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을 이윤과 바꾸지 못하게 하자―중대재해기업처벌법 투쟁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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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 세계]

[편집자 설명: 해를 넘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가 임박해있다. 그동안 민주당은 자본가들의 입장을 반영하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항을 약화시키고자 하면서 ‘중대재해기업허용법’을 만들려 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자체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법 통과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동조단식에 참여한 김석정 동지의 기고를 받았다.]

변치 않는 산업재해, 위험의 일상화

한국 사회는 지난 20여 년간 많은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자본주의 중심국들의 모임이라는 OECD에 가입하자마자 곧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에 따라, IMF에서 제공한 구제금융을 받으며 전면적인 신자유주의로 선회한다. 이는 이중 노동시장 구조를 심화시켰고, 전사회적인 고통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온 세계를 뒤덮던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와 현재의 공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20년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산업재해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1998년 0.68%였던 전체 재해율은 2003년에 0.9%로 정점을 찍고 2010년대에는 0.65%부터 0.48%까지 매해 오르락내리락 횡보하고 있다. 그와 함께, 매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1998년 2,212명으로부터 2001년 2,748명으로, 다시 2019년 2,020명으로 결코 줄어든다고 볼 수 없다. 같은 통계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19,140명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참전한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사망자 5,060명와 비교해도 너무나 많다. 그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의 몇 배 되는 강도의 ‘전쟁’이 나날의 일상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로 40명이 사망한 사고로부터 2014년 5월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등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불러온 사고들은 끝을 모르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21년 1월 5일자 경향신문 기획기사를 보면 2020년 산재로 사망한 754명이 관련된 총 710건의 사고를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이 절반이 넘고, 제조업이 사분의 일을 조금 넘는다. 보다시피 각종 건설-제조업 산업현장의 재해가 그 주무대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인한 각종 질병으로 쓰러지고 있다. 이는 작업장에서의 분진, 건설현장의 비산먼지에서부터 각종 화학약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앞에서 본 각종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스포츠센터, 병원 등 민중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공간에서도 안전의 문제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심지어는 가습기 참사 사건처럼 모든 민중들의 개인적인 공간에서도 알지 못하고 일어난다. 가히, 위험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과 이윤을 바꾸는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 민중을 지켜나가는 투쟁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며 또 끊이지 않고 일어날까? 이제는 이런 사고들을 막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여기에 답하기 이전에 비슷한 안전사고와 관련한 대책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3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여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어린이 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소위 ‘민식이법’이 발효되었다. 아직 실시 기간이 짧아 구체적인 효과에 대한 분석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인식의 제고와 함께 운전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변화가 어린이 안전사고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이제, 산업현장 및 각종 기업 행위의 결과로 인한 사고 및 질병의 방지라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민식이법’과 같이 행위자(사업주 및 법인 기업)에 주의 의무를 부과하고, 예방교육을 하며, 부주의로 인한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안전의식을 제고하면 이러한 사고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여기에서 똑같은 안전의 문제가 완전히 다른 안전의 문제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

아마도 스쿨존에서의 안전사고 방지 대책은 사업주 및 법인 기업과 같은 자본에 어떤 직접적인 불편함과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현재 민중이 요구하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 법률안)의 경우, 명백한 대책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자본에 대한 제한을 가하고 위반 행위에 대한 ‘관련 책임자’의 처벌을 담고 있기에 아직까지 지리한 싸움을 거치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이 최근 시작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에 특히 자세히 인용되고 묘사된 19세기 영국 노동계급의 열악한 상황과 그로 인한 최악의 건강 상태, 각종 질병과 평균 수명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면 이는 지난 두 세기에 걸쳐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이윤을 획득해 온 자본의 행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비록 인간의 생명이라도!’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의 이윤 법칙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시기 제대로 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단지 노동 현장과 일상생활에서 안전한 삶을 살겠다는 민중의 바람을 법안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인간의 생명과 이윤을 바꾸는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 민중을 지켜나가는 투쟁이 될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만을 가지고 자본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다. 이 법안은 현시기에 긴급히 요구되는 많은 과도기적 요구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노동자 민중들이 보다 나은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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