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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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세계대회 개막 집회]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앞서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하였다. 이번 기사는 이 연재의 마지막 기사다. 그 동안 연재 기사에 대해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관심에 감사드린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기 위한 문제의식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

생태문제와 사회주의

여성억압 문제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노동자 국제주의

지난 글들에서 필자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을 때, 사회주의운동이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복원시키고 전면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가 새로운 사회주의경제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노동자 국제주의를 강조하려고 한다.

1. 노동자 국제주의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오랜 원칙이자 전통이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들이 있었지만 노동자 국제주의는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오랜 원칙이자 전통이었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제1인터내셔널 창립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이, 1863년 7월 22일에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런던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폴란드의 크라코프 반란 진압에 대한 항의와 폴란드 독립 요구를 위한 대중집회였다는 점이다. 이 대중집회를 계기로 인터내셔널에 대한 논의가 급진전되어 1864년에 제1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다. 창립 후 인터내셔널은 파업투쟁의 경험을 국제적으로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당시까지만 해도 자본가들이 파업시 빈번하게 사용하였던 파업파괴자 고용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또한 1868년 브뤼셀 대회는 다음과 같은 전쟁반대의 결의를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전쟁반대를 위한 국제적 노동자연대의 기초가 되었다.

브뤼셀에서 개최된 국제노동자협회 대회는 전쟁반대의 항의를 가장 역점을 두어 기록에 남긴다. 대회는 협회 산하에 있는 각국의 모든 지부,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모든 단체, 모든 종류의 노동자회합에 대해 전쟁을 막기 위해 가장 강력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오늘날 제민족간의 전쟁은 국내전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생산에 종사하는 동지들 사이에서 치러지는 것이고, 형제끼리, 시민끼리 싸우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회는 만일 자신들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노동자는 노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포스터, 『세계사회주의운동사』, 70쪽에서 재인용)

노동자 국제주의는 계속 강화되었다. 제1인터내셔널은 1876년에 해산되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연계는 계속 확장되었다. 여러 나라의 운동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였고, 다른 나라의 파업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것, 여러 가지 캠페인을 수행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사회주의신문은 다른 나라의 노동계급운동에 관한 정보의 전달범위를 늘려갔다. 형제 당들의 지도자에 의해 쓰인 기사들도 정기적으로 인쇄되었다. 이는 경험의 교환과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정신에 의한 노동자교육을 촉진하였다. 세계의 여러 부분들에서 군사적 충돌 위협에 대항한, 또 식민지 확장에 대항한 공동의 호소 및 공동성명들이 점점 더 자주 나왔다. 군국주의와 전쟁 위협에 대한 투쟁은 각각의 민족들에 속한 프롤레타리아트들을 단결시켰다. 신문, 사회민주주의당 의원들, 그리고 노동자 모임은 지배집단의 국수주의적 정책을 단호하게 비난했고 이러한 정책들의 반인민적 성격을 폭로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트국제주의에 대한 실행을 옹호했다. 이것은 1889년 창립된 제2인터내셔널에서도 초기에 계승되었다.

2. 기회주의와 사회국수주의에 의해 노동자 국제주의의 원칙이 무너져 제2인터내셔널은 붕괴되었다.

제2인터내셔널은 창립 이후 반군국주의, 전쟁 반대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 전쟁반대 결의에 압축적으로 잘 반영되었다.

대회는 지금까지 인터내셔널의 여러 대회에서 채택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한 제결의안을 승인하고,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투쟁과 분리될 수 없음을 여기에 거듭 선언한다.

