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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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소비에트 대회 전경]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기사는 그 세 번째 기사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기 위한 문제의식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

생태문제와 사회주의

여성억압 문제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노동자 국제주의

지난 글에서 필자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을 때, 사회주의운동이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복원시키고 전면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밝히려고 한다.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사회주의자들로 하여금 역사적으로 진행된 사회주의에 대해 철저히 재검토하고 교훈을 끌어낼 것을 요구하였다. 1990년대에 한국의 사회주의노동운동 역시, 구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을 검토하여 여러 가지 교훈을 끌어낼 수 있었는데, 이 중 핵심적인 것이 민주주의의 문제였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민주주의의 진전 없이는 사회주의는 발전은 고사하고 결국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논란의 여지없이 입증해주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대한 재조명과 이에 따른 실천이 사회주의자들의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언명의 수준에서는 사회주의라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실패한 사회주의의 대안으로서 위치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수준을 넘어서면 왜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에 필수적인지, 왜 자본주의에서 국가형태가 다양하게 존재해온 것과 달리 사회주의에서는 노동자민주주의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국가형태인지, 왜 ‘관료적’ 사회주의가 실제로는 사회주의가 아닌지, 왜 구소련 등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되었는지, 노동자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이 충분하게 규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검토하여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해보도록 하겠다.

1. 노동자민주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①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이유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회의 특성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 매우 다른 특성을 갖는다. 생산수단은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소유된다. 생산은 의식적으로 생산자들에 의해 통제된다. 이런 특징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성도 갖는다. 이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본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이전 사회와 비교하여 갖는 두드러진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가 실제로 내용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닌데도 분리된 형태로 나타나고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가령 봉건사회에서 봉건영주와 농노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관계, 경제적 관계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농노의 봉건영주에 대한 관계는 신분적 예속관계로서, 이 관계없이 봉건적 생산은 존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정치적 관계, 경제적 관계는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는 분리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자율성을 갖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치는 경제와 직접적으로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 역시 (시민)사회와 직접적으로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은 이전 사회와 비교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이 발생하는 것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가 갖는 특별한 성격 때문이다. 봉건사회에서 농노는 생산조건―주로 토지―의 사실상의 소유자, 점유자이다. 때문에 명목적인 토지소유자인 봉건영주가 농노로부터 잉여노동을 강탈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외적 강제가 필수적이며, 농노를 토지에 결박하여 토지의 부속물로 만드는 것과 신분적 예속관계가 봉건적 생산을 위해 필수적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봉건영주는 농노로부터 잉여노동을 강탈할 수 없을 것이다. 봉건사회에서의 농노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이중으로 자유롭다. 한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신분적 예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다. 다른 한편에서 생산조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생산수단을 박탈당하고 있다(노동자와 생산조건 분리의 과정이 자본의 본원적 축적 과정이다. 이 과정은 적나라한 폭력과 유혈의 과정이었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는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조건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며 생산은 자본가들의 지휘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생산물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음으로써만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재생산을 확보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제외적 강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되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외관상 ‘계약관계’의 모습을 갖게 되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상품거래관계’의 모습을 갖게 된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본질상 지배, 종속, 착취·피착취 관계임에도 외관상으로는 대등한 주체의 계약관계, 상품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용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님에도, 정치는 경제와, 국가는 (시민)사회와 분리된 외관형태를 취하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사적 소유의 보호, 자본축적에 유리한 조건의 형성 등으로 외관상의 분리와는 달리 (시민)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치 역시 외관상의 분리와는 달리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은 자본주의의 종식과 함께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서로 상호작용하고 서로 직접적으로 통일되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특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와 경제가 갖는 상대적 자율성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볼 경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되는 것을 사회주의 사회에 잘못 적용하는 것으로 실천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는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초래할 수 있는 파멸적 결과에 대한 경계심을 약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국가라는 동일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해왔다. 보나파르트적 형태의 국가, 파시즘 형태의 국가, 부르주아민주주의 형태의 국가, 군사독재 형태의 국가 등 다양한 형태의 부르주아 국가가 존재해왔다. 심지어는 극단적으로 역사상 프랑스의 왕정복고처럼 봉건적 형태의 국가가 다시 출현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들 국가 형태의 변화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수반하지는 않았다. 가령 군사독재를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대체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는 변함이 없었다. 부르주아민주주의를 파시즘이 대체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왕정복고가 발생해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봉건적 생산관계로 되돌아간 것도 아니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 사이에 상대적 자율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와는 그 구성 원리가 다른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발생할 수 없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어 정치에서의 변화는 경제의 변화를 가져온다.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형성은 노동자민주주의의 수립 이후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이 생산을 관리해 들어갈 때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때문에 노동자민주주의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형성의 조성자로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노동자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간다(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스스로를 지배계급의 지위로 높이고, 이 정치적 지배를 이용,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현하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토대로 노동자계급이 생산과 노동과정을 직접 관리해 들어갈 때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노동자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질, 왜곡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이것은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에 머물지 않고 생산관계의 변질로 곧바로 연결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와는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의 변화는 곧바로 경제의 변화를 초래한다. 이는 러시아, 구소련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일어나자(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곧바로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것이 급속하게 생산관계의 변질도 가져오고 다시 이러한 생산관계의 변질이 노동자민주주의의 가일층의 변질을 가져오게 된 이유이다.

