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힐링’ 뒤에 은폐된 노동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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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도 이제는 식상하다. 이제는 ‘치유와 힐링’이다. 아이쿱생협의 최근 슬로건이다. 아이쿱생협은 100여개 지역 생협을 기반으로 30만 가구의 조합원(한국 전체 가구의 1.5%)이 연 5천억 원 이상의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대규모 소비자협동조합이다. 가족 수를 포함하면 1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아이쿱생협 물품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셈이다. 지난 1998년에 설립된 아이쿱생협은 이제 치유와 힐링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거대한 사회경제적 생태계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구례자연드림파크와 ㈜쿱스토어 경남 소속 자연드림 매장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과정에서 드러난 갈등은 아이쿱생협이 부르짖는 치유와 힐링의 이면에 감춰진 노동착취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보였다. 물론 당시 아이쿱생협은 “구례자연드림파크 노사 문제는 해당 법인과의 문제일 뿐, 아이쿱생협과는 관련이 없다”고 발뺌하며 노조 설립에 나선 노동자들을 헐뜯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오히려 아이쿱생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며 노조 설립의 정당성만 더해주었다. (구례자연드림파크 노조 억압은 본지 2018년 1월 「협동조합에는 노동자가 없다」, 2018년 8월 「구례자연드림파크 노조 탄압, 이제 아이쿱생협 25만 조합원이 나서야 한다!」 등을 참조할 것.)

아이쿱생협 관련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도 벌써 3년 반이 지났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대한 아이쿱생협의 냉대와 고용회사 측의 억압은 여전하다. 구례자연드림파크 노조는 아직 단체협약도 체결하지 못하였으며 임금협상도 지지부진하다. 자연드림 매장을 경영하는 ㈜쿱스토어 노동조합은 2018년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지만 노조 활동에 대한 보장도 없는 허울뿐인 협약이다. 구례자연드림파크와 (주)쿱스토어경남 사측은 여전히 노동조합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노사합의’ 파기하는 구례자연드림파크 사측

2017년 7월에 설립된 공공운수노동조합 구례자연드림파크 지회는 설립된 이후에도 준비 단계부터 사측의 온갖 방해와 억압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노동조합은 여러 차례 존립 위기를 겪었다(본지 2019년 4월에 게재된 「“우리 요구가 관철되는 것이 협동조합을 살리는 길”」 참고할 것). 그러나 끈질긴 투쟁을 벌인 끝에 2019년 6월 4일, 기본적인 ‘노사합의서’ 작성에 이르렀다. 사측은 구례자연드림파크 한 구석에 6평짜리 컨테이너 하나를 노조 사무실로 내주었고, 노조는 합의서에 따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사측에 요청했다.

그러자 사측은 연간 ‘1,000시간 이내’에서 보장할 것으로 합의한 노조 전임 활동 시간을 250시간으로 대폭 후퇴한 협상안을 들고 나왔다. 이에 노조 측은 860시간, 500시간 등으로 양보를 하며 교섭을 이어갔지만 사측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250시간을 고수했다. 교섭은 2020년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2020년 9월부터 사측은 단체교섭에서 이미 250시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노조 측 교섭위원들의 급여에서 그 초과분을 무급으로 공제해버렸다. 사측과 벌이는 단체교섭 참여 시간은 유급 보장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무시한 처사였다. 게다가 사측은 2020년 그간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이순규 조합원에게 지급하던 월 30만원의 직책수당을 9월부터 끊어버렸다.

