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정세가 아니라 세계대공황 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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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주노총 교육 동영상 캡처]

요즈음 노동운동, 사회주의·진보세력 내에서 ‘코로나19 위기’, ‘코로나19 정세’라는 말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경제위기 공동대응을 위한 현장활동가 긴급토론회”, “코로나19정세와 민주노총 사업·투쟁 방향”, “코로나19 경제위기, 공공성 강화 계기로 만들자”, “코로나19 위기와 한국사회 전환 전략” 등 ‘코로나19 위기’ ‘코로나19 정세’라는 말이 여러 글이나 구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제목을 내건 각종 토론회, 강연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있다. 그러나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로 규정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정세’가 아니다

① 지금 위기의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세계은행(WB)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2%로 제시하고, 생산·고용 등 경제지표는 나올 때마다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자가 급증하고 항공업계 등에서 대량해고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 심각한 위기 상황임은 명백하다. 그런데 지금의 위기는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지금의 위기를 정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의 유행으로 발생한 ‘코로나19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현재의 위기의 원인이 아니며 현재 위기의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다. 막대한 규모의 거품, 빈부격차의 확대, 채무에 의존해서만 굴러가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2008년에 폭발하여 세계대공황 발발로 이어졌다. 이때 자본가 정부들은 자본주의 체제와 금융자본을 살리기 위하여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과 기준금리 인하,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저금리, 양적 완화는 당장은 세계자본주의를 파산의 위기에서 구하고 금융자본을 살리는 데 기여했으나 자본주의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를 가져왔다. 여기에 작년부터 세계경제가 장기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전 세계적 경기후퇴가 발생하였다. 이미 한계에 몰린 기업들이 파산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었고 IMF조차 이때부터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있었다. 바로 그러던 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며 위기를 증폭시켰고 이것은 세계대공황의 발발로 이어졌다.

요컨대 지금의 상황은 질병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19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 발생한 ‘세계대공황’ 정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미 공황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황을 일으키는 방아쇠의 역할을 했을 뿐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성두현의 「2020년 세계대공황의 원인과 특징」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② 현 상황을 ‘코로나19 정세’,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라지게 만들고, 자본가들에게 유리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코로나19 정세’,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할 경우 자본주의의 문제는 가려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만 전면에 부각된다. 지금 위기의 진짜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질병 자체가 위기의 원인인 것 같은 인식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면, 원래 자본주의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자연재해가 닥치듯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여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잘못된 생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자본가들은 현재의 위기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탓으로 돌리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가령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래리 커들로는 6월 16일 “펜데믹으로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된 것은 사실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허리케인과 눈보라와 같이 이것은 하나의 자연재해입니다. 바이러스의 영향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재해는 지나갑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지금 당장 바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 몰라도, 몇 분기 또는 1~2년의 시간이 지난다면 훌륭한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자본가 단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례로 하상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경제조사본부장은 내년 최저임금에 대해 “현재 기업들은 외부의 불가항력적 요인에 의한 출혈 경영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부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그 여파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경제 상황과 일자리 유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에는 아무 결함이 없고 자본가들도 아무 잘못이 없는데 마치 자연재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여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함으로써 마치 현재 상황이 계급을 초월한 인류 공동의 위기인 것처럼 몰아갈 수 있게 된다. 이는 계급 타협을 주문하고, 더 나아가 노동자에 대한 계급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안 된다며 공동의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등 요구를 자제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위의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의 말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계급 타협과 양보의 목소리는 한때 노동운동에 몸담았으나 이제는 자본에 대한 투항을 설교하는 ‘전도사’들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최근 이남신이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 「코로나19 위기극복, 담대한 임금동결을 제안한다」는 이 점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이남신은 자본가들이 하고 싶은 말을 사실상 대신 해주고 있는데, 임금 동결을 주장하면서 “코로나19 위기는 기왕의 정책수단과 의사결정 방식으로 극복되기 힘들다. 노동과 자본 모두의 전방위적 위기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남신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 현 상황을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는 것의 논리적 귀결이다. 현재의 위기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본다면, 이를테면 외계인이 침공했을 때 인류 전체가 범계급적으로 협력하며 대응해야 하듯이 지금도 범계급적으로 협력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현 상황을 ‘코로나19 정세’,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이며, 이것은 자본가들에게 유리할 뿐이다.

