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정치세력 슬하의 노동조합

0
1539
(c) 2016. 서울지하철노조

공공운수노조의 성과연봉제 반대투쟁에 직접 참여하였던 조합원으로서 그 투쟁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기댄 투쟁

9월 26일, 공공운수노조는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27일부터 15개 공공기관노동조합 6만3천여 명이 전면파업을 시작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는 파업 시작 전부터 ‘더불어민주당’사를 들락거리며 의회 내 자유주의 정치세력 간의 조율을 간구하며 파업의 퇴로(출구)를 모색하였다.

파업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인 9월 21일 14시, 공공운수노조위원장 조상수, 철도/건보/국민연금/서울대병원/서울지하철노조대표자 및 실무자/보건의료대표자들이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우상호, 기재위 간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파업 중인 10월 2일 16시에는 노동계를 대표해 조상수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을 포함한 6인이 ‘더민주 당대표실’에서 추미애 대표 외 2인을 만났다. 10월 6일, 양대노총 공공부문노동조합 공대위 5개 산별노조와 파업노조, 시민사회공동행동이 더민주 원내대표 우상호와 간담회를 갖고, “성과연봉제 관련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국회 중재요청서’ 전달식을 가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임만 3차례였고 회합의 주제는 공히 파업국면의 해결을 위한 새누리당과의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이었다. 2013년, 22일의 철도민영화 반대파업은 ‘영웅적’으로 진행되다가 여·야·노 간 합의하여 구성한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정리되었다. 그러나 그 후 소위원회는 아무런 역할도 않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공공운수노조의 행보는 이 잔영을 다시 실물화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위로 판단된다. 파업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대중이 체감하지 못하는 준법파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매뉴얼파업

지하철노조는 파업 개시 전부터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던 공공운수노조의 방침에 따라, 필수공익사업장 법에 따르는 ‘준법파업’을 시작하였다. 아주 짧은 파업, 조속한 복귀로 끝난 지하철노조의 파업일정 또한 정해져 있었다. 9월 27, 28, 29, 30일이라는 4일간의 준법파업을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파업출정식에서 집행부는 “왜 파업종료일을 정해놓고 싸우느냐?”라는 조합원들의 질의가 없었는데도 도둑이 제 발을 저리듯 단상에서 그 ‘기한’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추후 지하철노조 임단협 시에 (철도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다시 파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발언은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파업 둘째 날인 28일에는 현장간부의 입에서 “29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시투자기관 노사교섭이 있고 오후에는 타결될 것이다. 야간근무조는 근무시간에 복귀하면 된다”라는 말이 전달되었다. 다음날 이 말 그대로 되었다. 파업을 시작하자마자 850여명이 직위해제 된 부산지하철의 노동자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대거 여의도 문화마당에 당도하였는데, 무대에서는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의 투쟁경과 보고가 진행되고 있었다.

“공공기관사업장 투쟁본부의 허가를 득하여 서울시투자기관 노사 5개사가 합의를 하였다.” 이어 단상에 선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은 “부산지하철도 ‘서울’과 같은 합의를 하고 싶다”라는 짧은 발언을 남기고 총총히 관광버스에 올랐다.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의 발언은 ‘노사합의를 한 사업장’의 노동자로서 여의도 문화마당 파업집회를 긴장 없이 지키고 있던 지하철 조합원들에게 복잡한 심경으로 다가왔다.

서울시는 달랐다?

서울지하철노조 포함 5개투자기관 노조가 얻은 것은 기존 ‘취업규칙의 재확인’에 불과하다. 이후에 전개될 정부의 차별적인 인센티브 공격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서울시의 합의안을 롤모델로 치켜세우고 “서울시는 달랐다”식의 촌평을 내면서 점잖게 정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상층의 인식 수준이 대부분 다르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투자기관 노사의 성과연봉제 협상에서 합의를 실제적으로 주도한 서울시장은 ‘친노동’, ‘노동중심’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서울시 산하 사업장의 ‘노동운동가’로 불리는 대부분의 노조간부들도 이 상징적 언어를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친노동’은 ‘친자본’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노동중심’ 또한 ‘자본중심’ 사고와 함께 가는 표현이다. ‘친노동, 노동중심’과 ‘친자본, 자본중심’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하나임을 상층의 노조간부들은 애써 외면하는 듯 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시장이라는 사람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지하철노조의 파업을 응원한다고 치하하면서 정작 파업현장에는 서울시 공무원을 대체인력으로 파견하여 파업을 파괴하는 행위가 그런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기 전에 사회운동 한다고 하면서 기업(자본가)들에게 후원을 받았던 일도 비슷한 일이다.

