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억압 문제와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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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 대안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기사는 그 두 번째 기사다. 뒤이어 게재되는 기사 2편―‘생태문제와 사회주의’, ‘여성억압 문제와 사회주의’―은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이라는 시각에서 생태문제, 여성억압 문제를 바라보는 글이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기 위한 문제의식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운동

생태문제와 사회주의

여성억압 문제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으로서의 사회주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생산자들의 의식적 통제

노동자 국제주의

여성억압 문제에 있어서, 인간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은 특히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이제까지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는 사회주의를 계급억압 문제만을 해결하는 사상으로 협소하게 이해하고, 여성억압 문제를 계급억압 문제와 기계적, 병렬적으로 결합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경향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는 여성억압 문제도, 계급억압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가 많이 지적되었다. 한편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는 여성해방운동의 급속한 고양이 있었는데, 이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주체들은 ‘여성억압의 근원은 무엇인가?’, ‘여성억압과 계급억압 등 다른 억압의 관계는 무엇인가?’와 같은,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이 잘 답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은 여성억압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이 요구되고 있는 시기다.

보편적 인간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런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 및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의 관계, 여성해방의 전망은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 운동의 총체성 속에서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유물론은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맑스주의의 이론인 역사유물론은 물질적 생산의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인간 사회의 발전은 생산의 변천과 관련이 있다.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생산을 해야 하지만, 그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역사유물론은 “일정한 방식으로 생산 활동을 하는 개인들은 일정한 사회, 정치적 관계들을 형성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런데 역사유물론은 생산 개념을 통해 단지 사회의 경제적 관계만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유물론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사회적 삶의 생산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즉 역사유물론은 경제활동에 대한 협소한 설명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모든 측면들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도 포함된다. 역사유물론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발전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포착한다. 뒤에서 자세히 살피겠지만 인간 역사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평등했던 사회가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런데 어느 역사적 시기에 다다르자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고 지배당하는 사회가 출현해 지금까지 존속해왔다. 이런 일이 발생한 배후에는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까?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해 역사유물론은 인간의 물질적 생산이 변화한 것이 그 이유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역사유물론이 생산의 변천을 통해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가설이 아니라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19세기 중반 이래로 맑스와 엥겔스는 여남이 평등한 ‘원시 공산주의’ 사회의 존재를 입증했고 생산의 발전에 따라 여성의 억압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까지 평가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다양한 인류학자들이 맑스와 엥겔스의 주장과 대동소이한 입장을 계속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는, 역사유물론을 계급문제, 사회의 경제적 관계만을 파악하는 이론으로 축소, 왜곡시킨 후 여성억압을 그것과 분리된 별도의 틀로 설명하자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었다. 가령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과 계급억압 중 어느 하나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여성억압 체제인) 가부장제 대 (계급억압 체제인) 자본주의, (여성억압의 영역인) 재생산 대 (계급억압의 영역인) 생산 등의 이원론적 체계를 내세웠다. 하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원론은 여성억압 문제와 계급억압 문제를 기계적, 병렬적으로만 결합시키는 한계를 보였을 뿐 아니라, 여성억압의 근원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아감에 있어서는, 여성억압 문제를 바라볼 때 역사유물론에 대한 왜곡 및 그에 기반한 이원론을 극복하여야 하며, 역사유물론의 강점을 활용하여 여성억압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야 한다.

생산의 변천으로 인해 출현한 차별적·억압적 성별분업이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이다.

수렵채집 사회 및 초기농업 사회에는 지금과 같은 여성억압이 존재하지 않았고, 여성과 남성은 평등한 관계를 맺었다. 인류학자 엘리너 버크 리콕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972년판 서문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여성도 동등하게 참여하고, 남편이 부당한 대우를 하면 아내들은 굳이 참을 필요가 없이 바로 떠나 버리거나 친척들을 부를 수 있었던 사례를 언급한다.

당시에 성별 노동분업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여성은 주로 채집을 담당하고, 남성은 주로 수렵을 담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인류 역사 초기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은 오늘날의 불합리한 성별 노동분업과 달리 차별적이거나 여성억압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 이 시기 성별 노동분업은 맑스가 말한 대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지배를 반영”하는 ‘자연적 분업’에 해당한다(린다 번햄·미리엄 루이, 「불가능한 결혼」).

결과 면에서도 이 시기 성별 노동분업은 여성에게 억압적이지 않았다. 여성들은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남성과 대등한 발언권을 가졌다. 이는 여성이 주로 하는 일이 사회적 생산에 남성과 동등하게 혹은 남성 이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렵채집민들의 주된 식량은 여성들의 채집으로 얻어지는 식물성 식량이었고, 수렵으로 얻어지는 육류는 보충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약 1만 년 전에, 유랑하던 수렵채집민들이 정주하여 경작을 하기 시작하는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 서서히 일어나서 초기 농경사회로 이행했을 때도, 여전히 주된 식량은 괭이나 뒤지개로 경작하는 여성의 농업노동에서 나왔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그런데 생산력이 발전하고 중농업 사회로 이행하면서 과거에 사용하던 농기구(괭이, 뒤지개)보다 신체적 근력을 보다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농기구(쟁기)와 가축이 사용되는 등 농업 기법의 전환이 발생하였다. 이는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근력이 약한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것을 보다 어렵게 만들었다. 동시에, 수렵채집을 하며 유랑생활을 할 때는 출산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생존에 유리했지만, 이와 달리 초기농업 사회부터 점차 정주생활을 하게 되자 굳이 출산을 제한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과거보다 많은 시간을 임신 상태로, 혹은 수유를 하며 보냈다.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여성들은 서서히, 사회적 생산에서 남성에 비해 부차화되었다. 사회적 생산에서 남성의 노동이 여성의 노동보다 중요성을 갖게 됨에 따라 성별 노동분업은 여성에게 억압적인 것이 되었다. 요컨대 생산이 발전하여 중농업 사회로 접어들자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이 변화한 것이 여성억압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차별적·억압적 성별 분업이다.

