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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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892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사민당 회의를 그린 그림]

[편집자 설명] <사건으로 간추린 사회주의노동운동사>는 『사회주의자』 27호부터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 기사입니다. 그동안 지면 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를 매달 한 편씩 게재합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사의 전모를 다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역사적 중요 사건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①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② 리옹 봉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향한 한 걸음

③ 차티즘,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정치운동

④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⑤ 1848년 프랑스 6월 봉기: 노동자, 부르주아 국가의 실체를 깨닫다

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⑦ 1871년 파리코뮌, 최초로 등장한 노동자국가

⑧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⑨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

⑩ 1905년 러시아 혁명: 피의 일요일과 대중파업, 노동자 소비에트

1864년 제1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을 당시, 자본가들은 제1인터내셔널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고양되면서 자본가들은 태도를 바꾸어 제1인터내셔널 소속 지부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제1인터내 널은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노동자들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지도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인터내셔널에 가입하였고, 정치조직도 발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전국적인 노동자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1869년 독일에서 최초의 대중적인 사회민주노동자당이 결성되었다. 1875년에는 고타대회를 통해 맑스주의적인 독일 사회민주노동자당과 라살레주의적인 전독일노동자연합이 통합하여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이 탄생하는 데 이르렀다.

1877년 1월 제국의회 선거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거의 50만 표를 얻었으며, 13개 의석을 차지하였다. 당시 당과 당에 결합한 노동조합들은 60종 이상의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고 있었다. 이 당은 당시 유럽에서 유일한 사회주의당이었고,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한편, 1871년 독일 통일을 달성한 비스마르크는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독일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자신의 계획에 걸림돌이라 여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이 창립된 지 3년만인 1878년 비스마르크는, 한 무정부주의자의 독일 황제 저격사건을 빌미로 제국의회에서 반사회주의법을 통과시켰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당조직들은 금지되었고, 간행물들은 모두 폐간되었으며 회합과 집회를 여는 것이 금지되었다. 운동의 가장 전투적인 성원들은 대도시로부터 추방되었으며, 일부는 투옥되고 많은 수가 생계수단이 없어져 이민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훌륭히 극복하고 성장하였다. 반사회주의법이 서슬 퍼렇게 작동하던 시기, 당은 합법주의를 지향했던 라살레주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혁명적 지향의 비합법적 조직을 보존하되, 음모가적 단체로 퇴보하는 것을 방지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당의 회합이 금지되었지만, 합창단체, 애연가클럽 등을 활용하여 당의 회합이 이루어졌다. 선거캠페인 중에는 선거모임을 활용하여 당의 회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간행물이 폐간되었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복구되었다. 스위스, 영국 등 해외에서 당의 중앙신문인 ‘사회민주주의자’와 많은 리플렛들을 인쇄하여 독일 내부로 전달하는 체계―적색우편업무라고 알려졌고 당조직들 사이의 고리로서 기능하던 체계―는 당원들과 지지자들 사이의 신뢰를 유지시켜 주었다. 반사회주의법이 발효되기 전 당은 16만에서 17만에 이르는 총부수를 가진 50종의 신문을 발행했는데, 1890년에는 19종의 일간지를 포함해 70종의 신문을 발행했다. 뿐만 아니라, 당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아우구스트 베벨,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수백만 민중의 시선을 모으던 의회를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정부와 자본가 당들의 정책을 폭로하는 연단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그들이 쓸 수 있는 수단들을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반사회주의법’으로부터 노동계급운동의 파괴를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대열을 강화시키고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당은 1881년 ‘라이히스타크’ 선거에서 30만이 다소 넘는 표를 획득했는데, 1890년에는 당후보자들이 1,427,000표로 총투표의 19%를 획득하였다. 결국 1890년 9월 반사회주의법은 12년만에 폐지되었다. 또한 독일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였으며, 라살레주의가 아니라 맑스주의를 공식적으로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1875년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창립당시 25,000명이던 당원 수는 세기말 10만여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독일 사회민주노동당은 반사회주의법에 의한 탄압을 훌륭하게 극복을 하고 당을 성장시켰다. 이는 다른 사회주의 대중정당들의 모범이 되었다. 하지만 1914년 독일사회민주당은 자국 정부의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세계사회주의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게 되는데, 이는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에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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