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독일 혁명: 유럽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고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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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18년 11월 9일 베를린 황제의 궁전 앞에 모인 독일 민중의 모습]

[편집자 설명] <사건으로 간추린 사회주의노동운동사>는 『사회주의자』 27호부터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 기사입니다. 그동안 지면 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를 매달 한 편씩 게재합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사의 전모를 다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역사적 중요 사건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①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② 리옹 봉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향한 한 걸음

③ 차티즘,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정치운동

④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⑤ 1848년 프랑스 6월 봉기: 노동자, 부르주아 국가의 실체를 깨닫다

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⑦ 1871년 파리코뮌, 최초로 등장한 노동자국가

⑧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⑨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

⑩ 1905년 러시아 혁명: 피의 일요일과 대중파업, 노동자 소비에트

⑪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⑫ 1917년 10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다

⑬ 1918년 11월 독일 혁명: 유럽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고양되다

⑭ 1919년 코민테른의 창립: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수립

⑮ 1922년 극동인민대표대회: 러시아 혁명이 민족해방운동의 횃불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이 여러 해 지속되자 빈곤과 의미 없는 살상에 지친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유럽 각지에서 노동자 파업과 기아폭동이 발생했다. 그러던 중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사회주의로의 이행시대가 시작되었다.

10월 혁명의 승리는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혁명투쟁을 고양시켰다. 가령 1918년 1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노동자들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중유럽 열강이 소비에트 러시아에게 제시한 약탈적인 강화조건에 항의하여 파업을 선언하였다. 같은 달 말 핀란드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정부는 노동자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소작 농민의 의지를 반영하여 많은 철저한 민주적 개혁을 수행했다. 1918년 9월에는 불가리아 군내부에서, 10월과 11월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 왕정이 무너졌다. 이렇게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고무되어 일어난 유럽의 여러 노동자 투쟁들 중 대표적인 사례는 1918년 독일 혁명이다.

1918년 8월 독일군의 프랑스 진격 시도가 실패하면서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졌다. 독일 최고사령부는 10월 24일, 전세를 어떻게든 반전시켜 보기 위해 함대에게 영국으로 진격하여 영국 왕립해군과의 최종 전투에 나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킬 함대 수병들은 더 이상 지배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기를 거부하며 반란으로 응수했다. 11월 1일 킬 시내 노동조합 회관에 수병 대표들이 대책을 논의하려 모였고 노동조합 및 정당과 연계를 갖기 시작했다. 수병들은 무장한 채 파업 중인 부두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다. 11월 3일에는 더 확대된 회의가 소집되어 노동자, 병사 대표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평화와 빵(Frieden und Brot)”이라는 구호를 채택하고 반란자들이 수감된 군사감옥으로 행진했다. 11월 4일 해군기지 사령관이 진압을 위해 6개 보병사단을 불렀으나 이 사단들도 분열되고 일부 병사는 혁명세력으로 넘어왔다. 이날 병사평의회가 정식 설립되고 킬은 반란을 일으킨 수병의 완전한 통제 하에 들어갔다. 독일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혁명은 11월 내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됐고 곳곳에서 노동자병사평의회가 수립됐다. 11월 9일에는 무장한 노동자들과 병사들이 스파르타쿠스단과 혁명적 직장위원들의 호소에 응해 베를린을 장악하고 제정을 전복시켰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휴전 협정이 11월 11일에 조인되었다. 당시 독일 노동자와 병사의 대다수는 이렇게 군주제가 타도되어 평의회가 설립되고 공화제가 포고되며 보통선거제가 제정된 것에 크게 고무되었다. 하지만 부르주아 권력이 폐지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전쟁을 지지했던 사회민주당 장관 샤이데만 같은 기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에베르트는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군 사령부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군대가 사회 전체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게 하자고 합의했다.

머지않아 독일 사민당은 이 혁명을 유산시키고 러시아 혁명으로 시작된 사회주의 혁명 물결이 유럽으로 확산되는 것을 봉쇄하는 반동적 역할을 했다. 사회민주당의 우익 지도자는 가능한 한 급속하게 국민의회를 소집한다는 기치 하에 반동세력 전체를 통합하고 군벌과 동맹하여 노동자계급에게 중대한 타격을 가했다. 1919년 1월, 독일 공산당이 주도한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일어났으나, 반혁명으로 돌아선 사회민주당 정부는 정규군과 반동 민병대 자유군단을 동원하여 이를 와해시켰다. 1919년 1월 1일 독일 공산당이 창당되고 곧장 공산당 주도의 혁명적 물결이 일어났다. 노동자 혁명의 숨통을 끊기로 마음먹은 사민당과 독일 지배계급은 무엇보다 공산당의 지도자들을 가만두지 않기로 했다. 1월 15일 극우민병대 자유군단은 사민당 지도자 에베르트와 노스케의 명령을 받아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체포하여 무참히 살해했다.

결국 독일 혁명은 패배로 끝났다.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 진영으로 출발한 사민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을 배신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혁명의 반대편에 서서 혁명을 압살하였다. 그럼에도 독일 혁명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계급의 주도 하에 일어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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