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터뷰] 찰리 포스트: 미국 대선 결과와 사회주의 운동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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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템페스트. https://www.tempestmag.org/에서 찰리 포스트와 그의 동지들의 다양한 글들을 접할 수 있다.]

[편집자 설명] 드디어 미국 대선 결과가 나왔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율은 매우 높았는데,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미국 선거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 이유는 미국 대선 결과가 세계정치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고, 또 4년간의 트럼프 집권이 끝날지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 대선은 2008년 대공황 이래로 엄청나게 성장해온 사회주의 운동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버니 샌더스의 두 차례 대선 도전은 주로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청년들의 정치적 급진화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미국 사회주의자들은 독자적 사회주의 운동과 정당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점점 더 많은 토론을 해왔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런 논쟁이 더 심화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트럼트가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미국 민중은 바이든 정부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 정부에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독자성을 확립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주의자』는 미국 대선 결과와 사회주의의 전망에 대해 미국 현지의 사회주의자인 찰리 포스트(Charlie Post)에게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찰리 포스트는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사회주의자로 뉴욕 주립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연대’라는 조직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여러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이 민주당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성을 획득해야 하고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템페스트』라는 매체를 발행하고 있다.

Q1. 바이든의 승리가 이제 확정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푸른 물결’이 휩쓸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왜 트럼트가 엄청난 지지를 받았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 한다. 트럼프와 극우세력은 어떻게 미국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코로나19 대응 실패 등 온갖 실정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도의 지지를 얻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찰리 포스트: 민족주의/인종주의-포퓰리즘 극우세력(과 새로운 사회주의 좌파)의 등장은, 2008-2009년 경제후퇴 때부터 시작한 미국 정치의 계속된 양극화의 산물이다. 당시 경기후퇴는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의 시작이었다. 이 공황은 노동자계급, 관리자 및 전문직종의 신중간계급, 소규모 사업을 하는 전통적 중간계급의 생활수준을 악화시켰다. 오바마 치하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대응은, 자본에게 대규모 구제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인구의 광범위한 층들은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었다. 40년간의 패배와 후퇴 이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여성주의, 반인종주의, LGBT 등)은 신자유주의 긴축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나이 든 백인 노동자계급·중간계급은 사회적 재난을 “세계화 엘리트”뿐 아니라 이민자, 유색인 노동자, 여성의 탓으로 비난하는 호소에 무방비 상태로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극우세력이 처음 자신들을 드러낸 것이 “티파티”였다.

2016년 트럼프의 후보지명과 선거는 공화당의 나이든 백인 중간계급(과 소수의 노동자계급) 기반을 더 근본주의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세력들은 주류 공화당원들―역사적으로 자본의 다양한 층들과 연계를 가지고 있던 세력들―을 주변화하여 트럼프의 후보지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자본가들의 기부금 중 90% 이상을 가져오는 능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교외지역의 젊은 중간계급 전문직 층에 초점을 맞춘 그녀의 흐리멍덩한 중도파 캠페인은 트럼프의 2016년 승리를 가져왔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거의 3백만 표 차이로 졌지만, 중서부 “러스트 벨트”(1980년대 초반의 위기 때 지역적 탈산업화로 고통을 받은 지역이다)의 핵심 지역들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차이가 0.5%도 안 됐다. 이전에는 오바마에게 투표를 했던 백인 노동자들 중 소수층이 투표에 영향을 준 것이다.

집권한 후 트럼프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민족주의적-포퓰리즘적 의제 중 상당수를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그는 엄청 욕해댔던 북미무역협정을 그것과 거의 비슷한 멕시코 및 캐나다와의 무역협정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의 노동집약산업의 제조업자들을 미국으로 되돌아오게 설득할 수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예전에는 주변적 집단이었던 무장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백인 민족주의자들―사실상 파시스트 갱단―에게 백악관에 자신들의 “친구”가 있다는 신호로 작용했다. 이 세력들은 자신들이 순풍을 타고 있다고 믿으면서 버지니아주 샬롯빌이나 여타 도시들, 교외지역에서 뭉쳤다. 조직 노동자들과 이민자, 유색인, 좌파 등을 물리적으로 위협하기 위함이었다.

