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지배계급이 20년 동안 해결 못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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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지난 12월 29일,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재인이 대통령 취임 직후 첫 방문지로 방문하여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면서 연내 해결을 약속한 곳이니 정규직화 합의는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문제해결 의지를 확인시키는 순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확인되었듯이, 이날 정규직화 합의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전체 1만여 명의 비정규직 중 3천여 명만을 정규직으로 직접 전환하고, 나머지 7천여 명에 대해서는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그 곳 소속으로 채용하겠다는 ‘중규직화’ 방안이었다. 정규직 대상 3천여 명도 형식적으로나마 채용시험을 보아야 한다. 이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추진되는 공공부문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일어났던 것일까? 비정규직 제로를 외친 문재인이 자신의 공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기만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그가 불성실하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이어서였을까? 그것은 비정규직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핵심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한들, 자유주의 자본가 정권인 문재인 정권이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역대 정권은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이었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개혁과 혁신을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정작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이었고 결과적으로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계속 피폐해질 뿐이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지배계급의 더 큰 착취를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 비정규직

비정규직이란 어떤 사람들을 일컫는가?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특위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란 “고용형태를 기준으로 ‘한시적 근로자(기간제근로자)’, ‘단시간 근로자(시간제근로자)’, ‘파견·용역·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비전형근로자)’”이다. 즉 기간제, 계약직, 간접고용, 사내하청직, 파견직, 일용직, 임시직, 특수고용직 등등이 모두 ‘비정규직’에 해당하며, 실제 하는 일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심지어 실제로 하는 일이 상시적인 성격의 업무일지라도 고용형태는 얼마든지 비정규직일 수 있다. 그 경우 노동자는 언제 해고당할지 알 수 없는, 과연 내년이나 다음달에 재계약이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조건 속에서 ‘일시적이지 않은 상시적인 업무’를 해야 한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제도가 비정규직이다.

자본가들이 비정규직이란 고용형태를 도입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해서 착취율을 높이고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서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자본가들로 하여금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게 하는 한편, 노동자의 지위는 불안하게 하여 자본가에 대한 저항을 어렵게 한다. 아울러 비정규직이란 고용형태는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는 부수적 역할도 한다. 일자리를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경쟁, 대립하게 만듦으로써 노동계급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여, 노동자들이 단합된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결국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 자본가에 대한 예속을 강화하여 자본가들을 이롭게 하고, 노동자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여 자본가의 이윤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양산만 해온 역대 정권

① 비정규직 본격 도입을 시도한 김영삼 정권

비정규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기간제 및 파견직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매우 열악하였다. 예를 들어 기간제노동자를 사용함에 있어 그 사용목적에 대한 법적 제한은 전혀 없었기에, 사실상 어떤 일에건 기간제 계약을 적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1996년 대법원에서는 기간제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으로 규정된 1년을 넘는 기간의 근로계약도 유효하다고 보는, 사용자측에 유리한 판결을 하기도 했다. 파견노동자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직접고용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해당 노동자들은 유사시 어떠한 구제도 받을 수 없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과잉투자 과잉생산 공황 국면에 직면했다. 김영삼 정권은 그 돌파구를 대대적인 노동유연화에서 찾으려 하였고, 그 핵심은 비정규직 본격 도입이었다. 정부는 이를 ‘세계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말로 포장하였다. 1996년 12월, 당시 집권여당이던 신한국당(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졌다)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을 날치기 통과시킴으로써 파견근로제와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를 도입 및 허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민주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자계급의 큰 저항을 받게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 최대규모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자본가 정권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잠시 저지되었다.

② 비정규직을 양산한 김대중 정권

IMF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첫 ‘민주정권’으로 기대감을 주었지만, IMF가 부과하는 구조조정 패키지를 충실히 시행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권은 1998년 2월 취임도 하기 전에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노동운동계와 정리해고 및 노동유연화 관련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1996년 총파업으로 막아냈던 파견제가 도입되어 자본이 파견직 형태로 노동자를 단기간만 고용하며 일정기간 경과시 재계약할 수 있게 하는 길이 열렸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상시적인 계약해지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치였으며,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조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조치였다.

정부는 이 파견법이, 일부 업종에만 제한적으로 파견근로를 허용하려는 것 뿐이며 그 외의 업종에 대해서는 이런 형태의 고용을 금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뒤 노동현장에서는 사내하청을 비롯한 위장 불법파견이 횡행하였으며, 이후 정부는 이것을 제재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요컨대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대화와 상생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한편으로, 실제적인 노동권은 철저히 파괴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겨 대중화되고, 한라하청비정규직노조, 캐리어비정규직노조, 한국통신비정규직노조 등 굵직한 비정규직 투쟁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요즘도 많이 쓰는 끝구호 “결사 투쟁”이 바로 이 시기 비정규직 투쟁에서 나온 것이다.

