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전면 폐지, 완전한 임신중지권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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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2016년 보건복지부 고시에 반대하는 ‘검은 시위’를 시작으로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온 여성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임신출산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고 헌법재판소조차 이를 인정한 것이다. 많은 여성들은 ‘처벌도, 허락도 거부한다’는 구호 하에, 임부의 요청과 판단에 따른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야 하며, 임신 몇 주째이든, 사유가 무엇이든 형사처벌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쳐 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올해 10월 7일, 사실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입법예고안: ‘허락’받지 않은 임신중지는 계속 낙태죄로 처벌하겠다

정부 입법예고안 중 형법 개정안의 내용은,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는 형법 조항들은 그대로 두고 다만 ‘낙태’의 허용요건을 규정하는 조문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신설되는 조문에 따르면 임신 14주까지만 별도의 사유 제한 없이 임신중지가 허용되고, 임신 24주까지는 몇 가지 일정한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임신중지가 허용된다. 여기서 과거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에는 없던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추가되기는 했으나,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쳐야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허용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임신중지는 계속 낙태죄로 형사처벌된다.

한편 정부 입법예고안 중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의사는 개인의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시술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 때 시술을 요청한 임부를 시술 가능한 의료기관에 연계해줄 의무는 없다. 단지 긴급전화나 상담기관을 안내할 의무만을 부담할 뿐이다. 또한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은 기본적으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법정대리인이 없거나, 법정대리인으로부터 학대받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증명하는 공적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에만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시술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낙태죄를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문재인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나오자마자 많은 여성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해왔던 여성운동 단체들이나 인권운동 단체들, 진보운동 단체들도 연이어 규탄하는 입장을 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위와 같은 내용의 정부 입법예고안이 나오는 데는 청와대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여성의 임신중지권 옥죄는 정부 입법예고안

정부 입법예고안은 낙태죄를 유지하고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임신중지는 계속 형사처벌하겠다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억압이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신설하겠다는 임신중지 허용요건 조항 역시 살펴보면 결국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옥죄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① 임신 14주? 24주? 임신 주수에 따른 임신중지 제한은 후기 임신중지를 줄이지 못한다

그 어떤 임부도 일부러 임신중지 시기를 늦추려 하지 않으며, 후기 임신중지를 하려는 여성에게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후기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것은 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 이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와 외국의 사례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 바 있다. 가령 캐나다의 경우 1988년부터 임신 주수, 사유에 대한 제한 없이 임부의 판단과 요청에 따른 임신중지가 언제든 가능하며 의무 숙려기간이나 의무 상담도 없다. 하지만 전체 임신중지율은 11.7%(15세에서 44세 사이의 인구 1천 명 기준)로 한국의 15%보다 낮고, 이 중 89%는 임신 12주 이내에 임신중지를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임신 21주 이후의 임신중지는 전체 임신중지 건수의 0.7%에 불과하다.

애초에 임신 주수 계산 자체가 마지막 월경 시작일을 임신 시작일로 추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 월경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은 사람의 경우 임신 주수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많은 산부인과 전문의들 역시 임신 14주, 24주라는 기준 자체가 임신한 여성들의 실제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기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빨라야 임신 7~8주에야 임신 확인을 위해 병원을 찾고, 임신 14주가 훌쩍 지나고도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내원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MBC 라디오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임상적으로 … 심지어 임신 5, 6개월 지나서 아기가 자궁 속에 노는 데도 전혀 임신이라고 생각 못하고 찾아온 여성들을 본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원하지 않는 임신을 법령에 따라 유지하고자 하는 여성은 없다. 임신 7주에 임신임을 확인하고서, 임신 14주까지는 임신중지가 가능하니 여유 있게 7주 정도 더 기다리려는 여성도 없다. 의미 없는 주수 제한으로 여성의 건강권이 제한될 뿐이다.”라는 한 산부인과 전문의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프레시안, 「산부인과 의사가 말한다…’낙태죄 정부안’이 잘못된 이유」, 2020. 10. 10.). 임신 주수에 따른 임신중지권 제한에는 그 어떤 정당성도 없다.