법인 및 개별 자본가들에게 엄청난 세금 감면을 해준 “세제개혁”을 트럼프가 추진했을 때, 미국 자본가들은 트럼프와 화친을 맺었다. 그렇지만 “허니문”은 2020년 새로운 전세계 경기후퇴가 시작되고 뒤이어 코로나19 대유행이 일어나면서 갑자기 끝나버렸다. 특히나 중국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1945년 이후 미국으로 하여금 자본주의 세계를 이끌 수 있게 해준 동맹 체제를 침해했다. 이로 인해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트럼프가 코로나19 대유행에 잘못 대처하고 반인종주의 봉기가 일어난 동안―당시 민주당 소속 시장들과 주지사들은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의 가장 전투적인 분출을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주요 도시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위협하자, 미국 자본가들 대다수는 11월 선거 몇 개월 전에 바이든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예측들과 달리 사실상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를 거의 천만 표나 늘렸다. 또 공화당은 미국 상원을 계속 지배할 좋은 기회를 갖게 됐고, 민주당의 하원 의석은 사실상 줄어들었다. 대개 출구조사를 이용한 결과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와 공화당은 대부분 나이 든 백인이 살고 있고 전반적으로 부유한 교외지역, 준교외지역, 시골지역에서 득표율을 늘릴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나이든 백인 중간계급의 압도적 다수 및 소수의 나이 든 백인 노동자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 한편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에게서도 실제로 지지가 늘어났다.

중간계급의 층들과 백인 노동자 중 적지 않은 소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유행에 완전히 잘못 대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트럼프를 계속 지지했을까? 강력한 “계급 대 계급” 조직―전투적 노조, 대중적 노동당, 독자적 노동자계급의 반인종주의 및 여성주의 조직들, 실업자 및 임차인 운동 등―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들과 중간계급의 상당수는 대부분의 다른 노동자들을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자로 또는 자신들의 세금으로 지출되는 사회 복지를 갉아먹는 “기생충”으로 본다. 현재의 경제공황과 대유행 속에서 백인 중간계급 및 노동자계급 중 경제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층들은 존재론적 딜레마에 처한다. 의미 있는 사회적 부양책(소규모 사업에 대한 보조금, 집에 가져가는 소득에 상당하는 실업혜택, 주택에 대한 유질처분 및 퇴거를 막는 보호조치 등)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의 경제적, 물리적 생존을 위해 선택을 해야 했다. “봉쇄”기간 동안 자신의 사회적 재생산을 거의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층들은 극우세력이 말하는 코로나19 부정론과 트럼프 쪽으로 끌렸던 것이다. 코로나로 죽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그런 가능성은 경제적 봉쇄로 인해 빈곤해지고 집을 잃게 된다는 확실성에 비하면 “차악”일 따름이다. 노동하는 민중을 위해 코로나 완화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바이든과 민주당의 캠페인은 실패했고(의회를 통과하지도 못했다), 이것은 결국 경제적 재난에 직면한 사람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지지하도록 자극했다.

Q2. 미국 사회주의 운동은 최근년 급속하게 성장했다. 당신은 사회주의 운동이 미국에서 왜 성장했다고 보는가? 그리고 이런 성장 이면에 있는 한계는 무엇인가?

