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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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04년에 열린 제2인터내셔널 암스테르담 대회 전경]

[편집자 설명] <사건으로 간추린 사회주의노동운동사>는 『사회주의자』 27호부터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 기사입니다. 그동안 지면 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를 매달 한 편씩 게재합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사의 전모를 다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역사적 중요 사건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①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② 리옹 봉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향한 한 걸음

③ 차티즘,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정치운동

④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⑤ 1848년 프랑스 6월 봉기: 노동자, 부르주아 국가의 실체를 깨닫다

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⑦ 1871년 파리코뮌, 최초로 등장한 노동자국가

⑧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⑨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

1864년 창립된 제1인터내셔널은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표자회의에서 해산이 결정된다. 제1인터내셔널이 해산된 이유는 파리코뮌 패배 이후 곳곳에서 탄압이 벌어져 인터내셔널의 각 지부가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바쿠닌 등의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분파투쟁이 격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제1인터내셔널이 이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여,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의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1인터내셔널은 각국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당들의 출현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였다. 실제 독일뿐만 아니라, 네덜란드(1870년), 덴마크(1871년), 미국(1876년), 프랑스, 스페인(1879년), 러시아(1883년), 노르웨이(1887년),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1890년) 등에서 당들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당의 창설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었다.

제1인터내셔널은 해산되었지만,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는 확장되었고 여러 나라 운동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였다. 다른 나라 파업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여러 가지 캠페인을 수행하는 것은 통례가 되었다. 사회주의 신문은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에 관한 정보의 전달범위를 늘려갔다. 이는 경험의 교환과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정신에 의한 노동자 교육을 촉진하였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사적 충돌 위협과 식민지 확장에 대항한 공동의 호소문들이 자주 나왔으며, 군국주의와 전쟁 위협에 대한 투쟁은 각각의 민족들에 속한 프롤레타리아트를 단결시켰다. 신문, 사회민주주의당 의원들, 그리고 노동자 모임은 지배집단의 국수주의적 정책을 단호하게 비난했고, 이러한 정책들의 반민중적 성격을 폭로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의 실행을 옹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신문들, 각 정당의 당대회, 그리고 노동조합들은 새로운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 연합의 조속한 결성을 더 많이 요청하게 되었다. 독일사회민주당은 국제적인 노동자대회를 제안했다. 그리고 1889년 7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적 연합을 결성하는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하나는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하나는 개량주의자들에 의해 국제대회가 개최되게 된 것이었다. 엥겔스는 국제적 연합이 개량주의자들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도록 맑스주의자들을 조직하였고, 그 결과 20개 나라로부터 약 390명의 대표들이 참가하여 ‘노동자들의 국제사회주의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제2인터내셔널이 창립되게 되었다.

제2인터내셔널이 창립될 당시 맑스주의는 이미 지도적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맑스주의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결과였다. 창립대회는 8시간 노동일, 아동노동의 금지, 청소년 노동과 여성노동의 제한, 야간작업과 위험작업에 대한 특별규정, 매주 의무적 휴식일의 제정, 공장감독관들의 국가기구 설립 등을 요구하였다. 또한 국적을 불문하고 남성과 여성의 동일한 노동에 대한 동일한 보수, 완전한 결사 및 단결의 자유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창립대회에서는 상비군의 폐지와 인민의 무장에 대한 결의도 있었다. 그 중 노동입법 및 노동보호에 관한 결의는 노동자계급의 사활적 이익을 위한 투쟁의 광범한 강령을 담고 있었고,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요구들을 종합한 것이었다. 여러 해 동안 파리대회의 결의들은 생활조건 및 노동조건의 향상을 위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기초적 강령으로 사용되었다.

창립대회에서 한 가장 중요한 결정은 5월 1일을 국제 노동운동의 시위의 날(메이데이)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는 8시간 노동일을 위한 총파업을 결정했던 미국노동총동맹의 제안을 지지한 것으로, 실제 이듬해인 1890년 5월 1일에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거리를 메웠다. 또한 제2인터내셔널은 1910년 대회에서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정했다.

제2인터내셔널의 시기에는 사회주의정당들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운동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국제조직도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890년 국제탄광노동자연맹의 결성을 시작으로 직업별 노동조합서기국이 차례차례 설립되고, 1903년에는 각국 노동조합중앙조직의 연락기관으로서 국제노동조합서기국이 설립되었다. 이것은 1909년 국제노동조합연맹으로 개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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