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증대되는 자본주의의 투기성, 기생성에 대한 사회주의적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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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글, 「장기침체 상태 속에서의 경기후퇴로 새로운 대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세계자본주의 경제에서 2008년 전보다도 더 금융자본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투기성이 유례없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사멸해가는 자본주의에서 투기와 기생성은 더욱더 심해진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 점을 부연하여 보다 자세하게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투기성, 기생성 증대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며 투기성, 기생성을 정책을 통해 억제하는 것이 왜 무망한 것인지를 밝히고 자본주의 자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투기성, 기생성을 극복할 수 없음을 밝혀보려고 한다.

극단적으로 자본주의의 투기성과 기생성이 증대되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파생금융상품은 2008년 세계대공황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계기로 지적되어 왔다. 정책담당자들과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조차 이구동성으로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공황 직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이토록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은 이후 크게 줄어들었는가? 놀랍게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2008년 세계대공황 직전 마지막 거품시기에 미국의 주요 은행이 보유한 파생금융상품의 규모는 183조 달러로 추정되었다(2011년 7월 6일자 『마켓워치』의 브렛트 아렌즈의 기사, 「다음의, 더 악화된 금융위기, 해설: 우리가 2008년을 반복할 운명인 10가지 이유」). 이것이, 미 재무부 산하 통화감독국(OCC)이 자체 취합한 주요 은행의 파생상품 보유 현황에 의하면, 2018년 1분기 말 기준으로 200조1,170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시각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돌리면 파생금융상품의 규모는 엄청난 규모이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2018년 7월 현재 전 세계 파생금융상품 시장 규모는 600조 달러로 추산되었다. 문제는 2008년과 마찬가지로 규제당국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2008년도에 부채담보부증권(CDO)이 했던 파괴적 역할을 이번에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가 높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의 금융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면서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 2008년 금융위기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시작돼 큰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부실한 부동산담보대출(MBS)을 매개로 한 파생상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채담보부증권(CDO) 때문이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주택담보대출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엄격한 관리를 함으로써 재발 가능성을 현격히 낮추고 있다. 그렇지만 넘치는 유동성과 추가적인 수익을 원하는 수요가 만나면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라는 금융상품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CLO는 저신용 기업들의 은행대출(레버리지론)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상품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대출채권은 투기등급이지만 이러한 대출채권을 100~225개 정도 묶고 이를 상환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하고 적절한 신용 보강을 하게 되면 이들 상품은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받는 상품이 된다. …… 저금리로 인해 안정적인 국채 이자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높은 금리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2018년 미국의 CLO 발행액은 1,28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유럽의 경우도 전년 대비 40% 증가한 270억 유로 규모다. CLO를 거래하는 전체 시장 규모는 2012년 이후 연평균 13.1%씩 성장해 2018년 말에는 6,161억 달러에 이르렀다. ……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교역량 감소와 경기후퇴가 본격화될 경우 한계 기업들의 대출상환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CLO 역시 과거 CDO와 같이 급속한 부실화와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중앙은행 카니 총재와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등은 2019년 수차례 CLO 급증이 과거 CDO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시사저널』 2020년 2월 15일자 기사, 「다시 찾아온 파생금융상품의 악몽」)

비교적 길게 인용하였는데, 자본주의의 투기 양상이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얼마나 판박이처럼 똑같은지를 독자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였다. 이상을 통해서 볼 때 자본주의는 2008년 대공황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변화한 것이 아니라 전혀 변함없이 오히려 과거를 능가하는 규모의 투기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렇게 된 것은 세계대공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대놓고 대공황의 주범인 금융자본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금융자본을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국가가 막대한 투기자금을 금융자본에게 제공하며 투기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위시하여 자본주의국가들은 기준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설정하고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금융자본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구매함으로써 주식과 채권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켰다. 또한 막대한 투기자금을 금융자본에게 제공한 것이다. 사태는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다. 파산위기에서 살아남은 금융자본은 이제 한 발 더 나아가서 노골적으로 정부를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좌지우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앞에서 인용한 『마켓워치』의 기사가 매우 생동감 있게 압축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책임자 중-인용자 삽입)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심판(국가는 금융자본편이다-인용자)이 부패했다”, “주가는 다시 급상승하고 있다”, “파생상품 시한폭탄은 전보다 훨씬 크고, 그리고 째깍째깍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앙시앙 레짐이 권좌에 앉아 있다”, “우리들은 미친 듯이 빚을 늘리고 있다”, “실제 경제는 여전히 부진하다.”