③ 비정규직 눈물을 닦긴커녕 피눈물이 나게 한 노무현 정권

노무현이 김대중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할 즈음에는 이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조차 앞으로 비정규직이 되기는 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노무현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말로 표심을 끌었다. 그러나 노무현 집권 초기부터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이 대거 죽음으로 자본과 정권에 항거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중 상당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규직 관련 법률을 개악하여 노동유연화를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더욱 편하게 쓰게 만들었다. 예컨대 2006년 겨울 비정규직 관련 법률 개악안을 한나라당(지금의 자유한국당)과 함께 통과시켰다. 개악의 내용은 주로 기간제와 파견제의 사유제한을 완화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을 더욱 자유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차별시정’ 등 일부 보호 조치들이 들어있기는 했지만, 정규직/직접고용 전환 의무기간인 2년이 지나기 전에 해고해버리는 문제는 용인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비정규직 투쟁이 대거 등장하여 노동운동의 일상이 되어버린 시기일 뿐 아니라 수치상으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급증한 때였다(2003년 460만 명에서 2007년 570만 명). 노무현 정권 시기 비정규직의 눈물은 닦이긴커녕 피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④ 비정규직을 협박하고 쥐어짠 이명박 정권

이명박 정권은 누가 뭐래도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권이었다. 대통령 자체가 건설사 사장 출신이었으니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구호를 내걸며 노골적인 친(親)자본 정책을 추진하였다. 취임과 함께 전세계적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자 이명박 정권은 이를 비정규직에 대한 더욱 더 강도 높은 착취로 해결하려 하였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고용전략 2020’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파견업종 확대뿐만이 아니라 청소 및 경비를 비롯한 일부 업종을 기간제 사용기간 2년 만료 후 정규직화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골적인 노동유연화 정책이었다. 그러면서 이명박은 기간제입법 2년차인 2009년이 되면 100만명이 해고될 것이라는 식으로 노동계급을 협박하는가 하면,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적용시점을 3년 유예하겠다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악을 추진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비정규직을 영구화하는 게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소리였다.

⑤ 무제한적 비정규직 사용을 추진한 박근혜 정권

군사정권의 후예이자 국정원의 선거개입 등으로 인해 이미 시작부터 정당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에서 취임한 박근혜 정권은 자신의 약점을 무마하기 위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과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재벌들과 부동산 소유주들에 대해 감세(減稅)를 해주는 등 자본가세력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만을 추진해 왔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역시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아, 노동유연화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권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노동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내놓았다. 이것은 정규직전환이 불가능하며 오로지 경쟁을 통한 신규채용으로만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도록 못박아 놓은 것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을 더욱 고착화하는 정책이었다.

2014년 12월에는 ‘비정규종합대책’을 발표하였는데, 이 내용을 살펴보면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성과급제 도입, 유연근로제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업종 및 그 대상의 확대, 사내하도급 합법화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비정규직 확산 및 착취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의 내용만 보아도, 역대 모든 정권들은 하나같이 비정규직을 철폐하려고 하기는커녕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더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앞선 수구정권들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했던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치적 스펙트럼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본가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자본가 세력을 대변하는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정책 역시 정권의 본질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역대 정권이 보인 모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촛불민중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내걸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보여주기식 정치로만 일관하며,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나 무기계약직 고용, 기존 정규직보다 낮은 직군 신설 같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책만 내놓고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일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등하는 일까지 발생시켰다.

자본가계급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에서 이윤을 얻는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속성이다. 비정규직이라는 노동형태 역시 자본의 이러한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만들어지고 확산되어 온 것이다. 즉, 비정규직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며, ‘능력에 따른 결과’도 아니다. 단지 저임금 노동을 바라는 자본의 안간힘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용형태다.

비정규직이라는 파괴적인 고용관계가 이슈화되기 시작한지도 어언 20년, 이제는 주류 언론사의 경제면에서도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오히려 차별을 더 키웠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지배자들과 그들의 나팔수들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본가를 대변하는 정권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양산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한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자본가와 정권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노동자. 맑스 저작과 자본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를 배웠다. 사람을 '노동자 대 고객'이나 '상사 대 부하'의 관계로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만으로도 모두가 유익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끔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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