사실 구례자연드림파크 사측이 노사합의를 저버린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18년 4월에도 사측은 구례자연드림파크 오픈 기념행사 직전에 급하게 노사합의서를 작성했지만, 행사가 끝난 뒤에는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처럼 사측은 외부의 시선이 의식되면 노사합의서를 작성하여 노조의 투쟁을 무력화했다가,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합의를 뒤집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우롱해왔다. 단체협약을 대하는 사측의 태도도 비슷했다. 그리하여 쟁점이 타결되지 않은 채 단체협약은 2021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2020년 임금협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사측은 노조 측이 제시한 임금협약안에서 기본급 관련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조항을 수용하지 않았다. 협상 타결 직전에 갑자기 명절수당 20만원 지급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아이쿱 상품권(세츠)으로 지급되는 명절수당은 전부터 지급되고 있었으며, 이미 사측 임금협상안에도 포함된 내용이었다. 스스로 제시한 임금 안마저 뒤집음으로써 사측은 임금협상을 고의로 지연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더구나 2020년 6월부터 아이쿱생협은 전체 노동자의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한 급여를 지급하면서도 노동조합원 20여명에 대해서는 임금협상 중이라는 이유로 기존 시급을 적용했다. 노조 가입 노동자들의 임금을 차별지급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분열과 무력화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있다.

아이쿱생협 최초로 노동조합 설립한 경남 자연드림 매장 노동자들

사실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조합이 아이쿱생협 내 최초의 노동조합은 아니다. 그보다 한 달 앞선 2017년 6월, 이미 경남지역 자연드림 매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공공운수노조 쿱스토어 경남지회가 설립되었다. 노조 설립을 주도한 우지인 씨는 2015년 10월부터 창원 아이쿱생협에서 운영하는 자연드림 매장에서 시급제로 일했다. 월 130~140만 원 수준의 저임금 일자리였지만 생협의 가치를 실현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근무에 임했다.

하지만 자연드림 매장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가령 여성 노동자들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창고를 탈의실로 이용했다. 매니저가 매장 내 CCTV를 이용하여 직원들의 실수를 찾아낸 뒤 경위서를 요구하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일거수일투족을 지적당하던 노동자가 모욕감 때문에 자진 퇴사한 경우도 있었다. 업무 중 실수로 손상된 물품을 자비로 구매하기도 했다. 한편 우지인 씨가 2016년 3월부터 근무한 장유 자연드림 매장에서는 업무용 장갑도 지급하지 않았고, 매출이 낮다는 이유로 생리휴가도 주지 않았다. 근무 중 손을 다친 노동자에게 산재 처리 대신 병원비만 지급하고, 치료 기간이었던 1주일분 급여를 삭감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2016년 8월에 매장 전문 경영을 표방한 ㈜쿱스토어가 설립되어 각 지역 생협 매장의 경영주체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매장 경영이 전문화되면 노동조건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바뀐 경영진은 매장 근무 인원부터 줄였다. 3명이 하던 업무를 2명이 하게 되었다. 물론 시급은 700원이 올랐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바람에 월 급여는 거의 그대로였다. ‘사람 중심‘이라는 협동조합 슬로건이 사실은 ’이윤 중심‘임을 절감한 우지인 씨는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했다.