파산위기에서 살아남은 금융자본이 노골적으로 정부를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여 정부가 계속해서 투기자금을 대놓고 제공하게 만든 것을 김수행의 『세계대공황』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구제금융에 의해 몇몇의 큰 은행들은 다시 살아나서 큰 이윤을 얻고 있으며, 정부가 매입했던 은행 주식을 도로 매입함으로써, ‘금융업무’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말 것을 또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융기업을 규제하려는 법률이 금융기업들의 로비에 의해 미국 의회에서 제대로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기업들이 공적 자금을 받지 않고 은행 스스로 납부하는 ‘은행세’의 적립으로 파산 위기를 극복하는 법률안, 은행이 발행하고 거래하는 ‘파생금융 상품’을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률안, …… 석유나 금이나 기타 원자재에 대한 투기를 규제하는 법률안 등이 그 예입니다.

금융기업들은 0~0.25%의 싼 이자율로 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국채·회사채·주식이나 제1차 산품에 투기하고 안전한 상공업기업에 대출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석유에 투기하여 석유가격을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가게 했으며 심지어는 인민대중의 주된 먹을거리인 밀··옥수수에도 투기하여 식료품의 가격을 폭등시키기도 했습니다.(201쪽)

자본주의의 투기성과 기생성이 증대되는 이유

2008년 세계대공황의 발발 이후 세계대공황의 원인을 금융자본의 탐욕에서 찾고 금융자본의 투기성을 일종의 일탈로 규정하고 금융자본을 규탄하며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본가들, 경제정책담당자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한때 분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뒤집어서 다시 말하면 금융자본을 통제하면 자본주의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투기성과 기생성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과연 그러할까? 자본주의의 투기성, 기생성은 하나의 일탈에 불과할까? 이에 대해서 답해야 할 차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현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환상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자본주의는 그 발전에 따라 투기성과 기생성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밝혀보도록 하겠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본은 집적되고 집중된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전은 은행과 증권거래소 등 신용제도도 발전시키고 다시 이 신용제도의 발전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가속화한다.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금융자본의 본질을 규명하고 금융자본에 의해 자본주의의 투기성과 기생성이 증대되는 것을 폭로하였는데 맑스는 이미 『자본론』에서 더욱 포괄적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신용제도가 발전하고 신용제도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투기성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규명해 놓았다. 이러한 규명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특히 『자본론』 Ⅲ권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이다. 때문에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투기성의 증대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 부분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장에서 맑스는 신용제도의 역할을 서술하면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주식회사에서처럼 사회적 자본 형태가 발생함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주식회사를 서술하면서 맑스는 이 사회적 자본 형태가 투기, 사기를 증대시킨다는 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식회사는 한편에서는 일정한 분야에서 독점을 낳고 이리하여 국가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식회사는 새로운 금융귀족을 재생산하고, 회사발기인·투기꾼·명목만의 임원의 형태로 새로운 종류의 기생충을 재생산하며 회사창립·주식발행·주식거래와 관련된 투기·사기의 제도 전체를 재생산한다.”(강조는 인용자, 『자본론』 Ⅲ권(김수행 역 제1개역판)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544쪽) 맑스는 자본주의의 발전 산물인 주식회사가 한 측면에서 투기, 사기 역시 증대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맑스는 신용이 개별자본가―또는 자본가로 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정한 한계 안에서 타인의 자본과 재산, 그리하여 타인의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주에서 이것이 투기의 증폭과 연결됨을 밝히고 있다. 이어지는 부분은 보다 직접적으로 투기의 증폭을 언급하고 있다. “자기자본이 아니라 사회자본에 대한 처분권은 자본가에게 사회적 노동에 대한 지배력을 준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또는 세상사람들이 그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은 신용이라는 상부구조를 위한 토대가 될 뿐이다. 이것은 특히 도매업[사회적 생산물의 대부분이 이것을 통과하고 있다]에서 그러하다. 모든 척도들[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안에서 대체로 정당화되었던 모든 변명의 근거들]이 지금은 사라져버린다. 투기하는 도매상이 도박에 걸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소유이다. 자본의 기원이 저축이라는 이야기도 역시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투기꾼은 바로 타인들이 자기를 위해 저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엥겔스: 최근 프랑스 전체는 파나마운하 사기꾼들을 위해 15억 프랑을 저축한 셈이 되었다. 파나마 운하 사기가 일어나기 20년 전에 그것이 여기에 정확히 지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절제라는 문구도 자본가의 사치이것이 이제는 신용을 얻는 수단으로 되고 있다에 의해 완전히 반박되고 있다. …… 즉 생산수단은 사회적 생산의 발달에 따라 사적 생산의 수단이나 생산물이기를 멈추며, 결합된 생산자들의 사회적 소유로서 [생산수단이 그들의 사회적 생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수중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그것 안에서는 이러한 수탈은 소수인에 의한 사회적 소유의 취득이라는 반대의 형태를 취해 나타난다. 그리고 신용은 이 소수인에게 순전히 사기꾼의 성격을 점점 더 부여하고 있다. 소유권은 이제 주식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유권의 동향과 이전은 증권거래소의 투기의 결과일 따름인데, 증권거래소에서는 작은 고기들은 상어의 밥이 되고 양은 거래소의 이리들의 밥이 된다.”(강조는 인용자, 『자본론』 Ⅲ권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544~546쪽)

