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공범이 아닌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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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도 공범이다. 이재용을 처벌하라” 이제 민주당조차도 이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재용, 정몽구 등의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참석한 12월 6일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재벌 총수들에게 촛불집회에 나가 봤는지를 묻고, “자, 촛불집회에 나가 보면요. 국민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박근혜 퇴진하라’입니다. 그다음에 외치는 게 ‘재벌도 공범이다’입니다. … 먼저 이재용 증인께 묻겠습니다. ‘재벌도 공범이다’, 공범 맞습니까?”라는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물론 이런 장면들은 일종의 퍼포먼스일 뿐이었고, 9명의 자본가들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만 일관하며 청문회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청문회에서 이재용이 “국민들의 여론을 아주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 정도로 만족하고 집에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탄핵이 가결된 다음날 열린 촛불집회에서도 100만여 명의 민중은 흔들리지 않고 ‘박근혜 즉각 퇴진, 구속’을 외쳤으며 자유발언대에서는 자신의 고통과 억압 역시 박근혜 정권과 함께 끝장나야 함을 희미하게나마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또한 “최순실에게는 500억 원,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에게는 500만 원”이라는 슬로건으로 삼성 자본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하는 반올림의 선전전, 플래시몹에 발걸음을 멈추는 시민의 수도 매주 집회 때마다 늘어나고 있다. 탄핵 가결은 오히려 운동의 급진화를 위한 공간을 열어주었으며, 이 공간에서 재벌에 대한 분노가 더 넓고 깊어질 가능성도 생긴 것이다.

우리를 괴롭힌 건 언제나 재벌이었다

그리고 이 분노가 충분히 날카로워진다면, 재벌이 단순히 정권의 ‘공범’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고되고 힘들게 만드는 주범이며, 박근혜 정권 이전에도 언제나 그래 왔다는 자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재벌이 우리를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재벌 기업들이 미르재단에 입금을 완료한 바로 다음날인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다 버릴 수 있는 기간을 늘리고 파견 대상자를 확대하여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등의 노동개악 5법, 공공서비스를 사유화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처리를 촉구하는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 민중이 거리로 나오자 경찰은 백남기 농민을 죽일 정도의 물대포를 쏘아댔다. 2016년 1월 12일 K 스포츠재단에 입금이 완료되자 며칠 후 박근혜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고,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완화 2대 지침을 전격 발표했다(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정리한 <박근혜-재벌 간 노동개악 일지> 참고. 출처는 민주노총 법률원 페이스북 페이지).

이런 사실이 다 밝혀졌는데도, 청문회에서 재벌 총수들은 대가를 바라고 돈을 준 것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몇 백 억의 돈이 지출된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변명을 하였다.

물론 상황을 모면하려는 시도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는 진실을 말한 것일 수 있다. 어떤 우익 언론의 기사처럼“… SK를 예로 들면 3000억~4000억 원을 투자해 면세사업자 허가를 따봤자 연간 이익 규모는 잘해야 100억 원 쯤이라 한다. 한국 굴지의 그룹들은 100억 원 단위로 버는 투자는 희망이 없다. 따라서 회장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실무진의 설명은 설득력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총수가 굳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조차도 아니었고, 굳이 대가를 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권 비선 실세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재벌 기업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라서, 굳이 총수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재벌의 관계는 굳이 어떤 돈이 어떤 정책에 대한 대가라고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가 없을 만큼 궁극적인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그런 관계다. 그야말로 재벌에 좋은 것은 정부에게도 좋고, 정부에 좋은 것은 재벌에게도 좋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다. 재벌이 노동자들을 더 착취해서 이윤을 더 얻으면 정부에게도 좋고, 정부가 저항하는 민중을 더 효과적으로 억누르면 재벌에게도 좋다.

이런 이해관계는 박근혜가 대통령이든 문재인이 대통령이든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의 비선 실세는 삼성경제연구소였다. 최순실이 말하면 박근혜가 받아썼듯이, 2003년 6월 이건희가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야 한다”는 인터뷰를 하자 한 달이 채 안 되어 노무현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2004년 9월 이른바 친노 성향의 의정연구센터가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을 열었고, 여기서 한-미 FTA의 신속 체결이 주장되었으며, 실제로 노무현은 2006년에 한-미 FTA를 강력 추진했다. 정부 각료를 삼성이 추천해 주는 것 역시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있었던 관행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었던 진대제가 정보통신부 장관이 되었다. 이러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되고 해고당하고 구속까지 당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정경유착’이 아니라 재벌의 지배다

많은 이들은 이런 문제를 ‘정경유착’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야 하는데 붙어 있어서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정치도 경제도 우리 손에 있지 않으며 자본가계급이 정치와 경제를 한꺼번에 쥐고 흔드는 사회라서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의 이름은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봉건 시대에 영주가 농노의 생산물을 빼앗아가려면, 즉 농노에게 노동을 시키려면 농노가 영주에게 정치적으로,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노는 영주로부터 도망칠 것이다. 여기서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반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로 하여금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자기가 더 높은 신분이니까 자기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협박할 필요는 없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즉 정치적 억압이라는 ‘경제외적 강제’를 직접 동원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서로 자본가를 위해 일을 하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므로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자본가를 찾아가서 자기를 착취해 달라고 부탁해야만 임금을 받아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용은 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1명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1표만 행사하며, 형식적으로는 법 앞에서 평등하다. 비록 삼성반도체 공장 안으로 가면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이재용은 그 노동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고, 그 노동자는 이재용이 법을 위반하여 안전교육도 하지 않고 해로운 화학물질을 마구 사용해도 해고당할까봐 항의를 하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건강을 깎아먹으면서 전력을 다해 일을 해야만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결국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외관일 뿐이며, 실제로는 정치든 경제든 자본가계급이 지배하고 있다.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것도 일단 물리적인 생존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다수 민중의 물리적인 생존 여부를 현재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재벌과 같은 소수의 자본가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드러나는 ‘정경유착’은 결코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며, 어떻게 보면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이다. 비선 실세가 정경유착을 통해 국정을 농단하는 초유의 비정상적인 사태라고 탄식하는 것은 그래서 부적절하다. 우리는 재벌-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우리를 실제로 지배해 온 세력의 실체를, 우리에게서 인간다운 삶을 빼앗아간 세력의 실체를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재벌도 공범이다’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대중은 ‘재벌도 공범이다’에서 출발했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괴롭힌 건 언제나 재벌이었다’는 각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탄핵 가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촛불의 파도 속에서, 자유발언대에서 터져 나오는 억압과 착취에 대한 생생한 고발 속에서 대중의 잠재력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권교체를 넘어 체제교체’를 외침으로써 그 잠재력에 불을 붙여야 한다. 여기서 체제교체는 그저 재벌의 탐욕이 보다 견제되는 사회로 이행하자거나, 혹은 재벌이 벌어들인 이윤이 보다 잘 분배되는 사회로 이행하자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재벌이, 즉 독점자본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정치, 경제를 따질 것도 없이 사회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이 체제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야 한다. 이 체제는 자본주의고,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본주의를 넘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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