찰리 포스트: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은, 신우익이 성장한 것과 같은 근원―2008-2009년 자본주의 공황과 그에 따른 민중의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적 “회복” 프로그램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 포퓰리즘 우파로부터 나왔다면, 2010-2011년경 노동자계급·반인종주의·여성주의의 급진화 흐름이 시작되었다. 2011년 봄 위스콘신 봉기와 뒤이어 그해 가을 일어난 미국 전역의 점거 운동, 2012년 시카고 교사파업, 2014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의 첫 번째 물결은 2016년 버니 샌더스의 민주당 대통령 지명 경선을 위한 조건을 만들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선거에 패배하고 샌더스의 도전을 흡수해버린 이후에도, 트럼프의 2016년 당선에 화답하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SA)의 급속한 성장, 2017년 초 무슬림 금지에 맞선 공항 점거, 같은 해 봄 국제 여성 파업, 2018년 공화당 지지 주(州) 교사 반란, 건강관리·호텔·자동차업계에서의 파업 물결과 같이 급진화는 계속되었다. 기록적인 실업이 발생한 2020년 봄 대유행에 대응하는 작업장 행동 물결과 2020년 봄 경찰의 잔혹행위 및 구조적 인종주의에 맞선 계속적인 봉기는 이러한 급진화가 최근에 표출된 사례일 따름이다.

이런 새로운 급진화의 한계는, 그것이 대체적으로 민주당 선거 정치와,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에게 대중적 지지를 제공하는 관료적 노동운동·사회운동이라는 틀 안으로 갇혀 버린다는 점이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나 여타 사회주의 단체들의 많은 동지들은 작업장에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봉기를 지지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성차별주의·동성애혐오·트랜스혐오에 반대하여 중요한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인적·물적 자원의 대다수는, 사민주의적 성향의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게 한다는 무익한 시도에 들어갔다. 샌더스의 선거 캠페인이 패배로 자체 붕괴되었을 때, 대다수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지도자 및 회원들은―2019년에 자신들의 대회에서 정한 “버니 아니면 지지 불가” 결의에도 불구하고―트럼프에 대한 “차악”으로서 신자유주의 중도파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온 몸을 던졌다.

이런 전략은 파괴력 있는 사회운동의 활동가 간부층을 형성하는 것과, 아무리 가장 급진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그런 정치인을 선출직에 당선시키는 것이 목적일 뿐인 선거 캠페인을 위해 다수 유권자 기반을 만드는 것을 크게 혼동하는 것이라 하겠다. 당선이 목적인 선거 캠페인과 노동하는 민중의 힘과 조직, 의식에 큰 충격을 주며 자본과 국가에 맞서 직접 행동을 하는 대중운동은 다른 법이다.

대중투쟁에서 승리하려면, 민중은 권력 실세와 위험을 무릅쓴 대결을 해야 한다―우리는 법도 깨부수고 우리 계급 내에 있는 다양한 균열(인종, 젠더, 시민권 등)을 가로지르는 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한 결과로 대중운동은 지속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들을 건설할 잠재력을 가지게 된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관념에 도전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변혁하고 자본주의 국가의 본성을 폭로하여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게 되는 것이다.

선출직에 당선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선거 캠페인―그 유일한 방식은 민주당 안에서 출마하는 것이다―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권력 실세와 대결하거나 위험을 감내하도록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게다가 버니 샌더스의 캠페인을 포함하여 이런 캠페인은, 노동하는 피억압 민중의 투쟁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참여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선거는 50%에 한 표만 더해도 승리하기 때문에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성차별주의와 같은 “분열적” 이슈들에 직면할 필요가 없거나 매우 적다. 선거 캠페인을 “고립을 자처하는” 대중의 대결적 투쟁의 전투성으로부터 떼어두려고 하는 이유가 무수할 수밖에 없다. 선거 캠페인은 대중투쟁에 정치적 표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운동의 활동가들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될 때 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으로부터의 정치적 독자성―민주당으로부터의 독자성―을 요구한다.

Q3. 사회주의의 기초는 자본가계급으로부터의 독자성,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상당수는 자유주의 자본가정당인 민주당의 그늘 아래 계속 남아있다. 예컨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 내 좌파 포지션을 계속 유지해왔고, 지금도 역시 회원 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품안에 있다. ‘국제사회주의조직’의 경우 조직 해산 이후 과거 회원들 상당수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에 들어갔고 민주당 지지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민주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찰리 포스트: 민주당에 대한 좌파의 예속은 1930년대 이래로 미국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보여 온 민주당에 대한 예속의 한 부분이다. 노조들과 피억압자들(인종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 여성, 성소수자 등)의 조직 등에서 공식 지도부들은 대중적이고 파괴력이 있는, 그리고 대개는 불법인 투쟁을 삼간다. 자신들이 명목적으로 대변하는 사람과는 동떨어진 채 자신들에게 더 우월한 물질적 조건을 제공해주는 조직(노조, NGO, 옹호단체 등)이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선거 정치―로비, 법률 대응, 국가가 규제하는 단체협상―는 조직적 성과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개량을 얻을 수 있는 “안전한” 방법으로 비춰진다.

