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실천으로서 『독일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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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는 중요한 사회주의 고전을 소개하는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글들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고전을 직접 읽어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꼭지입니다. 

“사회주의 선전보급”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목표입니다.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위해 다양한 기획과 연재를 진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6년에 함께 쓴 책으로, 그들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하다가 1932년에 비로서 출판될 수 있었다. 『공산단 선언』, 『자본론』보다 수십 년이나 늦게 세상에 나왔지만,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문헌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이 자신들의 근본 사상이랄 수 있는 역사적 유물론을 직접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한 역사발전, 공산주의의 필연성 등 자신들 특유의 논지를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발전시켰다. 이 글에서는 『독일 이데올로기』의 주된 내용을 ‘비판’과 ‘유물론’, ‘역사’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더듬어보고자 한다.

비판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의 제목은 포이에르바하와 브루노 바우어, 슈티르너가 대표하는 청년헤겔학파 철학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이데올로기’의 뜻은 “헛소리”에 가깝다. 즉 독일의 이름 높은 헛소리꾼들을 모아 비판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겨냥한 대상이 당대 독일의 지배사상인 종교 또는 프로이센 국가의 관변철학이 아니라 이들 지배사상에 대한 비판으로 명성을 모으던 청년헤겔학파 철학이었다는 점이다.

1840년대 독일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와 이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발전이 봉건질서와 모순을 이루고 있었고, 이 모순은 1848년 혁명으로 분출되었다. 1848년 혁명에서 독일 부르주아는 전제군주와 귀족에 맞서 헌법과 의회, 선거, 자유를 요구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이처럼 혁명 전야라는 첨예한 시기에 청년헤겔학파 철학은 낡은 질서를 몰아내는 진보적 역할을 자임했고, 인간의 해방을 외쳤다. 물론 이들이 독일의 개혁과 정치혁명을 직접 선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독일의 정신을 지배해왔던 기독교에 대한 무신론적 공격, 그리고 프로이센 국가의 정신적 외피였던 헤겔철학에 대한 급진적인 전유는 봉건질서의 수호자인 교회와 국가의 권위를 침식하는 것이었다. 언론과 정치 활동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이들은 철학으로서 봉건제에 맞선 시민계급의 투쟁을 대변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들을 문제삼은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평생을 부르주아사회와 투쟁한 건 사실이지만, 당대 독일에서 자본주의 극복이 봉건제를 청산하는 민주주의 혁명을 건너뛰고 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고, 민주주의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공조를 무조건 거부하지도 않았다. 청년헤겔학파 철학이 봉건질서에 맞선 투쟁의 과정에서 진보사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왜 강력한 비판을 퍼부었을까?

유물론

비판의 동기들 중 하나는 혁명투쟁 가운데서 자신들의 ‘유물론’을 옹호하기 위함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청년헤겔학파의 관념론이 독일 혁명이라는 과업을 이루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장애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관념론을 치우고 대신하여 그 자리에 혁명에 어울리는 진정한 철학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후대에 레닌이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실천은 없다”고 간명하게 표현했던 신념을 레닌의 스승 역시 공유했던 것이다.

엥겔스는 훗날 자신의 저서에서 “철학의 중대한 근본 문제는 사유와 존재의 관계에 관한 문제”라며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개의 큰 진영으로 갈라졌다”(『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고 말했다. 간략하게 말하면 유물론은 지각과 인식의 대상이 외부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관념도 그에 대응한다는 것이며, 관념론은 주체가 의심의 여지없이 알 수 있는 건 자신의 관념뿐이라는 입장이다. 유물론의 관점이 상식에 속해 보이고 관념론은 궤변처럼 들리지만, 관념론이 합리적 회의를 철저히 밀어붙여온 지적 발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쉬이 부정하기 어렵다. 빨간 사과는 사실 특수한 범위의 가시광선이 우리 눈에 일으킨 인상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처럼 광선의 존재 자체도 의심해 볼 수 있다. 관념론은 주관적, 상대주의적 진리관과 맞닿아 있으며, 현대에도 다양성과 신사회운동, 급진민주주의 등의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물론의 입장에 서는 건 관념론이 변화와 발전을 사유하는 데 무능하기 때문이다. 지각된 관념들의 뭉치에 불과한 세계에 운동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이러한 관념론의 한계를 넘어선 건 헤겔이었지만, 헤겔철학에서 운동이란 곧 절대정신이며, 절대정신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고백에 불과하다.

관념론과 대비하여 유물론은 자연의 실재성을 승인한다. 이러한 유물론은 고대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지적 전통이다. 이 전통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일으킨 혁신중 하나가 자연을 인식과 작용의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일면적 관점을 극복하고 인간과의 관계 내에서 함께 변화 발전하는 존재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게 바로 인간의 노동이라고 바라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와 같은 의미로 포이에르바하에 대하여 “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감성적 세계가 영원한 옛날로부터 직접 주어진, 영원히 항상 같은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생산물이고 사회 상황의 생산물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독일 이데올로기』, 53쪽, 청년사)고 비판한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이다. 이와 같은 사상을 마르크스는 1844년에 작성한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도 “역사 자체는 자연사의 현실적 일부, 자연의 인간으로의 전화의 현실적 일부이다”라는 언명으로 표현했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순환)”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역사

