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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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기사는 그 네 번째 기사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기 위한 문제의식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

생태문제와 사회주의

여성억압 문제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노동자 국제주의

지난 글들에서 필자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을 때, 사회주의운동이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복원시키고 전면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가 새로운 사회주의경제의 대안이 되어야 함을 밝히려고 한다.

1. ‘현실 사회주의’의 지시적, 명령적 경제체제의 대안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전에 제시된 시장사회주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실 사회주의’의 지시적, 명령적 경제체제의 대안으로 붕괴이전에 제시된 것이 시장사회주의였다. 그런데 시장사회주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이것은 관료들의 관료주의적 대안이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에서 밝혔듯이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한 핵심적인 원인은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었다. 관료들은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의 경제가 침체현상을 보이고 비효율이 심각해지고 민중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자 문제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 해결책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시장의 도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노동자민주주의가 아닌 시장에서 답을 찾은 것이었다. 이것은 기존체제의 골격을 유지하는 데에 이해를 갖는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관료들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장의 도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시장사회주의는 사회주의와 시장이라는 서로 배제하는 요소의 관념적 결합의 산물이며 따라서 작동하기 어렵다. 시장은 자본주의의 조절형태로서 사회주의와 서로 배제하는 성질을 가진다. 만약 시장사회주의가 강행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와 시장이라는 두 요소의 조화로운 결합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승리,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사회주의시장경제가 가져오고 있는 파멸적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중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로 회귀하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하고 있는 시장사회주의론자들은 시장을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와도 결합시킬 수 있는 어떤 중립적인 조절형태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잉여가치의 착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생산, 시장을 위한 생산에도 있는 것이며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는 이 모두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한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상품생산 중 후자는 놔두고 자본주의만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상품생산, 시장을 자본주의의 필수적 요소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상품생산과 시장을,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와도 결합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사회주의론자들은 사회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에 불과하다.

『자본론』은 상품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화폐, 자본, 잉여가치의 생산, 이윤, 이자, 지대의 분석으로 나아간다.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모든 자본주의적 범주의 출발점이 상품분석에서 도출된 가치, 가치형태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운동은 상품생산과 유통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상품생산과 유통 자체가 자본의 출현을 만들어내고 자본주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상품생산과 유통 없이는 자본은 운동할 수 없고 자본주의도 발생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잉여가치는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의 법칙의 틀 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만약 이 틀을 벗어난다면 잉여가치도 발생할 수 없다.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상품생산의 자본주의적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와 상품생산은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착되어 있다.

그런데 상품생산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물신성이다. 상품형태는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게 만드는데 이것이 물신성이다. 상품생산에서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 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 대면한다.”(『자본론』 Ⅰ, 53쪽) 그래서 생산자들은 자기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게 된다. 때문에 생산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사적 노동의 관계가, 자신들의 노동 자체에서의 개인들 사이의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게 되지 않고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을 참고하기 바람.) 상품물신성은 더욱 발전하여 화폐물신성, 자본물신성, 이자물신성, 지대물신성 등으로 이어져서 상품생산이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자들이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생산자들이 생산과 유통에 의해 지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유통에서 무정부성이 필연적이고 경제적 법칙이 인간을 지배하는 맹목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문제점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에 기초한 착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들이 생산과 유통에 의해 지배되는 전도를 야기하는 상품생산에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부정일뿐만 아니라 상품생산의 부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연장선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도 잘못 파악하여 사회주의가 상품생산의 부정이라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2. 지시적, 명령적 경제체제의 대안은 결합된 노동자 자주관리체들이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계획, 민주적 계획이다.

따라서 상품생산, 시장과 사회주의의 결합을 주장하는 시장사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에 존재하였던 지시적, 명령적 경제체제의 대안일 수 없다. 그 대안은 결합된 노동자 자주관리체들이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계획, 민주적 계획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는 원리상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사회적 소유를 실현하며 상품생산을 폐지하고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를 실현한다. 이것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계획, 민주적 계획이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관료주의적 계획이었다. 노동자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여 변질된 것과 병행하여 출현한 것이 관료주의적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노동자, 민중의 참여 없이 실제로 생산과 유통을 책임질 기업들의 참여 없이 전적으로 관료들에 의해 수립되고 집행되었다. 이것은 생산자들이 생산과 유통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다고 곧바로 전면적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과도기를 경과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소생산자양식, 국가자본주의 등은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 대체된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자국가에 의한 자본가 소유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통제이다. 과도기에 전자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에서 이미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이루어져서 생산이 사회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가 소유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후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그 이유는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통제가 상품생산의 법칙인 가치법칙에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생산자들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량은 관료주의적 계획으로 증대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실제로 생산의 주체로서 생산을 관리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을 조율하는 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훈련되는 것에 의해 증대된다. 이것은 노동자, 민중이 주체로 참여하는 민주적 계획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노동자, 민중의 참여 속에서만 노동자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듯이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통제도 노동자, 민중이 계획에 주체로 참여하는 것에 의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즉, 민주적 계획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대리주의가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을 가져오듯이 관료주의적 계획은 노동자, 민중의 참여를 막고 노동자, 민중의 소외를 가져오고 노동자, 민중은 말뿐인 주체로 남게 하고, 이것이 시간이 감에 따라 노동자, 민중이 적극성을 잃게 만들고 경제의 전반적 침체를 가져온다.