불행하게도 노동하는 민중이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투쟁은 차치하고―은 이 같은 위험을 무릅쓴 투쟁 형태들을 통해서다. 이런 운동과 조직의 공식 지도부는 자신들이 수세적 위치에 있음을 알고 선거 정치와 민주당에 더욱 헌신적으로 몰두했고, 이로써 후퇴의 변증법은 심화되었다.

만약 활동가 내 새로운 “전투적 소수”가 공식 개량주의와 민주당 세력으로부터 독자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이룬다면, 우리가 미국에서 목도한 것과 같은 급진화는 이 같은 순환을 끝장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급진주의자들을 계급 독자성의 정치―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치―로 획득해낼 수 있는 맑스주의 혁명 좌파의 존재다. 그러나 두 가지 요소가 역사적으로 미국의 맑스주의 단위를 약화시켰다. 첫 번째 요소는, 역사적으로 1940년대 이래 미국의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자계급이 서로 분리된 것이다. 이것은 당시 가장 컸던 급진 조직인 공산당이 “인민전선” 전략을 취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미국 좌파의 지배적 정치로 남아있다. 두 번째 요소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등장했던 혁명 좌파가 거의 완전히 붕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파(內波)는 다양한 요인들―노동자계급의 고양 및 “장기 1960년대”(1965년∼1975년)의 사회운동이 실패로 끝난 것, 미국의 실제 노동자계급에 대해 이들 좌파가 가졌던 양가적 관계―의 결과다. 혁명 좌파는 현실의 대중운동으로부터 고립된 채 “소수 종파” 모델을 받아들였다. 이 모델은 “권위적”(대개는 권위주의적) 지도부를 가진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질한’ 혁명 중핵을 건설하는 것이다―‘국제 사회주의 조직(ISO)’의 붕괴는 단지 이 모델의 최근 사례일 뿐이다. 이 모델은 1980년대의 패배 속에서도 살아남아 미국 정치에 대해 현실주의적 평가를 했던 이들에게조차 막다른 길로 작용했다.

개량주의 정치는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종속과 노동운동, 그리고 사회운동에 뿌리내린 혁명 좌파와 같은 효과적인 대항력의 부재를 뜻하는 바, 그것의 견인력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내부와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신진(불행히도 더러 경험 많은) 급진주의자들이 샌더스의 캠페인과 민주당 선거 캠페인에 딸려 들어간 이유를 설명해준다.

Q4. 민주당과 단절하여 독자적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과제일 것이다. 두 번의 샌더스 선거 캠패인이 있은 후 점점 더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편으로 작년 대회 때 나온 ‘버니 아니면 지지 불가’ 결의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일부 회원은 거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고 버니 샌더스가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후에는 사회주의 좌파가 바이든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을 포함해서, 사회주의자들이 차악주의를 넘어서 독자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당신은 이러한 입장에서 애슐리 스미스와 함께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이 입장의 요점이 무엇이고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찰리 포스트: 애슐리와 나는 바이든이나 해리스 부류,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여타 민주당원들에게 구역질이 날대로 난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내부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그런 글들을 썼다. 민주당 선거 캠페인에 “전술적”으로 참여하는 것조차 왜 사회주의 좌파를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 약화시키게 되는지 이해시킬 목적이었다. 미국에서 우리는, 좌파가 1936년 이래로 몇 번이고 텐트를 접고, 자신의 독자적 조직화와 교육 시도들을 단념하며, 항상 “파시스트”로 묘사되는 보수적 공화당에 맞서 이러저런 우경화하는 민주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경우를 봐왔다. 그 결과 성과를 만들며 정치를 왼쪽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운동이 탈선하게 되었고, 민주당과 그 동맹세력으로 하여금 “중도”로 스스럼없이 움직여가게 했다. 우경화하는 민주당과 좌파의 결합에 의해 손상을 입고 약화된 좌파는 민주당의 정책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없다. 민주당 정치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유일한 목소리가 점차 강경 우익밖에 없게 된 것은 또 다른 결과다. 그들은 정치적 주류에 대한 민중의 정당한 분노를 다른 노동자, 특히 유색인 노동자와 여성, 이민자, LGBT 등에게로 굴절시킨다. 단순하게 말해서, “차악주의”는 우익의 공세에 일시적 유예기간도 주지 못하고 되레 우익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사진: 찰리 포스트는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사회주의자로 뉴욕 주립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

