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빈의 노동당, 그리고 영국 노동자민중의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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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s://www.easterneye.eu/]

영국의 사회주의자 리처드 시모어는 2015년 총선 직후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내가 경고했던바 이번 선거는 노동당과 노동운동 정치의 붕괴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2년 만에 그의 입장은 180도 변했다. 6월 8일 노동당이 선거에서 급부상해서 보수당 다수 의회를 무너트리는 결과를 얻어낸 후였다. “노동당은 부끄럽지 않게 계급에 입각한 운동을 전개했다. …… 우리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제 대안은 분명하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비단 그만의 것은 아니다. 켄 로치 감독이 중심이 되어 노동당 왼쪽에 새로운 좌파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며 등장한 “좌파단결(Left Unity)”은 코빈이 당수로 당선된 이후 격론 끝에 조직은 유지하지만 노동당에 적극 결합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이번 선거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나 영국 사회당(1990년대 초 노동당을 탈당한 밀리턴트 그룹이 결성한 정당이다. 코빈은 1980년대 초 당내 투쟁과정에서 제명된 밀리턴트 그룹의 성원들을 옹호하는 활동을 했다)은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고 코빈을 지지했고, “21세기 혁명적 사회주의(RS21)”란 조직의 닐 데이비슨은 “좌파가 이제 노동당 안에 들어갈 것인지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도대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여러 현상을 좇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코빈의 등장배경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대처없는 대처주의의 지속과 대공황 이후 긴축정책, 영국 노동자계급의 불만 증가

영국은 신자유주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신자유주의는 마가렛 대처가 총리에 오르기 이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나타났지만, 신자유주의가 “대처주의”로 상징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힘관계를 역전하고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강화시켜 이윤을 회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따라서 대처는 등장하자마자 광부파업을 폭압적으로 정리했고, 민영화, 시장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대안은 없다”,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어록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들을 대변해야 할 정당인 노동당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우경화된 상태였고,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1997년 집권한 후 사실상 대처없는 대처주의를 지속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처지는 급격히 악화됐다. 영국의 소득불평등은 2008년 대공황 이후 자본가들이 경제사정 악화로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수치상 조금 완화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198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급격히 악화됐다. 그 결과 소득불평등이 유럽 내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드는 국가가 되었다.

2008년 세계 대공황은 또 다른 결절점이 되었다. 고든 브라운이 총리로 있던 집권 노동당은 영국의 은행과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2009년까지 8,500억 파운드(한화 1,232조1천억 원)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자금을 금융부문에 투여했다. 반면 노동자민중에게 돌아온 것은 “긴축”이었다. 2010년 집권한 데이비드 케머런의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는 2013년까지 연간 143억 파운드(20조7천억 원)의 공공지출 삭감을 담은 긴축재정을 실시했고, 이후 이 삭감은 영속적인 것이 되었다. 요컨대 보수, 노동 양당이 공히 권력을 잡으면 자본가계급의 배는 불려주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돌아갈 몫은 대거 박탈하는 자본가국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불만과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30여년의 신자유주의는 노동자계급 공동체의 파괴, 제조업 일자리 파괴 및 저질의 서비스 일자리 증가, 실업 상승 등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노동당이 더 이상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노동당으로부터 멀어졌다. 이는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자계급의 삶의 조건 악화를 인종주의·국수주의적으로 이용한 영국독립당의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2010년, 2015년 총선에서 연이어 노동당은 30% 정도의 득표율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당내 좌파, 코빈이 당수가 되다

2010년 총선 패배 이후 새로운 당수로 에드 밀리반드가 당선됐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맑스주의자 고 랄프 밀리반드의 아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당수 선거에서 그의 형 데이비드 밀리반드 역시 출마하여 동생과 양자구도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에드 밀리반드가 당내 중도파를 대변한다면 그의 형 데이비드 밀리반드는 블레어를 위시한 당내 우파의 후보였다. 에드 밀리반드가 당수가 되었으나 노동당의 근본기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당내 우파는 그가 지나치게 좌파적이라고 했지만, 그는 긴축에 반대하지 않았고,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여러 정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코빈의 경제공약을 소개한 『자코뱅』의 한 기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에드 밀리반드의 노동당은 에너지 가격 상한(당시에는 맑스주의적이라는 고함을 들은 정책)을 약속했던 반면 코빈의 노동당은 ‘내셔널 그리드’의 재국유화와 더불어 지자체가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에너지회사 설립을 약속했다. 2년 전 밀리반드와 발즈는 ”불공정한“ 영시간 노동계약만을 없애고자 했다. 오늘날 코빈과 맥도넬은 그것의 완전한 철폐를 추진한다.

