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해방 사상 사회주의의 정수, 『공산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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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사진: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는 중요한 사회주의 고전을 소개하는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글들을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고전을 직접 읽어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꼭지입니다.
“사회주의 선전보급”은 『사회주의자』의 핵심 목표입니다. 편집위원회는 앞으로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위해 다양한 기획과 연재를 진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전으로 읽는 사회주의”의 두 번째 고전으로 선택된 책은 바로 『공산당 선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유물론이 정리된 최초의 책이라면, 『공산당 선언』은 역사유물론을 밑바탕으로 하여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격과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할 및 과제가 정치적 강령형태로 정리된 최초의 문서라 할 수 있다.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가 쓰인 당시에는 출판되지 못하다가 1932년에 와서야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체계적인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된 사실상의 최초의 문서이다.

『공산당 선언』의 역사적 등장

이제 『공산당 선언』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그것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공산당 선언』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맑스가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1843년에서 44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에 맑스는 급진적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원래 학계에 머물며 자신의 포부를 펼치려고 했으나, 당시 프로이센의 반동적 분위기는 이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의 동료들인 청년헤겔파가 모두 대학에서 쫓겨나자, 맑스는 방향을 틀어 부르주아들이 재정을 후원해 만든 라인신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진적 민주주의 논조의 라인신문은 프로이센 당국에 의해 폐간됐다. 맑스는 독일 내에서 유의미한 정치활동이 불가능해졌다는 판단 아래 급진적 민주주의자 루게와 함께 프랑스에서 잡지 『독불연보』를 창간하고 이를 독일로 반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넘어갔다.

맑스는 라인신문 편집인으로 있을 당시부터 사회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독일로 유입되고 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조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프랑스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과 본격적인 접촉을 하게 되면서 맑스는 확고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이 시기 엥겔스와의 평생 교류가 시작되는데, 그는 엥겔스의 주선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노동자의 실상을 접하고 차티스트 활동가들을 만났다.

1845년 봄 프로이센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프랑스 정부는 맑스를 프랑스에서 추방했다. 그러자 맑스는 여러 가지 지리적, 정치적 조건을 고려하여 브뤼셀로 이주했다. 이 브뤼셀에서 맑스는 본격적인 조직활동을 시작하여, “브뤼셀교신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당시 편지는 가장 보편적인 통신수단이었고, 지역 간의 서신왕래로 조직을 형성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브뤼셀교신위원회가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고 사회주의 운동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비중이 커지자, 1847년 봄 영국 런던에 있던 “의인동맹”의 지도자, 요제프 몰, 칼 샤퍼, 하인리히 바우어가 맑스와 엥겔스에게 의인동맹의 가입을 권유하게 된다.

“의인동맹(the league of the just)”은 1834년 파리로 추방된 독일인 망명자로 구성된 비밀 결사 “법외자동맹(the league of outlaws)”에서 갈라져 나와 결성된 조직이었다. 의인동맹은 프랑스의 유명한 혁명가 루이 블랑키의 지도 아래 있던 “계절단”를 추종하여, 1839년 5월 “계절단”이 벌인 무의미한 봉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 봉기가 황당하게 실패한 후 국외로 추방된 칼 샤퍼, 하인리히 바우어, 요제프 몰은 런던으로 옮겨가 조직을 다시 세웠다.

1847년 여름 1차 총회를 통해 의인동맹과 브뤼셀교신위원회는 조직을 통합하여, 조직명칭을 “의인동맹”에서 “공산주의자동맹(the Communist league)”로 바꿨다. 새로 건설된 조직, 공산주의자동맹은 1847년 12월의 2차 총회에서 강령의 작성을 맑스와 엥겔스에게 일임하였다. 맑스는 교리문답식 강령형태를 버리고 많은 사회주의 정당의 표준적 강령이 된 형태로 새로운 강령을 작성하였다. 이로써 1848년 2월, 『공산당 선언』이 등장하였다.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출발을 알린 『공산당 선언』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러 부분에서 낡은 운동형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이제 이런 낡은 운동의 형태를 버리고 역사발전 속에서 제기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노동자 운동형태(이론, 강령, 조직, 투쟁 등)가 필요해졌다. 『공산당 선언』은 이전의 노동자 운동이 지녔던 이론적, 실천적 한계를 급복하고, 사회주의를 과학적인 것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① 노동자, 수동적 환경의 산물이 아닌 능동적 혁명의 주체로

당시 혁명적 노동자들은 운동의 철학적 기반으로 부르주아의 진보적 철학인 기계적 유물론을 수용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을 필요로 했고, 이 과학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철학이 기계적 유물론이었다. 이 기계적 유물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견해를 발전시켰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사회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인식을 담고 있긴 했지만, 인간을 환경에 단순히 순응하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보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단순히 구제받아야 할 가여운 존재가 되고, 변혁의 주체가 아닌 객체에 불과하게 된다.  반면 사회의 변혁은 사회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선각자의 몫이 된다.

