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드라마가 비켜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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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1987>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올해가 2018년인지 1987년인지 혼란스럽다. 지난해 끝자락에 개봉되어 3주 만에 6백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영화 『1987』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이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각종 매체에 쏟아졌다. 내로라하는 논객들이 영화 관전평을 쏟아내고, 심지어 ‘1987 사용설명서’ 어쩌고 하는 기사가 온라인에 떠다닌다. 게다가 청와대와 집권여당 의원들도 단체 관람을 통해 영화의 흥행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특히 새해 첫 일요일에 직접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 문재인은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영화를 보는 내내 울면서 아주 뭉클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또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라는 대사가 가장 감명 깊었다며, 영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친히 극장에 납시어 극찬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영화는 거침없이 흥행을 질주하고 있다.

사실 『1987』은 그 제목만으로도 이른바 87년 체제의 수혜자들인 현 정부와 집권세력의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부제로 붙은 ‘1987: When the Day Comes, 2017’에는 치밀하게 수립된 마케팅 전략이 반짝인다. ‘그날이 오면, 2017’이라는 이 모호한 부제는 두 가지 의미로 읽힌다. 첫째는 1987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날은 왔는가?’하는 질문이고, 둘째는 2017년에 박정희 독재의 찌꺼기인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림으로써 마침내 ‘그날이 왔다’는 선언이다. 언뜻 상반된 뉘앙스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세력과 지지 세력 양쪽에 미끼를 던지는 ‘낚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영화의 실제 내용에서는 두 번째 의도가 잘 관철되어 있지만.

87년 체제로 출세한 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영화는 죽음으로 시작되어 죽음으로 끝난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다.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을 중심으로 경찰은 증거 인멸을 위해 시신을 화장하려 한다. 공권력의 살인이 은폐될 판이다. 그러나 서울지검 공안부장 최환 검사는 화장동의서에 날인을 거부하고 부검을 강행하고, 일간지 기자 윤상삼이 집요하게 진상을 취재하여 고문치사 의혹 기사를 보도한다. 재야와 연결된 교도관 한병용은 경찰 내부에서 가해자로 지목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대공분실 형사 조반장을 통해 나머지 고문 가담자들 이름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재야인사 이부영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이부영이 작성한 옥중서신을 반출한 뒤 대학생 조카 연희를 시켜 당시 수배 중이던 재야인사 김정남에게 전달한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5.18 기념미사 도중에 그 내용을 공개함에 따라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축소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공개된다. 이를 계기로 1987년 6월 항쟁의 불길이 타오른다. 이어 ‘6.10 규탄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전투경찰이 직사한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되고 군부독재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시위는 정점에 이른다. 마침내 당시 민정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 낙점된 노태우는 6.29 선언을 발표하여 개헌 요구를 수용한다. 그리고 7월 9일. 100만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이 장엄하게 거행되고, 이한열 합창단이 부른 노래 ‘그날이 오면’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드라마는 거기서 끝난다. 그렇다면 30년이 흐른 지금 ‘그날’은 왔을까?

