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조선하청 노동자 2019년 상반기 투쟁과 전망

0
308
[사진: 대우조선지회 | 5월 10일 1차 원하청 총궐기 때 사진]

세계경제의 장기불황과 2014년 이후 본격화된 국제 유가하락은 조선업 해양플랜트 분야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업 불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해양플랜트 수주에 경쟁적으로 매달렸던 국내 대형 조선3사는, 해양플랜트의 수요 감소와 더불어 기술력과 제조경험의 한계를 드러내며 급격히 몰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대형조선소 빅3는 2015년부터 거의 동시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거제지역에서만 4만5천여 명의 조선소 노동자가 실직하게 되었다. 실직자의 절대 다수는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던 하청 노동자들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두세 달 임금이 체불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쫓겼다. 이렇듯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7년 2월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창립되어 본격적인 하청 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들어갔다.

하청 노동자 조직화 사업과 올해 2월 말 파워공 파업

2017년, 예년에 비해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안이 발표된 이후, 조선소 현장에서는 상여금 550%를 기본급으로 전환하기 위한 취업규칙 변경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2017년 말경에는 대부분의 하청업체에서 불법적으로 상여금 일부를 삭감하고, 상여금 400% 정도를 기본급으로 전환했다. 조선하청지회에서는 상여금을 지키기 위한 취업규칙 변경 거부운동과 “되찾자 550%” 운동을 진행했으나 결국 승리하진 못했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획득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후 현장 안으로 들어가 중식선전전을 진행하며 하청 노동자와 접촉면을 늘리고 조선하청지회를 알려나갔다.

2018년 5월 대우조선 식당 여성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금속노조 웰리브지회의 출범과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파업투쟁은, 하청 노동자에게 ‘우리도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위험하고 힘든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겨우 최저시급 받았고 2017년에는 550% 상여금마저 빼앗긴 하청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은 가장 절박하고 우선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2018년 하반기부터 조선하청지회는 요구안 마련을 위한 설문조사에 들어갔고, 임금인상을 포함한 8대 요구안을 확정해 2019년 투쟁을 준비했다. 임금인상과 대규모 조직화라는 핵심 투쟁목표를 설정하고 원하청 공동투쟁 방안을 논의 중이던 2019년 1월말, 대우조선 매각이 발표되면서 예기치 못한 국면이 발생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2월 말경부터 대우조선 파워공들(철판 표면에 있는 녹·불순물 제거 작업을 하는 노동자)이 자발적으로 파업투쟁에 나선 것이다. 300여명의 파워노동자들이 일당 2만원 인상과 퇴직금 불법적립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며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파워공들은 초기에 우왕좌왕했으나 하청지회가 결합하면서 빠르게 조직적 체계를 갖춰나갔다. 그들은 현장내부 선전전과 행진을 하는 등 과감한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이에 당황한 업체에서는 일당 인상안을 서둘러 제시했다. 결국 파업 노동자들은 집단행동 2주만에 가시적 성과를 획득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하청 노동자 총궐기가 성사되다

또한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와 2018년 단체교섭에서 합의한 사항인 성과금 지급문제에 대해, 대우조선 원청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원청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것으로 인해 하청 노동자들의 불만이 급속히 분노로 바뀌어갔다. 하청 노동자 내부에서부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젠 뭔가 한번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분출되어 나왔다. 조선하청지회는 현장의 분위기를 받아 안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출퇴근 선전과 중식선전을 강화하는 한편, 대우조선지회와 ‘5월 10일 하청 노동자 총궐기대회’를 공동으로 계획하고 조직에 착수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기대 이상의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고 ‘하청 노동자 총궐기대회’는 SNS와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서 연일 주요 이슈가 되었다. 개별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혀 오는 것은 물론, 업체별로 집단적 참여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총궐기대회가 2, 3일 앞으로 다가오자 하청 노동자 가족이라며 주부들 몇 명이 자체적으로 참여를 독려하는 퇴근선전을 진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분노가 임계치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였고, 자발적 참여 분위기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몇 명이 모일지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청지회가 대우조선 문 앞에서 간부와 활동가 위주로 선전전을 진행해 왔고 약식 집회를 했던 경험은 있지만, 몇 명이 되었든 현장 안에서 집회를 해본 경험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들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워 하는 현실 여건에서, 집회 참석인원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점심시간 집회가 시작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천 명 이상이 모여 드넓은 민주광장이 하청 노동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조선하청지회 간부 모두가 대오 선두에 서서 흥분과 감격을 억누르며 하청 노동자들을 맞이했다. 참석한 하청 노동자들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그 어떤 부담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놀라워하고, 마침내 해냈다는 자신감과, 복받치는 감동을 마음껏 나누는 듯 보였다. 오후 1시쯤 집회를 마무리 하고 행진을 위한 대오정비에 나서자 오륙백여 명의 하청 노동자가 행진에 동참했다. 하청 노동자가 조선소의 대로를 점거하고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40여분 행진을 하는 동안 작업 중인 동료들을 만나 마음을 모으고, 다섯 분의 대우조선 열사 기념비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열사를 기리는 묵념을 하기도 했다. 본관 앞에 도착한 하청 노동자들은 자유발언 시간을 갖고 전원이 본관 내부로 들어가 조선하청지회가 준비한 요구안을 대우조선 임원에게 전달한 후 이날의 역사적인 하청 노동자 총궐기대회를 마무리했다.

