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야 할 대상은 세대가 아닌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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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주류언론의 수상한 ‘청춘찬가’

‘세대론’ 남발은 이제 공해에 가까울 지경이다. 언론들이 웬일로 나란히 입을 맞춰 세대론을 준거틀로 삼은 분석기사들을 내놓고 있는 탓이다.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의 ‘MZ세대’ 사랑은 독보적인 지경이다.

지난 4월 2일자 조선일보는 「“투쟁 말만 봐도 토 나와” 노조 갑질 반기든 현대차 MZ 세대」에서 현대차 MZ세대 노동자의 “반란”을 비중 있게 다뤘다. MZ세대가 “구시대적 투쟁 방식”에 매몰된 기존 생산직 노조로부터 독립하여 8년차 이하 사원, 대리급 직원을 주축으로 한 사무연구노조를 설립한다는 소식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들의 움직임이 “그동안 없었던 제3의 세력을 형성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하며 “이념이 아니라 실리와 공정을 추구”하는 신세대 노동자의 출현을 몹시 반기는 눈치였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주류 경제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 세대는 자본주의 위기 시대에 “노사 관계 혁신”을 불러올 주역이었다.

동아일보도 MZ세대가 건설할 ‘스마트노조’가 반가운 듯했다. 4월 20일자 「현대차 사무직 “빨간 머리띠 노조는 그만… 스마트 노조 만들자”」라는 기사에서 “과격한 이미지를 벗고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데 공감”한 MZ세대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에도 연대하지 않을 것이며, “빨간 머리띠 두르고 노동가요 부르는” 과격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결의하였으므로 기존 노조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자유주의 언론도 세대론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은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문재인정권이 당한 참패를 각각 “새로운 30년의 주역”(「정치판 뒤흔든 ‘MZ 세대’ 부상…내년 대선 승리하려면 변화를 읽어라」)인 “MZ세대의 발견”(「MZ세대 “진보-보수는 없다, ‘어느 당’보다 ‘내 이슈’에 더 민감할뿐”」)으로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정치평론가의 말을 빌려 “‘586세대’도 역사의 순리에 따라 ‘선진국’에서 태어난 ‘2030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자리를 내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이들이 586세대를 밀어내고 “낡은 이분법적 시대”를 청산할 주역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청년의 입을 빌려 “기존의 진보-보수 정치 문법”은 MZ세대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이득이 되는 것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이들 세대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분석을 살펴본 바, 수구언론과 자유주의 언론 사이에서 약간의 논조 차이만 두드러질 뿐 이들이 탈권위적이며 실리를 중시하는 세대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규정은 타당한 것인가?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인구를 통칭하며, 최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설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실제로 ‘MZ세대’는 과거 Y세대로 불리던 밀레니얼 세대와 그 뒤에 나타난 Z세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의 위기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2008년 공황으로 가시화된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가 집단의 필사의 노력으로 간신히 붕괴를 모면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은 자본주의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안겼다. 세계적 분업화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자본주의가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적 교류의 둔화로 더욱 극심한 경제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주류언론이 자꾸만 세대론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노동자 민중이 현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심대한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최근의 세대론은 MZ세대에 ‘86세대 책임론’까지 나와 노동계급을 이간질하는 데 쓰이고 있다. 청년층이 겪고 있는 극심한 취업난과 무한경쟁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386 꼰대’와 ‘MZ세대’ 간의 대립인 양 왜곡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같은 세대일지라도 성별, 정체성, 경제적 지위에 따라 각자의 처지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세대론은 세대 내부의 양극화 문제를 간단히 무시해버린다. ‘88만원 세대’, ‘N포세대’, ‘달관세대’ 등의 명명을 통해 청년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고 이용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억지로 만들어낸 세대론이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

‘MZ세대’가 겪는 문제는 이들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자본주의적 착취체제의 모순이 만들어낸 문제일 뿐이다. 자본이 노동계급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자행된다. 그래서 ‘MZ세대’ 혹은 ‘86세대 책임론’이라는 표피를 한 꺼풀 벗겨내면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자본가계급이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혹세무민하며, 노동계급 간의 갈등을 야기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나 ‘계급’의 문제를 부차적인 영역으로, 시대착오적인 구분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세대론이 꾸준히 횡행해왔다.

우선 20대를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며 나무라고 비난하는 세대론이 꾸준히 나왔다. 홍세화는 지난 2003년 청년세대가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고 평했고, 2009년 김용민은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다며 더 이상 청년을 중심으로 한 체제 변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원인이 몰주체적이고 어리석은 청년세대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세대교체’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겨져 왔다. 다름 아닌 부르주아 정치 내부에서다. 1971년 당시 신민당 내부에서는 이른바 ‘40대 기수론’이 주장된 바 있다. 나이가 많은 정치인 대신에 젊고 유능한 40대를 중심으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낡아빠진 40대 기수론 레토릭은 아직도 정치권 곳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5월 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김대중의 40대 기수론 이후 두 번째 정치혁명”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대 총선 당시에서는 현 집권여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이른바 ‘86세대 용퇴론’이 불거지며 86세대의 험지 출마를 압박했던 적이 있고, 21대 총선을 앞둔 시기에도 이러한 주장은 반복됐다.

세대론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실책을 가리려는 방편으로도 사용된다. 문재인정권에 대한 20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설훈처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받은 교육에서 찾거나 박영선처럼 과거의 역사에 대한 낮은 경험수치에서 찾은 것이 그러한 경향의 반영이다. 자유주의 세력의 무능과 오만으로 인해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서울과 부산을 탈환한 수구세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근 당대표 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나이 든 정치인이 퇴장한 자리를 청년이 채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청년세대’가 의회에 대거 진출한다고 해도, 작금의 체제가 자본주의인 이상 청년층의 고통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세대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싸우자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사회는 ‘세대’가 아니라 생산을 둘러싼 관계, 즉 ‘계급’에 기초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은 적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도권을 둘러싸고 각자의 이데올로기가 격돌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주입하고 있는 ‘세대’라는 개념은, 분노의 방향을 자본주의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어떤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만들어내는 모순의 결과임에도 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지배계급은 대중매체와 정치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세대론’을 유포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 문제와 계급문제를 은폐, 호도해왔다. 세대가 교체되면 (혹은 ‘저 세대를 밀어내면’) 당신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리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세대론은 노동계급을 극심한 경쟁과 반목으로 몰아넣어, 자본주의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전선을 교란시키는 술책에 불과한 것이다. 세대는 의도적으로 꾸며진 개념인 반면, 계급은 엄연히 실존한다. 세대 간의 다툼 끝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MZ세대, 86세대, 기타 모든 세대에 앞서서 존재하는, 착취와 억압을 재생산하는 이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지배계급의 세대론 악선동에 호응해서는 안 된다. 취업난, 주거난, 빈곤, 저임금, 비정규 노동 모두 자본주의 고유의 현상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본주의 자체와 싸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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