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검토한 한반도 문제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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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 내린 더글라스 맥아더를 환영하는 이승만. 사진: 미국방부]

[특집: 한반도 정세]

올 초 한반도 정세는 빠르게 변화하여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을 뿐 아니라 5월말 6월초에는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회주의자』는 한반도 정세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다음과 같은 순서로 특집 기사를 연재할 예정이다.

① 미국은 오랜 한반도 개입을 끝내야 한다는 역사적 판단을 하고 북미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②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③ 역사적으로 검토한 한반도 문제와 미국
④ 한반도 문제 해결은 민중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을 것만 같은 한반도 정세가 해빙 무드로 접어든 모양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으로 남북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 분위기가 급격하게 조성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에 따라 한반도 위기가 진정 국면으로 돌아선 건 다행이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북미회담으로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대화 의도가 북미 간 대립을 종식하고 체제를 보장받는 데 있는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비핵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물론이고 비핵화 자체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북핵 문제는 한반도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로 인한 ‘결과’인 까닭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 자체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가 선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의 문제를 한반도에서 수만 리 떨어진 미국의 지배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게 당연시되는 역설과 모순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일제의 조선 식민지 침략에 협력한 미국

미국은 유럽에서 황금을 좇아 대서양을 건너온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신대륙 아메리카에 건설한 나라다. 애초에는 유럽의 식민지였으나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흡수하며 과속성장을 거듭한 끝에 미국은 유럽 제국을 능가하는 자본주의 시장·국가로 발돋움했다. 동부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된 미국이라는 시장은 19세 중반에 이르러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되었다. 이 거대한 시장의 지배자들은 19세기 후반에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 어깨를 견주며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성경과 상품을 싣고 신형 무기로 무장한 미국의 상선이 한반도에 출몰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1866년 8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몰고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온 상인 일행 수십 명이 통상을 요구하며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는 등 난동을 피워댔다. 이에 분개한 평양의 관민들은 대동강에 정박 중인 상선을 불태워버렸다. 이 사건에 대한 응징을 빌미로 미국은 마침내 신미년인 1871년 아시아함대 소속의 중무장한 군함 5척과 병력 1,230명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이른바 ‘신미양요’다. 강화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미군은 조선에 통상을 요구했다. 당시 아시아 시장 확대를 추구하던 미국의 입장에서 조선은 군침이 도는 미지의 시장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의 강경한 통상수교 거부 정책과 조선 민중의 저항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미국 함대는 일본 근해로 철수했다. 조선과 미국의 수교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82년에야 이루어졌다. 청나라 실력자 이홍장의 주선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된 것이다. 물론 미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치외법권 인정 등 조선을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하는 데 필요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조약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미국 자본주의의 독점적 시장으로 편입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이미 1876년에 수호조규를 맺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미국과 수교 직후에 조선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차례로 수교를 맺은 까닭이다. 그러던 1905년 7월 29일에는 미국 전쟁부 장관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가 밀약을 맺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나눠먹자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미국의 비열한 제국주의 본성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미국으로서는 여타 자본주의 제국과 충돌을 무릅쓰면서 조선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 아직 세계는 넓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얻는 대신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 협력했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원흉

그로부터 몇 달 뒤 이른바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조선은 국가의 지위를 일본에 박탈당하였다. 이때 고종은 미국인 영어교사 헐버트를 시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밀서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케 하였다. ‘두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 서로 돕는다’는 조미수호통상조약 1조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조선 왕의 친서를 들고 온 헐버트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준비되고 있을 때 승전국 미국은 조선인들이 제출한 독립청원서 또한 묵살했다. 일제에 강점당한 식민지 조선의 처지를 미 제국주의자들은 철저히 모르쇠 했다. 미국으로서는 조선의 독립보다 제국주의 일본과 맺은 밀약을 준수하며 제국주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의 제국주의 동반자 관계는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무너졌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전의를 상실한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덕분에 한반도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조선의 자주 독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한반도는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전리품이었다. 이 전리품에 대한 처리를 주도한 미국의 루스벨트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20~30년 동안의 신탁통치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짧을수록 좋다고 답했다. 루스벨트가 구상한 신탁통치 안은 식민지에 대한 직접 지배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통해 자국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실현하는 지배방식이었다. 그에 따라 미국은 38도선을 경계로 나누어 한반도를 통치할 것을 소련에 제안했다.

