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적 단결을 외면한 기아차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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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일보]

 

한 글자 규약 변경으로,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아차 노조에서 제외되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 노동절을 불과 사흘 앞둔 4월 28일,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이하 ‘기아차 노조’라 한다)는 조합원 총회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입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약변경을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의 반대성명과 전직 기아자동차 지부장, 위원장들의 중단호소에도 불구하고 기아차 노조는 ‘단호하게’ 총회를 강행했고, 결국 규약변경 안건은 전체조합원 2만8천명(이중 10%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중 투표율 85.9%, 찬성률 71.2%로 가결되었다.

[변경전 규약] 제7조(구성) 지부는 기아자동차 내에 근무하는 자로서 조합(본조) 규약에 해당되는 자

[변경후 규약] 제7조(구성) 지부는 기아자동차(주)에 근무하는 노동자 중에서 다음 각 호에 해당되는 자를 제외한 자로 구성한다.

기아차 노조는 ‘기아자동차 내에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기아자동차(주)에 근무하는 노동자’로 단 한 글자를 고치는 규약개정을 통해,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아차 노조에서 배제하였다. 지난 2008년 기아차에서 1사1노조가 만들어졌는데, 불과 10년만에 노동자 단결의 상징으로 되어있던 1사1노조가 폐기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가겠다고 한 것이 아닌 만큼, 사실상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내쫓은 것이 되어버렸다. 기아차 노조가 아무리 ‘합리적’인 분리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도, 대다수 노동자들의 판단은 힘 있는 정규직 노조가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외면했다는 사실, 이를 통해 기아차 자본은 웃고 있다는 사실, 1사1노조를 실현해 가려는 많은 노동조합의 활동에 찬물을 뿌렸다는 사실들뿐이다. 지난 대선토론회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대기업 귀족노조때문’이라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 홍준표조차 비정규직을 외면한 기아차 노조가 문제라고 말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만들어 진 것이다.

‘단호하게’ 비정규직을 내쫓은 기아차 노조의 궁색한 설명

기아차 노조는 ‘함성소식’이라는 공식 소식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사내하청 일부 활동가들로 인해 기아차지부의 모든 사업이 부정되고, 이로 인한 갈등이 지속된다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희망과 발전은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사내하청 동료들의 정규직화마저 가로막는 곪아 터질대로 터진 현 상황을 이대로 놔두면,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아닌 우리 스스로 자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조합원 총회 결단을 하였습니다. (기아차지부 『함성 특보』 24-08호)

비정규직 분회가 막은 것은 ‘사내하청 동료들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고법까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일부 인원만 그것도 신규채용 방식으로 정규직화를 하는 것이다. 전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조합원 사이 갈등만 유발하는 일부인원 신규채용에 반대한 것이다. 정규직 노조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일부 진전이라 판단할 수 있고, 비정규직 분회 차원에서는 투쟁에 앞장섰던 조합원이 배제되는 등의 상황을 막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조합원이 함께 정규직으로 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는 이러한 상황에서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일차적인 판단을 맡기지 않고, 정규직 노조의 입장으로 일방적으로 기아차자본과 신규채용을 합의해버렸다.

이 이외에도 기아차 노조는 지부의 파업권한을 무시하고 비정규직 분회가 독자파업을 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2. 식사질 개선, 사내하청 정규직화, 임금교섭권과 파업권도 사내하청 분회에 전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십시오. (기아차지부 소식지 『함성소식』 24-108호, “총회반대 현장 의견 그룹은 빙빙 돌리면서, 본질을 숨겨서는 안된다.”)