에드 밀리반드가 당수에 당선되자 노동당 우파는 이것도 불만인지라 당수 선출방식을 바꿨다. 기존의 방식은 의원단 1/3, 노동조합 1/3, 일반 당원 1/3의 투표 비율로 당수를 뽑았는데,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의원단의 비중을 대폭 제거하는 1인1표 선호투표제로 선출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또한 일부 개방형 경선방식을 도입하여 3파운드의 후원금을 1회 납부하면 후원당원으로서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신설됐다. 그러나 당수에 나가기 위해서는 의원 35명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조항은 그대로 두었다. 이 조항은 그동안 당내 좌파의 입후보를 막는 효과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코빈보다 더 좌측에 있다고 평가받는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 존 맥도넬은 추천인수를 채울 수 없어 2010년 당수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이렇게 선출방식을 다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것이 당내 우파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도입되었지만 결국 코빈이 우경화된 당구조를 뚫고 당수에 당선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49년에 태어난 제레미 코빈은 한마디로 노동당내 좌파로, 사민주의조차 버리고 우경화하여 자유주의로 이동해간 노동당 주류에 비해 정통 사민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그와 그가 이끄는 노동당의 정치적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다. 그는 신노동당 하에서는 주변화되어 있던 당내 아웃사이더였다. 2015-16년 미국 대선에서 사회주의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가 여러 지점에서 진보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대외정책 등 다른 많은 부분에서 제국주의적 성향을 보였다면, 코빈은 일관되게 진보적 정치인의 길을 걸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운동에 동참한 부모 밑에서 자란 코빈은 18세에 이미 핵군축캠페인(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이라는 단체에 참여했고, 20세 초반부터 노동조합 활동가와 노동당 소속 시평의회 의원으로서 적극 활동했다. 노동당 좌파의 대부였던 토니 벤을 추종하여 1981년 노동당 부당수 선거 때 토니 벤의 선거운동에 결합했고, 1982년에는 당내 트로츠키 조직 밀리반트 그룹에 대한 탄압에 반대했다. 영국 공산당 계열에서 발간하는 일간지인 『모닝 스타』에 정기기고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3년 런던시 이즐링턴 북부 선거구 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는 의회내 좌파그룹인 “사회주의자 캠페인 그룹”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1970년대부터 북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용기를 보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을 적극 전개했다. 그는 2001년부터 “전쟁반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2011년에는 그 단체의 의장에 선출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2008년 대공황 이후 일관되게 “긴축”에 반대해온 정치인이었다.