노조설립 제안서를 들고서 17개 지역의 자연드림 매장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노동자가 없었다. 게다가 회사 본부장이 찾아와 면담 형식을 빌려 노조 결성을 저지하려 했다. 가을, 겨울을 지나 봄이 되도록 혼자 발버둥을 치느라 지쳐갈 무렵, 경남 사천과 진주 매장에서 함께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힘을 내어 노조 결성을 준비했다. 드디어 2017년 6월, 경남 지역 5개 자연드림 매장 20명의 노동자와 함께 공공운수노조 ㈜쿱스토어 경남지회를 설립했다. 한국 생협 역사상 최초의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물론 사측은 노동조합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조합을 방해하려 들었다. 노조원의 근무시간을 줄여 급여 압박을 가하는가 하면, 근무 교대 방식을 일방적으로 바꾸어 힘들게 했다. 거절하면 다른 매장으로 발령을 냈다. 게다가 사측은 노무사를 내세워 단체협약 체결과 임금협상을 지연시켰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뒤 노조에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내자 사측 본부장이 비로소 교섭에 응했다. 그나마 상급노조(공공운수노조 경남지부)가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2018년 2월. 노동조합은 회사에 많은 내용을 양보한 끝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물론 내용은 부실했다. 예컨대 노조 전임활동 보장 시간이 고작 연 30시간에 불과했다. 경남지역 20개 매장을 1년에 한 번 방문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노조 활동을 봉쇄하려는 사측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한편 사측은 매장에 결원이 생겨도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2~4시간의 파트타임 노동자 위주로 인력을 채웠다.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11개월만 고용한 후 퇴사시키고,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을 2개월짜리 노동자로 재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용 예약을 이용하여 노동조합 가입을 막으려는 시도로 해석되었다. 노조에서 정규직 고용을 건의하자 “매출이 나면 사람을 더 고용하고 안 나면 줄여야 하는데, 회사가 어떻게 예측하느냐”는 야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쿱스토어는 한 매장에 두 명 이상의 점장을 배치하는 ‘점장제’를 도입했다. 3명이 근무하는 매장에 점장이 둘인 경우도 있었다. 점장은 주로 공개 채용했지만, 기존 노동자들에게도 점장 직을 제의했다. 노동조합원에게 노조를 탈퇴하고 점장이 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점장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점장들에게는 업무지침서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통제하도록 했다. 점장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업무지침 가운데는 물품을 고의성 없이 파손하였다 하더라도 파손한 자가 100% 책임을 진다거나, 시재(時在) 부족 시 당일 현금을 수납한 근무자끼리 N분의 1로 부담한다는 등 불합리한 내용이 많았다. 노조의 문제제기에 따라 대부분의 업무지침은 철회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노동착취 바라는 아이쿱생협

㈜쿱스토어와 구례자연드림파크 노동조합 사례는 아이쿱생협 그룹에서 노동자들이 가진 위상을 잘 보여준다. 생협은 소비자 조합원이 주인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삼는다. 소비자협동조합인 만큼 생산자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주인’들이 자신들의 소비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소비자 집단은 아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생’ 등 ‘윤리적 소비’ 운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아이쿱생협연합회 정관 제2조)하는 것을 조합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생산자를 상생의 대상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여긴다. 그것이 협동조합 정신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2차 생산자인 노동자도 생협과 상생하는 대상이어야 맞다. 하지만 아이쿱생협은 2차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생산자로 보지 않는다. 아이쿱생협의 생산자 개념에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개념상 모순이다. 주로 1차 생산물을 도농직거래를 통해 공급하던 초기 생협 활동에서는 농민이 곧 생산자였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드림 제품 2000여 종 가운데 1700여 종이 가공품이며 그 유통, 판매 등과 관련된 노동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실제로 2020년 현재 아이쿱생협과 관련된 일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4천여 명에 이른다. 지금의 아이쿱생협 생태계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의 주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쿱생협은 이들을 ‘생산자’로 보지 않는다. 다만 자회사. 계열사, 하청업체, 협력업체 등에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로 본다.

현재 아이쿱생협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월 300만 원 이상)의 70~80%에 해당한다. 수백 명에 이르는 자연드림 매장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전체임금 평균의 50% 정도이다. 협동조합이라는 이름 뒤에 얼마나 많은 노동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동안 생협은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다. 다른 생협과도 경쟁하고 대자본 유통업체와도 경쟁하면서 성장해왔다.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 조합원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쿱생협은 그 경쟁력의 원천을 저임금 노동으로 마련했다. 아이쿱생협이 노동조합을 극도로 꺼리는 이유도 지금의 저임금 노동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아이쿱생협이 내세우는 치유와 힐링은 아이쿱 생태계 안에서 작동되고 있는 저임금 노동착취를 은폐하는 슬로건이다. 이 ‘지속가능한 노동착취’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생협 노동자들은 스스로 단결하고, 부단히 투쟁해야 한다. 지금 생협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구호는 하나다.

“전국의 생협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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