조선하청지회의 요구사항은 “1만5천 모든 하청 노동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라!”, 그리고 나흘 후인 “5월 14일까지 성과금 지급에 대한 답변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청 노동자들의 분노에 당황한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원청은 5월 14일에 모든 업체에 성과금을 입금했다. 하지만 약속된 성과금 전액이 아니고 원 금액의 80%~90%를 제멋대로 기준에 따라 업체마다 차등 지급했다. 그리고 일당, 물량팀, 이주노동자는 지급대상에서 제외됐다. 2천여 명의 하청 노동자 투쟁은 대우조선 원청을 굴복시키고 성과금을 받아내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온전한 승리라고 볼 수는 없었다. 성과금 전액을 지급받지 못했고, 하청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을 당장은 어찌하지 못하면서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후 하청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힘을 확인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고, 이것을 바탕으로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며 보다 적극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6일 후 개최된 ‘2차 하청 노동자 총궐기대회’에는 다시 800여명의 하청 노동자가 참여했고, 집회현장에서 120명이 하청지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하청 노동자들의 위력적 투쟁은 어떻게 가능했나?

2천여 명의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보여준 위력적인 투쟁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사건이고 중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방적으로 당해오고 억눌려 왔던 조선하청 노동자가 단순히 성과금에 대한 일시적 분노만으로 이토록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확한 계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단정 짓기 어렵겠지만, 그 배경에 일정한 흐름과 과정이 축적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요인들로는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단연 조선하청지회의 역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2월 출범한 조선하청지회는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려는 취업규칙 변경 거부운동과 “되찾자 550%”운동을 통해 조선하청 노동자의 대표성을 획득해 나갔고, 현장 중식선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하청 노동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소수의 하청지회 간부들이 보여준 열정적이고 꾸준한 노동조합 활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청지회가 하청 노동자들로부터 신뢰와 기대를 쌓아가는 계기로 작용했다.

둘째, 2018년 5월 대우조선 식당 여성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한 웰리브지회의 출범이다. 대우조선 현장에서 일하는 3만 5천여 명의 하청 노동자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고 계속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때, 웰리브 식당노동자들의 노조가입과 파업투쟁은 하청 노동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조선하청지회가 지난 해부터 준비해 온 임금인상 투쟁의 서전을 장식한 대우조선 파워공들의 ‘일당 2만원 인상투쟁’이다. 사전준비도 없이, 조직적 체계도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파워공 투쟁이 조선하청지회의 결합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소기의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결국 모든 하청 노동자들에게 내재된 임금에 대한 불만을 언제든 행동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전환시켜주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넷째, 조선하청지회와 대우조선지회의 공동투쟁이다. 2018년 말부터 원-하청 지회가 공동투쟁 계획을 논의하고, 대우조선지회는 단체교섭 요구안에 하청지회의 요구안 중 핵심적인 3개항을 포함시킴으로써 공동투쟁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워공 투쟁과 성과금 투쟁에서 지속적으로 원-하청 공조를 유지함으로써, 하청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부담감을 줄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되찾자 550%” 투쟁부터 하청지회와 함께해 온 소수의 헌신적인 정규직 활동가들의 모습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식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다섯째, 올해 초 일어난 삼호중공업 파워공투쟁과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투쟁이다. 목포 삼호중공업 파워노동자 투쟁과 울산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체불임금 투쟁은,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 노동자들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조선하청 노동자들의 잦은 이동과 노동조건의 동일성으로 인해 세 지역의 하청 노동자는 서로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들이 매우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아직 실천적 단계는 아닐지라도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투쟁의 과제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이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적지 않은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분명한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기도 했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과 울산의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가까이 거제지역에 있는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조선하청 노동자가 스스로 단결하는데 얼마나 강고한 현실적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소 다단계 하청구조의 고착화와 하청 노동자에게 일상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차별과 불이익은, 조선하청 노동자에게 기본적 권리의식조차 자라날 여지를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조선하청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는 구조적 여건으로 인해 다양한 조건들이 하나라도 간과되지 않고 충족되어야만 조직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원청 노동자도 하청 노동자도 같은 노동자라는 원칙적인 주장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원하청 노동자들 사이의 골을 좁히고 연대투쟁을 전개하는 데에는 간단치 않은 장벽이 놓여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올 상반기에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원하청 공동투쟁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실천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사실상 이후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조직화의 성패를 결정할 요인은, 하청 노동자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원하청 공조 틀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사업장 내의 원하청 공조와 함께 지역적 연대가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지난 조선하청지회와 웰리브지회 창립과정과 이후 투쟁과정을 통해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켜내고 매각저지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강고한 원하청 공동투쟁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고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적 연대와 업종차원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는 전체 조선하청 노동자 조직화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