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앞날을 걱정하게 된 미국 자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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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NBC에 나와 "자본주의는 고장났다"고 말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립자 레이 다리오]

미국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세기 냉전의 한 축으로서 자본주의 진영의 수장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세계 각지에 자국의 군대를 보내 패권을 과시하는 한편으로 각종 첨단산업과 금융을 통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해온 게 미국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의 자본가들 스스로의 입에서 ‘자본주의 미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미국 자본가들

최근 들어 미국의 내로라하는 자본가들이, 자본주의가 낳은 심각한 불평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며 체제가 ‘실패’ 또는 ‘고장’났다는 등의 언급을 하고 있다. 지난 달 4월 22일 파이낸셜 타임즈「왜 미국의 CEO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걱정하는가」에서는 이런 자본가들의 다양한 발언들을 소개하였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 “아메리칸 드림의 소멸”
    – JP모건 체이스의 의장이자 최고경영자로 3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 “나는 자본가다. 그러나 심지어 나조차 자본주의가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고, 진화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

    – 170억 달러 규모의 재산을 가진, 세계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Bridgewater) 창립자 레이 다리오(Ray Dalio)
  • “세계화와 기술변화는 다수에게 스트레스 증가와 생활수준 하락을 야기했고 소수에게는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 글로벌 보험사 처브(Chubb)의 최고경영자 에반 그린버그(Evan Greenberg)
  • “시스템이 인구의 광범위한 부분에서 실패”
    – 지주회사 엘러게니(Allegheny)의 소유주 웨스턴 힉스(Weston Hicks)

이러한 자본가들 중에는, 심지어 소득불평등에 대해 우려하면서 부유층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스스로 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 “우리가 돈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으려면, 기반시설과 교육 재원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시 부자에게 더 많이 세금을 매기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 “쇠스랑과 세금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세금을 선택할 것이다.”
    – 투자사인 블랙록(BlackRock)의 전직 경영이사이자 자칭 ‘자기 계급의 배신자들’ 단체인 ‘애국주의 백만장자(Patriotic Millionaires)’ 의장 모리스 펄(Morris Pearl)
  • “CEO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 … 예수조차도 노동자 중앙값 임금보다 500배 더 값어치 있는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
    – 영화 제작자이자 디즈니 상속자이며 ‘애국주의 백만장자’ 회원인 아비게일 디즈니(Abigail Disney)

특히 맥킨지의 명예 경영파트너인 도미닉 바턴(Dominic Barton)은 같은 기사에서, 모리스 펄의 행보에 대해 “6조 5천억 달러를 (관리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블랙록이 이런 걸 말하는 것은 학문적인 연습을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8년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법한 부호들조차 이러한 분위기에 숟가락을 얹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나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 나는 백억 달러가 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높은 세금을 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
  • “진짜 문제는 … 극히 부유한 층 사람들의 번영이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
    “발전하는 경제는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았다.”
    – 거대복합기업 버크셔 해더웨이(Berkshire Hathaway)의 CEO로 81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워런 버펫(Warren Buffett)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자본가들의 싱크탱크 중 하나인 밀켄 연구소(Milken Institute)에서 주최한 2019년 밀켄 글로벌 콘퍼런스(Milken Global Conference)에서도 자본주의가 낳은 심각한 불평등에 대해 우려하면서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밀켄 연구소는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이 만든 곳으로, 그는 1980년대 고수익 채권시장을 개발하고 정크본드의 황제라 불리며 금융투기를 일삼다 증권사기, 내부거래 등의 혐의로 결국 감옥에 갔던 인물이다. 한 마디로 금융투기로 돈을 번 전형적인 인물인 것이다.

『LA타임즈』의 「‘자본주의를 개혁하라, 그렇지 않으면 혁명에 직면할 것이다’, 밀켄 콘퍼런스에서 억만장자들이 말했다」란 기사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글로벌 투자사 구겐하임 파트너즈(Guggenheim Partners)의 전무이사 앨런 슈워츠(Alan Schwartz)는 불평등으로 인해 불만이 누적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계급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소득 재분배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마이클 밀켄은 이 날 대회의 세션 중 “자유기업제도의 미래”라는 세션을 진행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미국의 청년층 사이에서 사회주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위협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자유기업제도에 대해 “분명히 그것은 모든 이들을 위해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컨대 평범한 사람들이 꿈 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미국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자에 대한 세금 인상과 같은 조치들조차 받아들이겠다고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의아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태평천하를 누리고 있을 것만 같은 미국의 자본가들이 어째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된 것일까?

