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노동시간 단축이 되려면 필요한 것은?

0
1142
[사진: YTN 뉴스 캡처]

문재인 정권이 노동관련 법, 제도를 개악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무한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최초의 법, 제도 개악은 바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같이 개악된 것이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의 개정에서 노동자 과반수 이상, 또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도록 열어준 것이다. 그 외에 공공기관에서부터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는 대신에 도입하려고 하는 직무급제를 들 수 있다.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것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을 제도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제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7월 1일부터 주 40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당시 주 40시간 노동제가 시행되면서 자본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연차유가는 축소되고, 월차 유급휴가를 폐지했으며,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바뀌는 등 개악된 내용들도 있다. 또한 법정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개정된 후 당사자의 동의라는 단서 하에 주당 12시간의 연장노동을 허용했다.

그런데 노동시간에 대한 논란이 발생한 것은 노동부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행정해석만으로 토, 일요일을 노동일로 인정하지 않고 토, 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의 휴일노동을 인정해 최대 68시간의 노동을 합법적으로 허용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노동일에서 제외된 휴일의 노동수당 중복할증 지급 문제가 논란이 되자, 올해 2월 28일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일부 개정하면서 휴일 이틀을 포함한 주 7일을 모두 노동일로 인정했다. 연장노동 12시간을 포함해 주 52시간 노동으로 단축된 것이다.

그 결과 7월 1일부터 새로 개정된 법률에 따라 과거 주 68시간 노동제가 사라지고 연장노동 포함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2위를 자랑할만큼 장시간 노동국가이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며 자본가에게는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한다. 그런데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했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우선 고용된 노동자의 수에 따라 적용시기를 다르게 했고, 법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6개월 유예했다. 휴게시간과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한다면서 그 동안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어 왔었던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인정하여 실제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작년 버스 대형사고가 여러 건 일어나면서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례업종을 줄였지만, 여전히 특례업종 조항을 유지시켰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탄력적 노동시간제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휴일노동에 대해서는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노동이므로 중복할증하여 200%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연장노동과 같이 150%의 임금만 지급하는 것으로 개악됐다. 인력충원과 실질임금 상승으로 평온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이 아니라 기존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사실상의 편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시간 논란에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12시간 연장노동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면서 주 52시간이 현실적인 노동시간으로 규정되고 있고, 모든 언론과 정부기관이 주 52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연장노동을 포함한 주 52시간이 시행되면서 반드시 뒤따라야 할 인력충원과 임금보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자본가들은 이전에 누리던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이 마뜩치 않으면서도 주 52시간 노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업무를 재편하고 있다. 게다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편법을 동원해 노동시간 단축에 저항하고 있다. 버스회사의 경우, 임금 보전 없이 노동시간만 단축되면서 실질임금이 하락하여 노동자가 직장을 떠나는 일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노선 축소, 단축운행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새로운 투쟁의 계기로

노동시간 단축은 현장에 많은 투쟁을 제기할 것이다. 당장 다치지 않고, 골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노동을 위한 인력충원 투쟁이 뒤따라야 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핑계로 강요하고 있는 임금삭감을 저지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임금인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임금이란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 노동자가 그 사회에서 의·식·주를 비롯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비용이다. 그 사회의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그 금액은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을 수 있다. 한국사회는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모든 비용을 노동자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임금의 크기는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진 다른 사회보다 더 커야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낮다. 근로소득자의 절반은 평균임금이 200만원 이하이고, 532만명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보전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되면 삶의 질은 그야말로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가 ‘노동조건 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끊임없이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자들의 평온한 삶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만성적인 경제불황에 맞닥뜨린 자본가계급의 입장에서는 실업자가 넘쳐나도 고용을 늘릴 생각이 없다. 언론은 그것이 최저임금 인상때문이라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지만,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만성적인 불황상태에서 자본가계급의 자발적으로 고용을 확대하고, 임금을 인상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했던 당시에는 그것이 민주노총의 임금인상 투쟁의 기준이었던 표준생계비에 근접했다. 이제 최저임금 1만원은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있는 1인 가구의 표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최저임금 1만원도 낡은 것이 되었다. 따라서 임금인상 투쟁이 1만원 구호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 착취의 문제, 임금이 어떤 계급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임금인상 투쟁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에 대한 폭로와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공정한 하루 작업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임금 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자신들의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임금인상 투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