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회주의의 입문서,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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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는 중요한 사회주의 고전을 소개하는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글들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고전을 직접 읽어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꼭지입니다.

“사회주의 선전보급”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목표입니다.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위해 다양한 기획과 연재를 진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1848년 혁명의 실패, 그리고 반혁명의 등장으로 유럽의 노동운동은 한 동안 잠잠해졌다. 영국에서는 맑스와 엥겔스가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당이라고 규정했던 차티스트 운동이 실패하여 노동자 계급의 운동은 부르주아 개혁세력에 기대는 방식으로 퇴보했다. 프랑스에서도 나폴레옹 3세 집권 이후 노동운동이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독일은 산업 성장과 함께 노동운동 자체가 막 발전 도상에 있었다. 게다가 185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는 유례없는 호황과 성장을 누리고 있었다.

이 시기 맑스는 혁명운동에 성마르게 참여하기보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명하는 정치경제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런던 대영박물관 도서관은 맑스의 주무대였다. 맑스의 연구는 큰 진전을 이뤄 1859년에는 상품과 화폐를 주제로 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출간했다. 한편 이 시기 엥겔스 역시 운동에서 일시 물러나 호구지책을 위해 맨체스터에 있는 방직회사, “에어멘 앤드 엥겔스”사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곳은 엥겔스의 아버지가 페터 알베르투스 에어멘이란 사람과 동업해서 세운 회사였다. 엥겔스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이주할 때까지 이 회사에서 20년간 일을 했다.

엥겔스, 노동운동 일선에 다시 서다

엥겔스는 1870년 9월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맑스가 있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는 맑스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20년간 수많은 편지를 통해 의견을 나눴던 그들은 이제 매일 쉽게 만나서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공동의 사상을 형성해갈 수 있게 됐다. 1870년 10월 4일에는 맑스의 추천으로 제1인터내셔널(정식 명칭은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에 선출되었다.

엥겔스가 총평의회에 참여한 시기는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난 시기였다. 7월 19일 발발한 전쟁은 9월 1일 프랑스 나폴레옹 3세와 그 군대가 세당에서 포로로 잡히는 것으로 귀결됐다. 전쟁은 끝났고 나폴레옹 제국은 몰락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을 촉발시켰다. 항복을 거부한 파리 민중은 프로이센에 대한 저항을 이어갔고, 이것은 프랑스 지배계급과의 처절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바로 최초의 노동자국가인 파리코뮌이 1871년 3월 18일 등장한 것이다. (파리코뮌에 대해서는 이미 「『프랑스 내전』: 맑스, 노동자 국가를 논하다」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파리 코뮌은 패배했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착취와 압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스스로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고 한 맑스의 사상이 현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제 노동운동의 고양은 노동자의 정치권력 획득을 목표로 한 정치운동으로까지 나아가야 했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는 파리코뮌 이후 노동자들의 정치운동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실천방향을 잡아갔다. 이를테면 파리코뮌이 패배한 후 몇 개월 안 되어 열린 제1인터내셔널 런던대회에서는 “노동자계급 정치활동에 관한 결의”가 채택됐고, 1년 후 헤이그 대회에서는 이 결의를 규약에 삽입하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 규약에 따르면, “이렇게 노동자계급을 정치권력으로 구성하는 것은 사회혁명과 그것의 궁극적 목적인 계급 폐지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정치권력의 획득은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의무가 되었다.”

한편 파리코뮌이 패배하고 제1인터내셔널이 반동세력의 탄압, 바쿠닌주의자들의 종파투쟁 등의 요인으로 해산된 후 맑스는 정치활동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일부 학자들의 경우 이때부터 맑스가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맑스가 아직 못 마친 정치경제학 연구를 심화시키면서도 초기 인류사회 연구 등 인류학과 자연과학 분야로 자신의 연구를 확장시킨 시기였다. 이런 맑스의 연구내용은 방대한 규모였고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맑스가 뒤로 물러난 자리를 채운 것이 엥겔스였다. 그는 1870년대 중반부터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하면서 힘차게 성장하고 있던 국제 노동운동의 중요한 조언자가 되었다. 우리가 다룰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은 이 시기 엥겔스가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반뒤링론』, 과학적 사회주의 확립을 위한 사상투쟁의 결과물

