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양보와 타협을 설교하는 “사회협약”을 거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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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촛불민중에 의해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적폐청산과 사회통합이란 구호를 양손에 들고 당선된 그에게 정치권과 언론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사회적 대타협과 협치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듯이 취임 며칠 뒤 비정규직 간접고용 문제가 심각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다 받아내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해나가자”고 호소했다.

같은 날,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통령이 새 정부 구성과 노동정책 수립 과정에서 노동계와 적극적인 대화에 나설 것이라 약속한 점을 환기시키며 노·정 교섭을 제안”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 유관기관 명단에는 자본가 측 대리기구들만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두고 사회적 대타협과 사회통합에 민주노총이 적극 나설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정규직이 양보하는 사회적 대타협?

단순히 노자 대결구도로만 갈게 아니라 적절히 타협과 협조를 구하자는 주장은 언제부터라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오랫동안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주장이 부쩍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이 타협과 협조를 설파하는 대표주자다. 그의 생각은 대선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써 온 칼럼들에 잘 나타난다. 그는 5월 15일 매일노동뉴스 칼럼에서 “수구보수세력의 방해를 뚫고, 또 이런저런 계급계층 갈등을 수렴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사회적 합의”라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민 여론을 통합시켜야 법제화도 가능하고 개혁을 진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석호는”사회협약 체결운동을 제안한다”라는 제목의  3월 6일 매일노동뉴스 칼럼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사·정부뿐 아니라 불공정·양극화로 고통당하는 청년·노인·여성·자영업자 등이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협약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양대 노총의 평균임금이 전체 노동자의 상위 20%에 달하는 만큼 이들은 나머지 80% 노동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즉 “매년 평균 임금 인상분 3~4% 정도의 절반가량을 떼 낸다면 5년 내 공정사회기금 수 십 조원을 조성할 수 있”고 “이 기금으로 영세 하청업자나 비정규직 청년,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시 감당이 어려운 자영업자 등을 지원”하여 “정규직이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태도로 국민들에게 진실된 울림을 주자”는 것이다.

정리하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비정규직 등 각종 노동문제 해결에 앞장서서 사회적 교섭력을 키우면 정부와 기업도 호응할 것이란 맥락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자본가 측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융합상생포럼 3차 심포지엄에서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산업화와 민주화 성공으로 탄생한 세력이 기득권층이 되면서 한국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로 상징되는 이들 기득권층이 변해야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이사장은 네덜란드 노사정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줄인 ‘바세나르 협약’과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줄이며 실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스웨덴 ‘렌-마이드너 모델‘ 등을 사례로 들었다. 매일경제가 “민주노총 내부에서 변화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인물”로 한석호를 칭찬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네덜란드와 스웨덴을 보라고?

그러나 현실은 그의 주장과 배치된다. 높은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 해소와 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바세나르 협약’의 결과 네덜란드의 고용률 자체는 개선됐지만 반대로 노동시장이 급속히 유연화됨에 따라 2013년 기준 전체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였다. 사실상 안전하고 질 높은 일자리와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로 노동시장이 이원화 되었고 청년층과 저학력자가 큰 피해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의 경우는 더욱 난망한데, 우선 산업 및 사회구조에 있어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한국에 스웨덴 모델을 무조건적으로 대입시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스웨덴 모델을 가능케 한, 축 중 하나인 LO(스웨덴 노총)는 70%를 넘는 조직률을 가진 총연맹이었으나 한국의 양대 노총은 합쳐도 10%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산별협상이 전통으로 자리 잡은 스웨덴에 비해 한국은 기업별 노동조합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임금 동결과 복지기금출연은 오히려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스웨덴 모델은 우리에게 사회 협조주의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웨덴 모델을 이끌었던 스웨덴 노동조합과 사민당 정권은 거대 독점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 경제적 성장모델을 사회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 현상 유지를 조건으로 계급타협을 추구했다. 그 대신 성장의 몫을 분배하는 복지정책에 힘을 썼는데 이러한 분배정책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부담시키는 바, 누가 얼마만큼 낼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결과적으로 계급 간 격차보다 동일 계급 내의 분배에 골몰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실업자와 취업자 등 수혜계층과 부담계층으로 양분화 되어 오히려 노동계급 내 단결의 약화와 분열이 야기됐다.

