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의 진보세력은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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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세력 전반은 오랜 기간 무기력 상태에 빠져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폭포수 밑의 물웅덩이에 빠진 사람이 물 회오리에 갇혀 이로부터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이, 진보세력은 무기력과 침체의 수렁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격화되고, 노동자, 민중의 삶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있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보세력이 예리하게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고 활기차게 투쟁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진보세력은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한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진보세력은 어떤 내부의 약점을 안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진보세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가? 이글은 이것을 밝히려는 글이다.

1. 진보세력이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직도 많은 진보세력이 진보 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몰락은, 자기기만에 빠져 현실의 인정을 거부하는 일부 ‘진보정치 활동가’를 제외하고는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정치는 일시적 침체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몰락하였다. 그리고 진보정치가 몰락한 이유는, 진보정치·진보운동이 자본주의의 위기, 양극화가 격화되는 시기에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를 제외하곤 우경화 일변도의 길을 걸다가, 급기야는 자유주의 세력과 야합하여 통합진보당이라는 사이비 진보정당을 창당하는 배신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이 글의 직접적인 목표가 진보세력이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진보정치의 몰락이유는 이 글에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소책자 『왜 진보정치는 몰락했는가』에 실린 필자의 글,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를 참조하기 바란다). 즉, 진보정치가 몰락한 이유는 급진화가 요구되는 시기에 진보정치 세력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우경화일변도로 나아가다 급기야는 우경화 정도가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과 야합하여 정당을 창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고속도로에서 자신이 가야할 길로 차를 모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다 아예 길 바깥으로 튀어나간 꼴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사회 현실의 10여년의 흐름을 최소한의 감수성만이라도 갖고 직시하면, 무슨 대단한 노력 없이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진보세력은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활동가들이 현재의 무기력상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는 있지만, 무기력상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진보정치·진보운동의 몰락 원인을 이른바 “종북패권주의”, “분열”에서 쉽게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활동가들은 “종북패권주의세력”이 뒷전으로 밀려난 현재에도 무기력 상태가 사라진 게 아니라 계속되는 이유를 전혀 고민하지 않거나, ‘놀라운 단결’을 보여준 통합진보당의 창당이 오히려 치명적인 몰락을 초래한 주요한 계기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눈을 감고 있다. 분열되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분열 전부터 변질되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제 와서 이미 변질된 세력을 끌어 모아 ‘단결’해본들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이다. 아직도 ‘진보대통합’, ‘진보대통합당’이 무기력 극복의 주요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세력이나 사람들은 초보적인 사실인식능력조차 상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몰락의 근본 이유조차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 이것이 진보세력이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2. 두 번째 이유는, 사이비 진보세력이 진보정치를 이탈하여, 배신한 후 여전히 진보로 자처하며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창당은 우경화를 넘어 자유주의세력과 함께 하는 사이비 진보정당을 창당한 것으로서 진보를 이탈하여 진보를 배신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내 반대파와 진보신당내 반대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을 창당한 세력은 2012년 총선 직후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이들이 이미 진보세력이 아니었음에도, ‘진보정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이 때문에 통합진보당 창당에 나선 세력은, 진보정치·진보운동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배신세력으로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이들의 배신자로서의 본질은 그 난리를 친 통합진보당사태 이후 이들 중 어느 누구 하나도 나서서 통합진보당 창당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이들 중 통합진보당 잔류파는 이후 전개된 대대적인 종북몰이에서 고립되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을 강요당하였다. 다른 한편 정의당 창당세력은 종북몰이의 물고를 튼 후, ‘나는 종북이 아니라’라는 태도로 반동적인 종북몰이를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찬성까지 함으로써, 지배계급이 갖고 노는 사이비 진보정당으로 완전히 전락하였다. 그 결과 현재 존재하는 정의당은 실제로는 진보정당이 아니며,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을 팔아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배신자들의 정치집합소에 불과하다.