②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그 자체로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를 담보하지 않는다.

소외된 노동이 사라지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주주의의 수립, 노동자관리, 노동자가 실제로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필수적인 요소로 한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여러 필요조건중 하나일 뿐이며 이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반드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를 담보하지 않으며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에서도 소외된 노동이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생산수단이 국유화되더라도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될 경우, 공산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은 국가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거꾸로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사회에 군림하는 국가의 지배대상이 되고,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관리가 실현되지 않고 노동자계급이 관료와 경영자의 지배 아래 놓이는 생산관계가 출현하게 된다. 그 결과 이러한 생산관계아래에서 소외된 노동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앞의 글에서 이미 언급한, 생산수단이 국유화되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는 조잡한 경제주의적 사회주의관은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같은 이유로 생산수단이 국유화되어 있다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고 사회주의에는 노동자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주의 형태와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관료적’ 사회주의는 혁명 없이 점차 개선되어 ‘민주적’ 사회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역시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사회주의는 그 본성상 오직 민주적 형태로만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고 ‘관료적’ 사회주의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관료적’ 사회주의는 조잡한 경제주의적 사회주의관이 만들어내는 허구적 환상일 뿐이다.

2. 러시아, 구소련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된 원인과 과정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변질되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가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관료가 지배하는 생산체제가 출현하게 될 뿐이며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로 회귀하게 됨을 보여준 생생한 역사적 사례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러시아, 구소련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된 원인과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비에트민주주의로 표현되는 러시아, 구소련에서의 노동자민주주의는 10월 혁명을 통해 출현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구소련에서 노동자민주주의는 초기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후퇴하기 시작했고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혁명이 일어난 것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혁명이 일어나기 쉬웠던 러시아의 후진적인 조건이,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자 거꾸로 혁명의 전진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는 조건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는 제1차 제국주의 세계전쟁에 참가한 제국주의 나라 중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다. 그 때문에 러시아는 혁명 발발 당시 농민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였고 생산력 수준도 낮았다. 또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이미 피폐해진 경제는 장기간의 내전과 제국주의 세력의 국제적 간섭으로 더욱더 피폐해졌다. 또한 볼셰비키들이 기대하던 유럽에서의 혁명이 지체되면서 선진국, 특히 독일로부터의 정치적, 물질적 지원은 현실화되지 못하였다(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으로 러시아혁명과 독일혁명의 분리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세계사회주의혁명은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이로 인해 내전에서는 승리하였지만 내전의 종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비에트권력은 붕괴 위기로 내몰리게 되었다. 불리한 객관적 조건에 더하여 주체적 요건도 매우 불리하였다. 우선, 러시아의 후진성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고 10월 혁명을 가능하게 할 만큼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매우 선진적이고 혁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가 혁명 후 발발한 내전에서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의 공업생산의 붕괴와 기근을 피한 농촌이주로 노동자계급은 ‘농민화’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계급은 계급으로서 ‘해체’되고 있었다. 문제의 보다 심각한 측면은, 노동자국가를 수립하고 생산수단의 국유화 조치를 취했지만 국가의 운영과 노동자관리를 실행하는 데서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자치 역량이 극히 취약한 상태에 있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역량이 매우 낮았기 때문인데 이것은 관료주의의 대두를 가져왔다.

