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하는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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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변화발전한다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천동설 이야기를 한번쯤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불과 몇 백 년 전에 인간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하늘의 모든 별들도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영원한 진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것이 자연의 순리로 그치지 않았다. 자연의 순리는 인간사회의 순리로 연결되었고, 왕과 사제, 귀족과 평민, 노예 등 신분질서를 옹호하는 논리로 연결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결정되고 차별이 항상 존재하는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모든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듯이, 모든 인간도 왕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각자의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천년 이상 인간사회를 지배한 사상이었다.

그런데 겉보기에 당연한 것으로 보였던 천동설은, 망원경의 발명과 같은 과학의 발전으로 도전받기 시작했다. 지구 주위를 돈다는 금성이 달과 같이 모양이 변화했고, 목성 중위를 도는 별(위성)들도 발견되었다. 결국 갈릴레오라는 과학자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교회는 이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알아왔던 자연법칙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었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신분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조르다노 브루노라는 사람은 끝까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의 관점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천년 넘게 사람들이 믿어왔던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인간 의식의 혁명적인 변화 중 하나였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신이 중심이 되고, 왕이 신처럼 받들어지는 사회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봉건제는 무너졌고 신분제는 폐지되었다. 생산력이 발전과 함께 봉건제는 자본주의로 역사적 이행을 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신분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처럼 변화발전 해 온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헤엄을 치고, 새가 공기의 존재를 모르고 날듯이, 우리도 자본주의라는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대부분 살아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래왔고 수십 년 동안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봉건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현상이 진리라고 믿고, 신분제가 당연하고 신분에 따른 차별과 부조리를 당연하고 영원한 것처럼 믿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인 자본가들과 그를 따르는 지식인들 또한 한사코 자본주의의 변화발전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막아왔다. 마치 중세 봉건시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 이들은 90년대 초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등장했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역사의 종말’,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표현을 동원해서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있지만 자본주의 틀 내에서 보완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얘기했고, 자본주의 사회가 인류의 본성에 맞는 최후의 사회제도라는 것을 강조해 나갔다.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는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치유불가능할 정도로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취업할 곳이 없고,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고 출산율은 사상 최저가 되고 있고, 수백만 원 대학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부모들은 회사에서 찍소리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대학 들어간 자녀들은 공부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학교생활을 대신하고 있다. 노인들은 2명 중 1명은 빈곤이고, 구조조정으로 갈수록 해고는 늘어가고 있고, 자영업은 포화상태로 성공할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청년실업의 문제, 비정규직의 확대, 교육의 양극화, 빈부격차의 심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은 점점 자본주의의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보니 자본가들조차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또한 2008년 미국에서 공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 민중들은 광장을 점거하고 ‘자본주의가 고장났다’고 외쳤다. 공황이 유럽을 덮쳤을 때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발간된 지 150년이 되어가는 맑스의 『자본론』이 유행하기도 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이제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지배세력의 의도와 달리 노동자 민중의 박근혜 퇴진 투쟁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은 한편으로 수구 정권의 민낯에 분노한 것으로 촉발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삶이 황폐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퇴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들이 20년간 해결을 약속하고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청년실업은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잘못된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일부 노동자들의 의식은 자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지배계급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는 돈을 주식에 투자해 누가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는 얘기,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해서 차익을 남길 줄 알아야 부자가 된다는 생각도 많다. 어느 채권에 투자하면 돈이 된다더라 등, 노동을 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노동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낳는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 노동자들은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로 이렇게 생각할 여력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쁘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황폐화되고 있는지 고민할 여유도 부족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로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 학습이 절실하다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제는 겉으로 보면 매우 공정하게 보인다. 자유로운 근로계약을 통해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는 공정한 제도인 것으로 보인다. 공정하다면 열심히 노력한 노동자들도 잘 살아야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열악해지고,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익을 쌓아가고 있다. 공정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과학이 발달되기 전에, 눈에 보이는 대로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와 싸우고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상에 매몰되면 안 되고, 학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맑스가 노동자들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자본론』을 쓴 것도,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현상에서 벗어나 그것의 본질을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너무 많이 착취한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것은 생활에 필요한 적정한 임금을 주지 않고,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저임금 착취가 아니라, 정말 자본가들이 어떻게 이윤을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사회주의 학습의 핵심 중 하나인 잉여가치론은 바로 이윤이 노동자의 노동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주류경제학과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와 싸우기 위해 노동자들은 최소한 이윤이 어디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학습과 토론이 필수적이다.

최근 노동운동이 위기를 겪으면서 학습과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잉여가치론과 같은 필수적인 내용은 거세되고, 북유럽 복지 모델 등이 주요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많은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황, 실업, 빈부격차의 문제의 원인은 바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에 있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는 경제학자들조차 지금의 경제공황에 대한 처방으로 기껏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찍어내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에서 근본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로 단련된 노동자들만이 경제공황으로 황폐화된 야만의 시대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이윤이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발생한다는 내용인 잉여가치론만이라도 심도있게 노동자들 사이에서 학습되고 공유된다면, 지금 발생하는 실업과 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들에 대한 근본원인을 이해하고 진취적인 대안을 주장해 나가는 운동이 만들어 질 것이다. 자본주의 공황으로 발생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대해 고용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직접 운영하고 고용을 지켜나가는 주장을 해 나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유물론, 국가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단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자신감 있는 투쟁들도 더욱 확대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핵심을 학습하자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주도세력으로 나서질 못하고 있을 정도로, 노동운동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조합주의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적당한 임금, 기업 내 고용에만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와 싸우는 노동운동의 전망을 뚜렷하게 세워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전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사회주의 핵심에 대한 대대적인 학습사업이 필요하다.

공부하는 것에 대해 따분하고 지루하고, 바쁜 투쟁과정에서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노동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많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 노동운동은 한치 앞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 현재 노동자들은 상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도 없고, 독자적 정치세력화도 당분간 어려운 상황이며, 뚜렷한 전망도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자본과의 투쟁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많고, 투쟁의 경험을 통해 발전하는 것보다 서로 지치고 후퇴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이때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막연히 투쟁을 하는 것으로 이러한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노동자들이 비록 현실의 투쟁이 힘들더라도, 자본주의가 영원불변의 제도가 아니라는 점, 현재의 문제들이 몇 가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이러한 생각들이 확산되는 투쟁을 만들어 간다면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자본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공부하는 노동자’라는 말이 있다. 진짜 그렇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사회주의를 학습하는 노동자’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가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세력이 아니겠는가? 사회주의 핵심을 학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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