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노동과 자본』, 노동자와 자본가는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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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www.epicurus.kr/]

『사회주의자』는 중요한 사회주의 고전을 소개하는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글들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고전을 직접 읽어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꼭지입니다.

“사회주의 선전보급”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목표입니다.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위해 다양한 기획과 연재를 진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는 지금까지 맑스와 엥겔스가 역사유물론의 핵심을 최초로 정립한 『독일 이데올로기』와 1848년 유럽 혁명 직전 “공산주의자동맹”의 정치적 강령으로 쓰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공산당 선언』을 다뤘다. 이제는 맑스의 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책은 바로 『임금노동과 자본』이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관계인 임금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임금노동과 자본』이 쓰인 배경

『임금노동과 자본』은 1847년 12월 하순 맑스가 브뤼셀 독일노동자협회에서 행한 강연이 모태가 되었다. 이 강연은 1849년 4월 5일부터 11일에 걸쳐 『신라인신문』에 기사로 게재됐다. 1870년대 이후 맑스주의가 유럽 노동자계급 운동의 지도이념으로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설명이 담긴 『임금노동과 자본』이 단행본의 형태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공산당 선언』에 대한 기사에서 설명했듯이, 맑스는 1845년 초 프랑스 정부의 추방명령으로 말미암아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그는 경제학 연구를 지속하면서도 본격적인 공산주의 정치활동에 돌입했다. 그는 1846년 2월 브뤼셀 “공산주의교신위원회”를 결성했다.

교신위원회는 공산주의자들 간의 서신왕래를 통해 각 지역의 소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사상을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서신을 조직적으로 교류하는 조직형태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넘어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낯설지만, 당시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프랑스 혁명기 자코뱅이 이러한 “교신위원회”를 결성했었다. 영국의 노동사가 E. P. 톰슨은 1796년 결성된 “런던교신협회”를 최초의 노동자 정치조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맑스가 주도해 만든 공산주의교신위원회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최초의 조직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공산주의교신위원회는 결성당시 이미 독일뿐 아니라 영국의 차티즘 운동이나 프랑스의 사회주의 운동과 다양한 접촉을 하고 있었고, 훗날 의인동맹과 합쳐 공산주의동맹을 결성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하기 위한 단체를 만든다. 이미 영국 런던에는 “독일노동자교육협회”가 만들어진 터였다(이 협회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직후 영국정부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근 7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1847년 8월말 브뤼셀에도 런던의 “교육협회”와 유사한 “독일노동자협회”를 만든다. 그들은 이런 협회가 공산주의 선전을 공개적으로 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고,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 중 가장 성숙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공산주의동맹”의 회원으로 조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일노동자협회”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저녁에 공산주의 이론과 시사적 문제에 대한 강연과 토론, 문화행사 등을 주최했다. 두 달이 지나자 회원 수가 100명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독일노동자협회”의 활동은, 노동자의 대한 교육과 선전이 오랜 역사를 지닌 사회주의 운동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활동임을 보여준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바로 이 협회에서 진행된 강연의 내용이었다.

한편 두 달 후인 1848년 2월 프랑스에서 시작된 혁명이 독일로까지 확산되자, 맑스와 그의 동료들은 독일로 되돌아가 독일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쾰른에서 6월 1일부터 “민주주의의 기관지”란 부제를 단 일간지 『신라인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서 있었지만 당면 독일혁명의 성격은 민주주의 혁명이었기 때문에, 다른 민주주의 세력들과 동맹하여 완전한 민주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한편 독일 사회에서 갓 등장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전재된 것이었다.

간추린 역사유물론

책에서는 중간 부분에서 거론되는 내용이지만, 역사유물론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부분부터 언급하고자 한다. 역사유물론을 짧은 문장으로 매우 잘 간추렸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임금노동과 자본이 영구불변의 존재가 아닌 역사적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설명보다는 맑스의 글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생산 속에서 인간들은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서로서로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자신들의 활동들을 서로 교환하는 속에서만 생산한다. 생산하기 위하여 인간들은 서로 일정한 연관들 및 관계들을 맺으며, 또 이러한 사회적 연관들과 관계들 속에서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 생산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산자들 서로간에 맺어지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 즉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활동들을 교환하고 생산이라는 공동행위에 참여하는 조건들은 당연히 생산수단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

개인들이 그 속에서 생산을 행하는 사회적 관계들, 즉 사회적 생산관계들은 따라서 물질적 생산수단들, 생산력들의 변화 및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고 변모한다. 그 전체성 속에 있는 생산관계들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들, 사회라고 칭하는 것을 형성하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에 있는 어떤 사회, 특유한 구별되는 성격을 갖고 있는 사회를 형성한다.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부르주아 사회는 그러한 생산관계들의 총체들이며, 이 생산관계들 각각은 동시에 일류 역사에서 특수한 발전 단계를 가리킨다.

자본 또한 하나의 사회적 생산관계이다. 그것은 부르주아적 생산관계 즉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관계이다.

임금노동과 자본 관계의 핵심, 착취를 설명하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임금에 대한 일반적 규정을 반박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글을 시작한다. 이 일반적 규정에 따르면, 임금은 “자본가가 일정한 노동시간 혹은 일정한 노동의 제공에 대하여 지불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맑스는 이것이 단지 “가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돈을 받고 자신들의 노동을 파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노동자가 파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것이다. 임금을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로 보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핵심일뿐 아니라, 맑스의 잉여가치론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 교환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노동가치론에 입각해 상품생산과 교환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데 투여된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동일하게 투여된 노동시간에 입각해 서로 다른 상품이 교환된다(등가교환). 임금을 “노동의 대가”로 볼 경우 노동가치론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한다. 바로 이윤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노동자가 자신이 일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모두 받는다면, 그리고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투여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면, 마지막으로 이 상품이 서로 등가교환된다면, 자본가가 가져가는 이윤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임금을 “노동의 대가”로 보는 순간, 한편에서는 자본가의 이윤은 생산이 아닌 영역에서 부등가 교환을 통해 발생하는 것을 보는 문제가 발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맑스는 임금을 노동의 대가로 보는 게 “가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자본주의와 물신성』을 참조하기 바란다.)