마르크스 유물론은 자연을 관조의 대상이 아닌 삶의 조건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자연을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변형시키는 행위, 즉 노동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생산하고 분배하며 소비하는 과정에서 인간들 상호간의 관계가 형성되고 변화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생산력),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생산관계)는 서로의 전제이며 결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순환적인 상호작용이 발전의 동력이 된다. 마르크스 유물론이 특별한 건 그것이 끊임없는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 유물론과 역사는 본질에서 다르지 않으며, 이들의 유물론이 후대에 역사적 유물론으로 불리게 된 까닭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역사유물론의 근본개념이다. 생산력의 발전 수준은 특정한 생산관계와 조응하는데, 일정 단계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을 일컬어 생산양식이라고 한다. 생산양식은 사회의 토대를 이루며, 이 토대 위에 계급과 국가, 법, 이데올로기 등의 상부구조가 형성된다. 이러한 토대-상부구조 관계를 의미하는 가장 유명한 언명이 바로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독일 이데올로기』, 49쪽, 청년사)는 구절이다.

이처럼 생산양식을 사회의 토대로, 그리고 생산양식 내부의 모순을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규정하는데서 발생한 통념들 중 하나가 역사유물론은 경제결정론이라는 편견이다. 이러한 오해는 토대의 규정력에 대한 과한 해석 때문에 발생한 듯하다. 경제부분이 다른 모든 사회부분들의 내용과 변화를 자동적으로 결정한다는 단순한 해석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사회의 각 부분들이 저마다의 논리로 각자 따로 작동한다고 보는 것도 역사유물론과 무관하다. 사회의 각 부분과 영역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서 생산양식이 다른 무엇보다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게 본래 취지에 가까울 것이다.

요는 역사유물론이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주문한다는 점이다. 사회문제를 그 자체로서만,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건 총체적 인식과 반대된다. 문제를 둘러싼 여러 다른 사회부분들과 문제 사이의 관계들, 이들 중에서 보다 지배적 힘을 가진 관계를 찾아가는 분석, 즉 문제의 해결이 생산양식에 의해 얼마나 제약받는지, 여러 다른 사회부분들의 변화에 얼마나 의존하는지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건 역사유물론의 귀결이다.

시사점

비판과 유물론, 역사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통해 『독일 이데올로기』의 내용을 짧게 더듬어보았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역사유물론에 관한 최고의 문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은 『독일 이데올로기』가 혁명 전야의 사상투쟁 과정에서 쓰였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독일 이데올로기』는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저서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청년헤겔학파의 관념성과 비과학성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인식을 확립했다. 비판과 과학은 서로의 계기로서, 비판이 과학으로 이끌고, 과학이 비판을 완성시켰다. 청년헤겔학파는 스스로를 진보로 여겼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에게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역량이 전혀 없다고 여겼고, 그들의 무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의식을 변화시키라는 이러한 요구는 결국 현존하는 세계에 대한 해석 방식을 변화시키라는, 즉 다른 해석 방식을 통하여 세계를 승인하라는 요구로 귀착된다. 청년헤겔파 사상가들은 그들의 자칭 ‘세계를 뒤흔들어대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실은 가장 충실한 보수주의자들이다.”(『독일 이데올로기』, 40~41쪽, 청년사)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변화를 선전하는 소위 진보사상의 본질이 가장 충실한 보수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다. 인간 억압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와 법률 등의 상부구조를 비판하면서 인간 억압의 토대는 보지 못하는, 총체적 인식을 결여한 사상과 운동을 통해서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 이러한 사상과 운동의 성공은 억압에 대한 노골적인 옹호를 은밀한 묵인으로 바꾸어놓을 뿐이다. 이러한 진보주의는 가면을 쓴 보수주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이 바로 우리가 과학적 이론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유물론이 혁명투쟁의 이론이자 바탕이 되기를 바라였고, 이러한 목적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관점을 평생 동안 발전시켰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역사유물론은 세계를 변혁하는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도달한 답변이다. 억압과 착취, 모든 불의는 이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의 변혁을 통해서만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혁명전 실천을 건져 올려야 한다.

2 댓글

  1. 급진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하는 과학철학 작업을 검토하셨나요? 무슨 근거로 관념론이 현대에 유통되는 방식이라고 쓴 건지? 그들이 하는 작업의 핵심 중 하나가 관념론을 비판하고 사회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근거 좀 제시바랍니다?

  2. 혹시 비판적 실재론을 말하시는 것이라면 로이 바스카의 작업은 급진민주주의가 전제하는 담화이론과 무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진민주주의와 관념론의 연관에 대해서는 엘린 메익신즈 우드의 ‘계급으로부터의 후퇴’에서의 라클라우 등에 대한 비판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포스트좌파 이론들은 자본주의를 그 부정인 사회주의라는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대항하는 대신 자본주의의 틈새들 사이에서 공간들, 즉 포스트모던한 세계의 파편들 내의 내지 파편들간의 대안적 ‘담화들’을 위한 공간을 찾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포스트맑스주의보다도 더 철저하게 정치를 ‘담화’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의 지형은, 텍스트를 무수한 방식으로 ‘해체’시킴으로써 ‘정체성의 정치’와 ‘차이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강단아카데미에 더욱 굳건히 자리잡게 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는 과거보다도 계급정치를 위한 공간이 더욱 축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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