영화 홍보문은 이 질문에 친절하게 답한다. 1987년 1월에 한 대학생의 죽음이 있었고, 그 진상을 규명하여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알린 공안검사. 신문기자, 교도관, 의사, 재야운동가 등이 ‘각자 다른 위치에서 부딪히고 맞물리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격동의 6월로 완성된다’는 것이 제작진이 밝힌 메시지다. 따라서 ‘한 젊은이의 죽음이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드라마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게다가 홍보문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은 ‘오늘의 한국 사회의 주춧돌을 놓은 뿌듯하고 소중한 기억’이다. 이는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2017년이 바로 ‘그날’임을 실토하는 표현이다. 촛불에 편승하여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세력이 1987년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방식과도 흡사하다. 그 점에서 『1987』은 이른바 87년 체제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자들에게 바치는 헌사(獻詞)인 셈이다. 그러니 청와대와 집권여당 인사들이 뿌듯한 마음으로 무리를 지어 극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노동자들에게 다르게 기억되어야 할 1987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뿌듯하고 소중한 기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씁쓸하고 허망한 기억’으로 떠오를 수 있다. 영화 속의 1987년도 그렇다. 『1987』은 6월 민주화 항쟁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거했다. 덕분에 대학생, 대공경찰, 공안검사, 기자, 교도관, 의사, 재야운동가 등을 1987년의 주인공으로 불러냈다. 작은 영웅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는 설정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1월에서 시작되어 6월에 끝난다. 시간적으로 1987년의 절반을 깨끗이 지워버린 셈이다. 그로써 그해 7월에서 9월까지 펼쳐진 노동자대투쟁을 비켜갔다. 그럼에도 ‘1987 상반기’가 아니라 ‘1987’을 제목으로 내세운 건 지나친 오버다. 하지만 6월 항쟁 기간에 전국 각지에서 치열하게 투쟁을 벌인 주체는 대부분 노동자들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6월 10일 부평역 앞에서는 퇴근 무렵에 공단 노동자들이 합세하면서 3천여 명으로 시작된 시위대가 7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6월 19일 저녁에 성남에서는 4만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공단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때 경찰에 연행된 80명 중 41명이 노동자였다. 안양에서도 노동조합 승합차로 시위용 화염병을 날랐다는 기록이 있다. 부산에서는 택시, 시내버스 노동자들이 차량에서 연료를 뽑아 만든 화염병을 던지며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전북 익산에서는 6월 21일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3만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6월 10일에 포항의 기업들은 시위 방지를 위해 5만여 노동자를 공장에 붙잡아 두었지만 상당수의 노동자가 밤늦게 작업복 차림으로 시위대에 가세했다. 울산, 마산, 창원 등지에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치열하게 싸웠다.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한 누적 인원 500만 명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은 노동자들이었다. 군부 독재 치하에서 ‘산업역군’이라는 달갑잖은 이름 아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 군대식 노동통제 등에 시달려 온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정부 투쟁에 나서는 건 당연했다.

노동자들이 가세한 전국적 투쟁에 기가 꺾인 전두환 정권은 마침내 6.29선언으로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직선제로 상징되는 정치적 자유와 선거법 개정, 언론 자유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때 노동자들의 민주적 권리는 일체 외면당했다. 6월 항쟁의 주역을 자처한 재야세력이나 야당도 여기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6.29선언으로 6월 항쟁은 막을 내렸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또 다른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리하여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되었다. 3개월간 모두 3,341건의 파업이 일어났다. 하루 평균 44건에 해당했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 수는 200만여 명에 달했다. 투쟁의 양상도 노동조합 결성, 어용노조 민주화, 노동3권 쟁취 등 조직적, 계급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1987년은 7,8,9대투쟁의 해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토록 뜨거웠던 노동자대투쟁의 역사를 『1987』은 교묘히 비켜갔다.

역사는 드라마가 되지만, 드라마는 역사가 되지 못한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른바 ‘정치민주화’가 이뤄진지 30년이다. 그간 대통령 직선제에 따라 일곱 번이나 정권이 바뀌었다. 그 중 네 번은 수구세력이, 그리고 세 번은 이른바 ‘민주’세력이 집권했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권력의 본질적 속성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군부 주도의 지배 체제가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지배 체제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은 좀 더 자유롭고 안정된 노동착취를 누리게 되었다. 반면 노동자계급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더욱이 87년 민주항쟁의 주역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87년 체제 안에서 노동자계급을 유린하는 데 부역했다. 이른바 민주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또한 정리해고, 비정규직 합법화, 파견노동 허용, 한미FTA 체결 등 자본가계급의 이익 실현에 충실했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다.

이른바 ‘87년 체제’는 노동자 민중이 오랜 세월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얻어낸 결과이다. 하지만 지난 30년 간 노동착취는 강화되었다.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 점에서 87년 체제는 노동지옥, 헬조선으로 불리는 현재의 원인이다. 역사에서 원인은 결과가 되고,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1987』은 이러한 역사의 변증법을 은폐한다. 영화는 역사적 진실에 관심이 없다. 그것은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가 동반되는 미디어 상품이기 때문이다. 역사 자체의 보편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십억 원을 쾌척할 미디어자본가는 없다. 그들에게는 흥행에 도움 되는 요소가 곧 역사의 진실이다. 그 밖의 역사는 ‘작품성’을 저해하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따라서 흥행에 방해되는 요소들이 철저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1987』은 나무랄 데 없는 드라마 상품이다. 다만 그뿐이다. 역사는 드라마가 되지만, 드라마는 역사가 되지 않는다. 변혁의 힘은 스크린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에게서 나온다. 미디어 자본의 야심찬 흥행작에서 빠져 나와,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지금의 노동지옥을 냉철하게 직시할 일이다.

한개의 댓글

  1. 스스로 진보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유시민, 노무현을 존경하고 노동자대투쟁 보다는 6월 항쟁을 중시하는 이 현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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