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을 이겨낸 “노동자의 책”, 더 왕성한 활동이 기대된다

0
1094
[사진: 사회주의자]

7월 2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남부지방법원 406호 법정에서는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 동지에 대한 선고공판이 진행되었다. 판결의 중요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지, 방청석이 가득차 있었다. 판사는 지난 공판에서 피고의 최후발언이 끝난 후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친 것을 들며, 선고과정에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동안 판사의 태도를 보았을 때 재판 결과에 대해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판사가 짧지 않은 선고이유를 말하는 동안, 판결이 안좋게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들었다. 검사가 이적표현물로 기소한 책과 자료 중 상당수를 재판부가 이적표현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기소된 책들이 일부 이적표현물일지라도 이진영 동지의 이적목적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검사가 기소한 바,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5항에 대해 모두 무죄로 선고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압수수색을 당한 작년 7월 28일 이후 1년, 그리고 구속된 올해 1월 5일 이후 6개월 여만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로써 공안기관의 국가보안법 탄압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진영 동지는 자유의 몸이 됐다.

이진영 동지의 판결이 있기까지

작년 7월 압수수색이 있었지만, 공소장과 증거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수년전부터 이진영 동지에 대한 수사가 몰래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공안기관은 2013년경 이진영 동지의 다양한 이메일, SNS, 전화기록 등을 본인 몰래 압수수색하여 확보하였다. 공안기관은 가령 1년간 주변인과 통화한 전화기록을 분석하였고,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등 전과가 있는 개인들과의 전화기록 사실을 집중 부각하는 증거를 법원에 제시했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히 범죄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전반적 ‘태양’을 살펴 범죄여부를 판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이러한 법 적용방식 자체가 매우 자의적인 적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안기관은 이런 전화기록을 제시하여 피고인 이진영이 질 나쁜 공안범죄 전력자와 어울리고 있다는 인상을 재판부에 심어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화기록 증거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장모님과 부인이 1위, 2위로 올라와 있었다. 국가보안법 재판이 얼마나 황당한지는 이런 우스운 증거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공안기관은 몇 년 전 남몰래 수사를 하고서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진영 동지를 기소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점이 이미 이를 통해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 7월 가택 압수수색을 하여 탄압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6개월간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1월 초 전격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유 중 하나는 이진영 동지가 압수수색 이후에도 탄압에 움츠리지 않고 더 열심히 <노동자의 책> 운영을 했고, 이런 의도를 여러 차례 공공연히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월 초는 박근혜가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이후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수구세력이 정치적으로 대거 밀리는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이진영 동지에 대한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원은 이러한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이는 황당한 결정을 했고, 이로 인해 이진영 동지는 6개월 동안이나 구치소에 수감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진영 동지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진 이후, 재판은 지지부진하게 돌아갔다. 변호인측은 이진영 동지의 활동이 정말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인지 묻고자 한다는 취지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재판부에 요구했다. 이 국민참여재판의 수용 여부를 두고 4개월간 계속 재판이 공전했다. 특히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검찰은 배심원들이 피고인측의 선전과 선동에 의해 사상적으로 오염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늘여놓았다. 결국 짧은 기일 내에 방대한 증거자료 서증과 내용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민찬여재판’은 수용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6월 19일, 20일, 22일, 3일 내내 집중 심리가 진행됐다. 이 재판의 말미에 이진영 동지의 최후변론이 있었다. 그리고 검사는 이진영 동지에게 2년을 구형했다.

무죄판결의 의미

판결내용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 중 일부만을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검사가 증거로 제시한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이적성을 인정한 것이니, 몇 년 전이었다면 이진영 동지에게 유죄가 내려졌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과거 적용사례를 살펴보면, 표현물의 이적성만 인정되어도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것이 되어서 유죄가 내려졌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과거 이적표현물 소지죄는 쉽사리 국가보안법 탄압의 올가미를 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그런데 2010년 새로운 대법 판례가 나오면서 이러한 법적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2010년 7월 23일 대법원에서 나온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2010도1189)에 따르면, “행위자가 표현물의 이적성을 인식하고 제5항의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인정되지 아니하면 그 구성요건은 충족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행위자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하며, 행위자가 이적표현물임을 인식하고 제5항의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추정해서는 아니된다”고 했다. 더 나아가 대법은 “이적표현물임을 인식하면서 취득ㆍ소지 또는 제작ㆍ반포하였다면 그 행위자에게는 위 표현물의 내용과 같은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하여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다른 대법원 판결들을 변경한다”고 판시했다.