2015년 총선 직후 패배에 책임을 지고 에드 밀리반드가 사임하자 신임 당수 선거가 치러졌다. 코빈은 노동당의 우경화를 비판하며 좌파의 목소리를 내고자 출마했다. 그러나 당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당선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후보등록 몇 분 전에 겨우 추천인 36명을 채워 등록할 수 있었는데, 그를 추천한 의원들도 단지 당수 선거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 추천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선거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그를 지지하는 당원들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그의 당수 선거운동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노동자들과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자극했다. 그리하여 선거운동은 거대한 대중운동으로 변모했다. 코빈은 2015년 9월 59.5%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필자는 2015년 영국 총선결과에 대해 쓴 한 글에서, 겉으로는 보수당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국 노동자계급의 현실과 이로부터 비롯된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기존의 정치질서로는 표현해낼 수 없음을 극명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자신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지배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급진적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만 있다면, 노동자계급은 언제고 다시 정치의 일선에 등장할 터였다. 이는 비단 영국만이 아니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세계 각국에서 관찰되는 상당히 보편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민주의 정당들이 정치적으로 몰락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국에서는 기존 사민주의 정당 내에 사민주의 정치에 충실했던 세력이 우경화된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유력한 정치대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코빈이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의 정치적 지향이 자본주의 내에서의 점진적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해간다는 사민주의에 머물러 있지만, 대중투쟁에 적극 결합하고 당이 우경화되는 와중에서도 진보적 의제를 일관되게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정치 지형이 얼마나 우경화되었냐면, 노동당 우파는 노동당이 지지를 상실한 이유가 부의 재분배에 대한 기술관료적 경제주의적 강조에 있기 때문에, “백인 노동자계급”의 영국다움에 대한 애국적 자부심이라는 “정체성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이다. 이는 극우 영국독립당의 인종주의, 국수주의와 다를 바가 하나 없다. 이런 정치지형이다 보니, 코빈이 주장하는 긴축반대, 공공지출 확대, 주요 공적 산업 재국유화 등의 내용은 사실 정통 사민주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급진적 의미를 획득하게 됐다.

코빈의 등장과 더불어 각성한 대중

앞서 당수 선출방식을 언급했다. 이 방식은 1인1표제이기 때문에 기층 당원의 표심이 당수 선출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코빈이 당수에 출마하자 코빈의 “반긴축”에 공감한 노동자, 민중은 노동당 당수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때 40만 명이 넘었던 노동당 당원수는 계속된 정치적 실망감으로 인해 당수 선거 직전 19만 명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였다. 그러나 코빈이 선풍적 인기를 얻으면서 코빈을 찍기 위해 노동당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선거가 끝날 무렵 당원수는 30만 명에 달했다. 그 후 1년 동안 당원이 더욱 늘어 2016년 7월에는 51만5천명이 됐다.

인적 구성으로만 보면 노동당은 1년 만에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당으로 변해버린 셈이다. 코빈이 만들어낸 이런 대중적 각성은 그의 정치적 내용이 갖는 사민주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렇게 대중이 코빈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노동당에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에, 영국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노동당에 대한 판단을 재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코빈이 당수가 되었지만, 당조직과 의원단은 과거의 우경화된 신노동당 그대로였다. 자본가와 언론뿐 아니라 노동당 내에서조차 코빈을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특히 그가 “득표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토니 블레어는 “만약 제레미 코빈이 당수가 된다면, 다음 선거는 1983년이나 2015년 같은 패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참패, 어쩌면 전멸일 것이다”라는 극언을 토해냈다. 결국 이것은 2016년 당수 재선거로 이어졌다. 2016년 당수 재선거는 코빈에 대한 당주류의 거부가 그 근본 원인이지만 직접적 계기는 브렉시트였다.