소련은 해방 직후에 38도선 이북을 점령했다. 9월 5일에는 극우 반공주의자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또한 인천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했다. 미군은 환영하러 나온 조선인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미군은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의 이름으로 포고령 1호를 발표했다. “북위 38도 이남의 영토와 주민은 나의 관할 아래 있다”며 점령군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은 그 기능과 의무를 계속 실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일제 총독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라는 뜻이었다. 이러한 현상유지 정책은 친일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들이 다시 득세하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조선인 스스로 결성하여 질서 유지를 담당해온 건국준비위원회는 배제하고, 좌익세력을 억압하는 대신 우익세력을 행정 요직에 기용했다. 미군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시키는 데 이어, 사회 내부를 좌우로 분열시켰다. 이러한 분단과 분열은 비극적인 한국전쟁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서 후퇴하는 미군. 사진: 타임라이프]

군사적, 경제적으로 남한을 속박하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도망친 이승만은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에게 한국군 작전권을 넘겨버렸다. 맥아더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북진을 감행했다. 중국은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해왔지만,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중국군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한국전쟁은 중미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쟁을 너무 키워버린 미국은 맥아더의 요청에 따라 원자폭탄 사용을 고려했다. 그러나 세계대전 확대를 우려한 몇몇 나라의 반대로 인해 한반도에서 원자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더불어 대책 없는 확전론자 맥아더는 해임되었다.

이어 지루한 협상 끝에 미국, 중국, 북한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다만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 대표의 서명은 빠졌다. 그로써 일단 포성은 멈추었지만 소리 없는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한국군의 전시 작전권은 미국에 있다. 지금의 북한 핵문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빚어진 결과이다. 한반도의 위기 국면에서 당사자인 한국이 구경꾼밖에 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반도는 만성화된 공황으로 인해 누적된 미국의 재고 상품과 잉여농산물 등을 처리하기에 알맞은 시장이었다. 미국은 이를 한국에 ‘원조(援助)’라는 이름으로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원조는 ‘공짜’가 아니었다. 미국이 이승만 정부에 원조를 제공하면 이승만 정부는 이를 기업과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이렇게 마련된 자금을 한국은행에 예치했다. 이른바 ‘대충자금’이다. 대충자금은 ‘한미합동경제위원회’의 통제 아래 한국 정부의 재정으로 활용되었다. 한미합동경제위원회는 사실상 한국 경제 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였다. 이 기구의 결정에 따라 대충자금의 대부분은 국방비로 지출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소모되었다. 한때 이러한 경제 원조는 한국 정부 재정의 절반을 차지했다. 미국은 경제 원조를 빌미로 한국의 정치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며 남한을 미국의 ‘경제영토’로 흡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는 자본가들과 추악한 뒷거래를 일삼으며 온갖 정치자금 스캔들을 일으켰다. 미국의 경제 원조가 한국의 독점자본을 독버섯처럼 키워낸 셈이다.

1960년대 들어 한국과 미국은 이른바 혈맹관계로 발전했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에 5만여 전투병을 파견했다. 한국인 용병들은 베트남에서 미군을 대리하여 많은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 그로써 한국과 미국은 극우반공 전선에서 피를 섞으며 전쟁의 공범이 되었다. 물론 한국군도 5,000여 명이 전사했다. 이들 젊은이들의 피 값은 상당 부분 전쟁과 관련된 건설사업에 참여한 남한 자본가들의 이익으로 돌아왔다. 덤으로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은 박정희 정권과 미 제국주의 세력 간의 돈독한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 구축과, 이에 대한 미국의 묵인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 민중의 손에 달렸다

사실 해방 이후 한미관계에서 미국은 한 번도 한국 민중의 편에 선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의 독재 정권에는 늘 ‘우방’이었다. 군사적으로 남한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이승만의 추악한 부정과 독재도, 박정희의 쿠데타와 폭력적인 통치도 묵인하거나 방조했다. 심지어 1980년대에는 전두환의 쿠데타와 광주 시민에 대한 학살도 용인했다. 나아가 전두환 일당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기구를 세워 파시즘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지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한국의 독재자들이 극우반공주의 전선에 충실한 까닭이다. 그로써 한반도 지역에서 미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실현할 기반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1985년 미문화원점거사건 사진: 민주화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이러한 한미관계의 본질은 1987년 이후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권 치하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한국의 다수 대중은 미국을 특별한 동맹관계에 있는 우방으로 여긴다. 주류 지배계급은 여전히 미국을 한국을 일제에서 해방시키고, 이른바 ‘공산화’의 위험에서 구출해준 은사의 나라라고 공공연히 떠든다. 한마디로 미국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문제의 해결사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제도적으로 대중에게 유포되어 온 이러한 반공주의적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주류 사회에서, 또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사상검열의 기준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낡은 인식은 남북관계, 또는 북미관계를 대립으로 치닫게 하는 한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휘청거리고 있다. 미 제국주의 또한 스스로의 모순에 따라 패권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을 제국주의적 이익을 실현해주는 자본주의 시장의 보루로 여길 뿐이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이 한미 FTA 등 무역전쟁에 집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러한 역사적 단계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열쇠는 한반도 민중의 손에 있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의 한 당사자이면서도 그 해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모순과 역설을 남한 정부와 민중이 스스로 타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역사적인 해결을 북미 양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 스스로 주체가 되어 풀어갈 수 있도록 한미관계를 재정립하고, 그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어와 역사와 철학이 겹치는 공간에 빗금을 긋는 사회주의 저술노동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찌든 용어를 사회주의 관점으로 풀이한 '어용사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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