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내전』: 맑스, 노동자 국가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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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는 중요한 사회주의 고전을 소개하는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글들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고전을 직접 읽어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꼭지입니다.

“사회주의 선전보급”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목표입니다.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위해 다양한 기획과 연재를 진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 다섯 번째 책은 맑스의 『프랑스 내전』이다. 『프랑스 내전』은 파리코뮌 직후 맑스가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를 통해 발표한 ‘1871년 프랑스 내전에 대한 연설’을 수록한 책이다. 특히 「프랑스 내전」은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국가였던 ‘파리코뮌’이 등장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의미, 그리고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지배계급의 ‘피의 일주일’에 대한 맑스의 날카로운 분석을 담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맑스가 국가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파리코뮌의 배경

맑스가 1871년에 쓴 “보불전쟁에 관한 총평의회의 첫 번째 연설문”이 지적한 것처럼 당시 프랑스 제정의 황제 루이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내 계급갈등을 이용해 권력을 탈취했고 정기적인 대외 전쟁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영속화하려 했다. 전쟁이란 외피 아래에 노동자민중에 대한 탄압과 착취, 새로운 이권에 대한 무제한적 폭력이 동원되었기에, 이 전쟁은 그 자체로 이미 반민주적 범죄에 다름없었다. 이에 파리의 ‘국제 노동자 협회’ 회원들은 “만국의 노동자들을 향하여”라는 선언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힘의 우위나 왕조가 문제되는 전쟁이란 노동자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범죄에 불과하다. 스스로는 혈세(血稅) 납부를 면제하며 공중(公衆)의 불행 속에서 새로운 투기의 원천을 발견하는 자들의 호전적인 선언에 우리는 항거한다. 우리는 평화와 노동과 자유를 원한다!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7월 16일 브라운쉬바이크에서 개최한 대집회에 파리 선언서에 대한 완전한 견해 일치를 표명함과 동시에 프랑스에 대한 국민적 적대감을 일축하였다. 나아가 “인민 스스로를 위한 평화 및 전쟁의 결정권에 대한 요구와 아울러 자기의 운명의 주인화를 통하여 이 같은 엄청난 불행을 불가능하게 해야”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70년 7월 19일, 프랑스와 독일(프로이센)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루이 보나파르트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의 귀추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제2제정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은 이미 파리에서 울려 퍼졌다”는 첫 번째 연설문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채 두 달도 안 된 9월 2일, 프랑스 군은 스당에서 대패하여 황제 자신이 포로가 되었고 이틀 뒤 프랑스에서 소위 “국민 방위 정부”라는 공화국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 방위 정부”는 공화정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구체제인 오를레앙 왕조로의 복귀를 갈망하는 자들이 주된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비스마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지배계급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황제 복귀 가능성을 내비치며 임시정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파리로 진격해 오는 프로이센군의 위협에 파리의 노동자계급은 스스로를 방위하기 위해 자비로 무장한 국민방위대를 조직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국민 방위 정부’는 스스로 말한 국민적 의무와 자신의 계급적 이해 사이에서 재빠르게 후자를 선택하며 ‘국민 배반 정부’로 변절하였고 이듬해 1월 28일 비스마르크와 휴전을 체결하며 내전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무엇보다 부(富)의 전유자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초래한 빚과 전쟁 배상금을 부의 생산자들에게 떠넘기기 위해서라도 파리의 무장해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고 부의 전유자들이 원하는 파멸로부터 구원받으려면 정치적·사회적 제조건을 혁명적으로 타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71년 3월 18일, 파리를 포위한 프로이센군의 대포 앞에서 국민방위대 중앙위원회는 다음의 선언을 발표했다.

파리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배계급의 실패와 반역의 와중에서 공무집행에 개입함으로써 시국을 수습할 때가 도래하였음을 깨달았다. ……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스스로를 자기 운명의 주관자로 간주하는 것이 자신의 절박한 과제이며 자신의 절대적 권리임을 깨달았다.

이로서 파리코뮌이 등장했다. 맑스가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이고, 착취자 계급에 대한 생산자계급의 투쟁의 소산이며,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완수하기 위한,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태”라고 밝힌 ‘파리코뮌’이 도래한 순간이었다.