……

만약 전쟁발발의 위험이 다가올 경우, 그 국가의 노동자계급과 그 의회대표의 의무는 국제 사무국의 통일적인 활동에 도움을 받으면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들을 사용하여 전쟁의 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한 수단은 물론 계급투쟁과 일반적 정치정세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그들의 의무는 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지향하여 간섭함과 함께, 전쟁이 야기한 정치, 경제적 위기를 이용하여 국민을 분기시켜 그것에 의해 자본주의적 계급지배의 철폐를 앞당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전쟁반대 결의는 1910년 코펜하겐 대회 결의와 1912년 바젤 대회 결의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들 결의들을 제2인터내셔널은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다. 1914년에 전쟁이 실제 발발하자 제2인터내셔널의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던 기회주의자들은 지금까지의 결의와 선언들을 종잇조각처럼 내팽개친 채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자국의 부르주아지를 따라 ‘조국방어’를 뻔뻔스럽게 외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국의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형제인 교전국의 노동자계급을 학살할 것을 선동함으로써 결국은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량살육의 장으로 내몰았다. 이들은 말로는 사회주의를 떠들면서 행동으로는 자국 부르주아지의 부르주아민족주의를 추종하여 노골적인 국수주의자인 사회국수주의자들로 전락하였다. 이로써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은 무너지고 제2인터내셔널은 붕괴되었다. 이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국수주의자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을 막지 못했고 대량살육의 장으로 내몰리게 되었으며 전쟁이 야기한 위기를 혁명의 계기로 곧바로 만들 수 없었다.

3. 사회국수주의자들의 배신으로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이 무너져 세계사회주의 혁명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국제주의를 배신하고 전쟁 찬성으로 돌변한 것은 아니었다. 소수이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세 차례의 국제 대회에서 채택된 제국주의적 전쟁에 대해 원칙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적 입장을 지키고 투쟁하였다. 세르비아 사회주의자들은 1914년 7월 31일 국회에서 임시군사예산에 반대투표를 하였다. 8월 8일 러시아의 볼세비키 의원들은 제4차 두마에서 임시군사예산에 반대하여 투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혁명적 선전을 행하였다.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Tesnyaks)은 1914년 7월의 대회에서 불가리아 부르주아지의 병합 기도를 비난하고, 그들에게 발칸 연방 공화국 요구로 반대하였다. 디미트로프는 국민 의회에서 불가리아 국수주의를 공격하였다. 12월 2일 독일 제국의회에서 리프크네히트가 제국의회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전쟁에 대하여 반대함을 선언하였다. 당시 국제적으로 이들은 소수였지만 어려운 조건을 구실로 타협하지 않고 매우 용감하고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적, 혁명적 흐름이 여전히 힘있게 살아있음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으며 이후 찜머발트 좌파를 구성하여 제3인터내셔널의 맹아가 되었다.

한창 제국주의 전쟁이 진행되는 중인 1917년 2월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하여 짜르체제가 붕괴되었다. 연이어 10월에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여 사회주의로의 이행시대가 실제로 시작되었다. 10월 혁명의 승리는 발전한 자본주의국가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혁명투쟁을 고양시켰다. 이 과정에서 1919년 3월 4일 제3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다.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과 제3인터내셔널은 훼손된 노동자 국제주의를 복원하였다. 제3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 노동자 국제주의를 복원하였는데, 이것을 조직 구조와 운영에서도 반영하여 민족주의적 타락의 온상이 되었던 제2인터내셔널의 느슨한 연합체를 탈피하여 민주집중제를 확립하였다.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 시대가 열려 세계사회주의 혁명이 일정에 올랐고 제3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지만 사회국수주의자들의 배신으로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이 많은 부분에서 무너져 세계사회주의 혁명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회국수주의자들은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자 이제는 노골적으로 자본가의 편에서 러시아 혁명을 비난, 반대하고 자기 나라에서 혁명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혁명세력을 탄압하는 등, 자본주의를 노골적으로 보호하는 반혁명 활동에 나섰다. 제2인터내셔널이 정치적으로 붕괴되었음에도 사회민주주의세력은 계속하여 제2인터내셔널을 유지하면서 혁명적 사회주의세력에 대항하며 세계혁명을 방해하였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지배계급과 협정을 맺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하였다. 유럽의 다른 나라 사회민주주의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그 결과 세계사회주의 혁명은 빠른 속도로 승리하지 못하고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러시아혁명과 서유럽에서의 혁명, 특히 독일에서의 혁명은 분리되었고 러시아혁명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의 많은 부분에서의 붕괴가 세계사회주의 혁명에 난관을 조성하고 자본가세력들이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고 반혁명 공세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사진: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레닌의 모습]

