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례, 이미선, 그리고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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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 뉴스]

지난 4월 9일, SNS에서 페미니스트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은 칼럼이 하나 있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이 칼럼을 인용하고 분주하게 퍼 날랐다. 권김현영이라는 페미니스트가 쓴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이라는 『한겨레신문』 칼럼이었다.

이 칼럼은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이전에 발표했던, 동문인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중앙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쳐 4월 8일 결국 철회한 데 대한 것이었다. 김순례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해 ‘시체장사’, 5·18 광주 민중항쟁 참여자들에 대해 ‘괴물집단’ 등의 막말을 한 것을 규탄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의 성명서였다. 그렇지만 숙명여대의 상당수 학생들은 “동문 규탄은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일조”한다며 김순례를 규탄하는 것이 ‘여성혐오’라는 이유로 총학생회에 성명 철회를 요구했다. 즉 ‘여성’ 정치인에게 무조건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런 의견이 중앙운영위원회에서도 상당 부분 받아들여짐에 따라 철회가 의결되었다. 결국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성명 철회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우려를 표하며 위와 같은 논리를 비판했다. 4월 10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진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여성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는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여성 정치인의 부정부패와 역사의식 결여까지 비호하는 것이 페미니즘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 연구위원 김은희도 마찬가지의 입장을 드러냈다. 특히 권김현영은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에서 “하지만 이를 무조건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로 들으면 곤란하다. 이는 여성이니까 절대 안 된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단수의 기호에서 복수의 존재로 변경하고자 하지 다시 여성을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려고 하는 정치학이 아니다.”라고 썼다. 바로 이 대목이 SNS에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수차례 인용되고 공유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단지 성별이 여성인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가 늘어나는 것만으로 여성해방이 성취되지는 않는다는 문제의식,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누구를 대변하든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 내에서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 여성이 권력을 가지려 하는 상황이 되자,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는 채 한 달도 안 되어 사뭇 달라졌다. 이미선이라는 여성이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되면서였다.

35억 원 대 ‘주식 부자’ 이미선

올해 3월 20일 문재인은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들 중 한 명으로 이미선이라는 판사를 지명했다. 처음에 이미선은 언론에 의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고 주로 ‘40대 여성’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것은 그의 성별도 아니고, 연령도 아니고, 이념 성향도 아니고, 그가 했던 판결도 아니었다. 바로 그가 보유한 주식이었다. 이미선 본인은 6억6589만 원 어치, 남편은 28억8297만 원 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총 재산은 무려 42억 6000만 원이었다. 수십 억의 재산을 갖고 있고, 그 중 약 83% 정도인 35억 원 정도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 부자’였던 것이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질의한 바에 따르면 이미선은 자기 명의로 총 1,300회, 남편 명의로 4,100회 주식거래를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미선의 대응은 한마디로 ‘모두 남편이 한 일’이라는 궁색한 변명이었다. 자기가 주주로 있는 회사가 관련된 사건의 판결을 맡아 미공개 정보를 입수한 후 주식거래를 하여 불법적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보더라도 판사로 재직하면서 수십 억 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며 천 회가 넘는 주식거래를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여당 의원조차도 인사청문회에서 “하… 왜 이렇게 주식이 많아요?”라고 하며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통상임금 ‘신의칙’ 판결 옹호한 이미선

그런데 이미선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청와대는 이미선을 지명한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가 사실 자본가들이 두고두고 고마워할 만한 대법원 판결에 재판연구관으로서 관여했고, 이를 옹호하기까지 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바로 그 유명한 2013년 통상임금 ‘신의칙’ 판결이었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고, 이것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하였더라도 그러한 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배되어 무효인 것은 맞으나, 노동자가 그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산정한 수당과 퇴직금을 추가로 청구하는 것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하였다.

이는 노골적으로 자본가 편을 든 판결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법리로만 보아도 터무니없는 판결이었다. 심지어, 강행규정을 위반한 합의를 깨고 그 강행규정대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신의 성실의 원칙 위반을 이유로 배척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기존 입장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법관들 세 명은 반대의견에서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고까지 했고, 다수의 노동법 학자들이 입을 모아 다수의견의 신의칙 논리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또한 이 판결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2015년 작성) 중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열거된 판결이다. 즉 이 ‘신의칙’ 논리는 바로 박근혜 정권 시절 재판거래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렇게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지켜 준 판결이자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대표적인 판결이 나오는 과정에서 이미선은 재판연구관으로 검토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2014년에는 논문을 발표하여 신의칙 논리에 대해 “근로자의 청구를 한시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의 조화를 도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의 태도가 기회주의적이라는 이야기도 현직 법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한 현직 판사가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게시한 “이미선 후보자에게 정중히 묻습니다”라는 글에 따르면, 그가 2018년에 이 판결에 대해 새로 발표한 논문에는 “그러나 동시에 대상판결은 신의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이러한 추가 청구의 제한이 어디까지나 예외적임을 명확히 하였다고 볼 수 있다”라는 문장이 갑자기 추가되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양승태가 사법행정권 남용 등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데 따른 태도 변화가 아니냐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 주식 부자를 옹호하다

이렇듯 이미선은 수십 억 원 대의 재산을 갖고 주식 투자를 즐겨 했을 뿐 아니라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재판거래의 산물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판결, 자본가의 주머니를 지켜준 판결을 옹호하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서는 다시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법관으로 여겨지며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지명되었다.

