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억압 없는 사회는 가능했고,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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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는 중요한 사회주의 고전을 소개하는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글들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고전을 직접 읽어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꼭지입니다.

“사회주의 선전보급”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목표입니다.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위해 다양한 기획과 연재를 진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말할 때마다 꼭 한 번씩은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데, 사회주의처럼 평등과 협력에 기초한 사회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1884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엥겔스는 여성억압도 계급도 국가도 없는 평등한 사회가 과거에 분명 존재했음을 보임으로써,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이기심과 빈부 격차, 각종 차별, 전쟁 같은 것들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또한 그런 원시공산주의 사회가 억압과 착취에 토대를 둔 사회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인간의 ‘본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이 조직되는 방식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국가가 사회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공익’을 추구하는 중립적 기구가 아니라, 계급대립의 산물로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착취, 억압하는 수단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점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어야 할 맑스주의의 고전으로 만든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저술 배경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쓰이기 25년 전인 1859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나온 것을 그대로 믿으며, 인간이 단지 몇 천 년 전에야 지구상에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자연 세계와 인간이 이루어 온 문명을 모두 신의 ‘섭리’로 설명하는 자연신학이 학계의 주류였다. 이는 착취와 억압을 어쩔 수 없는 것,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19세기 중반은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의식이 성장하고 계급투쟁이 격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사상적으로도 종교에 대한 비판 및 유물론적 관점이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무신론자들이 창간한 『이성의 신탁』이라는 신문이 불법 저가신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천 부가 팔렸다(존 벨라미 포스터, 『마르크스의 생태학』, 인간사랑, 2016).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겪으며 진화한다는 주장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불변하는 ‘본성’을 가진다는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또한 우연히도 같은 해, 영국 남서부 토쿼리 부근 브릭스엄 동굴에서 인류가 단지 몇 천 년 전이 아니라 수천 세기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왔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발견되었다(존 벨라미 포스터, 같은 책).

이런 사건들은 단지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파장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 역사를 이해하는 유물론적 관점의 발전도 자극을 받았다. 인간의 사회 제도들의 역사를 물질적인 ‘생존 기술들’의 변화 및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루이스 헨리 모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877년 출간된 모건의 『고대 사회』는 인간의 고정된 본성이나 신의 ‘섭리’를 상정하는 대신, “발명 및 발견의 산출과 함께, 그리고 제도들의 성장과 함께 인간의 정신은 필연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했”다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따르고 있었다(존 벨라미 포스터의 같은 책에서 인용된 부분).

그러니 맑스가 모건의 작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맑스는 1880년부터 1882년까지 모건의 저작을 포함한 여러 인류학 저작들을 읽고 발췌 노트를 만들었다. 그래서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1884년 초판 서문에서 “이 저작은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가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을, 미약하지만 내가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결코 엥겔스 혼자만의 책이 아니며, 맑스와 엥겔스가 함께 쌓아 올린 맑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책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여성억압도, 계급도, 국가도 없었던 사회

엥겔스는 모건이 ‘야만’, ‘미개’, ‘문명’으로 인류 역사의 단계를 구별한 것을 받아들인다. 훗날 용어들은 각각 수렵·채집 사회, 원예농업 사회, 도시화된 사회 등으로 바뀌었으나, 이 단계 구분 자체는 오늘날의 인류학계에서도 여전히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문명’ 이전의 사회에 대해, 엥겔스는 결혼 형태 및 친족 제도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모건, 바호펜 등의 기존 연구를 활용하면서 엥겔스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선사시대의 가족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오랫동안, 여성이든 남성이든 여러 사람과 자유롭게 성교를 하는 것(군혼)이 조금도 부도덕하다고 여겨지지 않았으며, 태어나는 아이의 아버지는 알기 어려웠으므로 혈통을 추적하는 것은 모계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1:1의 결합을 기초로 하는 가족형태(‘대우혼 가족’)가 일반화된 것은 형제와 자매 간의 성교가 금지되고 결혼이 금지되는 상대들이 점차 많아지면서였다고 한다.

이렇게 원시공산주의 시대 가족형태의 변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엥겔스는 “사회 발전의 초기에 여자가 남자의 노예였다는 견해는 18세기 계몽사상에서 물려받은 지극히 불합리한 관념 중 하나이다”(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앞으로 별도의 출처 표기가 없으면 모두 이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라고 했다. 원시공산주의 시대엔 오늘날과 같은 여성억압이 없었다는 엥겔스의 이 주장은 엘리너 버크 리콕 등 후대의 많은 인류학자들이 진행한 연구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비록 여성이 주로 채집 또는 원예농업을 담당하고 남성이 주로 수렵을 담당하는 성별 분업은 있었지만 이것은 당시의 낮은 생산력 수준에서 불가피했던 생존 방식이었으며, 억압적 성격을 갖지 않았다. 여성들이 담당하는 채집이나 원예농업이 사회적 생산에 수렵 이상으로 기여했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비단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씨족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전반이 평등과 협력에 기초해 있었다. 당시의 낮은 생산력 수준에서 생산수단은 공동체 구성원들 전체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구성원들은 생존을 위해선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도와야 했다. 예컨대 수렵조차도 뛰어난 남성 한두 명이 한 것이 아니었고 여러 남성들이 여성들이나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었다. 경험이 많아서 보다 존경 받는 사람은 있었을지언정 다른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집단 간 전쟁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국가도 당연히 불필요했다.