이번 파업 국면은 대선을 앞둔 서울시장에게는 나름 정치적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기였고, 지하철노조를 포함한 산하투자기관 사업장의 노조 또한 파업을 당사자들의 ‘한시적인’ 이해를 관철시켜 낼 수 있는 기회로 본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획득한’ 결과물은 노동법과 사업장의 취업규칙을 다시 확인한 수준이었다.

서울시라는 지방정부가 “반노동적”이라는 중앙정부와 “달랐다”라는 평가는 본질을 보지 못하는 태도다. 박원순은 인권분야의 교과서라 칭할만한 수준의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담은 해설서를 출간하여 자신의 정체를 내세웠던 사람이었으나 정치인이 된 후에는 국가보안법 존치자로 얼굴을 바꿨다. 그리고 광장토론 형식의 절차를 거쳐 성소수자 인권조항이 들어간 ‘서울인권헌장’을 무위로 돌리고, 기독교단을 찾아 ‘서울시에 대한 교단의 우려’에 대해 열심히 해명하였던 경우도 있다. 박원순은 이번 파업을 자기 치적의 기회로 삼았지만, 시장으로 재임 중이든, 본인의 바람대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든, 노동자계급에 대한 태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덕동 포럼

지하철노조 성과연봉제관련 교섭타결 전날인 28일 공덕동의 신용보증기금 빌딩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권력의지가 표출되고 있었다. “(가칭)노동존중, 사람중심 사회건설을 위한 함께노동 포럼 간담회”라는 프랭카드 아래에서 진행된 모임의 성격은 ‘노동진영을 모아놓고 진행한 대통령선거 출정식’이었다. 이름하여 ‘공덕동 포럼’이다.

webpage_20161009_164054-1궤도분야 참여단위로는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 다수,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정치위원장, 서울지역본부 지부회원, (전)도시철도노조 정치위원장, 당일 파업 중이던 서울메트로노동조합 위원장, 부위원장, 그리고 전직 지하철노조부위원장, 전직지하철노조위원장이자 현재 9호선지하철 부사장, 그리고 전직 서울메트로 사장 등이 참여하였다.

공덕포럼 참여자 중, 정의당 당적을 가진 노동조합조합원들이 다수 있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정의당 ‘노동’비례대표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인 투표를 했던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 예비대선후보가 주최한 모임에도 참여한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투항한 ‘진보정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차이를 잃어감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통합되리라는 예측도 무리는 아닌 듯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자리에서 박시장은 “2018년 2월 25일, 청와대 잔디밭에서 보자. 한턱 쏘겠다.”, “성과연봉제 반대!”를 구호했다고 한다. 지하철의 ‘매뉴얼’파업이 매뉴얼대로 진행된 이면에는 이렇게 서로간의 이해를 토로하는 과정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유주의정치 세력과 보조를 맞춘 ‘매뉴얼’ 파업행위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적극적 파업참여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이라는 과제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 시작에서 정리까지 안온하게 답안을 제시 해주는 노정교섭 주체들의 행보에서 새내기 조합원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노조집행부의 해결사식 대리주의와 자유주의 의회에 대한 막연한 환상밖에는 못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때마다 수많은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진보’의 가면을 쓰고 민중들의 표를 현혹한다. 계급이 아닌 인물을 바꾸는 권력의 반복적 이동으로 억압과 착취의 기제가 제거될 수 있다는 환상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철저하게 학습하고 바르게 실천해도 힘든 게 운동인데, 대리주의자들은 그러한 운동마저도 ‘쉬운 방식’으로 방해한다. 언제까지 계속 이러고 있을 것인가!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