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G20 반대 시위: 반자본주의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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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과 8일 이틀 동안 독일 함부르크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G20 정상회의는 원래 1999년에 미국, 독일, 영국,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7개국(이른바 G7)에 더하여 한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유럽연합 의장국까지 포함한, 각국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 수장들의 회의체였으나 2008년 공황을 계기로 지금과 같은 정상급 회의가 되었다.

이번에 G20 반대 집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한 활동가 에밀리 라케(Emily Laquer)는 『자코뱅(Jacobin)』과의 인터뷰에서, G20 정상회의의 목적은 “위기의 시기에 자본주의를 안정화하기 위한, 혹은 최소한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것이며 G20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통제 하에 두고 있다는 인상이라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요약하였다.

이런 목적에서 개최되는 회의이기에 매번 개최지에서 격렬한 반대 집회가 열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09년 4월 영국 런던,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 2011년 11월 프랑스 칸느, 2014년 11월 호주 브리스번 등에서도 긴축 문제, 금융자본 규제 문제, 난민 문제, 기후변화 문제, 인종 문제 등에 대해 G20 회원국들 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는 대규모 반세계화 집회가 있었다.

“자본주의 끝장내자”란 함성으로 넘친 함부르크

이번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나 함부르크는 “반체제 문화의 전통”을 가진, “저항과 대안문화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도시이며 2007년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G8 정상회의 반대 시위 역시 이곳에서 조직된 바 있다. 2만여 명의 경찰이 배치되었지만, G20 정상들은 10만여 명이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Welcome to Hell)”고 외치며 거리로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개막일에는 회의장 인근에 1만 명이 모여 연좌 농성을 벌이며 각국 정상들의 회의 참가를 봉쇄하고자 했다. 실제로 집회로 인해 트럼프의 부인이 영빈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했고, 문재인과 인도네시아 총리의 회담도 취소될 정도였다. 화염병이 등장했고 거리에서 자동차가 불탔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고 최루가스, 곤봉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임시 구금시설까지 만들어 가며 시위대 134명을 체포, 122명을 수감했다. 그러나 폐막식 이후 열린 시위에도 10만 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우리가 함부르크에서의 집회에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저 집회 참가자 수가 많았다거나, 경찰폭력에 단호하게 반격했다는 점이 아니라 집회 참가자들이 전달하고자 한 정치적 내용에 있다. 함부르크에 모인 사람들은 G20 정상회담 반대 시위 하면 흔히 연상되는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반대를 외쳤다.

[사진: https://beyondeurope.net/609/report-weekend-on-g20-and-logistics-in-hamburg/]

가령 G20에 반대해 함부르크에서 “국제적 반자본주의 집회”를 조직한다고 선언한 한 집단의 주요 구호는 “자본주의가 그대를 절망케 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Don’t Let Capitalism Get You Down)”였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들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아도, 각 단체의 포스터, 집회 참가자들이 든 피켓과 플랜카드는 반자본주의 구호로 넘쳐났다. “자본주의 끝장내자(Shut Down Capitalism)”, “자본주의는 어차피 끝난다. 언제일지는 그대 손에 달렸다!(Capitalism Will End Anyway. You Decide When!)”, “자본주의는 살인이다(Capitalism Kills)”, “자본주의를 역사 속으로(Make Capitalism History)” 같은 구호들이 대표적이다. 케말(Kemal)이라고 이름을 밝힌 한 집회 참가자는 『리얼 뉴스 네트워크(Real News Network)』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G20이 함부르크에 있어서는 안 되고,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 아무도 G20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G20은 지배계급의 조직이자, 전 세계의 착취를 심화시키고 파시즘과 인종주의를 양산하는 제국주의 체제의 조직입니다. 특히 스스로가 인종주의자임을 드러내고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트럼프가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을 이른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여기에 초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해준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비록 짧은 발언이지만, G20에 모인 정상들에게 현 자본주의 체제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거나, 신자유주의가 문제이므로 금융자본의 탐욕을 규제하자고 주장하는 발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 체제 내에서는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함부르크 집회의 주요 구호들 중 하나인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Welcome to Hell)”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듯 함부르크 G20 반대 집회에서는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표출되었다.

물론 집회 참가자 전부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G20 시위에서 나오는 구호들이 크게 변화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KBS 뉴스, SBS 뉴스, YTN 등 한국 주류 언론조차도 이전의 G20 반대 시위 보도와 비교하여 ‘반자본주의’라는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기사 제목에까지 넣어 부각시키기도 했다. ‘반신자유주의’에서 ‘반자본주의’로 이곳 민중의 투쟁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반자본주의” 목소리를 듣기 힘든 한국의 진보운동

반면 한국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세력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본주의를 거론하는 것조차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반신자유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게 대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예가 2016년 7월 『워커스』 19호 좌담회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반세계화-극우가 가져간 좌파의 반세계화 운동”이다. 그 내용을 보면 진행자인 홍석만 편집장과 세 명의 좌담자들은 그동안의 반세계화 운동을 평가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중심에 둔 분석에 머물고 있다. 좌담자들 중 한 명인 이종회 사회변혁노동자당 대표만이 말미에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가 장기화한 상황에서 이를 타개해 나갈 사회 체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문제로까지 고민이 상승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나마 이조차도 구색 맞추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2008년 공황을 거치며 IMF 등 세계 자본가계급조차 신자유주의 정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게 되었지만, 이는 자본가계급이 마지못해 최소한의 인정을 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전세계 민중은 2008년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 비판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인식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 등의 투쟁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심지어 올해 미국의 우익 단체인 ‘미국 문화와 신앙심 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조차 성인 10명 중 4명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발전이 함부르크 G20 반대 시위의 ‘반자본주의’ 구호로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워커스』 좌담회 기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한국의 분위기는 이와 많이 다르다.

[사진: https://beyondeurope.net/609/report-weekend-on-g20-and-logistics-in-hamburg/]

함부르크의 교훈: 자본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

함부르크 G20 반대 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과거의 G20 반대 집회에 비해 전반적인 기조나 분위기가 급진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유럽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격심해진 데서 기인한다. 한국도 그곳과 다르지 않다. 한국 역시 자본주의의 모순이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의 ‘헬조선’은 G20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말하는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자본주의 끝장내자”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유달리 여기서만 자본주의 반대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G20 반대 시위가 자본주의의 모순의 심화와 함께 진화했듯이 이제 우리도 반자본주의로 진화할 때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정면비판, 도전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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