애초 이 짧은 책은 통상 『반뒤링론』이라 불리는 더 큰 분량의 책 중 일부를 발췌하여 만든 것이다. 『반뒤링론』의 정확한 제목은 『오이겐 뒤링씨의 과학 변혁』이다. 이 책은 1877년 1월 3일부터 1878년 6월까지 사회주의노동자당(자세한 내용은 「「고타강령 초안 비판」: 짧은 비판에 담긴 사회주의의 핵심」을 볼 것)의 기관지 『전진(Vorwärts)』에 연재한 기사를 묶어 1878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반뒤링론』은,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오이겐 뒤링이라는 사람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변호사였던 그는 1864년부터 베를린제국대학 사강사로 강의하면서 『국민경제와 사회주의의 비판적 역사』, 『철학 과정』, 『국민경제학과 사회경제학 과정』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는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조차 “과대망상증과 맑스에 대한 사무치는 질투”라고 평가할 정도로 맑스의 사상을 비판했고, 철학부터 자연과학, 사회·역사이론,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에 이르는 자신만의 전일적 체계를 수립했다. 그의 사상은 요컨대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이자 도덕적 개량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에 와서는 맑스와 엥겔스 덕분에 아직까지 기억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오이겐 뒤링은 1870년대 중반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내에 막강한 지지자를 확보했다. 요한 모스트, 프리드리히 프리츠셰, 루이스 피어렉,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등 당내 주요 인물들뿐 아니라 아우구스트 베벨도 뒤링을 지지했다. 한때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조차 뒤링의 사상에 흔들렸다. 심지어 뒤링 추종자들은 1877년 고타에서 열린 당대회에서 뒤링을 비판하는 엥겔스의 논문 출판을 저지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엥겔스의 뒤링 비판 연재 기사들을 기관지 『전진』의 주요 지면이 아니라 과학부록으로 싣기로 하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는 엥겔스의 비판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나 그 의의를 축소하려는 시도였다.

엥겔스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보았고, 1877년 당대회 몇 개월 후 리프트네히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통합 이후부터 도덕적 지적 퇴보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맑스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1877년 10월에 보낸 한 편지에서 맑스는 “독일에서는 부패한 정신이 우리 당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고 “베를린에서는 사회주의에 ‘더 높은 관념론적’ 지향을 부여하길 바라는, 다시 말해 …… 유물론적 토대를 정의, 자유, 평등, 우애의 여신들로 이루어진 근대적 신화로 대체하려는 미숙한 대학생과 너무나 총명한 대학원생뿐 아니라 (모스트를 통해) 뒤링과 그의 ‘숭배자들’”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뒤링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것은 독일의 노동운동을 넘어 성장 중인 국제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도 심각한 문제였다. 당시는 국제적으로 노동운동이 크게 성장하면서 정치운동으로까지 발전해가고 있는 시기였다. 네덜란드에서는 1870년, 덴마크에서는 1871년, 보헤미아에서는 1872년, 미국에서는 1876년,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1879년에 노동자 정당이 창당되었다. 이렇게 노동자 정치운동의 시작 단계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을 훼손하는 사상과 투쟁하는 한편 노동자의 올바른 사상을 확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바로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엥겔스가 뒤링 비판에 나선 것이었다.

『반뒤링론』은 맑스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쓰였다. 1876년 5월말 맑스와 엥겔스는 함께 논의하여 뒤링 비판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엥겔스는 맑스에게 뒤링 비판의 전반적 개요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정치경제학’ 편 중 마지막 장 ‘『비판적 역사』로부터’는 맑스가 직접 작성했다.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필요해진 과학적 사회주의 입문서

『반뒤링론』은 뒤링의 전일적 이론 체계를 비판하다보니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맑스와 엥겔스가 정립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내용을 폭넓게 서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다양한 영역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종합적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책이 『반뒤링론』이다. 그러나 이렇게 포괄적인 내용이 담긴 두꺼운 책이다 보니 일반 노동자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당시 노동운동이 급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주요 내용을 쉽게 익힐 수 있는 입문서가 매우 필요했다.

1880년 맑스의 사위이자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자 폴 라파르그의 요청에 따라, 엥겔스는 『반뒤링론』의 ‘사회주의’ 편의 세 장을 소책자로 편집하여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프랑스어 판을 출판했다. 맑스의 서문이 달린 프랑스어 판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로부터 매우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은 엥겔스는 1883년 독일어 판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폴란드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루마니아어, 영어 등으로도 번역 출판됐다.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은 이미 엥겔스 생전에 널리 읽혔고, 『공산당 선언』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힌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이 되었다.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의 주요 내용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은 한 마디로 사회주의가 어떻게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은 노동자계급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초창기 사회주의를 설명한다. 자본주의 초창기 공상적 사회주의가 출현한 이유에 대해 엥겔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미성숙 상태, 미성숙한 계급 상황에 미성숙한 이론들이 조응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인물로 프랑스의 생시몽, 푸리에와 영국의 오언을 든다.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은 “18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계몽주의들이 세워 놓은 원칙” 다시 말해 영원한 이성(그러나 이 이성은 “부르주아로 발전해 가고 있던 중간 시민들의 이상화된 이성”에 불과했다)의 “계속적 진행, 이른바 더 일관된 진행”을 주장했다. 이미 『공산당 선언』에 대한 기사에서 다루었듯이, 과학적 사회주의 출현 이전의 노동운동은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더욱 철저하게, 부르주아만이 아닌 인류 전체에 적용하는 것을 추구했다. 또한 공상적 사회주의는 “진정한 이성과 정의가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 것은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진리가 인식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발전의 연관 때문에 필연적으로 산출된 불기피한 사건이 아니라 순전히 요행”으로 인식하였다.