과도기에 시장과 가치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특히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 단계에서도 시장과 가치법칙이 존재할 수 있는가인데 ‘현실 사회주의’의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전에 시장과 가치법칙의 적극적인 도입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는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의 붕괴와 자본주의로의 회귀였다. 관료들이 실패한 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생산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생산력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침체현상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윤과 물질적 보상이라는 자본주의적 동기부여를 적극 도입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는 시기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대신 자본주의적 동기부여를, 이질적 요소를 적극 도입한 것이다. 결국 만개한 자본주의적 동기부여는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전에 진리로 간주된 교리들 중 하나는 사회주의 아래에서도 상품․화폐관계, 가치법칙이 존재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자본론』에서 맑스가 밝힌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밝힌 것에 의하면 가치법칙은 상품생산사회의 법칙으로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가치라는 범주 자체도 역사적인 범주로 어떠한 역사적 단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생산물은 더 이상 상품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 아래에서도 상품·화폐관계, 가치법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현실 사회주의’ 관료와 경제학자들의 왜곡이다. 이 점은 로만 로스돌스키가 그의 저작, 『마르크스의 자본론 형성』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로만 로스돌스키는 맑스가 「고타강령비판」에서 개별적 생산자가 어떤 양의 노동을 사회에 제공했다는 증명서를 사회로부터 받고, 이 증명서를 갖고 소비수단의 사회적 재고로부터 동일한 양의 노동이 지출된 만큼의 소비수단을 인출한다고 언급한 부분을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단순한 노동 증명서를 수취하는데, 그것의 유일한 목적은 사회적 분배를 노동 원리에 따라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가치 법칙이 작용할 여지는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상품 생산과 완전히 다른 생산형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서는 생산과 분배의 규제가 시장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의식적 통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구소련 및 소위 동유럽의 ‘인민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가치법칙의 작용의 문제를 다루어 봄직하다. 하지만 이 주제는 우리의 직접적 연구범위를 넘어선다. 또한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 러시아혁명기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인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저작의 명료함과 심오함에 견줄 만한 어떤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주된 논지는 공업적으로 후진적인 나라에서 반자본주의적 변혁은 과거의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가치법칙과, 이것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사회주의 계획 원리간의 지속적인 투쟁의 조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의 운명은 이러한 투쟁의 결과에 달려있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소비에트 블록의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가치법칙을 사회주의 분배원리의 지위로 격상시키고 있는데, 이는 그들을 프레오브라젠스키와 그의 동시대인들로부터 떼어놓고 있는 심연과 같은 이론적 거리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사회경제적 관계가 1917년 10월 혁명의 원래 목표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로만 로스돌스키, 정성진 역, 『마르크스의 자본론 형성』 2, 백의, 183, 184쪽)

로만 로스돌스키는 가치가 역사적 범주임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가치는 역사적 범주로서 상품소유자사회에서 노동의 사회적 기능의 특별한 표현양식이며, 그 때문에 가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소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로만 로스돌스키, 정성진 역, 『마르크스의 자본론 형성』 2, 백의, 331쪽)

과도기 사회 이후의 사회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 상품생산 사회에서 존재하던 가치는 사라지고 노동은 가치라는 대상적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직접 계산될 것이다. 즉, 노동생산물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직접 계산될 것이다. 생산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생산물들에 맞게 사회적 총노동을 배분하고 각각이 사회에 준 노동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받고 같은 양의 노동의 생산물을 받게 될 것이다. 민주적 계획은 생산자들이 사회적 총노동의 총량을 결정하고 필요한 생산물에 따라 적절하게 총노동의 분배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상품․화폐 관계는 불필요하고 노동시간은 직접적으로 투명하게 계산되게 될 것이다.

민주적 계획에 대해서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계획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민주적 계획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전사회 구성원이 참여하는 민주적 계획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 사회 구성원이 참여하여 결정해야 하는 것들은 중요한 사항들뿐이고 하위의 세부적인 계획과 결정은 각각의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세기 후반 이후에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민주적 계획을 과거와 비교하여 더욱더 용이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민주적 계획을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계획이냐 관료주의적 계획이냐이고 새로운 사회주의경제의 대안을 찾는 우리가 선택할 길은 바로 민주적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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