정규직 노조와 다르게 비정규직 분회가 독자파업을 한 것은 지금까지 고작 4번이었고, 게다가 최근에는 메인라인이 멈춘 적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자파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조에서 쫓아낼 정도까지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1사1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중요한 조직과제로 제시된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쟁의권 허용은 중요한 논의사항이 되어왔다. 그런데 기아차지부는 몇 번의 독자파업으로 대화와 논의를 통해 차이를 극복하려는 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요구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임단협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독자적인 요구가 계속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쟁의권을 허용하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무관하게 마음껏 쟁의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유로운 이혼을 보장하는 것이 이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맥락이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쟁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 이해가 높아질 수 있다. 다소 어렵더라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좁혀나가고, 원하청 공동투쟁을 넓혀나가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이다. 독자적인 파업을 이유로 파업전권을 사내하청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냐는 자극적인 주장으로 노동자들에게 규약변경 찬성을 선동한 기아차 지부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편 기아차 노조는 분리총회가 가결되더라도 조직만 분리될 뿐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예전처럼 정규직화 투쟁이나 총고용보장 등 문제를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정규직 조합원을 설득했다. 말로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민주노조 운동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규직 노동조합 자체가 정규직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같은 조합원도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싸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1사1노조까지 전 조합원 총회로 무너뜨린 상황에서 자칫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가는, 왜 정규직 조합원은 신경쓰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업에 힘을 쓰냐는 항의만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아차 노조는 동종업계인 현대차, 한국지엠 등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는 규약변경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는 것일 뿐이다. 현대차, 한국지엠의 경우, 수차례 1사1노조 안건이 정규직 지부 대의원대회를 통해 상정되었지만 번번이 부결되었다. 1사1노조를 일부러 안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번 기아차 노조의 분리총회 통과는 한국 노동운동의 주류인 정규직 노동조합 운동의 상황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 뿐이다.

금속노조만 보더라도 1사1노조를 조직적 방침으로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 정규직 사업장에서 10년이 넘도록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차의 경우 수차례 1사1노조 안건이 부결되고, 현재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때에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조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론이 부결의 이유로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독자 쟁의권이나 2차, 3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조직화 대상으로 삼느냐가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1사1노조가 번번이 부결된 이유는 경비절감과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차 자본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한국지엠의 경우 2008년 대의원대회 규약개정을 통해 공장 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지만, 단서조항을 이유로 규약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지 않았다. 이후 두 차례 1사1노조 규약개정안이 상정되었으나 50%미만으로 부결되었다. 특히 한국지엠의 경우, 물량축소와 연동된 인원감축으로 2014~15년 동안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000여명이 해고되었고, 현재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원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부품사 정규직 노동조합 다수의 경우 1사1노조를 실현하기에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같은 공장 내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전원 비정규직으로 존재하는 위장계열사의 노동자를 조직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완성차의 상황에 따라 물량이 변동되면, 이에 따라 진행되는 인원축소의 희생자가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10년간 1사1노조를 진행했던 기아차 노조가 1사1노조를 포기한 것은, 정규직 이기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든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적 단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솔직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사1노조를 실현한 기아차 노조를 많이 부러워해왔다. 항상적인 고용불안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힘이 있는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문턱을 낮출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는 나은 노동조건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몇몇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각이 아니다. 2016년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비정규직지회가 실시한 비정규직실태조사를 보면, 1사1조직에 대해 90% 이상이 찬성할 뿐만 아니라, 1사1노조가 될 경우 노동조합에 가입하고자 하는 의사도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2007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도장부 점거파업 등 독자적인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 급하게 이루어진 측면도 있지만, 기아자동차의 1사1노조 실현은 그 자체로 정규직, 비정규직 단결의 상징이 되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에서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을 실현한 기아자동차의 사례를 모범으로 꼽아 왔다. 1사1노조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조금씩 개선되었다. 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고, 임금 등 노동조건도 향상되었다. 광명 소하리 공장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화성, 광주에서는 조직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런 경험을 살펴본다면, 여전히 1사1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할 수 있는, 계급적 단결을 높여 낼 수 있는 방안이다.

물론 1사1노조가 계급적 단결의 모든 것은 아니다. 1사1노조로 인해 힘 있는 정규직 노조에 의존하는 경향도 생겨날 수 있고,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시혜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1사1노조뿐만 아니라 원청사용자성 쟁취 등 다른 중요한 제도개선 과제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완성차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본과 맞서 함께 투쟁해야 할 동지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공동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1사1노조란?

‘1사1노조’는 사람들에 따라서 ‘1사1조직’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단위 사업장내 정규직, 비정규직, 사무직 모든 노동자를 동일한 노동조합 조직의 구성원으로 두는 것을 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힘이 있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이들을 끌어안아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을 줄여나가면서 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기 유리하게 해 나가자는 취지로 1사1노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특히 금속노조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정신으로 10여년 1사1노조를 조직적인 방침으로 가져가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노동조합의 규칙에 있는 노동조합의 가입대상을 (주)기아자동차에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주)기아자동차 공장 내에 근무하는 노동자로 한다고 규칙개정을 함으로써 2008년 1사1노조를 시행했다. 기간제교사나 영양사, 교육공무직 등 노동자들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이지만, 전교조와 다르게 공공운수노조에 속해 있는데, 전교조가 이들을 조직한다면 이 또한 1사1노조를 실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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