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특목고 폐지’ 논란, 교육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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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교육희망]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자사고·특목고 폐지’ 논란이 뜨겁다. 시작은 지난 6월 13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 내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 10곳을 오는 2020년까지 폐지하겠다고 한 발표였다. 이 교육감은 해당 발표에서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학교를 계층화·서열화하는 외고·자사고 등을 폐지해 일반고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보수언론 및 교총, 해당 학교 학부모 단체들은 학생의 교육 선택권을 박탈하는 조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는 와중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자녀를 자사고나 특목고, 강남8학군 고교 등에 보냈다는 사실 등이 폭로되기도 하였다. 결국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교육감은, 먼저 정부가 나서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근거를 법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자사고·특목고 폐지는 당연하다

폐지 반대 측은 자사고·특목고 폐지가 일반고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폐지를 넘어 더 강력한 교육의 변화가 필요함을 뜻할 뿐이지 폐지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폐지 찬성 측의 지적처럼 자사고·특목고는 이미 그 목적과 달리 사실상 상위권 대학 입시를 위한 획일화된 입시 명문고로 전락했다. 심지어 보수 언론조차 중학생 사교육비가 고등학교 사교육비를 추월한 것을 두고 외고·영재고·자사고 입시 등이 사교육비 폭증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저변에는 제대로 된 교육이 ‘성공’을 보장하고 나아가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환상은 적어도 남들만큼 하지 않으면 뒤처지리라는 불안을 마음 깊숙이 심고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다. 즉 ‘교육을 통한 성공’ 담론은 노동자민중, 정확히는 사회체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사회의 제도를 만드는 자들의 책임과 그 체제가 재생산하는 위계 및 불합리한 질서의 문제를 망각케 한다.

교육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런 환상은 환상일 뿐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실업자는 약 45만 6000명으로 전년 대비 3만 여명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 2000년부터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고치라고 한다. 또한 전체 실업자 중 대졸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45%를 넘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쉽게 말해 실업자 둘 중 하나는 대졸자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언론이 최근 5년간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 현황을 분석한 바에 의하면, 2016년 박사 학위자는 1만 3882명으로 2012년에 비해 13% 늘었고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박사 학위자가 매년 늘어난 데에는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쉽게 말해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워, 또는 취업을 위해 보다 높은 학력을 쌓기 위한 ‘학력 인플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람들에게 의자에 앉는 법을 잘 가르치고 그 사람들이 잘 배웠다 하더라도, 의자 뺏기 놀이에서 모두가 자리에 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의 피터 카펠리(Peter Kappelli)는 자본주의에서 예측할 수 없는 폭력적인 시장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학위’는 없다고 경고한다. 또한 그는 기업에 입맛에 맞는 ‘부품’을 만드는 교육은 오히려 구직난 속 구인난이라는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교육은 미래에 가능한 직업의 수나 종류를 통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학부생 때 석유 공학을 연구하는 것은 잠재적인 수입 측면에서 좋은 아이디어였을지 모르나 오늘과 같은 급격한 유가 변동 환경에서 그것은 도박이나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석유공학을 공부하고 관련 교육이 좋아지든지 간에 석유산업의 일자리와 급여를 현실에서 결정하고 강제하는 것은 석유 산업의 변동과 자본이다. 현실의 교육은 그저 그 뒤를 쫓을 뿐이다.

교육을 바꾸기 위해선 세상을 바꿔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환상의 저변에는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는 대신 교육에서 기회를 주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인식이 숨어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학교를 졸업하게 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만일 교육이 사회경제적 성공을 위한 기회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면 작금의 높은 교육성취는 더 많은 사람들의 성공과 일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인구가 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적 불평등 역시 줄어들었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자본주의에서 교육이 사회적 소득 격차를 줄이기보다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쓴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었다. 일례로 미국은 이를 뒤집기 위해 저소득층 가족의 중산층 거주지로의 이주 지원이나 적극적인 부모 교육, 과감한 교육 투자 등을 시도해왔지만 그 효과가 충분치 못했고 오히려 교육이슈를 사회문제의 완충제로 삼는다는 비판이 있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단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하였다.

교육이 지금 현존하는 사회를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훈육시키는 도구라는 점에서 교육을 위한 투쟁은 교육 안에서의 투쟁뿐만 아니라 교육을 한계 짓는 이 체제에 대한 투쟁을 필요로 한다. 학교 비정규직의 문제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격화되는 대학입시와 청년실업 문제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교육이 ‘줄 세우기’로 전락한 근본적인 원인이 체제 순응하고 자본에 알맞은 ‘부품’을 만들기 위한 자본주의적 교육에 있는 만큼 앞서 지적한 교육의 환상을 깨고 자본주의 교육의 역할과 한계를 지적하는 측면에서 현실의 자사고·특목고 폐지는 종착점이 아닌 출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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