자본가들을 두렵게 한 원인: 심각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떠오르는 사회주의 운동

그 이유는 우선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는 공황을 낳은 원인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지 못한 채 양적완화, 금리인하, 긴축 등을 통해 노동자 민중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그러나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경기는 계속 하향세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실물경제는 여전히 침체상태에 머물렀고 부채는 급증했다. 이제 자본주의는 새로운 경제위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징조들마저 커지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황정규의 ‘반자본주의’가 이제 진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자본이 큰 이윤을 벌어들여도 경제는 ‘위기’인 이유: 자본주의라 그렇다」를 참고하기 바람.)

더 나아가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사회주의 운동도 자본가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자본가들은 이제껏 자본주의에 일부 문제가 있을지라도 결국 모두를 잘 살게 해준다고 선전을 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민중들의 삶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악화시키기만 하였다. 그로 인해 체제 자체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확산되었고,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투쟁이 급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2008년 대공황은 노동자 민중이 자본주의 체제 문제를 몸으로 직접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여론조사에서 젊은 세대 중 3분의 1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하고,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는 2년 만에 회원이 5천여 명에서 5만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DSA 회원이자 부유층에 대해 대규모의 과세를 할 것을 주장한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기존 민주당 의원을 꺾고 당선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아성이던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그 정당성을 상실해가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자본가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실제로 많은 미국의 자본가들이 미국 대중들,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미국 자유주의 언론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4월 20일자 기사 위기 속의 자본주의: 미국 억만장자들은 자신들을 부자로 만든 체제의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에서는 다음과 같은 자본가들의 발언이 실렸다.

  • “그들이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경제를 조직하는 방식으로써 사회주의를 점점 더 편안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았을 때다.”
    – 포드 재단 의장 대런 워커(Darren Walker)
  • “급격한 세금 인상, 기업 규제, 기업 개혁, 자유시장 기업에 대한 압박과 같은 사회주의자들, 좌파들의 이념에 관해 말하는 게 이제 정당하다는 데에 진짜 공포가 존재한다”
    “기업인들은 문제를 진단하고 있고,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이들이 우리에게 진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 정의로운 시장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자선단체라는 저스트 캐피탈(Just Capital)의 최고경영자 마틴 위태커(Martin Whittaker)

오크트리 캐피탈(Oaktree Capital)회장이자 투자가인 하워드 마크스 역시 지난 1월 3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자본주의 의식 확산을 크게 걱정했다.

  • “반자본주의 물결이 올라오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염려해야 한다”
    – 하워드 마크스(Howard Marks)

자본가들이 먼저 체제에 상당한 ‘양보’를 주문하게 된 것도 바로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지위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어떻게든 민중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애국주의 백만장자’라는 단체의 의장 모리스 펄은, 불평등으로 인한 대중의 분노가 증가함에 따라 자본가들은 자신의 체제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면서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레이 다리오 역시 “오늘날, 상위인구 1%의 부(富)는 하위인구 90%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으며, 이는 1935~40년 시기(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엄청난 국내외적 갈등의 시대를 불러왔던 시기)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부의 격차이다”라고 하면서, 이런 갈등이 자신들의 체제 자체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심지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문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자본가들의 우스꽝스러운 자기 절제 분위기도 등장했다고 한다. 부유층들이 명품 소비, 떠들석한 파티 등을 자제하거나 자신들의 호화로운 생활상을 외부에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 우리도 자본가들을 두렵게 만들자!

한국이 처한 상황도 미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오랜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올 줄 모르는 한국의 경제는 이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상황까지 왔다.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앞 다투어 올해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 민중들의 삶으로 눈을 돌리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OECD 최하위 수준의 노동권과 복지 지표들,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대졸 실업자가 60만 명을 넘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암울한 뉴스는 일상이 된지 오래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자본주의에 답이 없다’는 주장이 우후죽순처럼 나올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이 자신이 가진 것을 거저 내 주는 일은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서 자본가들이 자신을 부자로 만든 체제의 미래를 암담하게 여기며 조금이라도 뭔가 양보하려는 몸짓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문제시하는 운동이 성장하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하나의 교훈을 제공한다. 지배계급이 두려워하는 운동, 자본주의 그 자체를 문제시하는 운동을 만들자.

패스트푸드 업계의 노동자. 맑스 저작과 자본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를 배웠다. 사람을 '노동자 대 고객'이나 '상사 대 부하'의 관계로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만으로도 모두가 유익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끔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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