불리한 조건이 가장 먼저 초래한 것은 급속하게 공산당의 ‘대리주의적 실천’이 강화된 것이었다. 내전기간 중 소비에트는 점차 형해화되고 계급을 대신하여 당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내전이 종식되었지만, 전시공산주의 시기의 식량 강제징발에 반발하여 농민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소비에트 권력의 붕괴 위험은 오히려 높아지게 되자 공산당 일당제가 강화되었다. 이후 러시아에서 공산당과 경쟁할 정치세력은 더 이상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사태를 더욱 더 악화시킨 것은 유일한 합법정당이 된 공산당 내에서 위기상황에서 당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당내분파형성권의 일시적 정지라는 중대한 당내민주주의 제한조치가 취해진 것이었다. 당내분파형성권의 일시적 정지는 치명적인 오류였는데, 그 이유는 공산당이 유일하게 합법정당이 된 조건에서 공산당 내 당내민주주의는 그 중요성이 더욱더 높아졌음에도 이 조치로 오히려 약화되고 이 조치가 이후 영구적 조치로 고착화되어 당내 다수분파가 소수분파를 연속적으로 배제, 억압하여 당내민주주의를 빠른 속도로 파괴해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를 수단으로 1923년 스탈린,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등으로 구성된 다수분파는 레닌의 경고(레닌, 「레닌의 유언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로츠키 소수분파를 배제하고 이후 스탈린, 부하린 다수분파는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소수분파를 배제한다. 다음에는 스탈린 다수분파가 부하린 분파를 배제하여 스탈린 분파는 모든 분파를 배제하고 1920년대 후반 당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고 스탈린주의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1920년대 배제된 분파들과 지도적 인물들은 레닌과 똑같이 이 조치가 도입될 당시 이 조치가 갖는 위험성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당내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는 배제된 분파들이 당내민주주의의 파괴가 야기할 위험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여 이 문제를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상호간의 노선투쟁(공업화, 부농에 대한 태도 등)에 몰두하다가 자신들이 철저히 무력화된 뒤에서나 뒤늦게 자신들이 당내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단결해야 했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던 데에서 잘 나타난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혁명 발발 당시 가장 민주적인 노동자국가 형태를 보인 소비에트는 형해화되고 1920년대 후반 노동자민주주의는 완전히 변질되었다.

생애 마지막 해인 1922년, 23년에 쓰인 레닌의 저작들은(「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정치보고」,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 「국가계획위원회에 입법기능을 부여하는 것에 대하여」, 「일기장으로부터의 페이지들」, 「협동조합에 관하여」, 「우리의 혁명」, 「어떻게 우리는 노농감찰부를 재조직해야 하는가? 제12차 당대회에 보내는 권고」, 「적더라도 더 나은 것이 낫다」) 당시 당에게 닥친 난제를 해결해가려는 레닌의 절박한 고민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글들이다.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특히 난제 중의 난제로 등장한 관료주의 문제에 대한 레닌의 대응책의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 레닌의 대응책의 적극적인 의의는 그가 관료주의의 출현의 근거를 관료들의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공산당원, 노동자계급, 인민의 낮은 문화수준에서 찾고 문화혁명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레닌은 주체조건의 취약성 때문에 국가운영과 생산에서 관료주의와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현실을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레닌의 이러한 인식은, 관료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관건은 관료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노동자, 민중의 자치능력의 고양이라는 것으로 우리는 현재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해내야 한다. 레닌의 대응책의 한계는, 그가 소비에트민주주의의 발전과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이 훈련되는 것을 통해서만 노동자, 민중의 자치능력이 고양될 수 있다는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당시의 열악한 조건에 강박되어 소비에트민주주의의 형해화에 커다란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으며, 일당제와 당내민주주의의 제한에 대해서도 그다지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당제와 당내민주주의의 제한을 긴급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옹호하기까지 하였다. 대신 그가 관료주의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출한 것은 앞서 지적한 문화혁명과 노동자계급 출신의 중앙위원 수를 대폭 확대하는 것과 노농감찰부를 재조직하고 노농감찰부와 당 중앙통제위원회의 융합을 강화해야 한다는 수준의 협소한 것이었다. 역사가 전개될 대로 전개되어 소련의 붕괴라는 역사까지를 직접 경험한 우리가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레닌의 대안은 관료주의의 발흥을 막을 수 없는 매우 옹색한 것이었으며 소비에트민주주의의 형해화라는 중병에 대수술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안이한 대증요법을 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레닌과 러시아공산당이 당시의 열악한 조건과 비상사태라는 조건에서 커다란 문제의식 없이 취해간 공산당 일당제와 소비에트다당제의 파괴, 당내민주주의의 제한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이후 영구적인 것이 되었으며 왜곡된 노동자민주주의는 이후 역전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완전히 변질되고 말았다.

