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가 아닌 적폐청산이 촛불민중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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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무원U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불과 20여일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거리 곳곳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대선 관련 뉴스와 도로를 내달리는 선거운동차량의 선거송, 지하철 입구에 늘어선 형형색색의 선거운동원들은 대선이 정말 코앞에 이르렀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조기대선을 가능케 한 촛불민중의 요구를 반영한 목소리는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공식 선거운동 첫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그간 목소리 높여 온 ‘적폐청산’이란 구호를 버리고 ‘완전한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기치를 내걸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선거운동 관계자 등의 말을 빌려 “개혁 의지가 여전하다는 점은 강조하되“ ”보수층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으니, 적폐청산이란 구호 자체가 무색해지는 형국이다.

적폐청산을 청산하자?

실제로 적폐청산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그 반대편에 국민통합을 대치시키는 프레임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몇 주 전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후보의 ‘적폐청산’ 주장을 겨냥하며 “국민분열”이라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박지원 대표는 “대통령의 파면(과) 여당의 분열로 이미 정권교체의 강조는 무의미하다”며 적폐청산이란 구호를 단순한 이분법적 편 가르기 수준으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물론 문재인 후보의 적폐청산이 애매모호하고 비어있는 문구에 불과했던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촛불민중이 외친 적폐청산이 그와 마찬가지였던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소위 국민분열론을 내세우는 이들이 말하는 ‘분열’과 ‘국민’이란 단어만큼 모호한 언어도 없다.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기용하며 ‘비정상의 정상화’란 슬로건을 들고 억압에 맞서는 민중을 분열자로 몰아세우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적폐청산에 염증을 느끼고 이를 격하시키는 관점은 비단 정치인에게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소위 진보적 학자로 소개되는 최장집 교수는 국내 일간지와의 대담에서 ‘청산’이란 단어를 문제 삼으며 “전쟁이나 혁명의 언어지, 민주주의의 언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우려했다. 우스운 건 그런 그가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이라 부르는 걸 두고 “권위주의의 복원 시도를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적폐청산은 혁명의 언어이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복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최 교수는 “촛불이 사회의 밑으로부터 분출하는 요구이고 매개되지 않은 소리라면, 정치는 정당정치인 또는 선출된 대표들을 통해 매개가 되는 것”이고 “매개의 역할은 역시 정치인과 정당이 하는 몫”이라며 철저히 민중의 민주주의적 실천과 현실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있다. 또한 탄핵소추에 새누리당의 절반 정도의 의원이 동참한 걸 “보수와 진보가 의견이 합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실례”라 주장하기도 했다. 과거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탄핵소추에 동참한 것인지 아닌지를 논외로 하더라도 비정규직 양산과 노동개악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언제부터 진보로 분류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아직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산더미만큼 남아 있음에도 이젠 제도권 정치의 몫이니 과격한 언어를 삼가고 분열을 조장치 말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불과하다. 역으로 우리는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대립시키고 광장의 정치와 의회정치를 대립시키는 이들이 스스로가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협치는 촛불민중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유독 적폐청산을 비판하는 이들이 통합과 중도, 협치를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장집 교수는 구체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4개 안팎의 정당이 온건, 합리적이면서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는 센터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 심지어 진보세력이라 자칭하는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역시 세부적인 수준차이를 제하더라도 당선 이후의 연정과 협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뒤집어 해석하면 협치론자들 스스로가 자기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저들의 협치가 그저 야합에 불과하다는 것은 지난 과거로도 확인되는 일이다. 실제 작년 4월 총선 당시 억압받는 민중이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심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개악은 변함없었고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시스템은 무력화되어갔다. 입으로는 협치를 민의라 부르짖으며 새누리당과 더민주, 국민의당이 노동자민중을 압박한 것이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노동자민중이 아닌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금과 같이 자본주의의 위기로 민중의 삶의 조건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협치는 사회적으로 노동자민중의 급진화를 막는 안전핀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최장집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는 글에서 한편으로 소외된 노동문제를 부각시키고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노사정 3자가 협력하는 코포라티즘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이전까지 한국의 노사정 모델이 국가와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는 것에 불과했음을 의식하며 배타적 코포라티즘이 아닌 유럽식 사회적 코포라티즘을 예로 들긴 했지만 중요한 건 명칭 따위가 아니라 협치에 있어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이익 실현에만 몰두하는, 자기 이익 실현을 위한 결사체만은 아니다. 노조는 기업의 이익실현에 협력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경제불황기 사회 전체의 경제 성장을 위해 스스로의 이익실현을 절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관점은 노동조합을 경제적 객체로만 한정짓고 짜여 진 틀 안에서 나오지 말라는 것과 매한가지다. 한편으로 최 교수의 말처럼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해만을 위한 결사체가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자본에 억압받는 노동자민중이 현실의 부조리와 자본의 착취에 대항하며 스스로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깨닫게 되는 결사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수 독점자본의 착취를 폭로하고 턱 없이 낮은 최저임금과 더욱 쉬운 해고, 비정규직 증가와 삶의 악화일로를 막아내기 위해 소리 높여 투쟁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본령에 부합하는 실천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에게 투쟁 대신 협치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적폐청산을 약화시키고 회피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민중의 뜻일 수 없다.

적폐청산과 민주주의

‘적폐’란 해소되지 않고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의미한다. 최근 3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과 ‘국가 개조’를 내세웠지만 정작 그 말은 헌정사상 최초의 파면이란 심판과 함께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역사를 가능케 한 것은 광장을 가득 매운 촛불민중이었다. 악화되는 삶의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가 수십 수백만의 촛불이 되어 박근혜 정권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 것이다.

민중은 박근혜 정권의 퇴진이 곧바로 자기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퇴진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았기에 그와 같은 승리의 경험을 받침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즉 민중에게 있어 적폐청산이란 지금껏 누군가에게 의탁하기만 해왔던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자기 힘으로 바꾸는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적폐청산 요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목소리가 그것이다.

이처럼 적폐청산의 핵심은 누가 무엇을 적폐로 규정하는 가에 달려 있다. 박근혜에게는 폭압과 억압, 민주주의 역행이었던 적폐청산이 억압받는 촛불민중에게는 민주주의 실현이 되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악화일로의 삶에서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것을 두고 분열과 대립이라 재단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 자들뿐이다. 바로 적폐청산을 청산하자는 자들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인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불공정한 생산관계를 존속시키는 자본주의 하에서 적폐청산과 민주주의 확장의 요구는 결코 멈출 수 없는 실천이자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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