그러함에도 현재 정의당은 진보정당임을 자처하며 마치 진보정치가 살아 있고 자신이 진보정치의 ‘대표’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언론들은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호명하며, 정의당을 진보정치의 대표격으로 열심히 포장해주고 있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임을 자처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의당이 명백한 배신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내에서 고립되지 않고 마치 진보정치 세력의 일원인 것처럼 활보할 수 있는 현실이다. 즉 배신자가 배신자로 지탄받고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게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대표’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이것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진보세력 전반이 심각한 지경의 오염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진보운동이 배신자를 분별하여 이들을 정리할 기운마저 상실하고 내부적으로 심각한 오염 상태에 있는 것이고, 이것이 무기력상태를 끝없이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보충하여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정의당이 노동자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당이 진보세력내에서 여전히 진보세력으로 행세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민주노총 등 진보운동내 존재하는 과거의 같은 파벌 출신 활동가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앙파로 알려진 이들 그룹 출신 활동가들이 정의당이 고립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의 다수는 이미 노동운동내 협조주의세력으로 변질되어 있는데, 이들과 정의당은 서로를 비호하고 있다.

정의당이 진보세력으로 행세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을 비판하는 세력들이 이들과 명확한 경계선을 치고 투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의당을 비판하지만, 그리고 어떤 때는 정의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규정하지만, 이를 일관성 있게 적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쓴 글에서 어떤 때는 정의당을 진보정당 중의 하나로 언급하기도 한다. 가령 사회변혁노동자당의 당원인 김태연은 당의 기관지 『변혁정치』26호에 실린 글 「노동자정치세력화_진보정당통합 추진의 문제점」의 첫 문장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에서 단결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때문에 정의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여러 정당으로 존재하는 진보변혁진영의 정치운동이 어떻게 단결을 이루어 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라고 하며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서서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포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다.

요즈음 영화에 자주 의열단이라는 항일독립운동세력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의열단이 척결 대상으로 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친일파들이었다.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에 비추어 영화에서 과도하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어떻든 의열단이 일본제국주의자뿐만 아니라 친일파를 척결 대상으로 한 것은 친일파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민중의 항일독립의지에 손상이 가해지고, 일본제국주의에 협조하는 세력이 조선 내에서 확대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진보운동의 배신자들에 대한 경계선이 명확히 쳐지지 않는 것은 진보운동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배신자가 활보한다는 것은 그만큼 진보운동이 안으로부터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들이 활보하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진보세력의 무기력 상태는 그만큼 더 연장될 것이다.

3. 세 번째 이유는, 진보세력이 사상적,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2008년 이후에는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가 고조되고,이 위기가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탄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요동도 없이 10여 년간 진보정치가 우경화일변도의 길만 걸어간 것은, 진보정치·진보세력 지도부는 물론 활동가 대부분이 자본주의 질서내의 체제내적인 의식에 안주하면서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투쟁할 의지가 박약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 대부분이 진보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자부하지만, 실제의 의식을 파고들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의식, 부르주아적 의식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어려운 말을 쓰면, 활동가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당연시하는 부르주아적 범주들이다. 활동가들이 상품물신, 화폐물신, 자본물신에 빠져있는 범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상품생산사회에서는, 인간인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물건인 상품들 사이의 관계로 뒤집혀 나타난다. 이것이 상품물신성이다. 이것이 화폐물신성으로 발전하고, 이어서 자본이 이윤을 내는 것이 당연시되는 자본물신성으로 발전한다. 결국 이 모두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착취를 은폐하고, 물신성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켜, 자본주의체제를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즉 머릿속은 진보적인 범주·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인 자본주의적 범주·개념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형성되기 어렵다. 활동가들은 자신이 체제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체제 내에서만 사고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만연한 상태에서 진보세력 다수가 심각한 문제의식 없이 우경화일변도로 간 것이고, 급기야는 자유주의세력과 야합 합당하고 자유주의세력과의 야권연대에 목을 매는 노골적인 자유주의세력 추종으로 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도 활동가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투쟁할 의지가 약하며 관성적이고 고루한 의식에 머물고 감수성이 매우 둔감한 상태에 있다

이처럼, 부르주아지의 사상적, 정치적 영향력 아래 놓인 진보세력의 상태가 무기력 상태를 연장시키고 있다.