Q5. 차악주의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길을 만들려는 사례로는 무엇이 있는지? 당신은 향후 바이든 행정부와 극우의 위협에 직면하여 사회주의자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찰리 포스트: 선거 이후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내외에 새로운 좌파 단위를 형성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나는 템페스트 집단(https://www.tempestmag.org/about/)의 일원으로 그곳은 미국의 흩어져있는 혁명적, 반스탈린주의적 좌파 세력들을 재조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국제 사회주의 조직(ISO)’과 ‘연대(Solidarity)’(나는 25년간 이 조직의 회원이었다)에서 활동하던 동지들이 창립한 것이지만, 우리는 노동운동 관료들이나 민주당과는 독자적으로 사업장과 공동체들에서 투쟁을 건설하고자 하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내부와 그 주변에 있는 동지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의 단위를 건설할 가능성에 대해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내외의 다양한 세력들과 토론하고 있다.

그러한 좌파 단위는 몇 가지 과제를 가질 것이다. 우리 중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회원인 사람들의 경우, 이것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을 민주화하는 시도―정치 토론을 보다 공식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회원들과 지도자들이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회원들의 민주적 결정을 준수하는 조직 규범을 발전시키는 것―를 포함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회원과 모든 새로운 급진주의자들을 획득하여 독자 조직 건설과 바이든 행정부에 반대하는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의 관료와 피억압자들을 대변하는 주류 조직들의 지도자들은 바이든과 해리스에게 “밀월기간”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새로운 정권은 노동민중에 대한 긴축과 자본가들에 대한 구제자금을 자유롭게 추진할 것이다. 바이든이 노동하는 민중에게 아무 것도―보편적 건강관리도 미등록 이민자에 대한 사면도, 경찰 예산 삭감도, 점증하는 생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그린 뉴딜”도―약속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사회주의 좌파는 조직적 투쟁은커녕 “바이든을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 만드는” 길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혁명 좌파는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 바이든, 해리슨 및 민주당 주류와 대결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독자적 운동을 조직할 동맹세력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만약 좌파에 이 도전을 받아 안을 태세와 의지가 있다면,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이다.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실업은 높은 수준으로 지속될 것이고 바이든 행정부는 실직자에 대한 현금지원이나 퇴거 및 유질처분에 대한 보호조치 등과 같은 어떤 의미 있는 구제책도 실행할 수 없을 것이다. 고용주들은 실업 증가를 통해 임금 삭감, 노동시간 증대, 전반적인 노동강도 강화 등의 이익을 얻을 것이다. 유색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경찰의 살인·테러는 바이든-해리스 치하에서 증가하진 않을지라도 계속될 것이다. 오바마 시대의 “침묵의 추방” 물결이 새롭게 재개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트럼프 행정부 시기 동안 대담해진 진짜 파시스트 갱단들이 계속 거리를 점거하고 좌파, 노동민중, 인종적 소수자, 이민자, 성소수자에게 테러를 가할 것임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회주의 좌파는―바이든 치하 미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적 재무장에 반대하는 한편 미국에 반대할지는 몰라도 자국 민중을 억압하는 반노동자계급 독재자들을 포용하지 않는―아래로부터의 국제주의와 반제국주의를 다시 공언할 필요가 있다.