그는 사형제 존폐, 국가보안법 존폐 등 조금이라도 논란이 되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대해서도 “현재 헌재에 계속된 사건에 대해 구체적 의견을 밝히는 것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철저한 침묵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이루어지기 며칠 전) 낙태죄 존폐에 대한 입장을 질문 받았을 때조차 이미선은 침묵했다. 즉 이미선은 자기 나름의 원칙이나 소신을 추구하기보다는 늘 그저 마른 자리를 찾아 권력의 편, 지배계급의 편에 서며 살아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록 이미선이 여성일지라도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이미선에 대해 최소한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김순례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이미선에 대해서도 아무리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이미선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이니까 절대 안 된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기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단수의 기호에서 복수의 존재로 변경하고자 하지 다시 여성을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려고 하는 정치학이 아니”기에 페미니스트로서 여성 내부의 정치적 차이를 드러내며 이미선을 비판하는 이들도 여럿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는 김순례 규탄 성명 철회 때와 전혀 달랐다. 4월 15일 법조계와 학계, 시민사회계 여성 116명은 이미선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성 실현을 지지하는 여성 일동”의 명의로 발표된 이 성명서에는 고미경(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금옥(한국여성단체연합 전 상임대표), 김민문정(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배복주(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진옥(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등, ‘우리나라 페미니즘 운동단체’라고 하면 생각나는 주요 단체들의 대표자급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왜 이미선을 지지한 것일까? 성명에는 이미선이 “탁월한 통찰력과 인권감수성,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만 있었을 뿐, 그 근거는 2009년 유아성폭력범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판결로 여성인권디딤돌상을 한 번 받은 것 외에는 없었다. 결국 그들이 이미선을 지지한 근거는 “지금 헌법재판소는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기관의 여성 비율이 30%를 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기회를 앞두고 있다”는 것, 즉 이미선이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로 그 페미니스트인 권김현영이 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더 나아가 권김현영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전수안 전 대법관이 “… 이렇게 더디고 힘들어서야 언제쯤 성비 균형을 갖추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재판관 9인중 2인과 3인(30%분기점)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은 사회과학에서 이미 검증된 결과다. 여성 후보에게 유독 엄격한 인사청문위부터 남녀 동수로 구성되기를 바란다.”라는 글을 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를 공유하며 “전수안 전 대법관이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지하는 이유에 모두 동의한다”는 글을 남겼다. 주식투자에 대해서는 비판이 일리는 있지만 “결격사유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까지 강조했다.

위 성명서의 명단에서 가장 눈을 의심케 한 이름은 김수경(민주노총 여성국장), 봉혜영(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이라는 이름이었다. 자본가 편을 든 통상임금 판결 옹호 입장이 이 성명서가 나온 후에야 폭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은 거액의 주식 투자를 하며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사는 여성이 헌법재판소에 들어간다 해도 거기서 여성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물론 민주노총 안에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여성국장, 여성위원장 같은 직책을 갖고 있다면 최소한 노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것이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느 페미니스트들과 다를 바 없는 인식 수준에 머물렀다.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지지와 옹호 속에서 이미선은 4월 19일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아예 단체 차원에서 “이로써 헌정 사상 최초 헌법재판관 9인 중 3인이 여성인 시대가 열렸다”라며 기대감에 가득 찬 성명을 발표했다.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에 적용되는 이중 잣대

이렇게 이미선이 임명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페미니스트들이 김순례에 대해 적용한 잣대와 이미선에 대해 적용한 잣대가 이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김순례의 각종 망언에 대한 규탄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도덕적 검열”이라는 논리는 비판했지만, 이미선의 주식투자에 대한 비판이 “여성 후보에게 유독 엄격”한 것이라는 논리는 비판하지 않았다. 김순례에 대해서는 권력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감싸줄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미선에 대해서는 권력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야 하기에 어쨌거나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필자는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이 제목에 담긴 의미에 대해 공감했다. 아무리 ‘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 그 권력이 어떤 권력인지 따져 묻지 않는 한 몇몇 여성이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여성해방이 쟁취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순례는 규탄할 수 있지만 이미선은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모습을 보니 어쩌면 이 제목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여성에게 수구세력이 주는 권력은 필요 없지만, 자유주의 세력이 주는 권력은 필요하다’라는 의미의 제목이었던 것 아닐까? 수구세력이 주는 권력뿐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이 주는 권력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비판하고 싸우는 여성해방운동이 필요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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