4. 네 번째 이유는, 사이비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세력이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사이비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세력이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창당이 배신이라며 이를 비판한 세력은 다양하였다. 비판세력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밖에서뿐만 아니라 두 당 내에서도 있었다. 정의당 창당 이후에는 노동당 내에서 정의당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에 통합진보당 창당을 비판하고 정의당 합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정의당으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김세균이나 양경규 같은 사람도 합류했다. 이런 속물적인 행태가 나타난 것은, 이들이 겉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는 듯이 주장했지만 실내용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아직도 진보정치·진보운동의 몰락 원인을 제대로 모르는 자들로서 전형적인 헛똑똑이 속물들이다. 이들은 원래부터 사이비진보세력과 정치적 내용에서 별 차이가 없는 세력으로서 오래전부터 진보세력의 무기력에 일조하던 세력이라 그다지 심각하게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세력은 반자본주의를 주장하고 나아가 사회주의를 표방하기까지 하는 세력인데, 정작 이들 세력도 무기력상태에 빠져 있다. 왜 이들 세력조차 그 동안 힘 있게 성장하지 못하고 똑같이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가? 왜 이들마저 진보운동세력의 무기력상태를 끝장내지 못하고 이에 일조하고 있는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앞서 인용한 글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에서,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이를 말로만 주장하고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같은 내용을 표현만 조금 달리하여 다시 쓰는 것보다는 이를 인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인용한다.

진보정치와 진보운동 전반이 변질되면서, 또한 종파주의가 만연하면서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진보운동 전반은 매우 혼탁한 상태이다. 활동가들의 의식도 심각하게 기회주의로 오염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기존 진보정치, 진보운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흐름과 정세에 대한, 새로운 운동 주체의 인식이 명료해야 한다. 또한 목표도 분명하고, 패기와 인내, 투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운동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점이 뚜렷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평론가적 비판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기존 진보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의 다수가 전자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에 대해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당을 적극적으로 창당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위로서 역할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비판자체에 안주하면서 그 반사이익으로 자기 주변의 세력을 유지확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는 이런 운동을 알리바이성 운동이라고 지칭하는데 이 알리바이성 운동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럭저럭 운동을 지속하는 수준의 운동이다. 이런 운동은 어느 정도 재생산을 이룰 수는 있으되, 혼탁할 대로 혼탁해진 진보정치를 정리하고 새로운 운동을 역동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내실을 살펴보면, 비판하고 있는 세력과 많은 점에서 유사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패거리주의와 종파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갖고 있다. 기존 진보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념과 정치노선이 불분명하다. 사회주의를 자주 언급하지만, 정작 사회주의활동은 하지 않는다. 강령에 사회주의라는 말은 있지만, 자신을 명백히 사회주의정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정성결여 때문에, 몰락한 진보정치를 정리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운동과 세력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이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려 하기보다 기회주의를 비판하면서 내가 기회주의와 다른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수준으로 행동하는 알리바이성 운동,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주의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주의 선전·보급활동도 하지 않는 것,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할 생각은 실제로 없으면서도, 강령에는 사회주의를 넣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고, 이것이 진보운동의 무기력 상태를 연장시키고 있다. 또한 이런 진정성 없는 태도 때문에 앞서 인용한 것처럼 사이비 진보운동 세력을 비판하면서도 이들을 진보정당으로 분류하는 이중적인 행태가 나타나는 것이고, 그 결과 사이비 진보세력에 대한 명확한 경계선이 쳐지지 않고 진보운동 전반이 이들과 뒤섞여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기력과 침체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 내고 진보운동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상에서 진보세력이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보운동·진보세력을 변혁해야 할 정도로, 진보세력이 변질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몰락원인도 모르고, 사이비 진보세력이 버젓이 활보하고, 부르주아지의 사상적·정치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으며, 사이비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세력조차 진정성이 없는 진보세력은 이미 그 생명력을 다 소진한 것이다. 따라서 그 생명이 다한 진보세력을 일부 재편, 규합해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필요한 것은 기존의 낡은 진보운동과 철저히 단절하여 새로운 진보운동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출발점은 운동의 기본방향을 사회주의로 확고히 확립하고, 진정성 있게 사회주의 활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의 경험이 입증하듯이, 자신의 지향점을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로 분명히 하지 않는 어정쩡한 진보운동은,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격화되는 사회의 양극화 속에서, 갈수록 그 성격이 애매해지고, 우경화로 변질되어, 종국에는, 진보를 이탈, 자유주의추종세력, 자유주의세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있으나마나한 운동으로 무력화되다, 결국은 자본의 편에 서는 운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10여년의 경험은, 사회주의운동 이외의 진보운동은,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갈수록 존재이유가 불분명해지고, 결국은 변질되어 버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진보운동은 자본주의 내에 안주하는 운동, 지배계급이 쳐놓은 낡은 틀에 안주하는 운동에 머물다가, 철저히 몰락하였다. 이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진보운동은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자기의 확고한 이념으로 하는 사회주의운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것만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무기력상태로부터 진보운동을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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