제27장의 마지막에서 맑스는 매우 의미심장한 언급을 하고 있다. 다른 점도 중요하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신용제도가 투기와 사기를 극한까지 증대시키는 점을 특별히 주목하여 이 부분을 읽기 바란다.

신용제도가 과잉생산과 상업에서의 지나친 투기의 주요한 지렛대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다만 그 성질상 탄력적인 재생산과정이 여기에서 그 극한까지 강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강행되는 것은, 사회적 자본의 큰 부분이 그것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소유자는 자기의 사적 자본을 스스로 사용할 때 그것의 한계를 소심하게 타산하는 데 반하여, 이 비소유자들은 소유자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백하게 할 뿐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립적 성격에 바탕을 둔 자본의 가치증식은 현실적인 자유로운 발전을 오직 일정한 점까지만 허용하며, 이리하여 실제로 생산에 내재적인 속박과 장벽으로 작용하는데, 이 속박과 장벽이 신용제도에 의해 끊임없이 돌파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창조를 촉진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새로운 생산형태의 물질적 기초로서 일정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사명이다. 동시에 신용은 이 모순의 격렬한 폭발, 즉 공황과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를 촉진한다.

(강조는 인용자, 『자본론』 Ⅲ권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547~548쪽)

 

인용문 중 “자본의 소유자는 자기의 사적 자본을 스스로 사용할 때 그것의 한계를 소심하게 타산하는 데 반하여, 이 비소유자들은 소유자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맑스는 제27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용제도의 이중적 성격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 맑스가 투기의 증대를 단순한 도덕적 관점이 아니라 변증법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산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이중적 성격―한편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기[타인노동의 착취에 의한 치부]를 가장 순수하고 가장 거대한 도박·사기의 제도로까지 발전시키고, 이미 작은 수의 사회적 부의 수탈자의 수를 점점 더 제한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가는 이행형태를 구성한다는 성격은 로로부터 페레르에 이르는 신용의 주창자들에게 사기꾼과 예언자를 잘 혼합시킨 성격을 주고 있다.