요컨대 이적성과 이적목적성을 명확히 구분하고, 피고인이 이적성이 있는 표현물을 소지, 반포 등을 했다 하더라고 그것이 곧장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이적목적성이 분명히 확인되어야만 유죄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적목적성의 입증 책임을 명확히 검사에게 부여했다. 이러한 판례에 입각해, 검사가 제시한 책들 중 일부가 이적표현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진영 동지의 이적목적성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또한 이진영 동지가 공공연히 사회주의자임을 밝혔어도 이것이 국가존립에 대한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협”이 되거나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고, 자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틀 안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법의 해석적용에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보안법 제1조 2항의 원칙을 견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87년 6월 항쟁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가 거세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존치하는 대신 신설한 조항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존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는 최소적용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해석과 부당한 탄압을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국가보안법 적용의 결과로서 나온 이진영 동지의 무죄 판결은 사회주의운동과 진보운동의 활동공간을 확장하는 의미를 갖는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것은 국가보안법 적용을 ‘합리화’하여 법의 존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보안법의 변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애초 반민주, 반인권, 반민중적 악법이란 성격을 본질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관련 법 조항 신설과 최소적용의 노력이 있다하더라도 언제고 진보적 사상과 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써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많은 이들이 ‘어느 시절 국가보안법이냐’고 생각하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국가보안법 탄압과 이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은 속출하고 있다. 이진영 동지 역시 이 무죄판결이 나올 때까지 검찰의 기소 내용으로 인해 6개월 이상 감옥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국가보안법이 존치하는 상황에서 이 법의 악법적 요소를 부각하며 법의 적용범위를 축소시키는 투쟁을 통해 자유로운 정치활동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만이 이런 탄압과 인권유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진: 사회주의자]

“공부 열심히 합시다!”
더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는 <노동자의 책>

한편 이진영 동지에 대한 탄압은 <노동자의 책>(http://laborsbook.org/) 활동에 대한 탄압을 의미했다. <노동자의 책>은 이제는 잊혀져 가는 8-90년대 사회과학 서적과 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민간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다양한 곳에서 이미 이러한 아카이브 구축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노동자의 책>이 탄압 대상이 된 것은, <노동자의 책>이 변혁성을 간직한 채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책> 취지문을 살펴보면, “이 공간은 비판적, 변혁적 인문사회과학이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실의 관심사가 되도록 활동하며, 비판적, 변혁적 사상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손쉽게 얻고 교환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진영 동지 역시 8-90년대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아카이브 활동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노동자의 책> 운영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진영 동지는 최후변론에서 “제가 8-90년대 인천, 구로, 마창, 울산, 부산 등지의 공단에서 파업투쟁 등 노동자투쟁을 몸소 취재하면서 겪었던 경험이야말로 <노동자의 책>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검찰은 단지 증거로 제시한 책들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이적성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이 책들을 소지, 반포한 이진영이란 인물의 사상을 계속 문제 삼았다. 반면 이진영 동지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굽히지 않는 태도를 유지했다.

최소한 검찰의 이러한 태도는 법리적으로는 황당한 것이지만, 일말의 계급적 진실은 담고 있다. 책과 글은 누구 손에 들어가서, 읽히고, 해석되느냐에 따라 엄창난 차이를 만든다는 진실 말이다. 『공산당 선언』, 『자본론』이 단지 학자의 손에서 학술적 목적으로 읽힐 때와 자본주의가 낳은 착취와 억압에 절감하고 이를 변혁하고자 하는 노동자 손에서 읽힐 때는 완전히 다른 의미와 결과를 낳을 것이다.

20일 당일 재판이 끝나자마자 이진영 동지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법원 앞에서 많은 동지들이 투쟁을 이기고 당당히 돌아온 이진영 동지를 맞이해주었다. 남부지방법원 정문에서는 간략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이진영 동지는 다음과 같이 힘차게 주장을 했다.

오늘 나와 봤을 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점은 제게 큰 힘을 주었고, 노동자의 책 활동, 즉 우리가 한 번의 샤우팅이나 집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공부하고 학습함으로써 선전하고 조직하는 그런 활동가의 자세를 갖기 위해 학습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공부 열심히 합시다!

노동자의 변혁적 의식을 함양을 목적으로 한 <노동자의 책>에 대한 공안기관의 탄압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모색하는 노동자의 활동이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란 악법으로 가두어 질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제 탄압을 이겨낸 <노동자의 책>이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일깨우고 사회주의 사상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리라 기대한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