③ ‘코로나19 정세’, ‘코로나19 위기’라는 규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배후의 사회경제적 요인을 드러나지 않게 하며, 이미 침체를 겪고 있던 업종 노동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에 대해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위기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현 상황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정세라고 규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질병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질병으로 정세 자체를 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스페인 독감은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므로 현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당시 정세가 ‘스페인 독감 정세’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과 급속한 확산의 배후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놓여 있다. 이를테면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도시가 동물 서식지로까지 확산되면서 동물의 감염병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또한 노동자들이 밀집하여 사는 슬럼화된 도시는 감염병이 더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런데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질병 자체만 부각되고 그 배후의 사회경제적 요인은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로 규정하는 것은 현재 세계대공황의 여파를 가장 크게 맞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황과도 맞지 않는다. 지금 매우 큰 어려움에 처한 업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전부터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한 장기침체와 작년부터 본격화된 경기후퇴로 인해 이미 위기상태에 놓여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난 때문에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었고, 이스타항공 역시 재정난을 겪다가 제주항공에 의한 인수 절차를 밟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이전부터 이어진 경영난으로 6년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두산중공업 역시 수년 동안 이자비용을 포함한 대규모 금융비용, 자회사의 손실로 인해,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를 다 갚지 못해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 ‘좀비기업’이었다(관련해서는 황정규가 쓴 「두산중공업 노동자투쟁: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싸우자!」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위기’ ‘코로나19 정세’와 같은 표현은 상당수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과도 동떨어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로 규정하는 노동운동, 사회주의·진보세력

그럼에도 지금 노동운동, 사회주의·진보세력 내에서는 코로나19 정세, 코로나19 위기, 코로나19 시대 등의 표현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에서는 5월 15일 “코로나19정세와 민주노총 사업·투쟁 방향”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 영상은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코로나19정세와 민주노총 사업·투쟁”을 주제로 발제를 하는 것을 촬영·편집하여 제작한 것이다. 또한 6월 3일에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6차 중집(1차 코로나19 위기 대응 중앙대책본부)을 통해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하반기 투쟁 방향과 유관 사업을 확정했으며, 심지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위기·고용위기 대응 사회적 요구·투쟁을 위해 “포스트 코로나 ‘함께 사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확정하고 9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현 상황을 ‘코로나19 정세’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앞으로 올 시대 자체를 ‘포스트 코로나’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의 위 슬로건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함께 사는’이라는 부분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구호는 자기만 챙기는 자본가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지만,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는 대립하고 자본가가 존재하는 한 노동자는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약화시키는 구호다. 그리고 이런 구호가 나오는 것 역시 ‘코로나19 정세’라는 규정과 관련이 있다. 앞서 살폈듯이,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 내지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면 마치 현재 상황이 계급을 초월한 인류 공동의 위기인 것처럼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본가도, 노동자도 조금씩 양보하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 우리 함께 살자’는 식의 구호가 나올 수 있다. 즉 ‘코로나19 정세’나 ‘코로나19 위기’라는 규정은 실제로 계급적대에 대한 인식을 무디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나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조직들이나 정당들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운수 현장활동가회의, 교육노동자 현장실천, 금속활동가모임, 노동당 노동자정치행동, 노동해방투쟁연대(준), 사회변혁노동자당, 실천하는 공무원 현장조직,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평등노동자회,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현장투쟁복원과 계급적연대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은 5월 30일 “코로나19-경제위기 공동대응을 위한 현장활동가 긴급토론회”를 공동 주최하였다. 특히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최근 『코로나19 위기와 사회주의 처방전』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였고, “코로나19 위기와 한국사회 전환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전국 대중강연회를 여는 등 ‘코로나19 위기’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현재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위기인 세계대공황으로 규정하지 않고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지금 노동운동, 사회주의·진보세력 내에서 ‘코로나19 정세’라는 규정이 만연해 있는 상황은, 운동 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취약하고 이것이 부정확한 정세 규정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은 세계대공황 정세이고, 자본주의의 위기다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로 규정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지금의 정세는 세계대공황 정세이며, 지금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2020년 세계대공황 발발로 인해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악화되는 가운데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과제는 더욱 더 절실한 것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지금 정세를 분명히 인식하고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은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선전뿐만 아니라 선동과 투쟁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노동자 민중이 느끼는 고통과 불만을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수렴해나가야 하는 시기다. 이런 시기에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나 ‘코로나19 경제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위기의 장본인인 자본주의를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이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나서게 만드는 것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자본가들을 이롭게 한다. 현 정세를 ‘코로나19 정세’나 ‘코로나19 경제위기’로 규정하는 태도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다.

한개의 댓글

  1.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현재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위기인 세계대공황으로 규정하지 않고 ‘코로나19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의합니다. 사태의 본질을 올바로 드러내어야 할 사회주의자들이 오히려 이것을 애매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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