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는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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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적어도 이번만큼은 헌법재판소가 ‘공정’했다. 덕분에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 드라마는 다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박근혜는 벚꽃이 피기도 전에 청와대에서 짐을 뺐다. 더불어 그 빈집에 입주하려는 대선 주자들의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그런데 정치적 대결에서는 말이 화살이고 실탄이다. 지금의 대선 국면에서도 숱한 말들이 난무한다. 그 가운데서도 ‘공정사회’, 또는 ‘공정성’이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대선 주자 문재인은 일자리 정책으로 ‘공정임금제’를 내놓았다. 어느 포럼 기조연설에서는 “재벌은 반칙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며 “공정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정책과 관련하여 ‘공정경쟁’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주당에서 문재인보다 좌측으로 분류된 대선 예비후보 이재명은 가장 적극적으로 공정사회를 표명하며 이를 대선 전략의 키워드로 삼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선언에서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나라’를 언급하며 적폐 청산, 공정국가, 공정한 사회 등을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같은 당 안희정도 출마선언에서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상’ 또는 ‘지역이나 학연이 아니라 액면가로 당당히 승부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히며 ‘공정한 시장경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너나없이 공정사회를 말하는 대선 주자들

공정사회를 대선 키워드로 삼은 것은 민주당 대선주자들 뿐만이 아니다. 국민의당 안철수도 지난 2월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나라 곳곳에 공정, 자유, 책임의 가치가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국민들은 짓밟힌 ‘공정’의 가치 앞에서 분노했다. 빽이 실력을 짓밟는 사회에 분노했다”면서 공정을 시대의 화두로 내세웠다. 바른정당 대선 주자로 나선 유승민도 ‘정의로운 공동체, 정의로운 세상 만들기’를 사회상으로 제시하고 재벌의 ‘갑질’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는 등 공정을 강조했다. 여기에다 뒤늦게 대선 주자에 이름을 올린 자유한국당 조경태마저도 출마선언에서 공정사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대선 주자들이 너나없이 공정한 사회를 언급하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높아진 까닭이다. 실제로 올해 초 세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선의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39.9%는 양극화 해소, 개헌 추진, 경제민주화 등 단골 이슈들보다도 ‘공정사회’를 우선으로 꼽았다. 무책임과 불공정의 극치를 보여준 정권에 대한 분노가 여론으로 나타났고, 이에 편승한 대선 주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정사회를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 화두가 된 공정사회 키워드가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10년에 이명박이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대대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은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라며 경축사의 상당 부분을 ‘공정사회’에 대한 설명으로 채웠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자유주의 언론들은 “대통령이 강조해온 친서민 중도실용을 추구하기 위한 핵심 가치로서, 양극화 심화 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공정성을 상실한 언론의 태도였다.

이듬해인 2011년 여름에는 관변단체인 새마을운동중앙회 주도로 ‘공정사회 범국민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불법, 무질서, 금품향응, 차별, 전관예우 N0! 법질서준수, 국민4대 의무, 공생발전, 차별 없애기, 함께 계산하기 OK!’ 따위처럼 시답잖은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서울 한복판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하지만 그해 12월,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의 차명계좌 6개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부정 자금이 드러났고, 2012년 7월, 이상득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명박이 대중 앞에서 공정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뒤에도 이른바 ‘형님 권력’에 의한 국정농단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명박도 공정사회를 표명했다!

비단 ‘형님 권력’에 의한 국정농단이 아니더라도, 이명박은 스스로도 ‘전과 14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만큼 불공정한 권력자의 대명사였다. 그런 이명박이 백주대낮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정사회를 표명한 것은, 그의 정치철학이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혐의가 짙다. 그 무렵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 번역되어 한창 인기를 끌며 밀리언셀러로 치닫고 있었다. 다수 대중이 정의를 갈망한 결과였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불공정성에 대한 환멸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고 스스로 불공정한 권력의 대표자가 공정사회를 강변한 꼴이라니! 결국 이명박의 공정사회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처럼 공정사회라는 화두는 이미 7년 전에 이명박이 일회용으로 우려먹고 버린 키워드였다. 지금의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공정사회도 이명박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에 앞서 누적인원 1600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촛불민심과,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가 몰아친 와중에서도 공정사회라는 빛바랜 키워드를 재탕하고 있는 모양새 자체가 처량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이 엄중한 시기에, 과거의 실패한 정권이 쓰고 버린 키워드를 다시 주워드는 데에서 집단적 퇴보를 거듭해온 한국 정치의 몰골이 그대로 드러난다.

말 뿐인 공정사회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른바 ‘진정한’ 공정사회가 이루어진다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언뜻 의미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말도 자유주의자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순간 계급적 의도를 함유하게 된다. 공정사회라는 개념이 현실정치에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그러한 혐의를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공정사회, 또는 공정성 개념은 20세기 미국의 자유주의 사상가 존 롤스(John Rawls, 1921 ~ 2002)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정의론>의 저자로도 유명한 존 롤스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리느라 땀깨나 흘린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심사위원들이 장막 뒤에서 응시자의 연주 소리만 듣고 신입단원을 선발한 데서 힌트를 얻어 이른바 ‘무지의 장막’이라는 가상의 장치를 고안하고, 그것으로 공정성 개념을 설명했다. 즉 어떤 목적에 필요한 능력 말고는 그밖에 다른 조건에 대해서는 무지의 상태에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공정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공정사회’는 경쟁과 착취 정당화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공정사회도 존 롤스의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존 롤스는 자유주의자이며 시장주의였다. 그가 말한 ‘무지의 장막’은 능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존 롤스의 공정사회는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경쟁의 논리였다. 거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확신이 전제되어 있었다. 다만 기회를 균등하게 하고 불공정한 경쟁을 공정한 경쟁으로 바꾸면 각자 능력을 발휘하여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게 존 롤스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는 기회가 주어져도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로 고착된 지 오래이다.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이제는 능력도 세습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기회가 주어져도 결과가 뻔하다. 한국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금수저, 흙수저’니 하는 말이 횡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조건의 불평등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선할 방법은 없다. 자유주의자 존 롤스가 꿈꾸었던 공정사회의 현주소이다. 한국의 전도유망한 자유주의자들이 선전하는 공정사회의 미래도 다를 바 없다.

자유주의자들이 퍼뜨리는 공정사회 이데올로기의 본질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은폐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잉여노동 착취를 매개로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로 맺어진 생산관계의 불공정함에 대해서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이란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힘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이 ‘그들끼리의 공정사회’를 만드는 조건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법’이 공정하게 집행된들 여전히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생산물을 전적으로 취득한다. 또 국가가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도 임금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자기 것으로 하지는 못한다.(편집자: 이와 관련해서는 「자본주의와 국가물신성, 법물신성」을 읽어보기 바람)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불공정한 생산관계가 존속되는 한, 지금의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공정사회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개의 댓글

  1. 한 사상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쓴 글이라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한 롤스가 단순히 자유주의자고, 무지의 베일이 경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라고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위한 두 가지 전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상태로 쓴 글입니다.
    인간 사회를 연역적으로 추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철학은 그런 양식을 취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편협한 귀납 추리로 오도하지 마시고 반박을 할 때는 저자의 논조는 제대로 이해하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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