기계적 유물론의 사회관은 당시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로버트 오언과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뿐 아니라, 소수의 선진적 혁명가들이 음모를 통해 국가를 타도하고 노동자를 해방시킨다는 블랑키주의도 그 영향 아래 있었다. 블랑키를 추종했던 “공산주의자동맹”의 전신인 “의인동맹” 역시 마찬가지였다.

맑스는 이런 기계적 유물론의 사회관을 비판했고, 자연과 사회를 자신의 목적에 맞춰 변화시켜가는 인간의 능동적인 활동, 혁명적 실천을 강조했다. 이런 내용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중 세번째 테제에 잘 담겨있다.

환경과 교육의 변화에 대한 유물론적인 학설은 환경이 인간에 의해 변화되고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따라서 이 학설은 사회를 두 부문―그 중 한부분은 다른 한 부분보다 더 우월하게 된다 ―으로 나눌 수밖에 없다. 환경의 변혁과 인간 활동 혹은 자기변혁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맑스는 이런 인식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등장뿐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주체적 세력으로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할을 설명해나갔다.

② 계급조화의 구호를 버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택하다

한편 당시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 하에 인간의 보편적 해방을 요구했지만, 인간 전체의 해방이 아닌 부르주아 계급만의 해방으로, 또 다른 계급사회의 수립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대의를 표현한 가장 대표적 표어인 “모든 인류는 형제다”는 혁명적 노동자들의 표어가 되었다. 공산주의자동맹 이전의 의인동맹 역시 자신의 조직 표어로 “모든 인류는 형제다”를 채택했다.

이 표어는 본질적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착취, 억압이 계급지배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급지배 자체의 철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아니라, 각 계급들이 너무 지나치게 자기 이해만을 추구하지 말고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계급조화의 인식을 담고 있었다. 맑스는 이 표어의 한계를 인식하여, 이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동맹은 조직의 목표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평등, 정의에 기반을 둔 신의 왕국을 지상에 수립하는 것”에서 “부르주아지의 타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 계급 대립에 기반한 낡은 부르주아 사회의 폐지, 그리고 계급들도 없고 사적 소유도 없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로 변경하고, 조직의 표어를 “모든 인류는 형제다”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바꿨다. 이 표어는 『공산당 선언』 말미에 담기게 되고, 그후 지금까지 전세계 노동자계급 공통의 표어로 자리잡게 된다.

③ 음모적 비밀결사 운동형태를 공개적, 대중적 운동형태로 전환하다

마지막으로 당시 상당수의 노동자 조직은 비밀결사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는 중세 길드체제로부터 내려오는 비밀결사의 전통과 당시 자본가, 국가의 탄압으로 공개적 조직을 만들 수 없던 상황이 결합되어 나온 것이었다. 가령 영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국내 정정이 불안해지자, 1799년 “단결금지법”을 제정하여 노동조합의 결성을 금지하였다.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은 비밀결사 형태로 조직을 만들었고, 독특한 비밀결사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조직형태는 노동자 대중운동을 만들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의인동맹도 당시 지배적이던 노동자 비밀결사의 방식을 따랐다. 맑스와 엥겔스는 의인동맹의 낡은 비밀결사적 조직형태를 바꿀 것 역시 요구하였다. 그 결과 새로 결성된 공산주의자동맹은 비밀결사식 운동방식을 폐기했다.

이것은 강령 형식의 변화로도 나타났다. 당시 노동자조직들의 강령은 교리문답 형식이었다. 교리문답식 강령이란 쉽게 말해 Q&A 형식으로 이루어진 강령이라고 보면 된다. 엥겔스가 1847년 8월경 작성한 『공산주의의 원칙들』은 바로 과거의 교리문답 형식에 맞추어 과학적 사회주의를 기술한 강령문서였다. 그러나 맑스는 이런 교리문답 형식으로는 새로운 과학적 사회주의의 내용을 담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강령 기술 방식 역시 완전히 뒤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공산당 선언』이 취한 서술 형식이었다.

『공산당 선언』의 구성과 내용

『공산당 선언』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Ⅱ.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Ⅲ.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Ⅳ. 각각의 반정부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공산당 선언』에는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아도 큰 감동을 주는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문구들을 넘어 전체 구성을 보면, 그 구성이 매우 논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사회주의정당의 강령이 갖춰야 할 형식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Ⅰ장은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며 “봉건 사회가 몰락하면서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대립을 폐지하지 않았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모습들로 낡은 것을 바꿔 놓았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성격을 규정해간다.

