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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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사건으로 간추린 사회주의노동운동사>는 『사회주의자』 27호부터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 기사입니다. 그동안 지면 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를 이번 달 부터 매달 한 편씩 게재합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사의 전모를 다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역사적 중요 사건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①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② 리옹 봉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향한 한 걸음

③ 차티즘,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정치운동

④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⑤ 1848년 프랑스 6월 봉기: 노동자, 부르주아 국가의 실체를 깨닫다

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⑦ 1871년 파리코뮌, 최초로 등장한 노동자국가

⑧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⑨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

⑩ 1905년 러시아 혁명: 피의 일요일과 대중파업, 노동자 소비에트

⑪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⑫ 1917년 10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다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제조건은 다름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임금노동의 등장이다. 이 둘은 분리된 요인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다시 말해 아주 다른 두 종류의 상품소유자들인 화폐·생산수단·생활수단의 소유자와 더불어 아무런 생산수단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소유자 밑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자유로운 노동자”가 등장해야 한다. 따라서 맑스는 “자본관계를 창조하는 과정은 노동자를 자기의 노동조건의 소유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이외 다름 아니고, 이 역사적 분리과정이 바로 시초축적이라고 했다. 영국은 13세기 말 무렵부터 봉건제가 끝나고 점차 농업에 종사하던 직접생산자들이 자신의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노동자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쳤다. 노동자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출현과 더불어 자본에 대한 투쟁을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초기 노동자들의 투쟁은 물가 상승과 그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에 대항하는 기아, 식량 폭동의 형태를 띠었다. 그러던 중 19세기에 접어들어 기계가 도입되고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시작되었다.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전한 영국에서 초기 계급투쟁에서 중요한 투쟁이 바로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세간에 거론되면서 노동자계급의 초기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이 마치 기술과 생산 발전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진보적 흐름에 맞선 반동적, 퇴행적 운동처럼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은 노동자 운동을 격하시키려는 자본가들의 평가라 할 수 있다. 러다이트 운동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으로 인한 식량가격 폭등, 흉년, 새로운 기술로 인한 해고와 실업, 임금 삭감에 맞서 생존을 지키기 위해 싸운 노동자의 투쟁이었다. 기계 파괴는 자기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할을 했다. 그래서 홉스봄은 이를 일러 “반란을 통한 단체교섭”이라 불렀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영국 지배계급은 자국 내에서 혁명이 일어날까봐 걱정했고 특히 노동자들의 결사(노동조합 결성)을 막기 위해 단결금지법(Combination Act)을 1799년에 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다양한 조직을 결성했다.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역시 오랫동안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투쟁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러다이트 이전부터 그와 비슷한 여러 투쟁이 있었다. 잉글랜드 남부지역에서 1802년에 일어난 윌트셔 반란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곳 양모업 노동자들은 ‘기모기’ 도입에 반대해 싸웠다.

러다이트 운동의 이름은 1770년대 2대의 방적기를 파괴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인물 ‘네드 러드’(Ned Ludd)로부터 비롯됐다. 운동 참가자들은 스스로를 ‘러드’라고 지칭했다. 1811년 봄 이 전설이 나온 고장인 잉글랜드 중부 노팅험셔에서 편물 노동자들은 기업주와 임금삭감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는 저임금을 주는 기업주들을 막기 위해 법률에 호소했으나 실패했다.

그해 3월부터 노팅험셔의 아놀드란 소도시를 시작으로 산발적인 기계파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812년 1월까지 1,000대 이상의 기계가 파괴됐다. 당국이 강경대응으로 나오자 이 지역에서는 의회 청원 등의 형태로 나아갔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이 확산된 요크셔 지방 웨스트라이딩이나 랭카스터, 체셔 등에서는 역직기를 발명한 카트라이트에 대해 암살을 시도하거나 급진적 정치요구를 내세우는 등 더욱 격렬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운동이 전개됐다. 러다이트 운동은 1816년까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고, 1817년에 일어난 펜트리치 무장반란에까지 영향을 줬다. 그리고 1830년에 농업노동자들이 일으킨 잉글랜드 남동부 스윙반란 역시 탈곡기를 파괴하는 등 러다이트 운동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러다이트 운동은 비록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노동자들이 최초로 시도한 진정한 의미의 계급적 행동이라고 평가 받는다. 그 요구 중에는 최저임금제 보장, 여성 및 연소 노동에 대한 착취 제한과 대중적 민주주의 요구와 같은 선진적 요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1845)란 책에서 러다이트 운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산업기의 초입 무렵 그들이 기계 도입에 저항했을 때, 하나의 계급으로서 그들은 최초로 부르주아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한개의 댓글

  1. 노동자가 살기 위해서는 봉기를 해야 했다. 동지가 없어서였다. 전태일도 마찬가지다. 여공들만 있었고 인텔리 동지가 없었다. 그가 분신한 이후에야 그가 바랐던 동지가 나타났다. 이제는 전태일의 뒤를 이었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청계피복노조는 주인공이 없어졌다. 사회주의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홀로서 불가능하기에 인텔리들이 거들어야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러드가 그랬던 것처럼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기계를 파괴하고 노동법을 파괴할 사회주의자가 필요하다. 노란조끼를 입어야 한다. 전태일처럼 파란조끼를 입고 단결투쟁 구호아래 노동법을 부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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