파리코뮌, 노동자 국가

파리코뮌은 노동자국가의 중요한 특성들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그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국민방위대 중앙위원회는 파리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즉각 계엄 종식을 선언함과 동시에 야전 군사법정을 폐지하고 모든 정치범의 사면을 발표했다. 그와 동시에 구정부가 갖는 물리력의 요소인 상비군과 경찰을 해체하고 모든 교육 시설을 무상으로 개방했으며 지방치안판사와 재판관 등 공직의 선출과 소환을 실현하고 코뮌의원을 필두로 모든 공직은 노동자 임금수준의 급여를 받고 수행되도록 했다. 이렇듯 파리코뮌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철저히 실현하는 정치형태였고, 따라서 “철저히 확장될 수 있는 정치형태”였다.

# 파리코뮌이 보여준 중요한 노동자국가의 특성

‣ 상비군의 폐지와 무장한 인민으로의 대체
“그래서 코뮌의 최초의 정부명령은 상비군을 폐지하고, 그것을 무장한 인민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 공직의 선출과 소환
“코뮌은 파리각구에서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시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책임을 진다. 언제나 해임시킬 수 있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당연히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계급의 공인 받는 대표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까지 국가정부의 도구였던 경찰은 그 모든 정치적 속성을 즉시 벗어던지고, 책임을 진다. 언제라도 해임시킬 수 있는 코뮌의 도구로 변화된다.”
“다른 모든 행정부문의 관리도 마찬가지이다.”

‣ 행동적 기관
“코뮌은 의회식의 기관이 아니며 동시에 집행하고 입법하는 행동적 기관이어야 한다.”

‣ 노동자 임금수준의 급여
“코뮌의원과 그 이하의 공무는 노동자의 임금수준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엥겔스가 쓴 『프랑스 내전』 서문 역시 경청할만 하다. 엥겔스는 이 서문에서 사회의 종복이기 보다 주인이기를 자처하는 기존 국가에 대한 미신적인 존경이 “전사회의 공공사업과 공익이 종전의 방식 즉 국가와 두둑한 급료를 받는 그 관료들을 통한 방식이 아니고는 관리될 수 없다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데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됨에 따라서” 야기되었다고 지적했다.

사회는 본래 단순한 분업을 통하여 그 자신의 공통 이익을 돌보게 될 그 자신의 기관들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국가 권력을 그 정점으로 하는 이러한 기관들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자신의 특수 이익에 봉사하면서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신하였다.

본래 사회의 도구로 정해졌던 국가 권력이 사회에 대하여 어떻게 독립하여 가는가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에서이다. 여기에는 왕조도 귀족도 없으며, 인디언을 감시하는 소수 이상의 상비군도 없으며, 영구 직책이나 연금 수령권을 자닌 관료의 정치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교대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며 가장 부패한 수단으로 그리고 가장 부패한 목적을 위하여 국가 권력을 활용하는 정치적 투기꾼들의 양대 도당을 본다. 그리고 국민은, 명목상 국민에 봉사하는 입장에 있으나 실제로는 국민을 지배하고 약탈하는 정상배들의 양대 카르텔에 대하여 무력하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서 세습 군주정에 대한 믿음을 떨쳐내고 민주 공화정을 맹신하게 되었을 때, 이미 아주 힘차게 과감한 일보를 앞으로 내딛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는 한 계급에 의한 또 하나의 계급에 대한 탄압 기관에 불과하며, 이는 군주정에 못지않게 민주 공화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파리코뮌을 경험한 맑스와 엥겔스는 다음해 『공산당 선언』 독일어 서문을 함께 쓰면서 “단순히 기존의 국가 기구를 장악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보다 더 근본적인 국가관으로 나아갔다.

나가며

맑스가 말한 것처럼 1871년 파리의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성취하기 위해 오랜 투쟁을 거쳐야 하며 환경과 인간을 변모시킬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저 이전 사회가 품고 있던 새로운 사회로의 해방적 요소들은 자유롭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본가 계급은 베르사유와 지방 등으로 도주하였고, 자연스레 파리의 다양한 각 구에서 보통 선거로 선출되어 즉시 소환 가능한 다수의 노동자 시의원들로 코뮌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파리코뮌은 티에르 등 베르사유 정부가 비스마르크와의 교섭으로 돌려받은 40만 군대와 지방 징집병의 탈환작전으로 72일 만에 붕괴하고 만다.

그리고 140여년이 지난 지금 국가 권력은 여전히 사회의 종복이 아닌 주인의 자리에 있으며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서 존재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투쟁으로 등장한 정권이라고 자처했지만, 사드배치 강행에서 보이듯 노동자민중과 대립하는 자본가계급 국가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대결해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파리코뮌의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와 단절한 새로운 노동자국가를 논한 맑스의 『프랑스 내전』은 지금도 큰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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