사민주의, 개량주의 좌파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이런 이슈들을 중심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동지들 상당수는 향후 민주당과 “지저분한 단절”을 하겠다는 이야기조차 일체 거부하거나 대선과 함께 열리는 “동시 선거”에서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운동 건설”이 계속 “좌파”적 선거 캠페인이나 NGO식 “캠페인”과 동격으로 여겨진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방식은 로비, 지지, 단계별로 관리되는 시위 등을 강조한다. 새로운 사회주의 좌파는 지난 날 살아 있는 대중투쟁 사례들―1929년∼1933년의 실업 노동자 운동, 1934년∼1937년의 대규모 산업노동자 파업,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일어난 초기 민권운동, 블랙파워운동 및 다양한 인종의 노동자계급이 벌인 직장 행동 물결 등―을 되돌아보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을 필요가 있다.

Q6. 사회주의가 발전하려면 노동자계급 안에서 확고한 토대가 건설되어야만 할 것이고 현장을 조직하는 전략이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필요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 깃발로 조직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있고 그 전망은 어떠한가?

찰리 포스트: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사업장 안팎에서 모두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잉여가치 생산을 위협하는 사업장 투쟁이 전략적 중심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생각이긴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 투쟁의 유일한 형식은 아니다. 인종주의나 사회적 재생산 조건에 맞서는 등 작업장 밖의 투쟁들은 역사적으로 작업장 내 투쟁들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예컨대 이런 투쟁들은 왕왕 대중파업 물결을 촉진하고 급진화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 초 수천의 투사들이 실업과 퇴거에 맞선 다양한 인종의 투쟁 속에서 급진화되고 그 투쟁을 조직했다. 그리고 그들은 1930년대 중반 기초산업의 조직화를 낳은 파업물결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민권운동과 블랙파워운동은 짐 크로우 법의 인종분리와 참정권 박탈을 철폐하고 제도적 인종주의에 도전하는 데 성공했다. 젊은 노동자들은 이 운동에 고무되어 1965년부터 1975년까지 파업이 물결쳤던 기간 동안 권위에 도전했다. 나의 동지 킴 무디의 말마따나 우리 중 상당수는, 지난여름 반인종주의 봉기가 중요한 “조직학교”로 작용하여 새로운 작업장 투사층을 만들고, 그들이 다가 올 여러 해 동안 이런 반란의 정신을 일터로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에는 기존 노조들 안에서 전투적 반대파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요한 급진주의 그룹들이 있다. 독자적 노동 매체인 ‘레이버 노트’와 특히 이 매체의 전국적 회의 및 지역적 “트러블메이커 학교”를 통해 다양한 노조들의 현장 활동가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최근 미국 노동자계급 중 가장 전투적 부위인 전투적 교사들 및 간호사들의 상당히 안정적 네트워크가 조직되었다. 조직된 작업장에서 노조인정 투쟁을 준비 중인 급진주의자들의 네트워크도 존재한다. 그런 사업장으로는 특히 아마존이나 운송망 노동자들이 모이는 여러 중요 허브들이 있다. 생산자들 간 혹은 생산자와 소비자간에 부품 및 최종 생산물을 운송하는데 있어서 이런 허브들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기존 노조 조직과 새로운 조직화에서 모두 핵심이 되는 것은, 노조 관료제로부터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필요하다면 그것에 반대할 태세와 의지, 능력을 갖춘 작업장 활동가들이 전투적 소수로서 집결하는 것이다. 조직된 작업장의 경우 이것은 태업, 준법투쟁, 직장 내 행동의 형식으로 직접 행동을 조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네트워크의 건설을 뜻한다. 미조직 작업장의 경우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법률적 제도들, 특히 전국노동관계위원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1934년과 1937년 초 사이 대중적 산업노조 건설에 기여한 “파업을 통한 조직화”에 대한 강조를 더 중시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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