그렇다고 엥겔스가 공상적 사회주의를 무의미한 것으로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공상적 사회주의의 한계는 초기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엥겔스는 “이미 이런 한계 속에서도 “환상적 껍질 아래 도처에서 분출하고 있으나 저 속물들은 보지 못하는 천재적 사상의 맹아와 천재적 사상을 보고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폐지, 여성에 대한 견해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여러 사상은 이후 과학적 사회주의에도 상당수 계승되었다.

두 번째 장은 사회주의가 과학으로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 필요했는지를 설명한다. 그 중 핵심은 변증법이다. 엥겔스는 변증법이 “사물들과 사물들의 개념적 모사를 그 연관, 연쇄, 운동, 생성과 소멸 속에서 본질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이것이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던 사유방법이지만, 역사 발전 속에서 잠시 변증법이 아니라 사물을 그 연관 속에서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해서 보고 정적이며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사유가 불가피하게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방법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노동자들의 독자적 투쟁이 성장하면서 역사 파악에 적용되어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새로운 역사관을 낳았다. 엥겔스는 이것의 핵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원시 상태를 제외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는 것, 서로 투쟁하는 이 사회 계급은 언제나 그때그때의 생산관계들 및 교환관계들, 한마디로 경제적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것, 따라서 사회의 그때그때의 경제적 구조는, 역사 시기마다의 법적, 정치적 제도들과 종교적, 철학적 등등의 표상 방식들로 이루어지는 전체 상부구조를 종국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실재적 기초를 형성한다는 것.

이로써 “사회주의는 더 이상 이러저러한 천재적 두뇌의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두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투쟁의 필연적인 산물”이 되었다. 또한 “이 계급들과 그들의 상호투쟁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고 이를 통해 창조되는 경제적 상황에서 충돌의 해결을 위한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유물론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이것에 의거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 등장의 역사적 필연성과 그것의 몰락 필연성, 계속 은폐되어 왔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적 성격을 벌거벗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잉여가치의 존재를 설명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엥겔스에 따르면 “유물론적 역사파악”과 “잉여가치를 매개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 폭로”, 이 두 가지 발견이 “맑스의 공로”이었고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만든 발견이었다.

세 번째 장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핵심내용인 역사적 유물론과 자본주의의 본질인 잉여가치 폭로를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과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았다. 엥겔스는 “분산되고 협소한 생산수단을 집적시키고 확대하여 현재의 생산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지렛대로 바꾸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그것의 담지자인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이 비약적으로 확대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에 입각해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주요모순이 바로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전유의 양립 불가능성”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이 모순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의자 사이의 대립”, “개별 공장 내에서의 생산의 조직화와 사회 전체 내에서의 생산의 무정부 상태 사이의 대립” 등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엥겔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로 전화시킴으로써,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변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력을 창조한다. 이 세력은, 사회화된 대규모 생산수단을 국가소유로 전화시킬 것을 재촉함으로써, 그 스스로 변혁의 수행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생산수단을 우선 국가소유로 전화시킨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기 자신을 지양하며, 그리하여 모든 계급 차이와 계급 대립을 지양하고 그리하여 국가로서의 국가도 지양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엥겔스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의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대목은 반드시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자신의 사상임을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말한다.

현대 사회주의는 …… 무엇보다도 [생산력들과 생산양식 사이의: 필자] 이 충돌에 의해 직접적으로 고통받는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머리라는 거울에 비쳐진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엥겔스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임무가 소수의 천재적 개인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그들을 대신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본주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혁명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한다.

세계를 해방하는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소명이다. 이러한 과업의 역사적 조건과 아울러 그 과업의 본성 자체를 깊이 캐는 것, 그리하여 이 과업을 행동으로 옮길 소명을 지닌 오늘날의 피억압 계급에게 그들 자신의 행동의 조건과 본성을 의식하게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이론적 표현인 과학적 사회주의의 임무이다.

이제껏 살핀 것처럼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핵심을 충실히 담고 있다. 시중에 무수한 사회주의 입문서들이 나와 있지만,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만큼 과학적 사회주의의 핵심을 전달하는 입문서를 접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 책은 지금도 사회주의를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할 입문서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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