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책대대, 어쩌다 무기력하게 막을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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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6. 보건의료노조

지난 8월 22일, 23일 충북제천 청풍리조트에서, 민주노총 사상 처음으로 정책 대의원대회가 열린다기에, 나는 설램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참여를 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기 직전 생계와 육아로 인해 활동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는다는 것이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물론 중간 중간 지역노조인 서울의류업노동조합에서 재정사업부, 기술학교 재정관리 등 주변부에서 노조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였지만, 그야말로 주변부에 있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라는 민주노총의 정책대대가 열린다는 소식에 남다른 감회와 기대가 있었다.

이날 대회에는 대의원 및 단위노조 위원장, 지역본부 상근자, 단체 활동가 등 900여명의 많은 인원이 참석해 주최 측도 놀라게 하였다. 대대 장소는 그 인원을 수용하기에 다소 협소하였고 대의원대회에 걸맞지 않아 아쉽지만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투쟁과 조직에 있어 향후 20년을 전망하고 전략과제를 마련하기 위해 정책대대를 개최하였다고 했으나, 제시된 안건과 토론내용, 진행과정은 기대와 달리 실망스런 수준이었다.

민주노총 정책대대의 관심사는 정치방침뿐

22일 오후 2시경부터 진행된 정책대대는 본격적인 안건심의에 앞서 4번 안건인 회계감사 보충선거를 먼저 진행하였고, 저녁식사 후 본격적인 안건심의에 들어갔다. 정책대대 전체 과정을 봤을 때, 결국 참석자들에게 관심 있는 주제는 정치전략이었다. 민주노총이 정치전략을 결정한다고 하고, 이로 인해 격돌이 예상되자 온갖 이해관계자들이 대거 대대 장소에 모인 것이다.

이번 정책대대의 핵심 의제인 정치전략에 관한 심의 토론이 5시간이나 진행되었다. 중집위에서 제출된 2가지 안에 대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토론에 앞서 여러 대의원들은 중집위에서 정치전략에 대해 복수안을 낸 것에 대한 지적을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정치전략을 결정할 수 없는 어정쩡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 있음이 복수안의 제출로 표현된 것이었다.

이미 정치전략 복수안의 내용이 많이 공개되어 있지만, 독자들에게 도움이 돌 수 있도록 당시 제출된 정치전략(안)을 전재하겠다.

중집위의 정치전략(안)

1안

1)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의 진보변혁적 재편의 전망을 제시하고 노동자계급의 통일 단결의 원칙하에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조합원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2)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대중조직이 함께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 및 기존 진보정당의 통합 추진 여부 등을 포함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 방침을 2017년 정기대의원대회에 제출한다.
3) 민주노총은 2016년 하반기부터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➀ 이전 시기 정치세력화운동의 오류와 편향에 대한 극복과제 제시를 위한 평가를 진행하고, ➁ 현장 정치 역량 강화를 위한 전조직적 사업을 추진하며, ➂ 운동본부를 통한 조합원 정치 참여운동을 전개한다.
4) 민주노총은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략투쟁의 일환으로 2017년 대선투쟁을 전조직적으로 전개한다.

2안

1)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의 진보변혁적 재편의 전망 제시와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정치적 진출을 위한,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조합원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2)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 농, 빈 대중조직이 함께하는, 기존 진보정당의 통합 및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포함한 진보대통합정당 건설을 추진한다.
3) 민주노총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0만 조합원 참여 운동을 전개한다.
4) 2017년 정기대의원대회에 정당 건설 및 대선투쟁 로드맵을 제출한다.

정치전략 논의, 맥없이 마무리되다.

정치전략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 속에서 여러 차례 정회를 하고 중집위에서 새로운 안을 내었으나 이 역시 기존의 안을 적당히 섞어 놓은 것이라는 대의원들의 거센 비판이 있었다. 결국 4번 의제 정치전략에 대한 건은 이번 정책대대에서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또한 여러 차례 성원 확인요구 등 의사진행 발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번 안건 1, 2, 3번 의제와 5번 안건 결의문 채택에 관해서는 의장이 대의원들에게 통과시켜줄 것을 읍소하여 박수로 통과시키는 등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진행에 있어서도 매끄럽지 못한 면을 보여주었다. 결국 23일 새벽 2시 30분 경 성원확인 결과 대의원 963명 중 338명 참석으로 과반수 참석이 안되어 대의원대회가 유회됨으로써 2, 3번 안건은 진행하지 못했다.

조직과 투쟁 전략에 있어 향후 20년을 준비 한다는 포부(?)로 2016년 상반기부터 준비해왔던 정책대대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산만하고, 매끄럽지 못한 진행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제 상정에 있어서 정책대대의 핵심적 의제인 정치전략을 비롯하여 조직강화 및 조직확대 등의 의제 역시 장기적인 전망을 갖는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는 당면한 2017년 대선대응과 기존의 방침을 나열 하고 강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민주노총 사상 처음으로 열린 정책대대는 참석한 대의원뿐만 아니라 참관했던 안했던 관심을 갖고 지켜본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무엇이 중요한가?

정치전략 의제 폐기라는 정책대대의 결과는 이미 예상되는 결과인데 민주노총은 왜 많은 재정과 시간, 노력을 들여 이러한 대대를 준비했을까?

정치전략에 관한 토론과정 내내 2017년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뭐가 되었든 방침을 결정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했고, 집행부에서는 의제에 대한 충분한 근거와 설득이 아닌 일단 통과 시켜줄 것을 읍소하는 볼성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또한 토론과정에서 나타난 정파주의 행태 역시 조합원들을 대상화 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이나 행위를 그저 투표를 통한 대리정치나 하는 수준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해방에 대한 초점이 없이 자기세력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대대에서 보인 이런 모습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이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지, 그 속에서 민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다는 점이었다. 1안과 2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일어났지만, 1안이 채택되든, 2안이 채택되든 노동자계급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다. 이번 정치전략 의제의 고민과 내용은 토론과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 발전을 도모하기 보다는 결국 야권연대를 계속해온 기존의 민주노총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몇 안되는 대의원들로부터 나왔지만, 1안이든 2안이든 정치전략의 내용은 모두 그동안의 야권연대, 우경화 행보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모순이 격렬해지고 있는 시기에 어정쩡한 정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른바 좌파 지도부 역시 이 현실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끝없는 고용불안과 청년실업, 심각한 저출산, 차별교육, 불안한 주거문제 등 고통뿐인 현실의 주범인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을 갖고 노동자계급 스스로 사회변혁의 주체로 서게 해야 하는 것이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체인 민주노총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민주노총 정책대대에서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교훈은 이제는 자본주의에 맞선 싸움을 준비하고 전개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어정쩡한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이런 싸움을 전개하려면 진정으로 올바른 노동자의 사상을 세우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노총 정책대대가 끝난 지 2달여가 지났다. 그러나 정책대대에서 논의되었던 정치방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2017년 대선대응이라는 단견에 머물러있고, 그 방향은 진보대통합, 더 나아가 야권연대, 자본가들 사이의 정권교체에 빠져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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