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 비판: 엔진 없이 달리겠다는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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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며, 일자리 정책을 국정 초기에 가장 우선하여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6월 12일, 첫 시정연설에서 일자리 추경안을 내놓았다. 11.2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의 주요내용은 소방관과 복지공무원, 근로감독관 등의 공무원 1만 2천명 충원, 사회서비스 분야 2만 4천개 일자리 창출 지원, 청년구직촉진수당 신설, 국공립 어린이집 증설, 노인 공공일자리 3만개 확대, 치매안심센터 증설,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으로서 총 11만개의 일자리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대규모 건설투자나 기업 지원이 아니라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와 사회서비스 강화에 직접 돈을 쓰는 차별성이 보인다.

또한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인상적인 현실인식을 보여주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고,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서게 되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국민의 삶이 고단한 근본원인은 바로 일자리”라면서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기가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성장의 결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루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할 국가적 과제”이지만,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며 이번 일자리 추경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상당히 정견에 가깝다. 자신들(문재인 정부)을 탄생시킨 이른바 “촛불혁명”이 양극화 심화로부터 비롯했다고 생각함으로써 일자리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건 국정수행의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반박근혜 틀에만 갇혔다면 80%의 지지율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일자리를 늘려 소득을 늘리고, 이를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J노믹스’의 핵심이라고들 한다. 이전 정부들보다 경제분야에서 진일보한 인식과 정책을 내놓는 건 긍정적이다.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는 성장이 해결해줄 것이고, 성장은 기업이 이끄는 것이며, 정부의 역할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는 지난 수구정권의 사고행태는 시대착오적이었고 심판받아 마땅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즉, 해고와 비정규직 쓰기가 쉽고 무료노동 시키고 노동조합 짓밟기 좋고 세금과 규제도 적은 나라가 바로 헬조선이다. 따라서 기업 중심과 성장 만능의 사고를 벗어던지고 노동과 분배 중시, 공공부문 확충과 정부역할 확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엔진이 없다

진일보한 방향성을 견지하더라도 그러한 방향성을 실제의 정책으로 전환시키고 대세로 넓혀나가지 못한다면 무엇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결국 또다른 핵심은 얼마만큼의 재정을 투입하느냐인데, 이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는 후보 시절부터 취약성을 드러냈다.

문재인 캠프는 공약의 총 소요 재원으로 5년간 178조원, 연평균 35.6조원을 제시했다. 2017년 정부 예산이 400조원이니 공약 이행에 필요한 연평균 예산을 현 예산의 10% 미만으로 잡은 것이다. 과연 이 정도 규모의 예산으로 공약이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대선 과정에서 자주 지적이 됐고, 재원 조달 방안 역시 숱하게 비판을 받았다. 재정개혁 22.4조원, 탈루세금 과세강화 5.9조원, 증세 6.3조원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데, 재정개혁이니 탈루세금 과세강화니 이런 말들이 별 실효성이 없다는 건 역대 정부들이 보여준 바이고, 증세하겠다는 내역도 분명치 않았다. 이처럼 증세 없는 공약에 대해 대선 토론회 과정에서 유승민 후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건 타당한 문제제기였다.

증세 없이 뭔가 해보겠다는 강한 의지는 이번 일자리 추경안에서도 드러나는데, 세수 증가분 8.8조원, 세계잉여금 1.1조원, 기금 여유자금 1.3조원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추경예산 편성에 증세나 국채발행은 일체 배제한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보았을 때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는 인위적인 확장은 최소로 유지하면서, 그 용처를 합리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조세 및 국가채무 부담은 결코 과하지 않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 수준으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6%보다 낮고, 국가채무비율은 OECD 평균 116% 대비 43%로서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재정확장 여력이 충분한데도 거의 활용하지 않겠다고 하니, 조세 및 재정정책만 놓고 보았을 때 이전 정부들과 별다르지 않다.

보수적인 재정정책은 복지 분야에서도 보수적이라는 말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지출이 OECD 평균(2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10%)인데, 복지 지출의 의미 있는 증가가 증세 없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5년 후에도 여전히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복지 수준을 유지할 것 같다. 세금과 복지는 국가가 개입하여 부의 재분배를 이루는 강력한 수단인데, 이러한 수단을 확충할 마음이 문재인 정부에는 없는 것이다.

목표는 제자리

잘못된 분류와 범주화는 착시를 낳는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케인스주의와 동일시하는 것도 이와 같다. 재정확장을 삼가는 J노믹스가 케인스주의와 닮은 건 수사뿐이다. 임금 주도 성장을 이론화한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강한 임금인상 정책을 핵심으로 내세우는데,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조차 스스로 흔들었다(「최저임금 1만원 당장 시행하지 않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거짓말」을 볼 것). 기대를 품게 했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경우 정규직화 비용에 재정투입을 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일자리위원회에서 세웠다고 한다. 공공기관별로 정해진 총인건비 내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생산되어 판매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는 누군가의 소득으로 분배된다. 소득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많이 생산(즉 경제성장)해야 한다는 게 이전 정부들의 논리였다면, 총소득이 늘어나도 소비성향이 낮은 부자들이 늘어난 소득을 독식한다면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소득주도 성장론이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그렇다면 분배를 개선하는 정책(임금인상, 증세, 재정확장, 복지국가 등)을 펼쳐 가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만, 실제로는 공약조차도 현상유지 속의 부분적 합리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야심차게 공약한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도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을 8.9%에서 12.1%로 늘리는 데 그친다. 비교대상인 OECD 평균은 21.3%이다.

이상의 근거들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부분적으로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현상유지를 목표함을 의미한다. 부분적 진보성이 개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그 실체는 문재인 대통령 주변의 경제브레인들(김광두, 김상조, 장하성, 김동연)만큼 친시장적이다. 보수적 재정정책은 시장의 자기조정능력에 보내는 신뢰이며, 금융자산 가치의 안정성에 대한 국가 보증이다. 증세 없는 공약은 기업과 부자의 금고만큼은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문재인 정부의 친시장성이 가장 드러나는 분야가 노동정책 공약인데,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그리 이야기하면서도 그 원흉인 노동유연화 정책(정리해고제, 파견제, 기간제 등)의 폐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 노동유연화는 필수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유연화의 폐해가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은 방지하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확대, 사회취약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공급, 사회적 경제 등으로 완충지대를 만들겠다는 게 문재인표 진보의 실체이다. 시장경쟁과 자본주의라는 지배원리는 보존하면서 그 부작용을 흡수하는 장치들을 만들어 노동자 민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게 오늘날 신자유주의 국가의 역할이다. 물론 최소의 비용으로 그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이니까.

저들의 한계를 우리들 요구의 시작점으로

자못 감동적이고 멋진 연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이 보여줄 한계는 뚜렷하다. 적극적인 재정확장이라는 지원 없이 한정된 재원으로 말미암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보여주기식 행정과 침소봉대하는 여론호도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면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실업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사회서비스 공급도 늘린다는 진보적 해결방안이 공론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가능성에 있다.

일자리를 비롯해 잘 살아가는 문제를 자본주의에 맡겨놓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는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해결방안들을 시장경쟁의 폐해를 다소 완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장부문을 대체해갈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확장해야 함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이의 재원을 자본의 이윤에 대한 과세와 사회화를 통해 마련해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 더불어 공공부문에서의 새로운 운영원리(필요에 따른 생산과 노동자통제 등)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요구와 주장과 말을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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