것이 자본주의

0
1348
[사진: 김한주(참세상)]

1월 19일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최고책임자인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로써 사법부는 공정한 심판자가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마름에 불과하다는 것이 또 다시 확인됐다. 사람들은 2,400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은 노동자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과 비교하며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사건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2,400원과 400억 원의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계급에 대한 판결인가 하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봐야한다.

이제껏 재벌총수라고 불리는 자본가계급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제대로 처벌받은 경우는 없다.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은 받았어도 모두 집행유예와 벌금으로 풀러나거나, 관리자에 불과한 하수인만 처벌받았다. 징역형을 받아도 얼마 안 되어 사면으로 나오곤 했다. 오히려 고발자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고발자가 처벌을 받은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삼성 x파일 사건이다. 이렇듯 사법부는 자본가계급에게는 언제나 관대했다. 아니 관대해야만 했다. 국가권력이 본질적으로 자본가계급에게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원리다.

사법부의 영장 기각
‘기울어진 운동장에 합리적 균형은 존재할 수 없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이 기각 사유는 법리적으로 볼 때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계급지배의 사회에서 우리는 매우 합리적이며 공평한 민주적인 장치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장치들은 애초 지배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단적으로 법은 어느 계급이 만드는가? 바로 자본가계급이 정치권력을 관리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든다. 그런데 이 관계를 단순히 개별자본과 개별 정치인(세력)의 관계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쓴 계급지배의 본질이다. 사법부의 존재가 그렇다. 법에 호소하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거나, 불의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계급지배의 벽을 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절차와 관행과 법조문들이 존재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균형이 가능하겠는가. 간혹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매우 관대하고 급진적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이며 계급적인 사안에서는 결코 그 벽을 넘을 수 없다. 이재용의 영장기각이 흔들릴 수 없는 증거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제한된다.

특검아 힘내라?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장이 기각된 후 특검에게 영장 재청구를 요구하며 특검에게 힘내라는 응원이 봇물터지듯 확산되고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목표가 잘못됐다. 박근혜 퇴진과 관련해서도 촛불은 ‘즉각적인 퇴진(하야)’을 요구했다. 그러나 거대한 대중의 진출에 겁먹은 보수야당이 탄핵소추라는 절차를 이용해 급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대중의 투쟁을 의회와 계급지배의 시스템에 가두는데 성공했다. 지금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을 그저 오매불망 목메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거리의 역동적인 흐름은 사그라들었다. 이 결과가 이재용의 영장청구가 기각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

특검은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특검의 행동은 박근혜 정권의 수족을 자르는 것에서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그들도 지배계급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수백만의 촛불이 권력을 심판하도록 강제해서 이 정도까지 한 것 뿐이다. 그들이 이 끔찍한 자본주의체제에서 지배계급의 일원(관리자)이었다는 것을 잊지말자.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할 행동은 거리에서의 급진적인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다.몇 달 전만해도 우리는 박근혜정권의 급격한 몰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떤 뛰어난 개인과 조직이 아니라 거리를 가득메운 수백만의 촛불이 만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은 바로 거리에 있는 것이며, 그 힘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탄핵소추안을 둘러싼 의회에서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영웅이 나타나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대리주의’는 그만 버리자.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자본보다 우위에 있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많은 장치가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오히려 반대이다. 자본가계급이 권력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게이트에서 둘의 관계는 공범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뇌물로 권력을 관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자본가계급의 찌라시인 수구언론이 이재용의 영장청구에서 보인 단일한 공동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중동은 이재용 구속영장에 일제히 특검을 비판하고 나섰다.

마르크스가 말한대로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권력의 얼굴마담에 불과한 박근혜정권을 내친다고 계급지배의 본질이 변혁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 부역자들인 검경과 언론, 새누리당, 재벌들의 개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계급지배의 도구인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뜨린 후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은 어느 곳을 향해야할까? 그것은 권력의 배후세력인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물적토대인 생산수단 사적 소유를 문제삼는 것이다. 즉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