맑스는 임금은 겉으로는 노동의 대가인 것처럼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노동력의 대가라는 점을 규명했다. 즉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구매하는 것은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인 노동력이고, 이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과 이 노동력의 사용을 통해 생산되는 가치는 별개라는 점을 밝혔다. 노동력을 생산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생존을 유지하여 계속 노동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노동력의 생산비인 임금은 결국 노동자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합이다. 맑스는 이 비용으로 우선 “노동자를 노동자로 유지시키고 그를 노동자로서 훈련시키는 데 요구되는 비용”을 든다. 그 다음으로 “노동자의 생존 및 번식 비용”을 든다. 이렇게 결정된 임금은 “임금의 최소치”를 구성한다.

자본가는 구매한 노동력을 실제 생산과정에서 노동하게 함으로써,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이상의 가치를 생산한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가 그가 소비한 것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축적된 노동에 그것이 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얻는다.” 이처럼 노동력은 자본주의의 다른 상품처럼 사고 팔리지만, 다른 상품과 다른 특수한 속성, 바로 가치 창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노동력 생산비만을 지불한 후, 노동자를 노동시켜 이 노동력 생산비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본가는 노동력 생산비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사이의 차이를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는데, 이것을 바로 ‘착취’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 기초한 사회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맑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이 관계의 핵심은 바로 착취에 있다는 점을 밝힌다. 이로 인해 분명하게 도출되는 결론은 바로 자본주의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 기초한 사회라는 점이다. 맑스는 『임금노동과 자본』 중반 이후의 내용을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 데 할애한다.

앞서 인용했듯이 맑스는 자본을 “인류 역사의 특수한 발전 단계”에서 등장한 “사회적 생산관계”로 규정했다. 일정한 생활수단, 노동도구, 원료 등이 자본이 되고, 일정한 양의 상품과 교환가치가 자본이 되는 것은 특수한 사회적 관계가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맑스는 “직접적인 산 노동에 대한 축적된 과거의 대상화된 노동의 지배가 축적된 노동을 비로소 자본”으로 만드는데, “노동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계급의 존재가 자본의 필수적 전제”라고 말한다. 임금 노동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자본의 가치 증식이 불가능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맑스는 “자본은 임금노동을 전제하고, 임금노동은 자본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취에 기반을 둔 만큼 호혜적 관계가 아니다. 자본은 자신의 가치를 증식하기 위해 노동자를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서로 대립적이다. 자본의 이해관계가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똑같다는 자본주의 변호론자의 주장에 대해 맑스는 “자본과 임금 노동은 하나의 동일한 관계의 두 측면”으로, “마치 고리대금업자와 낭비하는 사람이 서로서로 제약하는 것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제약한다”고 비웃는다. 그리고 이윤과 임금은 “반비례 관계”에 있어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임금노동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생산력이 급속히 발전하여 생활수단의 가격이 하락함으로써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경우에조차, 이러한 대립적 관계는 변화하지 않는다. 맑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 자본가가 더 사게 판매함에 의해서 다른 자본가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자본을 약탈할 수 있다. 파산하지 않고 더 싸게 판매할 수 있으려면 더 싸게 생산해야만 한다. 즉 노동의 생산력을 가능한 한 제고해야만 한다. 그러나 노동의 생산력은 무엇보다도 먼제 확대된 분업에 의해, 기계의 전면적인 도입과 지속적 개선에 의해 제고된다.” 이렇게 생산력이 발전하여 자본이 급속히 증대하면 이윤 역시 급속히 증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윤은 노동의 가격, 즉 상대적 임금이 그만큼 감소할 때에만 급속히 증대될 수 있다. 명목임금, 즉 노동의 화폐가치와 더불어 실질임금이 동시에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이 이윤과 같은 비율로 오르지 않는 한,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의 수입도 늘어나지만,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를 갈라놓는 사회적 심연도 커지며, 또 노동을 지배하는 자본의 힘,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도 커진다.” 결국 노동자에게 가장 좋은 경우에서조차 노동자계급은 “황금사슬”에 묶여 있을 뿐인 상태가 될 뿐이다.

그러나 생산력의 발전은 이런 경우보다 임금을 하락시키는 더 큰 경향을 발생시킨다. 맑스는 분업이 증대되면 노동은 단순화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로 인해 “노동이 불만스럽고 지긋지긋해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경쟁은 커지고 임금은 내려간다”고 말한다. 기계의 도입 역시 같은 효과를 낸다. 이것은 “이제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전보다 4배나 많은 노동자들의 생활이 사용”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요컨대 맑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낸다.

생산자본이 성장할수록 분업과 기계 사용은 더욱더 확대된다. 분업과 기계의 사용이 확대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더 확대되며, 그들의 임금은 더욱더 줄어든다.

이러한 내용들은 훗날 『자본론』 1권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란 내용으로 보다 체계적으로 다뤄지게 된다. 핵심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더라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대립은 변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마치며

자본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과학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본론』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은 매우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 때문에, 맑스주의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곧장 읽기에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자본론』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할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임금노동과 자본』을 읽는 게 바로 그런 방도이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맑스가 직접 노동자 대중을 대상으로 쉽게 쓴 글이고, 분량도 짧다.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적대적 대립 위에 기반을 둔 계급사회이고, 이 대립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만약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꼭 『임금노동과 자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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