생산의 발전은 여성억압을 출현시킴과 동시에 잉여생산물과 사유재산을 출현시켰고 이는 계급과 국가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주된 식량생산자가 남성이기에 잉여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것 역시 남성이었다. 이에 따라 지배계급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가구 단위의 생산과 소비를 지휘하여 잉여생산물을 지배자들에게 바칠 책임을 부여했다. 그러다 보니 부계제, 부처제, 부권제가 자리 잡아 남성이 가구 및 혈통 집단 내에서 지배계급을 위한 잉여 생산과 자원 배분을 통제하게 되었다. 이는 가부장제 가족구조의 강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서 평등주의적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혈통집단 공동체는 점차 붕괴되어 갔고 계급억압 역시 강화되었다.

이와 같이 계급억압은 여성억압과 같은 시기에 출현하였으며, 두 억압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엥겔스 역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역사상 등장한 최초의 계급 적대는 일부일처제 결혼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적대 발전과 일치하며, 최초의 계급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즉 계급억압과 여성억압 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것이 아니라, 두 억압의 발생이 시기적으로 일치하며 두 억압이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급의 등장뿐 아니라 여성억압의 등장도 생산의 변천 속에서 설명될 수 있으며, 여성억압의 문제는 생산의 발전 속에서 계급문제와 함께 총체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여성억압에 기반을 둔 체제인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여성해방이 가능하다.

계급억압은 여성억압과 상호작용하며 서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배를 확립, 유지하기 위해 여성억압을 적극 활용했다. 자본주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여성억압과 관련되어 자본주의를 파악할 때 우리는 어느 하나만 일면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여성억압에 기반한 체제라는 측면과 동시에 여성해방의 물적 토대를 놓은 측면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억압하는 동시에 생산력을 발전시켜 여성이 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 여성들은 기계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과거에는 근력 차이를 이유로 남성들만 맡던 직업을 충분히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은 계급사회에서는 최초로 사회적 생산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분명히 여성억압에 기반한 체제다. 자본주의는 이윤추구라는 자신의 목적에 맞게 그전부터 존재하던 여성억압을 이용하고 강화했다. 가령 자본가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핑계로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던, ‘여성의 본령은 가정’이라는 여성억압적 이데올로기를 활용하는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만의 고유한 여성억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본주의 아래서 여성억압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뿐만 아니라 ‘노동자’로서도 이중으로 억압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여성의 처지를 두고 사회주의자들은 “이중의 부담”이라고 불러왔다.

이중의 부담 속에 놓인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등 남성 노동자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서 점하는 지위가 낮은 것은 상당 부분, 자본주의 생산 동학과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사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노동자들로부터 생산과정,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점점 빼앗아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때문이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며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지휘,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 노동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가 수유 등의 이유로 쉬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그 필요를 전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처럼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중단 없이 일할 수 있는 남성에 비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되고, 이는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을 낳는다.

요컨대 자본주의에서는 생산력의 발전으로 차별적, 억압적 성별분업을 없앨 물적 토대가 마련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적, 억압적 성별분업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있다. 또한 여성들이 가정폭력이나 직장 내 성폭력 등 억압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이유고 그 배경에 바로 자본주의 체제가 있다는 점에서도 자본주의는 여성해방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따라서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자본주의의 핵심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대체해야 한다.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적 과제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여성억압을 낳은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성별분업을 없애는 길을 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여성억압을 제거하고 여성해방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적극 보장되어야 한다. 이미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의 근력을 상당 부분 대체하였기 때문에 그 물적 토대는 조성되었으나, 아직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고 성별에 따른 직종 분리도 존재하며 성별 임금격차도 크다. 이런 현실을 대거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두 번째로, 가사노동이 대폭 사회화되어야 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위에서 말한 여성의 사회적 생산 참여를 보장하여 여성을 이중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개별 가정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가사노동의 경우 성별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분담하는 문화를 의식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세 번째로, 여성의 임신․출산 가능성이 여성의 사회적 생산 참여를 가로막거나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가 실질적인 보장을 해야 한다. 사회주의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생산 참여와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이 여성에게 억압적인 상황을 일으키는 일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없애기 위한 문화혁명을 의식적으로 전개해가야 한다. 자본주의 철폐 그 자체로 곧장 여성해방이 도래하지 않는다. 여성해방은 그것을 위한 사람들의 의식적 투쟁을 통해 쟁취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차별적 의식이나 문화에 맞선 투쟁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 속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를 건설한 이후에도 계속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나가며

사회주의는 단지 계급억압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 일체를 모두 철폐하고자 하는, 보편적 인간해방사상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실제로 여성억압이나 민족적 억압 등 계급억압 이외의 다른 억압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투쟁해 왔다. 여성해방운동에서 중요하게 기념되는 3. 8. 세계 여성의 날도 클라라 체트킨이 제2인터내셔널 여성 사회주의자 협의회에서 당시의 여성 선거권 쟁취에 협력하고자 국제적으로 ‘여성의 날’을 기념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시작된 날이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운동이 인간해방운동이라는 점은 이제까지 충분히 부각되지 못하였고, 사회주의 운동은 계급착취만을 다루는 운동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어 왔다. 이제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잡아감에 있어 사회주의 운동의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사회주의 운동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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