[사진: 1920년 5월 레닌이 전선으로 떠나는 병사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3.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변질되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가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가 출현하게 될 뿐임을 보여주었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은 곧바로 사회 전체의 변질을 초래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맑스, 엥겔스, 『공산당 선언』)로 발전하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과정은 관료적 전제 아래 놓이고 당과 국가, 특히 당이 자립하여 사회 전체에 군림하는 사회를 만들어 내었다. 그 결과 지배피지배관계와 억압은 새로운 형태로 다시 출현하였으며 전체주의적 야만이 발생하고 노동자, 민중은 명목상의 주체일 뿐 지배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은 노동자민주주의의 부단한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며, 노동자민주주의의 발전 없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가 아니라 관료가 지배하는 공동생산체제만을 가져올 뿐이다. 러시아와 구소련의 역사적 경험은 이를 비극적인 모습으로 입증해주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은 내부에서 스스로를 변혁시켜갈 수 있는 능력, ‘자기정정력’ 자체를 갖지 못하는 특이한 사회를 만들어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는 결국은 자본주의로 회귀하게 된다.

노동자민주주의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과정에서 열악한 조건을 이유로 비상조치로서 일시적으로 유보했다, 조건이 유리해지면 언젠가 다시 도입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민주주의의 후퇴와 ‘대리주의’의 출현은 공산주의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피지배관계와 새로운 억압을 창출하며, 이의 재생산에 이해를 갖는 새로운 지배층을 만들어내어 이들에 의해 공산주의 사회의 발전은 저지, 억압된다. 노동자민주주의의 일시적 유보는 이들에 의해 영구적 유보로 고착화된다.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못지않게, 아니 생산수단의 사회화보다도 몇 백배나 중요하게 노동자민주주의의 발전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과정에서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일시적으로라도 포기, 유보될 수 없듯이, 일시적으로라도 포기, 유보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심화발전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으며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은 곧바로 사회주의의 실패로 이어진다. 어떤 세력도 노동자계급을 대신, 대리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없으며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엥겔스, 『공산당 선언』 1890년 독일어판 서문) 그리고 투쟁 속에서 자치능력을 발전시켜 가는 노동자계급과 민중만이 미래의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노동자민주주의의 발전과 변질의 방지를 위해서는 콤뮨과 소비에트의 경험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 노동자통제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가야 하고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끊임없이 확대해가야 한다. 이것만이 자신을 대표하는 자들이 노동자들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배신하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 스스로가 사회관리의 주체로 나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이 앞으로 이러한 과제를 얼마나 풍부하게 실천해 가는가에 미래의 사회주의의 성공과 발전이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는 데에서 핵심을 이룬다.

이상에서 밝힌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다음의 구절들에 잘 압축되어 표현되고 있어 이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스스로에 의하여 획득되어야 한다.

– 1864년에 창립된 제1인터내셔널의 규약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

– 엥겔스, 『공산당 선언』 1890년 독일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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