예컨대 1950년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수출중심의 금속산업자본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와 중에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건설노동자들과 수출기업소속의 저임금 금속노동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이런 갈등국면은 나중에는 수출기업 자본가그룹과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자본연합을 맺고, 전투적인 건설-고임금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요구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부문 남성노동자들이 민간부분 사용자협회 SAF 및 사민당정권과 연합하여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발단은 생산성이 낮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금속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웨덴 총연맹인 LO의 금속노조가 민간부문 사용자 협회인 SAF-사민당정권과 손을 잡고 공공부문 노조를 민간부문에 기생하는 집단이라고 비판하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상훈, 「스웨덴 모델의 역사와 신자유주의화」, (pp.154-155)

양보와 타협의 프레임을 거부하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만큼의 몫을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그 몫이 누구로부터 나와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실업자든 취업자든 이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지 고민할 때 우리는 자본과 노동이 동일한 이해관계에 놓여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잔업과 야근, 특근과 휴일근무에 시달리면서도 같은 노동자를 귀족노동자라 부르고 강성노조라 부르면서도 왜 자신의 임금을 움켜진 자본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지 그 원인을 고민할 때 비로소 현실의 차별과 억압이 누구로부터 기인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촛불대선으로 적폐세력이라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 및 수구세력이 주춤함에 따라 독점자본의 문제와 청년실업 등 경제현안을 둘러싼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폭발 직전인 노동자민중의 분노를 의식하고 자본의 이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일정부분의 사회적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한 계급관계를 보지 않고 기존 조직노동자의 선제적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은 결코 같은 선상에 위치해 있지 않으며 엄연히 한 쪽은 다른 한 쪽의 잉여노동을 통해 자신의 부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그와 같은 기울어진 저울추에서의 양자 타협과 협조주의가 현실에서 궁극적으로 누구의 희생과 책임을 야기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정규직이 좀 더 세금을 내고 정부와 자본이 거들고 비정규직이 혜택을 받는, 겉보기에 서로 윈-윈 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회 협조주의의 결정적인 한계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자본의 착취라는 근원적 모순을 지워버린다 데 있다. 노동자민중의 삶이 위태로워진 건, 경제가 위기에 빠진 건 임금과 노동환경, 경영방침 등을 결정하고 몇 백 조원의 사내보유금과 배당이익을 챙기면서도 위험은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자본의 착취 때문이다. 사회적 양극화와 청년실업, 정규직-비정규직 등의 모순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앞선 자본과 노동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기에 앞선 개별적 모순을 지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본의 이윤추구를 비판하고 나아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구조를 바꿔 내야 한다.

2 댓글

  1. 힘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이 이기적인 자신들만의 임금인상투쟁에 집착한 결과 노동계급내 분열을 초래했다
    제발 앞으로의 투쟁이 자본 착취율을 높이는 원하청관계와 그 간접고용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계급이익을 위해 싸울 때에 이런 불필요한 논쟁이 사라질 것이다

    • 글을 제대로 안 읽은 건지, 아니면 애초에 물타기가 목적인지 모를 댓글이다.
      글에서는 억압과 착취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고 결국 체제를 바꿔나가는 운동이 필요한데
      사회협약 운동(?)은 그런 건 개나 주고 일단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만 하기에 문제라는 거 아닌가?

      솔직히 힘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만 조합주의로 흘러가나? 그럼 민주노총 내 나머지 노동조합은 계급관점에 투철한가?
      정규직 까는 인간들 치고 노조 실명 거론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왜? 진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으니까.
      진짜 이기적인 자들이 있으면 내놓고 까야지 왜 그러질 못하나? 이쯤되면 정규직 까는 걸로 자기 입장 정리하는 것 밖에 더 되나?

      정말 문제를 해결할 요량이면 정규직이 잘했니 비정규직이 잘했니가 아니라, 누가 조금 내놓고 누가 조금 양보하고 따위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삶이 고통받는 이유가 어디로부터 기원하는지부터 따져야 할텐데 사회협약 주장하는 자들이 그에 대해 내놓은 답이 뭔가?

      없다. 경제위기가 어디서 오는지도 답하지 못한다. 그래놓고 정규직이 양보하면 될 문제라고? 누굴 속여 먹으러고 그러나.
      정규직 노조가 제 잇속만 차리고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있으니 비판해야 한다면서 자본가랑 타협하자는 작자들이야말로 악질이다.

      위에 댓글 단 이는 불필요한 논쟁이라 적었는데, 사회협약 운운하는 것만큼 불필요, 아니 불성실하고 책임못질 이야기도 없다.
      한 가지 더, 원하청관계는 장기불황 국면에서 자본의 이윤율을 지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억압이다.
      그런데 불황국면에서 자본은 노동자의 임금 역시 하락시키려 하는데 이때 기존의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후려치는 것보다
      노노갈등을 통해 어느정도 안정된 노동자 집단의 임금을 후려치는 걸 선호한다. 왜?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으니까.
      그런 국면에서 노동자가 먼저 양보를 해야 한다고? 속이 훤히 보이는 이야기다. 괜히 매경이 칭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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