코빈은 이제껏 유럽통합에 비판적인 EU회의론자였다. 일부 좌파성향의 유럽통합론자들이 “사회적 유럽”을 주장해왔으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EU는 사실상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신자유주의를 유럽 각국에 관철시키는 기구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노동자계급 역시 이런 인식에서 EU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EU 탈퇴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의 브렉시트 찬성을 단순히 인종주의적, 국수주의적 반응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이미 노동자계급에게서 멀어진 노동당 주류는 노동자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당내 소수파였을 때와 당수였을 때 코빈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코빈은 의원 재임동안 428번이나 당규율을 위반하고 당론에 반대한 전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원단 내 기반이 약한 당수로서 당주류의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쉽게 거스를 수 없었다. 이렇다보니 코빈은 브렉시트 반대 당론을 천명했지만 실제 반대운동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주류는 이런 코빈이 브렉시트에 “미온적(lukewarm)”이라고 보았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EU 탈퇴가 결정된 직후, 노동당 의원단에서는 반코빈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 쿠데타는 수개월 전부터 준비된 것었다. 그러나 브렉시트 통과로 가능성이 높아진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할 경우 자기 의석을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의원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현실화됐다. 그림자내각의 의원들은 대거 자리에서 물러나고, 6월 28일 노동당 의원단은 코빈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붙였다. 결과는 172-40으로 코빈의 불신임이었다. 의원단의 의도는 코빈이 당수직을 사임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코빈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코빈과 그의 지지세력은 이 투표가 당규에도 없는 의원단의 자의적 행동이라며 비난했고, 코빈은 당원들의 직접 선출로 뽑힌 당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제 의원단의 쿠데타는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코빈이 의원단의 공격을 받자 불신임투표가 있은 지 10일만에 코빈 지지자 10만 명이 당에 입당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코빈은 만약 자신에게 반대한다면 당수 선거에 나서서 붙어보자고 공세적으로 나왔다. 이미 1인1표제 하에서 코빈이 아닌 다른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이로서 새로 당수 선거가 치러지게 됐고, 9월 24일 코빈은 1년 전보다 상승한 61.8%라는 득표율로 당수에 재선출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향후 노동당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지점을 드러낸다. 코빈의 등장과 함께 노동당은 압도적인 신규당원 유입을 경험했고 이들이 코빈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있다. 반면 당조직과 의원단 등 기존 구조 역시 강력하게 당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 2017년 총선 직전까지 코빈의 득표력을 문제삼은 노동당 주류 의원들은 무엇보다 선거 참패로 인해 자신의 의석을 잃는 것을 걱정했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그다지 물갈이 되지 않았고, 노동당이 선전하자 당장은 코빈에 협력하겠다는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 이들은 자신의 보수적 태도를 다시 드러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선에서 선전한 이후, 코빈 노동당과 급진화된 노동자민중은 어디로 갈 것인가

보수당 총리 테레사 메이가 조기총선을 선언할 때까지 노동당의 지지율은 25% 대의 매우 낮은 수준이었고 보수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20%나 났다. 2010년 고정임기로 의회법을 개정한 이래 총리의 의회해산은 의원 2/3의 동의라는 매우 까다로운 요건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가 조기총선을 선언한 것은 이런 지지율 격차 속에서 EU와 탈퇴 협상에 앞서 확고한 의회내 다수당을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노동당 의원들이 선거참패를 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빈은 메이의 조기총선 제안을 즉각 받아들이고 이번 선거를 보수당 정권의 긴축에 반대하는 선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의회에서 대다수 정당이 조기총선에 동의함으로써 6월 8일 총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선거기간 메이는 코빈과의 논쟁을 회피하며 무기력한 선거운동으로 일관했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코빈은 대중에게 큰 호소력이 있는 선거강령을 제시하여 2015년 총선에 비해 득표율을 9.6% 포인트 끌어올렸다. 의석도 232석에서 262석으로 30석이 증가했다. 압도적 다수의회를 구성하려 했던 보수당의 의석은 331석에서 317석으로 감소했다(과반의석 326석에서 9석 부족). 결국 코빈의 공언대로 보수당 정권의 긴축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유민주당이 연립정부 불참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없게 된 보수당은 이번 선거에서 10석을 획득한 북아일랜드 기반 극우 정당 “민주적 연합주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코빈은 선거기간 노동권을 강화하고 공공지출을 확대하며 공적 산업의 재국유화를 약속했다. 철도는 정부와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재국유화하겠다고 말했고, 우정사업 역시 재국유화하겠다고 한다. 에너지 산업의 재국유화는 지방분권적 형태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발표했다. 신규주택을 1백만 호 공급하되 그 중 절반은 공공주택으로 짓고, 5천억 파운드 규모의 공공지출을 실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다른 세금에는 손을 안 대고 소득 상위 5%에 속하는 연간 소득 80,000 파운드(한화 1억1천만 원) 이상의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올리겠다는 것이 코빈의 계획이다. 다른 한편 극악하게 유연한 노동형태인 “영시간 노동계약”은 완전히 철폐하겠다고 한다. 그의 10대 공약은 다음과 같다.

완전고용 : 1백만 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모든 이에게 괜찮은 일자리 보장. 공영 국가투자은행 및 지역은행을 통해 인프라 및 산업에 5천억 파운드 투자.

