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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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전경을 그린 그림]

[편집자 설명] <사건으로 간추린 사회주의노동운동사>는 『사회주의자』 27호부터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 기사입니다. 그동안 지면 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를 매달 한 편씩 게재합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사의 전모를 다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역사적 중요 사건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①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② 리옹 봉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향한 한 걸음

③ 차티즘,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정치운동

④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⑤ 1848년 프랑스 6월 봉기: 노동자, 부르주아 국가의 실체를 깨닫다

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⑦ 1871년 파리코뮌, 최초로 등장한 노동자국가

⑧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에 의해 쟁취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급특권과 독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평등한 권리와 의무, 모든 계급지배의 철폐를 의미한다.

– 국제노동자협회 임시규약 중에서

1864년 9월 28일,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 홀에서는 각국의 노동자들이 발 딛을 틈 없이 모여, 눈앞에 벌어지는 역사적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훗날 ‘제1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는 노동자들의 국제적 조직 ‘국제노동자협회’가 결성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국제노동자협회의 결성은 19세기 중반 노동운동 고양의 산물이었다. 영국의 노동조합은 차티즘의 쇠퇴 이후 한동안 부르주아 자유주의에 포섭되었으나 1857년 공황을 경과하면서 새로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1860년에는 런던 노동조합평의회가 결성되었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1848년 6월 봉기의 패배 이후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다시금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독일 노동운동 역시 조직되고 있었다. 1863년 라살레가 주도하여 독일노동자총연합이 결성됐고, 맑스의 동지인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1862년 프로이센 당국의 사면 이후 독일로 되돌아와 아우구스트 베벨과 더불어 사회주의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성장 속에서 노동자 투쟁의 경험과 지식의 공유, 노동자계급의 처지 개선과 사회개혁을 위한 공동의 투쟁, 파업파괴자 반대 등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행동의 필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민족적 혁명투쟁의 고양 역시 국제노동자협회 결성의 배경이 되었다. 영국의 억압에 맞선 아일랜드 민중의 투쟁, 이탈리아의 민족투쟁, 폴란드의 민족봉기는 많은 나라들의 노동자들을 분기시키고 국제적 연대의 시도를 낳았다.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노동자들 속에서 노예제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크게 자리 잡았다. 특히 폴란드의 민족봉기는 국제노동자협회 결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1862년 런던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자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8월 5일, 영국 노동자들은 70명의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성대한 환영식을 열어주었고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의 국제적 조직이 제안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들 사이에 계속된 교류가 이루어졌다. 1863년 1월 폴란드 민족봉기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영국 노동자들은 4월 28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발의로 집회를 열고 당시 수상 팔머스톤에게 폴란드 편에 서서 영국이 개입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을 채택했다. 이 청원이 거부당하자 7월 22일 프랑스 노동자를 참가시키는 새로운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22일 집회에는 똘랑, 배라숑, 비발, 뮈라 등 프랑스 노동자 대표단이 참석했다. 다음 날 영국 노동자 대표들은 프랑스 대표단을 만나 국제조직 창설을 논의했다. 11월 20일에는 오저가 쓴 “영국 노동자들로부터 프랑스 노동자들에게”라는 연설문이 영국 노동자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1864년 9월에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폴란드 문제로 조직된 또 다른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보교환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창립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864년 9월 28일, 영국의 노동자들은 프랑스의 대표자들을 환영하기 위한 국제적 집회를 개최하였다. 인산인해를 이룬 이 집회에 모인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국제 조직을 결성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조직의 규약을 논의할 임시위원회를 선출하였다.

맑스는 9월 28일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곧장 국제노동자협회의 의의를 간파하고 적극 결합하여 조직의 정신과 지향, 운영방향 등을 담은 임시규약과 창립선언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사실상 국제노동자협회의 사상적, 조직적 지주가 되었다. 국제노동자협회에는 다양한 운동 조류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맑스는 이런 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국제노동자협회가 올바른 사상적, 조직적 방향을 확립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발전을 이론적으로 올바로 표현하였기 때문이었다. 맑스의 그러한 역할로 인해 국제노동자협회 시기 과학적 사회주의는 국제 노동운동 안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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