계급과 여성억압이 동시에 발생하다

하지만 이러한 원시공산주의 사회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은 생산력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사람들이 동물을 가축화한 것을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보고, 목축 부족이 비목축 부족과 분리된 것이 “최초의 커다란 사회적 분업”이라고 하였다. 동시에 농경이 시작되고 금속 가공 기술 등도 발전하였다. 그러면서 점차 동물, 토지, 농작물 등이 더 이상 씨족 공동체에 의해 관리되지 않고 몇몇 개인들의 사유재산으로 집중되었으며,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 엥겔스의 주장이다. 가축은 옛날 같았으면 씨족에 귀속되었겠지만, 당시에는 사적 소유가 발전하고 있었기에 가축이 가장의 특별재산이 된 것이다. 모계제가 남성이 자신의 혈통임이 확실한 자식에게 사유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부계제로 바뀌어 버림으로써 여성의 지위는 하락했다. 동시에, 사적 소유가 공동체적 소유를 잠식하고 불평등과 계급이 생겨나는 과정은 기존의 대우혼 가족이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가부장제 가족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가속화했다. 따라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단혼 제도에서 보게 되는 남녀 간의 적대적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한 엥겔스의 이런 설명에는 당시 인류학 연구 자료의 부족 등으로 인한 공백이 존재한다. 고든 차일드 등의 후대 맑스주의 인류학자들은 엥겔스의 틀을 받아들이면서도 일부 수정보완하여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한 맑스주의적 설명을 완성해 나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제시된 설명의 의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억압이 남성의 여성지배 본능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고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한다고 해서 생긴 것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사회적,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점, 여성억압 출현과 계급 발생이 시기적으로 일치하고 그 원인이 공히 사회적 생산의 변화에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은 엥겔스의 결정적인 기여다.

씨족 사회가 깨지고 국가가 출현하다

엥겔스는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한 생산관계의 변화 과정(토지, 동물, 농산물이 점차 몇몇 개인들에 의해 사적으로 소유된 것, 철기를 가공하게 됨으로써 농업생산력 및 건축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 농업과 수공업 사이의 사회적 분업이 발생한 것, 전쟁을 하고 포로를 노예화하게 된 것)을 차례로 설명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유민과 노예 간의 차별과 함께 부자와 빈자 간의 차별이 나타나고, 새로운 분업과 함께 계급으로의 분열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씨족 공동체라는 틀을 낡은 것으로 만든다. 엥겔스는 아테네 등의 사례를 들어 처음에는 씨족 사회의 틀 내에서 국가의 맹아가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약탈 전쟁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군사령관, 평의회, 그리고 민회가 군사적 민주주의를 구성했다. 그러한 기관들은 겉으로는 과거의 씨족 공동체에서처럼 인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사무를 민주적으로 처리하는 기관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예제가 강화됨으로써 그 실질적 성격은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씨족제도는 자기 자신의 일을 자유롭게 처리하기 위한 부족의 기관으로부터 이웃을 약탈하고 압박하기 위한 기관으로 바뀌며, 이에 따라서 인민의 의사를 대변해 주는 도구였던 것이 자기의 인민을 지배하고 압박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관으로 바뀐다.”

생산력이 더욱 발전하면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분업이 강화되고, 상인계급이 출현했다. 이와 함께 금속화폐가 유통되었고 고리대금업이 기승을 부렸으며 토지는 씨족 공동체라는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개인들에 의해 구매, 판매되고 소유되기 시작했다. 씨족 사회는 구성원들이 모두 생존을 위해선 서로 협력해야 하는 조건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타인을 착취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자기 이해관계로 삼는 사람들이 있으면, 즉 사회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분열되어 있으면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의 존립은 오직 이 계급들 상호 간의 끊임없는 공개적 투쟁 속에서만, 그렇지 않으면 외견상으로는 서로 싸우는 계급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공개적 충돌을 진압하고 기껏해야 계급투쟁을 오로지 경제적 영역, 즉 합법적 형태 속에서만 허용하는 제3세력의 지배 하에서만 가능하다. 씨족제도는 종말을 고했다. … 결국 씨족제도는 국가로 대체되었다.”

여기서도 후대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수정되거나 보완된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대한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맑스주의 국가론의 기본적 원칙들을 정식화한 것으로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부과된 권력이 아니다.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나 ‘이성의 형상 및 현실태’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자기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화해불가능한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자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들, 충돌하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닌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 속에서 스스로를 소모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충돌을 조정하고 그것을 ”질서“의 테두리 내에 묶어 두기 위한 하나의 권력이, 외관상으론 사회 위에 서 있는 하나의 권력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로부터 나왔지만 스스로를 사회 위에 놓고 점점 더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이 권력이 바로 국가다.

레닌도 『국가와 혁명』(1917)에서 이 부분을 인용한 후 “국가의 의미와 그 역사적 역할에 대한 맑스주의의 기본 사상은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국가는 계급 대립물들의 화해 불가능성에 대한 표현이며 그 산물이다.”라고 요약했다. 그리고 엥겔스는 민주공화제나 보통선거권 역시 국가기구의 계급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에 국가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는 공익과 정의를 추구하는 중립적인 심판자도 아니고, 누구든 집권하여 그 안에 들어가면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 텅 빈 공간도 아니며, 처음부터 지배계급이 “피억압계급을 압박하고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결합에 기초하여 생산을 새로이 조직하는 사회에서는 전체 국가기구를 그것이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즉 고대박물관으로 보내 물레나 청동도끼와 나란히 진열할 것이다.” 결국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그저 먼 옛날에 억압 없는 사회가 한때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데 그치는 책이 아니며, 우리가 미래에도 억압 없는 사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밝혀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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