4. 허구적인 일국사회주의론

혁명당시, 러시아10월 혁명에 연이어 발발할 것으로 기대되던 서유럽, 특히 독일에서의 혁명이 실패하자 러시아 혁명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기대되던 선진국혁명의 러시아혁명에 대한 물질적, 정치적 지원은 좌절되었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혁명이 일어난 것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약한 고리였기 때문인데 후진국으로서 상대적으로 혁명이 일어나기 쉬웠던 러시아의 조건이,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자 거꾸로 혁명의 전진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는 조건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공산당의 다수분파는 일국사회주의론으로 대응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왜곡하였다. 일국사회주의론은,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한 나라 혹은 몇 나라에서 먼저 발생하고 이것이 확산되어 갈 수 있으며, 일국에서 혁명이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는 있지만 일국단위에서 혁명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강조한 부분은 레닌도 주장한 것으로 올바른 것이다. 레닌은 1915년에 쓴 「유럽 합중국의 슬로건에 대하여」에서 “경제, 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법칙이다. 이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 나라에서, 또는 단 하나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자신들을 위해 생산을 사회주의적으로 조직한 다음에, 나머지 자본주의 나라들에 맞서 들고 일어나 다른 나라 피착취 계급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자본가들에게 맞서 봉기할 것을 호소하며, 또 필요하다면 착취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맞서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일국단위에서 혁명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레닌은 10월 혁명 제3주년에 즈음하여 열린 모스크바 소비에트 회합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국제적 관점을 견지해야 하며, 사회주의 혁명과 같은 대의는 단 한 나라에서는 성취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라고 연설하였다. 일국사회주의론은 올바른 명제로부터 일국단위에서 혁명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잘못된 결론을 끌어내었다. 이러한 일국사회주의론은 불가피하게 소련 일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사회주의조국’의 방위를 국제적 연대에 우선하게 하고 여기에 국제적 연대를 종속시킨다. 그 결과 일국사회주의론은 자본주의세계체제와의 투쟁은 세계적 차원의 혁명이 승리해야만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 이탈하여 국제적 연대를 왜곡하고 무망한, 선진제국주의나라들과의 국가적 경쟁에 매몰되게 되었다. 이것이 소련에서 무리한 속도의 축적과, 폭력과 유혈이 낭자한 강제집산화가 강행되고 세계혁명을 위해 건설된 조직 코민테른이 소련외교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한 근본 이유이다.

구소련 등 현실사회주의나라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둘러싸여 선진제국주의 나라들과 경쟁하였지만 결국 붕괴되고 자본주의로 회귀하였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일국사회주의론의 허구성을 논란의 여지 없이 최종적으로 확인하였으며 노동자 국제주의의 왜곡이 사회주의운동에 얼마나 치명적 타격을 가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결산하게 하였다.

맺으며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역사로부터 우리는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의 훼손이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작된 세계사회주의 혁명에 난관을 조성하였으며 러시아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발생한 일국사회주의론이 매우 허구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는 노동자 국제주의의 원칙과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세기, 20세기와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현대에 고도로 진행된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따라 노동자 국제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사활적인 문제가 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은 본질적으로 세계혁명의 성격을 가지며 한 나라 혹은 몇 개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될 수는 있지만 전세계적 범위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 혁명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고립된 일국단위의 혁명은 고도로 세계화된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포위되어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강요당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주의운동은 이 교훈을 철저히 실천에 반영하여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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