먼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등장이 지니는 혁명적 의미와 한계를 설명한다.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을 적극 기술한다. 『공산당 선언』은 “현대 부르주아지 자체가 기나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방식과 교류방식에서의 잇따른 변혁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런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봉건제와 맞서 싸워 정치적 진보를 이뤄내고 결국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 결과 등장한 부르주아 국가를 『공산당 선언』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그후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체 모순 속에서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리는 요인들을 낳으며 속수무책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잉생산이라는 전염병”이다. 『공산당 선언』은 이를 “주문을 외워 불러내었던 지하 세계의 힘에 더 이상 군림할 수 없게 된 마법사”와 같다고 비유한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과잉생산 공황과 같이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무기들을 벼려 냈을 뿐만 아니라 이 무기들을 지니게 될 사람들” 즉 “현대 노동자”를 낳았고 분명히 선언한다.

이제 Ⅰ장의 후반부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등장과정, 계급적 특징과 역사적 임무 등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노동자는 승리하나 일시적이다. 그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실은 즉각적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이 계속 확대되는 데 있다.” “프롤레타리아들의 계급으로의, 또 따라서 정당으로의 이 조직화는 노동자 자신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매번 다시 파괴된다. 그러나 이 조직화는 언제나 다시, 더 강하게, 더 견고하게, 더 힘있게 일어난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그 밖의 계급들은 대공업과 더불어 쇠퇴하고 몰락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공업의 가장 고유한 산물이다.” 요컨대 『공산당 선언』이 전달하는 강력한 메세지는 다음과 같다. 즉 근대 자본주의의 필연적 산물인 노동자계급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 싸워나가겠지만, 부르주아지와 양립할 수 없는 대립관계에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투쟁하고 단결하여 부르주아지에 승리할 것이다.

Ⅱ장은 프롤레타리아 대중 일반이 공산주의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와 공산주의자들의 요구, 지배계급의 공산주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맑스에게는 정당 이론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맑스주의 정당이론의 핵심이 이 Ⅱ장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는 주체는 노동자 계급 자신이고, 사회주의정당은 노동자들을 대신해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 노동자 자신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을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맑스주의 정당이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공산당 선언』에 명확히 담겨 있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자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관계를 결코 갖고 있지 않”으며,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당들 가운데 가장 단호한, 언제나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 진행, 일반적 결과 등에 대한 통찰에서 앞”서는 정치세력이라고 말한다.

『공산당 선언』에 따르면,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프롤레타리아당들의 당면 목적과 동일한데, 그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으로의 형성, 부르주아지 지배의 전복,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 권력의 전취”이다. 그리고 소유 일반이 아닌 “부르주아적 소유”, “사적 소유”의 철폐가 자기 목적임을 밝힌다. 『공산당 선언』은 Ⅱ장의 후반부에서 다시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 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공산당 선언』은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동자 국가’의 실내용이 노동자 자신에 의한 정치 권력 획득, 노동자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런 노동자 혁명이 완성되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Ⅲ장은 다른 사회주의 조류들을 비판하는 장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이 장은 이젠 과거의 유물이 된 사회주의 조류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장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도 노동자들의 의식을 현혹하는 다양한 운동들의 원형을 바로 Ⅲ장에서 비판하는 사회주의 조류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보수적 사회주의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절을 보면,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금의 사회에 머물러 있되 그 사회에 대해 원한이 가득 찬 그들의 생각은 벗어 던질 것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런 식의 주장은 요즘에도 쉽사리 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Ⅳ장에서 『공산당 선언』은 다른 진보적, 민주주의적 세력들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주로 기술한다. 이런 내용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봉건제에 맞선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미력하지만 향후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투쟁하는 것과 여타 민주주의 세력과 함께 봉건제와 맞선 민주주의 투쟁에 적극 임하는 것을 동시에 전개하는 것이 당시 사회주의자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Ⅳ장을 본다면, Ⅳ장 역시 가벼이 읽히지 않을 것이다.

마치며

이로써 『공산당 선언』의 역사적 등장배경과 그 내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공산당 선언』은 등장 이래로 많은 노동자와 진보세력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이미 전세계에 수백 종의 판본이 나왔고, 여전히 계속 다양한 판본으로 출판되고 있다. 이렇게 『공산당 선언』이 널리 읽히는 이유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핵심 내용을 간결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좋은 입문서가 바로 『공산당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일터와 삶터에서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분노하고 이를 극복하길 바라는 노동자, 민중이라면 이 착취와 억압을 극복하는 길을 찾기 위해 여전히 『공산당 선언』을 펼쳐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공산당 선언』의 생명력이 존재한다. 앞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공산당 선언』을 벗 삼아 과학적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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