(강조는 인용자, 『자본론』 Ⅲ권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548쪽) {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은행업자로서, 프랑스의 재정담당자가 되어 지폐의 발행으로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자를 해결하려다가 실패했다. 또한 프랑스의 미시시피계획을 추진했으나 투기만 일으키다가 실패했다. 페레르는 자기의 형 쟈크 에밀과 함께 크레디 모빌리에를 창립했는데, 이 금융회사는 1867년 파산했다.}

이상에서 검토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신용제도가 발전하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투기성, 기생성 역시 증대된다. 이윤율의 저하경향의 법칙이 자본주의의 퇴보가 아니라 발전의 산물인 것, 그래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투기성, 기생성의 증대 역시,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인 것이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론』 Ⅲ권 제36장에서도 신용제도가 사기를 증폭시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그리하여 신용·은행제도는 자본의 사적 성격을 폐기하며 따라서 자기 자신 안에 자본 그것의 폐기를 잠재적으로[비록 잠재적일 뿐이기는 하지만] 내포하고 있다. 은행제도는 자본의 분배를 사적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의 수중으로부터 빼앗아 하나의 특수한 업무, 사회적 기능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렇기 때문에 은행과 신용은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추진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되며 그리고 공황과 사기의 가장 유효한 매개물의 하나로 된다.

(강조는 인용자, 『자본론』 Ⅲ권 제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747쪽)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투기성과 기생성을 통제한다는 것은 허구적이다.

때문에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투기성과 기생성을 통제한다는 것은 허구적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투기성과 기생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신용제도도 발전하고 투기에 동원될 수 있는 사회적 자본 역시 늘어나기 때문에 투기성은 날이 갈수록 상상를 초월할 정도로 증폭된다. 따라서 원인은 놔둔 채 그 결과만을 없애거나 통제하겠다는 것은 허구적인 것이다. 이는 프루동이 상품생산은 그대로 둔 채 상품생산의 필연적인 산물인 화폐만을 악마화하여 화폐를 폐지하려 한 생각이 허구적인 것이었던 것처럼 허구적인 것이다.

또한 산업자본 대 금융자본으로 자본을 나누고 전자를 우선하는 정책을 대안으로 삼는 것 역시 허구적이다. 왜냐하면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의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밝혔듯이 금융자본은 산업자본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발전한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유착하여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의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투기성을 증대시키는 것인데 자본주의는 그대로 놔둔 채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투기성을 통제하겠다는 것 역시 허구적인 것이다. 2008년 세계대공황 이후 자본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이러한 주장은 환상적인 것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는데, 결국 실제로 발생한 것은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거꾸로 금융자본이 국가와 정부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금융자본은 국가와 정부를 막대한 로비자금을 동원하여 자기의 구미에 맞게 재구성하여 자신의 이해에 따라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마켓워치』의 브렛트 아렌즈의 기사, 「다음의, 더 악화된 금융위기, 해설: 우리가 2008년을 반복할 운명인 10가지 이유」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은행들과 다른 산업들은 엄청난 양의 돈을 의회, 대통령들, 보좌관, 고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로 구성된 워싱턴 전체의 기득권세력에게 물 쓰듯 한다. 그들은 선거기부를 통해 그것을 한다. 그들은 50만 달러의 강연료, 퇴직 후의 이사회의 한직으로 그것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로비스트들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그것을 한다―그래서 당신은 만약 당신이 정부에 있을 때 잘 행동하면 당신이 은퇴할 때 일 년에 50만 달러를 버는 로비직을 당신도 갖게 된다는 것을 안다. 뇌물이 얼마나 큰가? 반응하는 정치를 위한 센터에 의하면 작년 한 해 만에 금융산업은 4억7천4백만 달러를 로비에 썼다.”

대안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로의 전진, 자본주의의 극복,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다.

결국 투기성, 기생성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투기성, 기생성이 상대적으로 현재보다 약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미 신용제도가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자본주의나, 금융자본이 지배하기 이전의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것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대안이다. 대안은 미래로의 전진,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투기성과 기생성이 증대되는 것은 생산이 사회화되고 소유형태도 사회화되는데 소수가 사회적 부를 독점적으로 취득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은 소수에 의한 사회적 부의 독점적 취득, 날로 증대되는 투기성이냐, 결합된 생산자에 의한 사회적 부의 취득이냐이다.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선택이다. 날로 증대되는 자본주의의 투기성, 기생성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은 미래로의 전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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