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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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편집자 설명] 지난 4월, 현대중공업에서 하청업체 대규모 임금체불사태가 발생하자, 하청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하청 최초로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전개했고, 또 최초로 대중적인 원하청 공동집회까지 개최되어, 결국 현중 원하청 자본가에게서 승리하며 사태를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5월초에는 대우조선해양에서도 사내하청노동자 2천명이 사내 집회를 개최하는 등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에 『사회주의자』에서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로 4월 24일 오토바이 경적 시위는 물론 원하청 공동집회에까지 직접 참가한 독자에게서 투쟁 당시 현장에서 느꼈던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는 글을 기고 받았다. 기고자는 현장의 사정상 필명으로 기고를 했다. 

대규모 하청체불사태―그런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놈이 없다!

4월초 원청의 단가후려치기로 기성금[편집자: 작업기간 사이에 주는 작업완료분에 대한 대금]이 삭감되자 건조부와 도장부 소속 하청업체 대표들이 기성금 수령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임금 체불 문제로 이어졌다.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이나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견뎌왔고 그로 인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근근이 버텨왔다. 그런데 임금마저 체불이 되자 대응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하청다함께> 단톡방을 개설하여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동안 원청의 갑질과 하청업체 대표들의 중간착취에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해서 이와 같은 상황들이 반복된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우선 4월 12일부터 출근시간 정문 앞 피켓팅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첫날은 다들 불안해하고 구호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날수록 달라지기 시작했다. 참여하는 인원이 늘어나고 구호도 그럴듯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4월 23일에는 동구청과 울산노동지청이 현대중공업을 위한 채용박람회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하청노동자들을 더욱 자극시켰다. 대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하겠다는, 그래서 메가 조선사로 탄생하겠다는 바로 그 현대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 수천 명에 대한 대량 임금체불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잘난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놈이 없었다. 원청 현중은 하청업체가 문제라 하고, 하청업체는 원청 현중이 문제라 하고… 심지어 노동부와 울산시는 심각한 체불사태 와중에 동구청에서 하청 채용 박람회를 진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하청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적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출근선전전은 물론, 기자회견에다가, 동구청 채용박람회마저 박살을 냈다.

하청노동자들, 사상 최초로 오토바이 시위를 하다!

그러자 하청노동자들의 토론방인 <하청다함께>에서 누군가가 갑작스런 제안을 한다. 우리도 원청처럼 사내에서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해보자고. ‘그래 해보자! 회사 밖에서만 출근선전전을 했었는데 우리가 안에서는 왜 못할까. 사내에서도 한 번 해보자.’ 그러면서도 갑작스런 계획에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과연 몇 명이 모일까?’

4월 25일, 중식시간이 시작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그동안 집단행동 이야기만 꺼내도, ‘그러다 잘리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손사래를 치며 경기마저 일으키던 동료들로부터 ‘혼자 가면 어떡하냐’며 지금 나의 위치를 물어온다. 사내 안전모엔 소속과 이름표가 있으니 채증 대비를 위해 오토바이 전용헬멧을 착용하라고 부탁하고 오토바이 시위대가 모이는 곳으로 오토바이를 향했다. 이미 4~50여명이 모인 듯 했고 <하청다함께> 단톡방의 상징 색깔이자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대를 연상하는 노란색 조끼를 제작해 착용을 했다. 하지만 뒤돌아보기가 싫었었다. 왠지 작은 숫자라면 우리 대오를 초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원청노조에 대한 기대감은 언제나 실망스러웠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갑작스런 하청노동자들의 집단행동임에도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노련한 호위부대 역할을 했다. 시위 선두에 하청노동자들의 요구가 담긴 깃발과 함께 방송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2열로 늘어선 오토바이 시위대는 처음임에도 마치 여러 번 해보았다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뒤따른다.

하청노동자들이 두려워하는 원청관리자들의 채증을 차단하기 위해서 원청노조 간부들도 배치되어 있었고, 사내의 여러 교차로에서 일부 원청노조 간부들이 미리 배치되어 하청노동자들의 긴 오토바이경적시위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사내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커브 길을 돌아서며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쪽을 뒤돌아보니 시위 처음과 달리 오토바이시위대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심장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드디어 우리도 이제 시작하는구나. 아직은 미약하지만 이 얼마나 꿈꿔오던 순간인가!’ 그동안 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참아왔던 차별의 설움이 경적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회전하여 서로 교차되는 시위대들의 헬멧을 보니 각 부서 다양한 업체의 하청노동자들도 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시위대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 작업용 헬맷에 단결투쟁이라는 붉은 머리띠가 묶여 있는 것을 보니 원청에서도 연대를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제 시작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살인과도 같은 구조조정과 불법 부당한 임금삭감에도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순응했던 그들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현중 최초, 원하청 공동 대중 집회를 개최하다!

같은 날 오후 5시 잔업을 거부하고 사내 민주광장으로 향했다. 저녁에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점심 때, 오토바이 시위에서 얻은 자신감은 하청노동자들과 원청노동자들의 공동 집회 개최로까지 이어졌다. 집회에서는 요구사항도 원청의 분할 저지와 하청의 체불 해결이, 비록 병렬적이지만 공동으로 걸려있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동안 현대중공업에서 원하청 공동집회는, 정규직 대중 집회에 하청 간부 소수가 결합하는 수준이었다. 공동집회라고 하기엔 민망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집회는 달랐다. 노란조끼를 입은 하청노동자 1백여 명이 오와 열을 맞춰서 집회 대오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특히 하청노조 이성호 지회장 동지가 단상에 올라서 집회 발언을 하고 원하청 노동자들이 박수치는 순간은, ‘하청도 할 수 있다’,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87년 대투쟁, 하청이 부활시키자!

정리하자면, 현대중공업 하청대량체불 사태에서 문제의 원인은 현중 원청이며 근본적으로 하청이라는 구조를 깨부수어야만 한다. 원청은 저가 수주로 부실하게 경영해놓고, 하청구조에 기생하는 하청사장들을 앞세워서, 하청노동자들에게로만 그 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청노동자 스스로가 뭉쳐서 현중 원하청 자본가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청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적으로 투쟁했다. 특히 하청노조가 싸우자니까 싸움이 됐고 대중의 자발성이 투쟁으로 조직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원하청 노조의 공동투쟁으로 발전했다. 원하청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공동집회가 현대중공업 역사상 최초로 개최됐다. 이제 현대중공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그 길로 전진하면 된다!

지난 4월 24일은 현중 사상 최초로 원하청노조 공동집회를 대중적으로 개최한 날이기도 했지만, 어용세력의 1사1노조 무효소송이 울산지법에서 패소한 날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의 역사적 전진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청이 스스로 싸워서 뭉치되, 원하청 노동자들이 공동투쟁하고 1사1노조를 실질적으로 완성하는 것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최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2천여 명의 집단행동 소식을 접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인 나는 진정 이렇게 말하고 싶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여, 2019년 부활하라!”

“이제 응답하라 10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여, 우리 그 선봉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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