주택보장 : 5년내 신규주택 1백만 호 건설. 그중 절반은 공공주택. 지대 통제.

노동안정 : 노동자에게 고용 첫날부터 강력한 고용권리 부여. 영시간 노동계약 철폐. 신규산업 단체협상권 도입. 직장에서 노동자 대표권 강화, 노조 할 권리 보장. 이주 노동 착취에 반대하는 조치.

안정된 NHS와 사회 돌봄 : 건강서비스 사유화 중단.

국민교육서비스 : 전생애에 걸친 새로운 국민교육서비스 건설. 보편적 육아 제공. 육아 분담 및 노동시장에 여성 참여를 막는 장벽 제거. 전면적 무상교육 복원.

우리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 : 파리기후협약 준수. 환경정책에 사회정의 결합. 저탄소 경제로 이행. 청정에너지 공급 및 가구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가격 인하.

공공부문 되돌리기 : 공공서비스 재건 및 민주적 참여 확대. 공공 및 지자체 서비스의 내주화. 철도의 공적 소유 전환 및 에너지에 대한 민주적 사회적 통제 강화

소득 및 부의 불평등 경감 : 부자와 고소득자가 많이 내는 공정한 조세체제 수립.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향상하고 성별 임금격차 축소.

평등한 사회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 : 모든 시민의 인권 보장 및 차별, 편견 근절

평화와 정의를 대외정책의 핵심에 놓기 : 공격적 개입전쟁에 대한 지지 중단. 난민 위기 해결을 위한 효과적 행동지지. 무역정책에서 인권과 사회정의 중시

참고 : http://www.labour.org.uk/index.php/10-pledges

이처럼 그는 국가개입을 늘리고 공적 소유를 확대하며 시장의 영역을 축소시켜 탈상품화하는 정책을 추구한다. 생산 영역에서 소유관계를 변화시키는 정책은 아직 핵심 공적 산업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소유관계의 변화보다는 불평등한 분배의 급진적 변화를 더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그의 정책은 이제는 많은 이에게서 잊힌 2차 세계대전 후 사민주의 정책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적 요구가 현재 영국의 노동자민중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며

지금까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코빈의 등장과 이번 총선 결과의 배후에는, 길게는 1980년대부터 지속된 신자유주의, 짧게는 2008년 자본주의 대공황으로 인한 영국 노동자민중의 삶의 조건 악화와 이에 대한 불만이 놓여 있다. (2) 영국의 경우, 노동자민중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기존 지배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기존 정치세력과 완전히 단절한 세력이 급부상하는 형태가 아니라 노동당이라는 기존 사민주의 정당 내에서 일관되게 대중투쟁에 결합하고 진보적 의제를 견지한 좌파가 대중의 지지를 얻어 당권을 장악하는 형태를 취했다는 것이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이다. (3) 코빈이 당수가 되는 과정에서 노동당에 신규당원이 대거 유입되고 대중운동이 활성화된 것은 희망적 요소이고 영국 좌파로 하여금 노동당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4) 코빈의 정치적 내용은 전통 사민주의라 할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 30년간 우경화된 정치지형, 피폐한 노동자민중의 삶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다른 한편 당내 신규당원의 대거 유입으로 당의 인적 구성이 변화하였지만 당주류는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향후 코빈의 노동당과 각성한 노동자민중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을 대신할 새로운 급진정당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게 여전히 필요할지, 아니면 이것이 지나친 좌익주의라고 생각하여 다시금 노동당이라는 우회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외부자인 우리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영국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그들 나름의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코빈의 등장이 대중운동의 진출을 촉발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 원인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노동당의 변화 역시 그로 인한 결과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코빈의 정책과 노선이 현실 속에서 대중들에게 갖는 의의뿐 아니라 그것이 지닌 사민주의적 한계도 아울러 인식하면서, 그것을 목적이 아닌 대중의 더 큰 진출과 급진화를 위한 계기로, ‘과도적 요구’로 삼는 게 필요할 것이다.

농민의 자식이라는 성장배경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싹 트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운동을 접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눈을 떴다.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 번역서로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2012), 『마르크스의 생태학』(201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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