② 의무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 만 16세 미만 임부에 대해 법정대리인 동의 의무화: 임신중지권에 대한 장벽

한편 정부 입법예고안은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임신 24주 이내에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사유로 신설하면서도 이 경우 모자보건법상의 상담과 24시간의 숙려기간을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회적·경제적 사유 이외에 임신 14주 이후 24주 이내에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다른 사유는 강간 또는 준강간 등 범죄행위로 인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사이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임신한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같은 극단적 사유들뿐이기에,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현실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함에 있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임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상담을 받아야만 하고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 역시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은 이 상담에 대해 ‘임신한 여성이 심리적 지지와 임신, 출산 및 양육 등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덧붙이고 있지만, 상담이 선택지가 아닌 의무가 되는 순간 이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하더라도 임신중지권에 대한 장벽일 뿐이다. 24시간의 숙려기간 역시, 하루라도 빨리 시술을 받아야 보다 안전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을 여성들의 고통과 위험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 등을 살펴보면 상담 절차나 숙려기간이 실제로 임부에게 필요한 정보나 숙고할 시간을 제공하기보다는 임신중지에 대한 죄책감을 주입하거나 시급하게 시술을 받아야 하는 임부를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불어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임신중지를 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청소년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연령을 이유로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권을 제약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억압이고, 16세라는 기준도 매우 자의적이다. 게다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학대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일정한 서류를 제출해야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는데, 모자보건법이 증빙서류로 규정한 서류들은 모두 해당 법정대리인이 아동학대 범죄로 사법처리될 경우에 사법경찰관이나 판사가 발급하는 서류들이다. 결국 이는 한겨레 신문 10얼 9일자 기사에서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말하듯이 청소년이 “임신중지를 위해 부모를 신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③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임신중지시술 거부권?

정부 입법예고안에서 심각한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또 하나의 내용은 의사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시술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반적인 의료행위의 경우 의사가 단지 개인적 신념 때문에 환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정부 입법예고안은 임신중지시술을 기본적으로 임부가 자기 판단 하에 의사에게 요청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모종의 범죄행위로 낙인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권리를 위한 유럽위원회(ECSR)도 “유럽 사회헌장은 의료 관련 직업을 가진 국민들에게 양심적 사유로 여성들에 대한 낙태시술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을 상기하면 의사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 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의 더 큰 문제는 의사가 시술을 거부할 경우 시술 가능한 다른 의료기관으로 임부를 연계할 의무조차 없다는 것이다. 의사는 단지 임부에게 긴급전화나 상담기관을 안내해야 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임신중지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파악하여 공개하겠다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면 하루라도 빨리 시술을 받아야 할 임부가 의사의 시술거부 때문에 상담기관을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특히 의료접근성이 높지 않은 지역에서 의사가 시술을 거부한다면 임부의 건강은 매우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

여성의 임신출산자기결정권에 대한 억압에 맞서 투쟁하자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을 요구한 박근혜 퇴진 촛불 투쟁의 결과로 집권했다. 그랬기에 문재인 정권이 여성의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청년 여성들이 한때 적지 않았다. 20대, 30대 여성 집단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상당한 기간 동안 동 연령대 남성 집단에 비해 높게 유지되었다. 한편 지금은 낙태죄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이고, 시대적 흐름이 여성의 임신출산자기결정권 보장을 향하고 있음이 이미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확인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은 이렇게, 심지어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낙태죄 폐지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론이 팽팽하게 지금 맞서 있습니다. 국회로 넘어오면 국회에서 양측의 의견들을 충분히 수렴하고 또 조정할 건 조정하고 그렇게 결정을 하겠습니다.”라는 등의 한심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문재인 정권은 여성의 임신출산자기결정권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임신중지에는 처벌도 허락도 필요 없다’를 외치는 여성들은 이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고, 여성의 권리에 대한 억압에 맞서 투쟁하려 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한 집회 금지로 광장이 닫혀 있는 상황이지만, 청와대 앞 기자회견, 1인 시위, 필리버스터 등의 행동들이 신속하게 계획되고 있다. 또한 SNS를 중심으로 ‘#나는낙태했다’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을 말하는 여성들의 릴레이 선언이 번지고 있다. 여성들은 “나도 임신중단 경험이 있다. 그게 죄가 된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몸의 변화, 갚아야 할 수술비, 내 감정과는 다른 사회의 시선과 생각, 파트너가 앙심을 품거나 누군가 나를 고발하지 않을까 하는 이 모든 걱정과 문제는 모두 나만의 것이었다.”, “원치 않은 임신인 걸 알렸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죄인 취급했던 [의사의] 행동, 말투 모두 똑똑히 기억합니다.”라며 여성의 임신출산자기결정권에 대한 억압을 고발하는 중이다.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억압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시도에 맞서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완전한 임신중지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해야 할 때다. 임부의 요청과 판단에 따른 임신중지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임신 몇 주째이든, 사유가 무엇이든 형사처벌은 있어서는 안 된다. 임신중지 상담은 임부가 원하는 경우에 한하여 할 수 있어야 하며 상담 의무제도나 강제 숙려기간을 전제로 두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임신중지시 부모나 제3자의 동의를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임신중지시술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과 무상화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처벌도 허락도 거부한다. 낙태죄 전면 폐지, 임신 주수·사유 제한 없는 임신중지권 완전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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